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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지성사에 해독을 끼쳤다"는 이 책들이 치명적인 이유 6가지

현 정부는 여러모로 친절하다. 지난 7월 1일에는 국방부가 군 마트에서 팔던 책 5종을 판매 금지시키면서, 좋은 책과 나쁜 책을 구분해 주었다. 이번에는 출판평론가 한기호씨의 페이스북 포스팅에 ‘전환시대의 논리’와 ‘해방전후사의 인식’이 ‘대한민국 지성사에 치명적인 해독’을 끼쳤다고 주장하는 한민호 문화체육관광부 미디어정책관의 댓글이 달렸다. 한 정책관은 한겨레신문과의 통화에서 “문제는 두 책이 한국 현대사의 부정적 측면만 부각했다는 점이다. 이승만 정권도 공과가 많다. (두 책은) 부정적 측면만 부각해 헬조선을 운운하는 잘못된 지적 토양을 만들었다”고 본인의 취지를 설명했다. 이 역시 나쁜 책이 어떤 책인지 국민들에게 알려주려는 문화체육관광부 간부의 충정이다. 우리는 복 받은 국민이다. 한 정책관의 말마따나 대한민국 지성사에 치명적인 해독을 끼친 이 두 권의 책들이 우리 인생에 얼마나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는지 직접 확인해 보았다.

*심약하신 분들은 충격에 정신건강이 안 좋아질 수 있으니 이쯤에서 스크롤 내리기를 멈추고 나가시는 편을 권고한다.

1. 괜히 안 될 일에 매달리게 된다.

"...가장 진실을 잘 알고 있는 국민이 가장 국가를 위할 줄 안다'는 기본원리는 공통으로 통한다. 진실은 비판을 낳는다. 어떤 사회도 어떤 정부도 비판의 여지없이 최선이거나 만능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럴수록 민주제도는 진실-비판-개선의 끊임없는 과정을 걸어갈 수 있다. 진실이 알려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회체제나 정부는 분명 비판에 견딜 수 없는 체제와 정부다. 그러기에 비판을 봉쇄한다. 비판이 허용되지 않는 사회는 개선과 향상이 없고 그 결과는 더한층의 타락이며, 타락한 제도를 유지하려는 지배세력은 탄압에 호소하는 악순환 속에 침체할 수밖에 없다." (책 ‘전환시대의 논리’, 리영희 저)

한민호 정책관은 이 책이 현대사의 ‘부정적 측면’만을 강조했다고 말한다. 여기 이 문장을 보면 과연 그 ‘부정적 측면’을 일부러 들춰낸 사악한 의도를 알 수 있다. ‘부정적 측면’을 가리면 제대로 된 비판이 불가능하고, 제대로 된 비판이 불가능해지면 그 정부는 더 이상 개선도 향상도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란다. 그러나 저자는 의도적으로 한 가지 사실을 빠뜨리고 있다. 비판도 듣는 사람 따로 있고 안 듣는 사람 따로 있는데, 정부라고 안 그럴 리 없다는 사실 말이다. ‘부정적 측면’이 좀 나아지는 맛이 있어야 파헤치기도 하고 비판도 하는 건데, 전혀 그럴 기미가 보이지 않는 곳에선 사실 힘만 빠지고 기분만 상한다. 그러느니 그 ‘부정적 측면’을 아예 안 보고 사는 게 속이라도 편할지 모른다. 한 정책관은 우리에게 ‘어차피 안 될 거 괜히 책 보고 기운 빼지 마시라’는 세심한 권고를 해준 것이다.

2. 쓸데없이 자길 괴롭히는 사람만 만들 수 있다.

"...우리 모든 인간은 국가라는 사회 속의 생활이 당연히 요청하는 그 집단에 대한 의무와 함께 그보다 한층 더 높은 의무를 아울러 지니고 있다. 우리가 우리의 의무를 다만 국가라는 특정 조직체의 유지라는 것에만 예속시킨다면 그 순간 우리 개개인의 내적 자아에 대한 의무와 인간의 존엄에 대한 충성이라는 가치는 사라지고 만다. 따라서 국가 지상이라는 신념은 국가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모든 행위에 대해서 그 심판자로서의 자리를 지켜나갈 각오가 없는 한 불충분하다. ‘국가의 이익’이라는 것만을 기뻐하는 것으로 애국자일 수는 없다. 우리는 (민주주의 사회의) 한 시민으로서 국가의 이익 또는 승리라는 것이 시민 개개인의 내적 자아가 승인할 수 있는 가치와 명분에 대한 승리인가를 먼저 확인하는 것이 절대로 필요하다."(해롤드 J. 러스키) (책 ‘전환시대의 논리’, 리영희 저)

이 해악이 가득한 문장에 주목해 보자. 간사하게도 영국의 저명한 정치사상가 해롤드 러스키의 문장을 인용하며 본 목적을 숨기려고 했지만, 결국 말하고자 하는 바는 ‘국가’ 이전에 ‘나’가 있다는 선언이다. 먼저 내 시민적 양심에 근거해서 국익을 판단해야 진정한 애국을 할 수 있다는 권고인 것이다. 과연 지성사에 치명적 해독을 끼친 책이라 할만하다. 어렸을 때부터 부모 말을 잘 들어야 효도라고 배웠고, 선생님 말에 토를 달지 말아야 학교생활을 잘 한다고 배웠으며, 군대나 회사에 가서도 상관이 이상한 걸 시켰을 때 일단은 하는 시늉이라도 해야 편하게 산다고 배웠던 국민들이 갑자기 ‘애국’은 그렇게 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얼마나 당황했겠는가? 심지어 학교에서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하라고까지 배웠는데 말이다. 가정과 사회에서 아무 문제 없이 살던 사람들이 혹여 저 문장이 권하는 대로 행동했을 때 겪게 될 온갖 피곤한 일들을 상상해 보자. 역시 괜히 읽었다가 신세 망치지 말라는 먼저 사신 분의 수준 높은 권고를 들어야 한다.

3. 괜히 피곤한 일에 엮이게 된다.

“인간해방과 사상의 자유의 역사는 어차피 독선에 대해 회의가, 권위에 대해 이성이 승리를 거두는 긴 투쟁의 되풀이임이 틀림없다. 우화도 그렇고 현실도 그렇고 역사는 한 단계의 투쟁이 끝나면 으레 ‘임금은 알몸이다’라고 폭로한 소년의 용기에 열중한 나머지, 힘없는 소년에게 그런 엄청난 임무를 떠맡기게 된 그 사회의 실태에 대해서는 눈이 미치질 않는다. 문제시해야 할 중요한 것은 그 영광(또는 해결)까지의 과정에 얼마나 많은 인간적 타락과 사회적 암흑과 지적 후퇴가 강요되었느냐 하는 사실을 인식하는 일이겠다.” (책 ‘전환시대의 논리’, 리영희 저)

꼬치꼬치 캐묻는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잘못한 일은 덮고 넘어가고 다른 사람들 기억에서 잊게 만들고 싶은 게 우리들이다. 그걸 굳이 들춰내겠다는 누군가를 두고 볼 사람은 웬만한 인격자가 아닌 이상 거의 없는 법이다. 그런데 이 책은 ‘잘 끝난 일’도 잘 끝났다고 그냥 넘어가지 말고 ‘잘 끝나지 못했을 뻔한’ 부분은 없었는지 굳이 더 확인해보라는 식이다. 그래야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다고 말이다. 한 정책관은 괜히 쓸데없는 일에 엮이지 말고 입 닫고 사는 게 신상에 이롭다는 실용적인 충고를 우리에게 해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4. 안 받아도 될 미움을 받게 된다.

“우리의 언론과 지식인은 한마디로 반공(反共) 외의 딴 가치나 진실을 말하지 못했다. 그러한 지식과 사상이 있었다는 사실 자체는 가치가 없다...운명을 같이할 수밖에 없는 한 사회의 대중이 오도된 사고방식이나 정세 판단을 하고 있을 때 그것을 깨우쳐야 하는 것은 언론과 지식인의 최고의 책임이자 의무다...언론과 지식인이 알고 있는 지식과 갖고 있는 사상을 발표해야 하는 때는 내일이 아니라 바로 오늘이다. 내일 발표되는 지식은 이미 주위 사람에게는 무의미한 것이다.”

(책 ‘전환시대의 논리’, 리영희 저)

성격 나쁜 사람한테 굳이 ‘너 성격 나쁘다.’고 할 필요는 없다. 벌어질 게 싸움밖에 없으니까. 그냥 그 사람이 가고 난 뒤에 아는 사람들끼리 조용히 뒷담화하면 된다. 그런데 이 책은 ‘너 성격 나쁘다.’를 항상, 바로 지금, 그 사람이 있는 앞에서 말해줘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 되라고 지시한다. 언론과 지식인, 그거 아주 싸가지 없는 사람들인 것이다. 웬만하면 그런 일은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사는 게 좋으니 아예 읽지를 말라는 충고를 잘 새겨놓을 필요가 있다.

5. 쪼잔해진다.

“...이런 미온적인 인식의 하나가 40년 전 일제시대의 일들은 이제 그만 덮어두자는 대범(?)이다. 그럼, 일제시대를 대체 얼마나 규명했다고 “이제 그만 덮어두자”인가? 해방 40년이 되도록 우리는 침략의 가장 기간(基幹)인 총독부•동척(東拓)•조선군(주한일본군)에 관해서조차 단 한 권의 연구서가 없는 실정이다. 연구된 것이 없는데 그만 덮어두자는 것은 역사를 암장해버리자는 말밖에 되지 않는다. 역사의 암장으로 초래될 것이 동일한 우(愚)의 되풀이 외에 다른 무엇이 있단 말인가.” (책 ‘해방전후사의 인식 2권’, 강만길 외 저)

사실 그렇다. 아무리 80년대가 해방전후사에 대한 변변한 연구서 하나 없었던 시절이라지만, 그래서 친일에 대한 연구가 임종국 씨 말곤 거의 아무도 덤벼들지 않던 연구주제라지만, 사람이 대범하고 인정머리 있게 부끄러운 부분은 덮어줄 수도 있지 않은가. 밝히는 사람도 그다지 유쾌하지 않은 주제인데 말이다. 까짓 것 되풀이하면 되지. 이런 책을 읽다 보면 쓴 사람도 읽는 사람도 공연히 사람들 앞에서 핏대만 세우는 쪼잔한 인간이 되기 십상이다. 비뚤어진 인간이 되기 전에 여기까지 읽었으면 서둘러 책을 덮는 편이 좋다는 권고를 유념하자.

6. 현혹될 수 있다.

“우리 민족사에서, 일제 말엽의 친일 행위는 학문으로든 감정으로든 아직껏 정리된 기억이 없다. 항간의 막연한 반응으로 다음 몇 가지가 있음을 알 뿐이다. 첫째, 오욕의 역사니까 건드리고 싶지 않다는 은폐론이다. 그러나 영광의 기록만이 역사는 아니다. 또한 오욕으로 말하면 임란•호란•국치와 분단 등 전부가 오욕이다. 계절에 사계가 있듯이, 민족사에도 영욕의 소장(消長)은 있는 것이다. 3.1 운동이 여름의 무성한 기록이라면 친일은 참담한 동면이다. 동면기를 모르고 건국이라는 맹아를 말할 수 없기 때문에 친일은 결코 은폐의 대상일 수 없는 것이다......친일 행위는 우리 민족에게 개인의 죄상이 아니라 식민지 지배의 참담한 실체로서 인식되어야 한다...필자는 서론에서 밝히는 이런 태도와 관점에 입각해서, 우리 민족사가 겪었던 한 시대의 참담했던 식민지적 실체를 사심 없이 기술할 뿐인 것이다.” (책 ‘해방전후사의 인식 1권’, 송건호 외 저)

절대 현혹되지 마라. 진정 자랑스러운 역사는 지금 이 순간, 모든 흑역사조차 지금을 설명하기 위해 필요한 하나의 진실로 받아들일 때 만들어질 수 있다는 잘못된 생각을 가질지도 모르니까. 이 책들이 사실관계나 관점의 정교함에 있어 몇 십 년 전 책이란 시대의 한계는 있을지언정, 부끄러운 역사도 안으려고 했고, ‘오늘’이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비판할 때에만 우리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믿으며 뜨겁게 부딪히려 했던 흔적들이며, 진짜 배워야 하는 정신은 그것이라고 믿어버릴지도 모르니까. 혹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다면 당신도 결국 ‘지성사의 치명적 해독’에 물들어버린 것이다. 크게 심호흡을 하고 한 정책관의 권고를 기억하자.

그것이 오늘을 살아가는 당신과 나의 신상에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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