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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혹은 우아(優雅)한 냉혹(冷酷)(?)

솔까말 이제 임기말인 박근혜 대통령에게 대단한 개혁을 바라는 것은 언감생심(焉敢生心)일 것이다. 사드 문제로 난장판이 된 마당이라 외교안보 분야에서도 "통일대박"(풉)이니 하는 것도 운위하기도 면구스러울 지경이다. 하지만 그녀의 일관된 입장인 "아빠의 legacy는 내가 지킨다"라는 것이라도 제대로 이어가기 위해서라면 측근인 우병우 민정수석이라도, 체사레 보르자가 측근 레미로 데 오르코를 찍어 내듯이 "우아(優雅)한 냉혹(冷酷)"함을 발휘하여(물론 그렇게 죽이라는 얘기는 당근 아니다, 쿨럭;) 찍어내야 하지 않을까?

  • 바베르크
  • 입력 2016.08.24 08:16
  • 수정 2017.08.25 14:12
ⓒ한겨레

1. 들어가며 - 우병우 민정수석의 거취에 옹고집을 부리는 청와대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을 내쳐야 한다는 점증하는 여론에도 불구하고 청와대는 오불관언(吾不關焉)인듯 싶다. 급기야 청와대는 우병우 수석을 검찰에 수사의뢰한, (그것도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공약에 따라 생겨나서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임명하고 우 수석이 인사 검증한) 이석수 특별감찰관에 대해 "국기문란(國基紊亂)" 행위를 했다고 비난하는가 하면 우 수석 관련 의혹을 처음 제기한 특정 언론을 "부패한 기득권 세력"이라고 지칭하기에 이른다. 이 상황에서 나 같은 인터넷 구석 듣보잡 블로거의 얘기에 다른 사람도 아닌 박근혜 대통령이 귀 기울일 리 만무하겠지만, 문득 서양 르네상스 시대의 어느 고사(故事)가 떠올라, 나름 안타까운 마음에서, 한 번 자판을 투닥거려 보았다.

2. 아빠 덕에 출세한 잔혹한 금수저를 재평가한 마키아벨리

체사레 보르자는 르네상스기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금수저라 할 만했다. 당시 이탈리아 반도 중부에 광대한 교황령을 갖고 있던 교황 알렉산데르 6세의 서자(!)로 태어난 체사레 보르자는 아빠 덕에 추기경을 거쳐 교황군 총사령관이라는 지위에 올랐다. 더군다나 그 당대나 현대에 이르기까지 체사레에 대한 평은 그닥 좋지 않았던 것이 그가 누이동생인 루크레치아 보르자와 근친상간의 혐의가 있다는 소문도 돌았으며, 형제인 간디아 공작을 암살했다는 의혹까지 제기되었을 뿐만 아니라, 19세기에 쓰여진 알렉상드르 뒤마의 [몬테크리스토 백작]에까지 나올 정도로 정적의 제거 등을 위하여 암살이나 기타 냉혹한 수단을 쓰는 것도 주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체사레 보르자는 아빠 덕에 출세헤서 비열한 정치적 수법이나 정적을 상대로 쓰다가 아빠의 후광이 사라지고 나자(즉 교황 알렉산데르 6세가 죽고 나자) 몰락해 버린 그렇고 그런 용병 대장 따위로 역사책의 각주에나 남았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런 체사레 보르자가 불멸의 명성을 얻게 된 것은 당대에 그를 만나서 회견하고 그의 정치 행위를 지켜 본 피렌체 공화국의 외교관이자 정치 철학자인 니콜로 마키아벨리가 체사레를, 후대에 고전의 반열에 오른 자신의 역저 [군주론]에서 가장 이상적인 군주의 모델로 그려냈기 때문이다.

물론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자체가 권모술수나 탐하고 권력을 얻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피도 눈물도 없이 윤리와 도덕 따위는 내팽겨쳐도 무방하다는 식으로 곡해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실은 견결한 공화주의자였던 마키아벨리의 본의는, 정치라는 것이 개인의 선의와는 무관하게 현실로서 냉정하게 관찰되고 분석되어야 한다는 점에 착안한 것에 있다고 할 것이다. 그러기에 마키아벨리 및 그의 [군주론]은 정치를 신화와 종교, 도덕의 영역에서 분리해 내서 사회과학의 하나로서 천착하게 한 근대 정치학의 효시로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듯 싶다.

3. "일 잘 하는" 최측근을 찍어내어 불멸의 명성을 얻은 체사레 보르자

그렇다면 마키아벨리는 어찌하여 하필이면 그 태생부터 독신이어야 한다는 교황의 아들이어서 악덕의 상징인데다가, 그러한 아빠의 입김이 구석구석 서린 출세 가도를 달린 것에 지나지 않은 체사레 보르자 같은 이를 그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군주(정치 지도자)의 모습으로 그려내고 심지어 그에 열광까지 한 것일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마키아벨리를 체사레빠(웃음)로 만든 가장 중요한 사건 중의 하나는, 바로 체사레가 그의 최측근인 레미로 데 오르코를 찍어낸 사건이 아닐까 싶다.

레미로 데 오르코는 누구인가? 이름에서 풍겨 나오는 스페인풍(응?)처럼 그는 스페인계인 교황 알렉산데르 6세, 체사레 보르자 집안의 집사와도 같은 최측근이었다. 체사레를 호위하여 보르자 집안 및 알렉산데르 6세 집안의 후원자인 프랑스 궁정에 다녀온 일도 있었다. 그러기에 체사레는 그를 믿고서 교황령 중의 핵심인 로마냐 지방의 총독 자리를 맡겨 그 지방을 다스리게 한다.

로마냐 지방은 로마 교황청이 있는 로마의 주변 지역으로 형식적으로는 로마 교황령이었지만 알렉산데르 6세가 교황에 즉위하기 이전에는 사실상 반(半)독립적인 용병대장들이 멋대로 곳곳을 점거하고 있어서 교황청의 통치권이 제대로 미치지도 못했고, 치안도 무척 혼란스러운 상태였다고 한다. 그런데 교황군 총사령관인 체사레 보르자의 단단한 신임을 받고 있는 레미로 데 오르코가 로마냐 총독으로 부임하자, 그는 엄정하고 단호한 법집행으로 치안을 회복하여 이 지역을 다시 알렉산데르 6세-체사레의 통치권이 구석구석 미치는 지역으로 바꾸어 놓았다고 한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우병우 청와대 민정 수석이 이른바 문고리 권력 논란으로 시끄러웠던 정윤회씨 사건을 (박근혜 대통령 입장에서) 깔끔하게 처리하여 박근혜 대통령의 신임을 단단히 얻었다는 것 같은데, 체사레 보르자에게 레미로 데 오르코도 비슷한 역할을 하였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레미로 데 오르코는 이렇게 주군인 체사레 보르자의 뜻을 관철해 나가는 과정에서 가혹하게 법집행을 하느라고 로마냐 지방의 주민들에게 큰 원한을 샀다고 한다. 그리고, 당시 로마냐 주민들 입장에서야 로마냐 총독 레미로 데 오르코는 바로 다름 아닌 그를 임명한 체사레 보르자 교황군 총사령관이나 다름 없었기 때문에 이는 곧 체사레 보르자에 대한 원망으로 번질 기세였다. 바로 이 지점에서 체사레 보르자는 마키아벨리가 감탄하고, 후대에 체사레 보르자의 전기소설을 쓴 일본 소설가 시오나 나나미가 '우아(優雅)한 냉혹(冷酷)이라고 그 소설 제목에서까지 격찬한 솜씨를 보여준다.

체사레 보르자는 "어느 날 아침 두 토막이 난 레미로의 시체를, 형을 집행한 나무토막 및 피 묻은 칼과 함께 체사나 광장에 전시했다"

마키아벨리, [군주론](강정인, 김경희 옮김, 까치), 56쪽.

즉 체사레 보르자는 이러한 극적인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여태까지 로마냐 지방에서 취해진 조치는 모두 그가 시킨 것이 아니라 그의 대리인인 레미로 데 오르코의 잔인한 성격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떠넘길 수가 있었기 때문에 체사레의 통치를 받던 로마냐 주민들은 일종의 후련함을 느끼면서도 또한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고 마키아벨리는 평했다(위의 책, 같은 쪽).

만약 체사레 보르자가 구질구질하게 옛정에 끌려서(동향 출신에 집사 역할까지 한데다가 시키는 일들까지 야무지게 잘 했으니 체사레 보르자 입장에서는 레미로 데 오르코가 얼마나 귀여웠겠는가!) 레미로 데 오르코를 감싸는 모습을 계속 보였더라면, 레미로 데 오르코가 범했던 무리수들은 자연스럽게 체사레가 눈 감아 준 짓으로 여겨졌을 것이고 민중들의 불만은 이제 체사레를 향하여 치솟아서 체사레 자신의 지위와 권력까지 위태롭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오히려 체사레는 이 상황에서 읍참마속(泣斬馬謖)하는 심정으로 신속하고 단호한 조치를 취하여 반전시켰으니 그 기예(技藝, art)에 마키아벨리와 시오노 나나미 같은 양(洋)의 동서와 고금(古今)의 작가들이 반할 수밖에 없지 않았겠는가!

체사레 보르자가 이렇게 측근인 레미로 데 오르코를 민중들의 불만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없앴다고 하여 체사레가 다스리던 교황령의 국기(國基)(웃음)가 흔들렸을까? 천만에 만만에이다. 체사레는 민중들의 신망과 두려움을 동시에 얻었으며 이탈리아 반도의 중부를 거의 통합하기에 성공한다. 만약에 그의 부친이 갑자기 병으로 사망하며 그 순간 자신도 함께 병이 걸리고 마는 기막힌 불운이 겹치지 않았더라면 체사레 보르자는 마키아벨리가 [군주론] 마지막장에서 "야만족의 지배로부터 이탈리아의 해방을 위한 호소"를 할 필요도 없이 진즉에 이탈리아를 프랑스나 스페인 같은 강력한 국민국가(nation state)로 탈바꿈시킬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4. 맺음말: 박근혜 대통령의 우아(優雅)한 냉혹(冷酷)함을 기대하며

솔까말 이제 임기말인 박근혜 대통령에게 대단한 개혁을 바라는 것은 언감생심(焉敢生心)일 것이다. 사드 문제로 난장판이 된 마당이라 외교안보 분야에서도 "통일대박"(풉)이니 하는 것도 운위하기도 면구스러울 지경이다. 하지만 그녀의 일관된 입장인 "아빠의 legacy는 내가 지킨다"라는 것이라도 제대로 이어가기 위해서라면 측근인 우병우 민정수석이라도, 앞에서 본 것처럼, 체사레 보르자가 측근 레미로 데 오르코를 찍어 내듯이 "우아(優雅)한 냉혹(冷酷)"함을 발휘하여(물론 그렇게 죽이라는 얘기는 당근 아니다, 쿨럭;) 찍어내야 하지 않을까?굳이 우 수석이 받고 있는 각종 의혹과 인사검증 실패와 같은 무능함을 비호하여 이를 박근혜 대통령 자신의 의혹과 무능으로 만들며 우 수석과 함께 침몰하여야 직성이 풀릴까? 기왕에도 "배신의 정치를 심판해 달라"고 하였고, 자신의 최측근으로 자신의 내각에서 장관까지 지낸 인사가 야당으로 넘어가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으며, "친박의 좌장"(풉) 따위는 X에게나 주어 버리라는 태도로 일관했던 박근혜 대통령과 그 측근들이기에, 도대체 왜 때문에 우병우 민정수석의 거취에 대해서는 청와대가 이렇게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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