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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차별 공습 뚫고 6만명 구한 ‘하얀 헬멧'

  • 강병진
  • 입력 2016.08.21 11:10
  • 수정 2016.08.21 11:11

컴컴한 자정 무렵, 야간 공습으로 불길에 휩싸인 건물들에 물을 뿌린다. 무너진 콘크리트 더미를 헤쳐가며 피투성이 부상자들을 구출한다. 여기저기서 도와달라는 외침이 터져나온다. 그을리고 훼손된 주검들을 수습하는 일도 빠뜨릴 수 없다. 온갖 잔해가 널부러진 거리를 뚫고 구급차가 향하는 곳은 급조된 임시병원이다. 돌아간 줄 알았던 폭격기들은 다시 2차 공습을 퍼붓는다.

덴마크 국적의 프리랜서 저널리스트이자 다큐멘터리 작가인 나지브 카야가 지난 15일 시리아 내전의 최대 격전지 알레포에서 아랍 위성방송 <알자지라>에 전한 참상이다. 최근 2주새 정부군과 반군의 교전이 격렬해지면서 알레포는 전기·의료·물·식료품 등 생존에 필수적인 공공서비스가 거의 마비된 상태다.

아비규환 같은 이곳에서 민간인 구호를 도맡는 이들이 있다. 2013년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꾸린 시리아시민방위대(SCD) 대원들이다. 사실상 유일한 개인보호장구인 흰색 헬멧 덕에 ‘하얀 헬멧’이란 애칭으로 불린다. 지금까지 6만여명의 소중한 목숨을 구했다.

맨처음 하얀 헬멧은 겨우 스무명 남짓한 자원활동가로 시작했다. 인접국 터키에서 구조훈련을 받고 하얀 헬멧과 유니폼을 비롯한 장비들을 얻어 돌아왔다. 내전이 악화일로로 치닫고 부모·형제·친구·아이들이 응급구호의 기회도 놓친 채 죽어나가자, 수많은 시민들이 힘을 보태기 시작했다. 지금은 알레포·이들리브·하마·홈스·다마스쿠스 등 서부 8개 지역에서 3000여명의 자원활동가들이 무고한 민간인의 목숨을 구하려 자기 목숨을 건다. 여성들로만 짜인 구호팀도 2개나 있다. 이들은 부상자에게 “당신은 누구 편이냐”고 묻지 않는다.

폭격과 포연의 최전선에 노출된 이들의 일은 한없이 거칠고 힘들며 위험하다. 주로 러시아 공군기의 무차별 공습과 정부군의 포격, 저격수의 총탄을 무릅써야 한다. 지금까지 134명의 대원이 목숨을 잃고, 400여명이 다쳤다고 <알자지라>는 전했다.

쌍둥이 형제와 함께 하얀 헬멧을 쓴 샤후드 후세인은 “이슬람국가(IS) 집단은 우리를 배교자로, 바샤르 아사드 정권은 우리를 테러리스트라고 부른다”며 “그래도 우린 시리아를 떠날 수 없다. 모든 선한 사람이 난민이 되어 떠나면 이 나라를 누구에게 맡기느냐”고 말했다. 내전이 일어나기 전 그는 알레포에서 실내장식 가게를 운영하던 평범한 시민이었다.

한편, 17일 알레포의 하얀 헬멧이 무너진 집에서 가까스로 구조한 5살 꼬마 옴란 다크니시의 피투성이 얼굴 영상과 사진은 시리아 내전의 참상을 상징하며 사회관계망서비를 타고 번지고 있다. 옴란의 모습은 지난해 터키 해변에서 숨진 채 발견된 아일란 쿠르디의 사진처럼 국제사회에 충격을 던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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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리아의 비극은 계속되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5살 아이의 사진 한 장(+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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