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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는 계속된다

세월호 영화들의 존재는 오로지 자연스러운 망각만이 애도의 유통기한을 설정하며 어떤 때는 그런 망각마저도 옳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비극을 일으킨 원인이 아직도 남아 있고 제대로 된 해결책이 따르지 않는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비극과 그 원인을 계속 상기시키는 것이다. 만약 그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해도 살아남은 사람들의 고통이 계속된다면 그 과거는 계속 이야기되어야 한다. 그것은 이야기꾼의 임무이기도 하지만 그 이야기를 듣는 관객들의 임무이기도 하다. 이런 기억의 과정은 한 방향으로만 이루어질 수는 없다.

  • 듀나
  • 입력 2016.08.23 06:39
  • 수정 2017.08.24 14:12

[듀나의 영화불평] 텔레비전 드라마 <청춘시대>, 영화 <터널><비밀은 없다><부산행>에 세월호는 있다

내가 지금 열심히 보고 있는 12부작 텔레비전 시리즈 <청춘시대>는 얼마 전부터 세월호 이야기를 간접적으로 다루고 있다. 이 드라마의 다섯 주인공 중 한 명인 강이나는 세월로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 분명한 여객선 사고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다.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다 끔찍한 일을 저지른 이나는 고통스러운 과거를 외면하며 스폰서 남자친구들에 의지하는 삶을 살고 있다. 드라마가 진행되는 동안 강이나는 결국 과거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정상적인 삶의 궤도로 돌아가게 된다.

무너진 터널 안에 고립된 남자와 그를 구하려는 사람들의 노력을 다룬 <터널>은 이야기의 거의 모든 부분이 세월호 실화와 일대일로 대응한다.

<청춘시대>는 올해 직간접적으로 세월호를 언급한 수많은 작품들 중 하나이다. 가장 노골적인 작품은 얼마 전에 개봉한 <터널>이다. 무너진 터널 안에 고립된 남자와 그를 구하려는 사람들의 노력을 다룬 이 영화는 이야기의 거의 모든 부분이 세월호 실화와 일대일로 대응한다. 소재원의 원작소설이 세월호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쓰였다는 사실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세월호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건 분명하며 그렇지 않다고 해도 관객들은 그 영화를 세월호 이야기로 받아들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 테마가 보다 은밀하게 숨어 있는 영화는 이경미의 <비밀은 없다>이다. 실종된 중학생 딸을 찾아나서는 정치가의 아내 이야기를 그린 이 영화는 얼핏 보면 세월호와 아무 연관성도 없어 보인다. 하지만 감독 말에 따르면 이 영화의 큰 부분을 이루는 이야기는 세월호 분향소에 갔을 때 보았던 "내가 복수해줄게, 파이팅!"이라고 쓰여진 포스트 잇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일단 이렇게 보면 이 배배 꼬인 하드보일드 추리물의 중간에서 정확하게 같은 내용의 글귀를 마주쳤을 때 느낌이 아주 이상하다.

세월호의 이미지는 연상호의 좀비 2부작인 <서울역>과 <부산행>도 피해가지 못한다. 직접적인 연관성을 따진다면 오히려 이 작품들은 <비밀의 없다>보다 실제 사건에서 떨어져 있다. 하지만 <터널>과 마찬가지로 이 두 영화들은 한국 재난영화의 공통된 분위기를 공유한다. 그것은 대한민국의 시스템은 언제나 무능하고 그를 구성하는 사람들은 어리석은 만큼이나 잔인하다는 것이다. 아, 그리고 이 나라에선 같은 언어를 쓰더라도 도대체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다는 점 역시 덧붙여야겠다. 이건 소통의 무능함은 한국 재난영화에서 이상할 정도로 자주 반복된다. 심지어 만드는 사람들이 이를 인식하고 있긴 한 것인지도 의심하게 될 정도이다.

세월호와 관련된 작품들은 언제까지 만들어질까? 그건 이보다 전에 나왔던 섬뜩한 질문과 연결된다. '세월호 사건의 애도시기는 어디까지인가.' 조금 다르게 말한다면 '과연 애도의 시기에는 유통기한이 있는가?'

세월호 사건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앗아간 사건 자체만큼이나 무서웠던 건 수많은 사람들이 이 유통기한을 당연시했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슬퍼하는 유가족을 앞에 놓고 이들의 애도가 '지겹다고' 윽박질렀고 그러는 자신이 얼마나 추하고 어리석게 보이는지 인식하지 못했다. 물론 그들은 이런 망각과 침묵의 강요가 얼마나 비정상적인 행위인지도 이해하지 못했다.

세월호 영화들의 존재는 오로지 자연스러운 망각만이 애도의 유통기한을 설정하며 어떤 때는 그런 망각마저도 옳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비극을 일으킨 원인이 아직도 남아 있고 제대로 된 해결책이 따르지 않는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비극과 그 원인을 계속 상기시키는 것이다. 만약 그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해도 살아남은 사람들의 고통이 계속된다면 그 과거는 계속 이야기되어야 한다. 그것은 이야기꾼의 임무이기도 하지만 그 이야기를 듣는 관객들의 임무이기도 하다. 이런 기억의 과정은 한 방향으로만 이루어질 수는 없다.

그래서 이 이야기가 언제까지 기억될 것이냐고? 누가 알겠는가. 하멜린의 시민들은 아직도 1284년에 있었던 아이들의 실종사건을 기억하고 애도한다. 세월호가 그보다 더 쉽게 잊혀질 이야기인가?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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