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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국기문란'이라고 말하면 검찰은 늘 되든 안 되든 수사를 밀어붙였다

  • 허완
  • 입력 2016.08.20 16:34
  • 수정 2016.08.20 16:36

김성우 홍보수석이 19일 춘추관에서 이석수 특별감찰관이 한 언론사에 감찰내용을 유출했다는 의혹 보도와 관련, ”특별감찰관이 감찰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감찰 내용을 특정언론에 유출하고 특정 언론과 서로 의견을 교환한 것은 특별감찰관의 본분을 저버린 중대한 위법행위이자 묵과할 수 없는 사안”이라고 청와대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석수 특별감찰관이 우병우 민정수석을 검찰에 수사의뢰한 다음날인 19일 오전, 김성우 청와대 홍보수석은 긴급 성명을 발표했다. 이 감찰관이 기자와 통화를 하면서 감찰 내용을 알려준 게 “특별감찰관의 본분을 저버린 중대한 위법행위이고 묵과할 수 없는 국기를 흔드는 일”이라고 규정했다. 나라의 기강을 뒤흔드는 ‘국기문란 행위’라는 얘기다. “특별감찰의 활동 내역이 사전에 공개되는 것은 사실상 국가원수의 국정수행을 마비시킬 수 있는 국기문란 행위”라는 전날 새누리당 논평과 같은 내용이다.

청와대의 공식 논평이니 이 감찰관의 ‘언론 응대’를 ‘국기문란’ 행위로 규정한 건 박근혜 대통령의 인식이라고 봐야 한다. 이 용어는 박 대통령이 즐겨쓰는 말이기도 하다. 박 대통령은 취임 뒤 ‘국기문란’이라는 말을 두 번 입에 올렸다.

NLL 대화록 논란에 “사초 증발한 전대미문의 일”

첫번째는 서해북방한계선(NLL) 대화록 삭제 논란 때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에서 NLL을 포기했다고 새누리당은 2012년 대선 과정에서 주장했고 이를 검증하기 위해 여야는 2013년 7월 여야 국가기록원의 대화록 자료 열람을 결정했다. 그러나 국가기록원에는 관련 기록이 없었다. 이에 박근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중요한 사초가 증발한 전대미문의 일은 국기를 흔들고 역사를 지우는 일로 절대 있어서는 안 될 일”이라고 규정했다. ‘사초 증발 행위’라는 대통령의 인식대로 검찰은 2013년 11월, 조명균 전 청와대 안보정책비서관과 백종천 전 통일외교안보정책실장을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정상회담 대화록 초본을 무단으로 폐기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1·2심 법원은 모두 이들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대통령이 수정·보완을 지시한 최종 완성본이 아닌 초본은 대통령기록물이라고 볼 수 없다. 완성본 이전 단계의 초본들은 독립해 사용될 여지가 없을 뿐 아니라 완성된 파일과 혼동될 우려도 있어 속성상 폐기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게 법원의 판단이었다.

‘정윤회 국정농단’ 문건에 “찌라시에 나올 그런 일에…”

박근혜 대통령이 2014년 12월1일 청와대에서 수석비서관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 박 대통령은 ‘정윤회 국정 농단’을 담은 청와대 문건이 유출된 사건에 대해 “찌라시에나 나오는 그런 얘기들에 나라가 흔들린다는 것은 정말 부끄러운 일”, “결코 있을 수 없는 국기문란 행위”라고 주장했다. ©한겨레/청와대사진기자단

2014년 11월에는 ‘비선실세’인 정윤회씨가 국정을 좌지우지한다는 내용의 청와대 내부 문건이 언론 보도로 공개됐다. 박 대통령은 “찌라시에나 나오는 그런 얘기들에 나라가 흔들린다는 것은 정말 부끄러운 일”이라고 발끈하며 “결코 있을 수 없는 국기문란 행위”라고 했다. ‘국기문란’ 두번째 발언이었다. 박 대통령의 끓어오르는 분노만큼 검찰의 문건 유출 수사는 강하게 몰아쳤다. 유출된 문건을 퍼뜨린 혐의를 받던 최아무개 경위는 ‘청와대 민정비서관실에서 회유가 있었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검찰은 조응천 민정수석실 공직기강비서관과 박관천 행정관 등을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위반과 공무상비밀누설 혐의 등으로 기소했지만 문건유출을 지휘했다는 조응천 전 비서관은 1·2심에서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다.

기소 뒤 무죄여도 고초는 고스란히…‘누설 논란’ 이석수 운명은?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에 대한 감찰을 벌이고 있는 이석수 특별감찰관이 18일 저녁 서울 종로구 청진동 특별감찰관을 나서다 기자들의 질문을 받으며 승용차로 향하고 있다. ©한겨레

박 대통령이 “국기문란”을 언급하고 나면 사건은 일정한 규칙대로 흘러간다. 검찰이 벌떼처럼 달려들어 수사에 열을 올리고 마치 대통령이 공소장을 쓴 것처럼 그의 문제의식대로 기소가 이뤄진다. 법원에서는 무죄가 선고되지만 검찰의 무리한 수사를 책임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피해 당사자에게는 검찰의 혹독한 수사를 감내하고 법정에 서서 무죄를 입증해야 하는 고난의 길이 열릴 뿐이다.

특별감찰관법에서는 “특별감찰관 등과 파견공무원은 감찰 착수 및 종료 사실, 감찰 내용을 공표하거나 누설해서는 안된다”는 조항을 뒀다. 이를 어기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년 이하의 자격정지가 규정돼 있다. 새누리당은 18일 논평에서 “검찰은 특별감찰관에 대한 기밀누설 의혹에 대해서도 명명백백하게 진상을 밝혀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들의 검찰 수사 요구가 예사롭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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