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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노동당의 제러미 코빈은 왜 벼랑에 몰렸나?

제러미 코빈(67) 영국 노동당 대표가 취임 1년도 되지 않아 벼랑에 몰렸다.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국민투표 닷새 뒤인 지난 6월28일 노동당 소속 의원들은 찬성 172표 대 반대 40표로 코빈 대표 불신임안을 통과시켰다. 코빈은 예비내각의 고용·연금 장관 출신 의원 오언 스미스(46)와 노동당 대표 선거를 다시 치르게 됐다. 22일 노동당원 65만명에게 투표용지가 발송돼 다음달 24일 개표 결과가 발표된다.

대표 선거가 시작되자 코빈의 지도력에 문제가 있다며 스미스를 지지한다는 노동당 의원들의 선언이 잇따르고 있다. 노동당 예비내각에서 문화·디지털 경제 장관을 맡았던 여성 의원 치 오누라는 22일 뉴 스테이츠맨 기고문에서 “코빈의 지도력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오누라는 올해 1월 예비내각 개각 과정에서 자신이 맡고 있던 업무 중 일부를 자신과 상의하지 않고 동료 의원에게 넘겼다고 적었다.

노동당의 전통적 지지 지역인 스코틀랜드의 대표인 케지아 더그데일도 22일 데일리 레코드 칼럼에서 “코빈은 당을 단결시키지 못했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노동당 유력 정치인으로 런던 시장인 사디크 칸도 21일 업저버 기고에서 “코빈과 함께는 총선에서 승리하지 못한다”며 스미스 지지를 선언했다.

코빈이 위기를 맞은 결정적 계기는 6월23일 브렉시트 국민투표였다. 노동당은 당론으로 유럽연합 잔류를 채택했으나 코빈은 잔류 캠페인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데이비드 캐머런 전 총리와 당파를 초월한 잔류 지지 캠페인에 나선 이는 코빈이 아니라 칸 런던시장이었다.

국민투표 결과 유럽연합 탈퇴가 결정되자, 애초 브렉시트 여부를 국민투표까지 끌고 간 보수당보다 노동당이 더 큰 타격을 받았다. 보수당은 캐머런이 물러나고 테리사 메이 정부가 들어서 브렉시트 국민투표 수습 과정을 맡으면서 지지율이 오히려 올랐다. 여론조사 기관 아이시엠(ICM)에 따르면, 보수당 지지율은 6월26일 36%에서 지난달 24일 43%로 올랐으나, 노동당 지지율은 같은 기간 32%에서 27%로 내려갔다.

지난 4일(현지시각) 영국 노동당 대표 선거에 나선 제러미 코빈(왼쪽) 현 대표와 오언 스미스 의원이 웨일스 카디프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토론을 하고 있다.

코빈을 비판하는 노동당 의원들은 코빈이 소통이 부족하고 특정 측근들에 의지하며, 지도력이 부족하다고 말한다. 예비내각에서 보건장관을 맡았으나 사퇴한 하이디 알렉산더는 코빈이 어려운 결정을 할 때마다 측근인 존 맥도널 예비내각 재무장관에게 결정을 미뤘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코빈과 동료 의원들의 갈등은 태생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코빈은 ‘민주적 사회주의자’를 자처하는 급진 좌파로 대표가 되기 전까지는 아웃사이더였으며, 토니 블레어 전 총리 이후 중도 좌파 성향이 많아진 당내 주류들과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었다. 지난해 대표 선거에도 후보 출마에 필요한 동료 의원 추천인 35명을 겨우 채웠다. 칸 시장은 코빈을 추천했지만 이유가 “토론을 확대하기 위해서였다”고 밝혔을 정도다.

일반 노동당원의 큰 지지로 당선은 됐지만 코빈은 대표 취임 뒤부터 이런 성향 때문에 동료 의원들과 충돌이 잦았다. 전쟁과 폭력에 대한 반대가 자신 “인생의 전체 목표”라고 말했던 코빈은 올해 초 영국 정부의 새 핵잠수함 건조 계획에 반대했지만, 의회 표결에서 반대표를 던진 노동당 의원은 47명에 불과했고 140명은 찬성했다.

코빈이 이번 대표 선거로 물러날지는 알 수 없다. 노동당 의원들은 압도적으로 코빈 불신임에 가담했지만 일반 당원들의 의견과는 거리가 있다. 영국 ‘비엠지(BMG)리서치’가 이달 11일부터 15일 사이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현재 노동당 지지자라고 밝힌 사람들의 경우 코빈 지지가 66%로 스미스 지지 34%를 크게 앞선다. 당원 대상 선거에서는 지난해처럼 코빈이 승리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코빈이 승리한다고 해도 노동당의 분열을 극복해야 하는 어려운 과제는 여전히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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