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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 살균제 참사, 사과하지 않는 정부

지난주에 가습기 살균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에서 정부로부터 업무보고를 받고 질의를 했다. 국무조정실장을 비롯해서 산업부, 환경부, 보건복지부 장관 등 정부의 책임있는 분들이 나와서 답변을 하는데 야당은 물론 여당 의원들까지 피해자들에게 사과를 해야 한다고 촉구를 하는데도 약속이나 한 듯이(사과를 하지 않기로 조율을 했을 것이다) 완강하게 사과를 하지 않았다. 국가의 책임은 결과 책임이다. 더욱이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보호하는 일은 국가가 무한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다. 당시 상황상 어쩔 수 없었다는 이유로 사과를 하지 않으면서,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는 데 국가는 무한책임을 진다"라는 말을 할 수는 없는 것이다.
 

  • 금태섭
  • 입력 2016.08.22 06:34
  • 수정 2017.08.23 14:12

 

2014년 12월 12일 춘천지방법원 제2형사부는 그로부터 35년전에 있었던 소위 '삼척 간첩단' 사건 재심 재판에서 무죄 판결을 했다. 이 사건으로 1979년에 구속되어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19년간 옥살이를 했던 김모씨(66세), 그와 같이 처벌받았다가 이미 사망한 피고인의 가족 등 대리인들이 법정에서 판결을 들었다. 정말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 억울함이 밝혀진 것이다. (1979년 당시 같이 재판을 받은 피고인들 중 김씨의 아버지를 비롯한 2명은 사형을 선고받고 1983년 사형이 집행되었다)

 

재판장인 강성수 부장판사는 판결문 낭독과 별도로 "피고인들에게 육체적 정신적 피해를 준 점에 대해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라고 말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이고 사과를 했다. 강 부장판사는 "인권보장의 최후의 보루가 되어야 할 사법부의 잘못으로 형언하기 어려운 일을 당한 점에 대해 사법부의 구성원인 우리 재판부가 사과를 드린다."고 덧붙여서 고문과 조작으로 얼룩진 이 사건에서 사법부가 피고인들의 인권을 보장하고 진실을 규명해야 할 책임을 다하지 못했음을 분명히 인정했다.

 

엄혹했던 군부독재 시절에 있었던 사건에 대해서 사법부가 재심을 통해서 무죄를 선고하면서 고개를 숙여 사과를 하는 풍경은 그리 드물지 않게 보인다. 일반적인 이론을 말하자면 신이 아닌 인간이 하는 재판인 이상 오판은 피할 수 없는 것이며(그렇기 때문에 재심 제도가 있는 것이다) 그럴 때마다 법원이 사과를 하는 것이 과연 합당한가 하는 주장이 나올 수도 있다. 그러나 피고인들이 항변도 변변히 못할 만큼 억압적인 사회분위기, 누가 보더라도 고문을 당한 것이 분명한데도 짐짓 딴 곳을 쳐다보면서 공소장 대로 유죄를 선고한(심지어 사형선고까지) 그 당시 판사들의 무책임함을 생각하면 재심을 담당한 재판부가 공개적으로 피고인들에게 고개를 숙이고 사과하는 것은 대한민국이 피해자들에게 해야 할 최소한의 도리라고 해야 할 것이다.

 

지난주에 가습기 살균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에서 정부로부터 업무보고를 받고 질의를 했다. 국무조정실장을 비롯해서 산업부, 환경부, 보건복지부 장관 등 정부의 책임있는 분들이 나와서 답변을 하는데 야당은 물론 여당 의원들까지 피해자들에게 사과를 해야 한다고 촉구를 하는데도 약속이나 한 듯이(사과를 하지 않기로 조율을 했을 것이다) 완강하게 사과를 하지 않았다. 처음 답변을 한 국무조정실장은 사과를 하라는 촉구에 동문서답식으로 "정부로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을 다하는 것이 지금 시점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라고만 말했을 뿐 일절 잘못했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국가의 책임은 결과 책임이다. 더욱이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보호하는 일은 국가가 무한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다. 그 당시의 법 체계, 소관부서, 현실적인 어려움, 이런 것들을 얘기하는 것은 이미 국가의 책임을 유한책임, 현실적 책임으로 보는 것이다. 당시 상황상 어쩔 수 없었다는 이유로 사과를 하지 않으면서,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는 데 국가는 무한책임을 진다"라는 말을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의원들이 집요하게 정부의 사과를 촉구한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가습기 살균제는 거의 모든 경우에 피해자들의 가족들이 사서 사용한 것이다. 그분들은 자기 때문에 아이가 혹은 남편이나 아내가 생명을 잃거나 치유하기 어려운 장애를 갖게 된 것이 아닌가 하는 극심한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다. 그러한 분들 앞에서 정부의 책임 있는 사람들이 "이런 참사를 막지 못한 것은 정부의 잘못입니다. 사과드립니다"라고 말을 한다면 조금이나마 그런 자책을 덜어줄 수 있을 것이다. 그것조차 하지 않는다면 도대체 우리가 정부에게 무엇을 기대해야 할까.

 

삼척 간첩단 재심 사건에서 무죄를 선고하면서 사과를 한 판사들은 35년 전 피고인들이 억울하게 유죄선고를 받은 일에 대해서 개인적으로 아무런 책임이 없는 사람들이다. 그 당시에는 판사도 아니었다. 아마 기껏해야 초등학생이었을 것이다. 그들이 사과를 한다고 해서 국가의 책임이 인정되거나 혹은 사과를 하지 않는다고 해서 인정되지 않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판사들이 법정에서 일어나서 고개를 숙임으로써 수십 년 동안 누명을 쓰고 죄인처럼 살아왔던 피해자들은 조금이나마 위안을 얻을 수 있었다.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던 김씨는 "재심 재판부의 진심 어린 사과에 마음속으로 감동을 받았다"며 "간첩이라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선친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라고 했다고 한다.

 

도대체 무슨 이유로 가습기 특위에 참석한 장관들이 그렇게 완강하게 사과를 거부했는지 나로서는 알 길이 없다. 그러나 그 모습을 보면서 다시 한번 가슴을 저미는 상처를 입었을 피해자들과 그 가족들을 생각하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아래는 정통 관료의 길을 걷지는 않았고 의사 출신인 복지부 장관에게 마지막 기대를 걸고 사과를 촉구했던 발언 내용이다. 7분간 주어지는 질의 시간 중 3분 가량을 할애해서 간곡하게 얘기를 했건만 사과를 이끌어내지는 못 했다. 복지부 장관은 "의사로서 가슴이 찢어지는 듯 하다."는 말씀을 했지만, 망설이는 듯 보이면서도 끝내 사과의 말은 하지 않았다.

 

 

복지부 장관님, 저는 이 문제에 대해서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일반인의 입장에서 가습기 살균제 문제가 밝혀진 경위를 다시 말씀드려보겠습니다.

 

2011년 4월 25일 서울아산병원에서 원인미상 중증 폐질환 임산부 환자 7명에 대해서 질병관리본부에 신고를 합니다. 질본에서 조사를 해보니 바이러스에 의한 질환은 아니다, 여기까지 밝혀졌습니다. 2008년 봄에 똑같은 일이 있어서 질본에서 조사를 했던 때와 같은 결론이었습니다. 그런데 2008년과는 달리 2011년에는 질본이 역학조사 결정을 합니다. 당시 임기를 얼마 안 남겨놓은 이종구 질본 본부장의 결정입니다.

 

저는 이 결정이 참으로 다행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시 가습기 살균제는 공중위생법 대상도 아니고 의약외품도 아니어서 엄밀히 말하면 복지부나 질본에 (조사) 권한이 없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어느 부처도 관리하지 않았고요. 그래서 11월까지 강제수거도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감염병이 아닌 이상 질본이 추가적인 조사를 해야 할 법적 의무나 권한도 있었다고 보이지 않습니다.

 

당시 공산품을 관리하는 지경부는 물론이거니와 화학물질 관리의 주무부처인 환경부, 복지부, 식약청 모두 손을 놓고 있던 상황에서 의료진과 질본의 대응이 그나마 더 큰 피해를 막는 데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2008년도에는 왜 그런 역학조사 결정이 없었는지, 그리고 그 당시에는 왜 가습기 살균제의 안전성을 살피는 소관부처가 정해져 있지 않았는지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그때만 조사를 했어도 수많은 추가 피해를 막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정부에 대해서 일방적으로 비난을 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고 많은 사람이 사용하는 생활용품이 이토록 허술하게 관리되었다는 점에서 참담함을 금할 수 없습니다. 피해자들에게 저부터 죄송한 마음입니다. 2011년에 질본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찾아낸 것을 칭찬해줘야 하지만, 그 전에 2008년도에 소관기관도 정해져 있지 않았고 결국 원인을 찾아내지 못한 것은 우리 정부 전체의 책임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것이 정부의 책임이자 의무라면 그 책임을 다하지 못한 부작위의 죄가 있는 겁니다.

 

장관님,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정부의 의무는 결과책임이고 무한책임입니다. 어떠한 일을 잘못해서 문제가 발생했을 때도 책임을 져야 하지만, 해야 할 일을 못 해서 피해가 발생했을 때도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 피해는 수백명이 사망한 수준입니다. 이러한 전체 과정에 대해서 정부의 책임있는 분이 피해자들과 국민들 앞에 진심으로 사과를 해야 합니다. 장관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정부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지 못했다는 점에 대해서 지금이라도 피해자들에게 사과하실 의향이 없으십니까?

 

(정부가 가습기 살균제 책임 문제와 관련해서 소송 중이라는 답변을 하길래, 변호사로서 말하지만, 여기서 사과한다고 해서 정부의 법적 책임이 좌우되는 것은 아니라고까지 말을 했는데 결국 "의사로서 가슴이 찢어진다."는 답을 듣는데 그쳤다)

정진엽 보건복지부 장관이 17일 국회에서 열린 가습기살균제 사고 진상규명과 피해구제 및 재발방지 대책 마련을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이 글은 필자의 페이스북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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