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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주의와 진보정치의 시대착오 | 정의당의 '젠더TF' 논쟁에 대하여

성평등을 여성주의 없이 해나갈 수 있다거나, 진보정치에 여성주의가 부차적이라는 식의 20년 전에나 통했을 시대착오를 왜 2016년에 반복해야 하는가? 이제부터 유효한 질문은 어떤 여성주의인가이지 여성주의냐 아니냐가 아니다. 정의당이 현재의 '다수 당원'들을 따라 '7% 정당'으로서의 위치를 지키는 데만 골몰하는 게 아니라면, 정의당의 당면과제는 남초정당이라는 현재의 냉소적인 평가를 불식시키고 어떻게 20-30대 여성이라는 아직까지 정치적으로 대표되지 않은 잠재적 지지자들을 선점하고 당으로 끌어들일지를 모색하는 것이다.

  • 이우창
  • 입력 2016.08.20 13:47
  • 수정 2017.08.20 14:12
ⓒ정의당 페이스북

나는 정의당원도 아니고 정의당 내의 논쟁이나 의사결정과정에 대해 특별히 권한을 담은 발언을 할 자격이 없다. 하지만 존중받을 만한 여러 페친들께서 정의당 자유게시판의 글 [과연 '젠더 TF'가 700명의 탈당자들을 돌아오게 할 수 있을까요?]에 호의적인 입장을 표명하셨기에 (물론 그분들에 대한 나의 존중은 변함이 없겠지만) 짧게 시간을 내어 이 글에 대한 내 입장을 이야기하고 싶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정의당이 이 글의 입장에 따를 때 아주 운이 좋아봐야 현재의 미약한 위치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예측하며, 정의당이 한국에서 좀 더 많은 역할을 해주기를 바라는 (나를 포함한) 사람들은 이 글을 비판적으로 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먼저 1절에서 필자의 논지를 검토하고, 2절에서 정치적 현실주의자의 관점에서 그것에 왜 동의할 수 없는지를 밝히며, 3절에서 정의당 혹은 진보정당정치의 미래에 여성지지자층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한다(어차피 2절 첫 머리에서 1절의 요약이 이루어지므로 불필요하신 분은 1절을 넘기셔도 된다).

한 성우가 게임에서 하차한 문제 따위의 작은 문제에 초점을 맞추는 우를 범했냐는 논리는, 새누리당의 지지자들이 정의당은 왜 몇몇 노동자들의 안타까운 운명과 같은 사소한 주제에나 신경을 쓰냐는 이야기에서도 똑같이 찾아볼 수 있다.

1.

먼저 필자의 논지를 검토해보자. 1번 항목에서 필자는 현재의 사태가 문예위 논평이라는 '사소한 실수'를 제대로 수습하는 과정에서 의사결정자들이 보여준 무책임상·안이함 때문에 비롯되었다고 지적한다. 물론 왜 더 큰 문제는 다루지 않았으면서도 한 성우가 제작진의 요구에 따라 게임에서 하차한 문제 따위의 작은 문제에 초점을 맞추는 우를 범했냐는 필자의 논리는, 정확히 새누리당의 지지자들이 정의당은 왜 국가의 운명을 결정짓는 대기업과 주요 경제주체의 운명이 아니라 몇몇 노동자들의 안타까운 운명과 같은 사소한 주제에나 신경을 쓰냐는 이야기에서도 똑같이 찾아볼 수 있다. 필자와 같은 논리대로라면 정의당은 농민도, 삼성전자 백혈병 피해자들도, 세월호 피해자들도 일단 뒤로 제치고 사드와 국익, 수출주도기업의 실적활성화를 위한 정부지원 같은 논의에 집중하는 게 좀 더 옳을 것이다.

2번 항목에서 필자의 주장에 따르면 현재의 논쟁은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성향을 보여준 "20~30대의 청년들"이 정의당으로부터 등을 돌리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했다(흥미롭게도 필자는 "청년들"을 말할 때 교묘하게 성차를 배제하는데, 이 논쟁을 따라온 사람이라면 필자가 이 단어를 사용하는 용법이 여성-청년 [잠재적] 지지자들의 존재를 거의 의식적으로 배제한다는 사실을 쉽게 알아차릴 것이다). 필자는 현재 당내의 논쟁에서 "젠더문제"나 "여성주의"는 당의 핵심적인 활동과 무관한 일종의 소규모의 극단주의 운동권의 분탕질에 가깝다고 말하며 현재의 당내 여성주의자들을 과거의 민주노동당의 "일심회"와 동일시한다(그는 4번에서 직접적으로 현재의 사태를 "종북 논란"과 동일시한다). "그 어떤 '주의'도 '이념'도 다수 당원들에게는 '대중적 진보정당 정의당'의 당익과 결속을 해치는 '주관적 독단주의'의 하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으로 여겨질 뿐인 것은 당연한 것"이라는 말은 필자가 여성주의를 "주관적 독단주의"로 간주하며 정의당의 이해관계와 배치되는 입장으로 간주한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이러한 입장에 기초하여 필자는 현재 정의당의 "젠더TF"가 무의미한다고 주장한다.

3번 항목에서 필자는 현재 정의당 내의 논쟁진행방향이 "다수 당원들"의 의사를 제대로 따르고 있지 않으며, "당에 대한 당원들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야말로 정의당이 나아가야 할 길이라고 주장한다. 그 자체로는 타당해보이는 이 말은 2번 항목의 진술이라는 맥락 하에서 읽으면 상당히 이야기가 달라진다. 필자의 주장을 간단히 풀어보자면, 현재 정의당 내 다수 당원들에게는 젠더 문제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니까, 그에 따라 젠더 문제에 더 이상 얽매이지 말고 당내 여성주의자라는 소수파는 간단히 무시하면 된다는 것이다.

바로 그러한 주장의 연장선에서 4-5번 항목의 "선긋기"에 대한 요구가 나온다. 필자는 다시 한번 종북논란을 소환, 선을 넘은 주장에 대한 거리두기를 하지 않을 때 당이 괴멸적인 타격을 입으리라는 공포의 수사학을 전개하면서 다음과 같은 주장을 펼친다. 즉 정의당은 메갈리아나 워마드와 같은 (그는 애초에 메갈리아 커뮤니티가 워마드의 극단주의를 도저히 수용할 수 없었기 때문에 양자가 분리되었다는 사실조차도 알아보지 않은 것 같다) '혐오에의 대항을 명분으로 한 또 다른 혐오주의에 불과한 극단적 행태'를 수행하는 커뮤니티를 지지하는 입장을 단호하게 물리쳐야 한다. "대중적 진보정치"를 추구하는 정의당은 "다수 당원"들의 의사에 따라 논쟁의 한 축에 서는 대신 "문제해결자"로서 거리를 둔 입장에 서야 할 것이다. 글을 꼼꼼히 읽는 독자라면 여기에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제기할 것이다. "젠더TF"가 문제의 해결책이 아니라면 도대체 어떻게 정의당이 "문제해결자"가 될 수 있다는 말인가?

이러한 논리적 난제를 필자가 어떻게 '해결'하는지 가장 잘 드러나는 것은 6번이다. 먼저 "정의당의 노선과 입장은 오직 다수 당원의 합의와 동의에 기반 해서만 성립"한다고 말하는 필자의 진짜 입장은 당 강령에서 "'-주의'로 호명되는 단어는 단 하나"이며 그것은 "사회민주주의"라는 말에서부터 잘 드러난다. 간단히 말해 여성주의(feminism)는 "특정 교의"로서 정의당의 목표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의당은 사회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정당이되 성차별 및 억압에는 무관심하다는 것인가? 필자는 예상되는 반론에 답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놀라운 답변을 제시한다: [정의당 강령은] "차별에 대한 반대와 성평등을 명시적으로 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여성주의/페미니즘'이라는 특정한 '이념/사상'의 이름으로 지칭하지도, 규정하지도 않습니다." 한 마디로, 필자는 여성주의를 도려낸 성 평등이 가능하며, 그런 '분란의 싹'으로서 여성주의를 치워버리고 "좀 더 폭넓은 스펙트럼의 사람들이 공통의 '사회적 실천과제' (요약해서 '정의로운 복지국가')"를 실천하는 것이 바로 정의당의 본령이자 미래라고 주장한다.

진보정치에 여성주의가 부차적이라는 식의 20년 전에나 통했을 시대착오를 왜 2016년에 반복해야 하는가? 이제부터 유효한 질문은 '어떤 여성주의인가'이지 '여성주의냐 아니냐'가 아니다.

2.

이 글에서 필자가 일관되게 사용하는 수사를 통해 그의 입장을 정리해본다면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여성주의는 성차별 반대에 꼭 필요한 것도 아닌 당내 소수파 극단주의에 불과하기에 도려내어야 할 분란의 싹이고(그는 사실상 여성주의, 극단주의, 혐오커뮤니티를 구별하지 않는다. 필자의 지성을 존중하는 독자라면 이것이 매우 의식적인 무분별이라고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정의당은 "다수 당원"의 의지에 따라 참된 진보정치인 사회민주주의를 기반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렇게 정리해놓으면 우리는 정의당이 현 '혐오 대립'에 대해 문제해결자로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면서도 동시에 "젠더TF"는 무의미하다고 외치는 필자의 독특한 위치를 좀 더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다. 즉 여성주의나 젠더는 따로 다룰 필요가 없는 부차적인 위치에 있으며, '여성주의 없는 사회민주주의'가 신자유주의만 잘 해결하면 성차별 문제도 언젠가 알아서 잘 해결될 테니 그런 건 그냥 무시하고 가끔 "성차별은 나빠요"만 외쳐주면 된다는 거다. 여기에는 "신자유주의"나 "계급갈등"과 같은 '사회의 근본요인'만 해결하면 시시껄렁한 여성문제 따위는 알아서 사라져버릴 거라는 일종의 신학적인 테제가 깔려 있다--아마도 종말론자들은 메시아가 강림하면 모든 사회문제가 일소될 텐데 진보정치 지지자들은 왜 그렇게 열을 내는지 한심해 할 것이다. 계급투쟁 하느니 전력을 다해 기도해서 구세주를 하루라도 빨리 내려오게 하는 편이 훨씬 '합리적'이지 않나?

크게 보아 "해일이 몰려오는데 조개나 줍고 있다"는 오랜 반여성주의 수사학을 반복하는 이 글에 내가 비판적인 이유는 나의 여성주의자로서의 입장 때문이라기보다는 정치적 합리주의의 측면에서다. 필자의 입장이 설득력을 보유하기 위해서는 90년대까지는 대체로 받아들여졌던 사회적 인식, 즉 여성주의는 진보정치를 구성하는 한 부분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명제가 여전히 유효해야 한다. 그러나 2000년대부터 오늘날까지의 사회적 인식을 주의깊게 관찰해온 사람들이라면 특히 2010년대 중반부터 이러한 명제가 매우 강력한 도전에 직면했다는 사실을 쉽게 알아차릴 것이다. (특히나 미국 및 서구와의 문화적 거리가 매우 가까워지면서) 성평등은 문자 그대로 한국 사회의 절대적인 규범으로 자리잡았으며, 그 과정에서 여성주의의 기본적인 논의들은 거의 모든 영역에서 상식으로 자리잡는 중이다. 문화예술분야에서 여성소비자의 두드러진 증대 및 공적인 분야에서 여성들의 진출이 확산되어가는 과정을 바라볼 때, 나는 이러한 흐름이 한국사회에서 지속될 것이며 늦든 빠르든 사실상 대다수의 사람들이 여성주의적 전제를 기본으로 받아들이는 결과로 이어질 거라 매우 강하게 예측한다. 그때는 오히려 "여성주의자냐 아니냐"가 아니라 "어떤 여성주의인가"가 더 유효한 질문이 될 것이다.

내 말이 믿기지 않는다면, 심지어 일베 사용자조차도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성평등을 부인하지 않으며 메갈리아 비판자들도 "페미니즘이 틀렸다는 것이 아니라" 식의 부연을 붙이게 되었다는 사실을 돌아보라. 이런 건 20년 전에는 상상할 수 없던 변화다. 간단히 말해 여성주의는 이제 "특정한 이념"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보편적인 상식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그것도 우리 모두가 이전까지 예측하지 못했을 만큼의 빠르기로(5년 전만 해도 한국에서 여성주의가 이렇게 단시일내에 영향력을 발휘할 거라고 예상한 사람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내가 지금 이상론이 아니라 현실주의의 입장에서 말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주길 바란다. 간단히 말해 정의당이 지금의 "7% 정당"의 위치를 넘어서고 싶다면 (이념적으로도 바람직한) 현실의 변화를 좀 더 앞질러 받아들이는 쪽이 합리적이다.

나는 물론 공식적인 정치영역에 속한 정의당이 현재의 지지자층을 잃어버릴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특히 워마드 커뮤니티로 대표되는 일부의 극단적인 표현을 굳이 용인해야 한다고 요구할 생각도 없다. 그러나 성평등을 여성주의 없이 해나갈 수 있다거나, 진보정치에 여성주의가 부차적이라는 식의 20년 전에나 통했을 시대착오를 왜 2016년에 반복해야 하는가? 앞서 말했듯 이제부터 유효한 질문은 "어떤" 여성주의인가이지 여성주의냐 아니냐가 아니다. 여성주의를 당의 근본적인 가치관으로 받아들이면서도 반사회적 언행을 용인하지 않는 입장을 설득력 있게 만드는 것은 기술적으로, 적어도 여성주의 없는 성평등을 주장하는 것에 비하면, 그다지 어렵지 않은 문제다(당연하지만 이 경우에 반사회적 여성혐오에 어떻게 대처할지를 함께 제시해야 한다; 반 여성혐오 없는 반 혐오는 사실상 남성들의 여성혐오를 승인해주는 결과로 이어진다).

정의당이 현재 '다수 당원'을 따라 '7% 정당'의 위치를 지키는 데만 골몰하는 게 아니라면, 정의당의 당면과제는 남초정당이라는 현재의 냉소적인 평가를 불식시키고 어떻게 20-30대 여성이라는 아직까지 정치적으로 대표되지 않은 잠재적 지지자들을 당으로 끌어들일지를 모색하는 것이다.

3.

20대 총선에서 사실상 어느 주요 정당도 20-30대 여성 유권자에 주목하지 않았다(좀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냥 청년문제를 진지하게 다룬 정당 자체가 없었다). 그러나 소라넷 사태 때 여성청년집단이 보여주었든 엄청난 크기의 관심이라든가, "페미니즘은 돈이 된다"는 구호와 함께 메갈리아를 통해 이뤄진 진선미 의원실 후원금액 모금운동을 지켜본 사람이라면 이 집단의 정치적 영향력에 대한 열망이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지고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지식에 대한 열망, 진보적 의제에 대한 관심 모두 다른 어느 사회집단과 비교해도 부족하지 않은 이 집단을 진보정당이 주목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야말로 후자가 얼마나 나태하고 안이하게 생각해왔는지를 잘 보여준다. 이는 바꿔말해 아직 어떤 정당도 대표하고 있지 않은 20-30대 여성유권자 층을 선점하느냐가 미래의 정치구도에 상당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뜻이다(필자에게 미안한 말이지만, 나는 그가 700명을 위해 훨씬 더 많은 수의 잠재적 지지층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정치적 현실주의를 전혀 고려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정의당이 한국 정치에서 수행해야 할 역할이 지금보다 더 커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으로써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 정의당이 현재의 "다수 당원"들을 따라 "7% 정당"으로서의 위치를 지키는 데만 골몰하는 게 아니라면, 정의당의 당면과제는 남초정당이라는 현재의 냉소적인 평가를 불식시키고 어떻게 20-30대 여성이라는 아직까지 정치적으로 대표되지 않은 잠재적 지지자들을 선점하고 당으로 끌어들일지를 모색하는 것이다. 물론 이것이 기존의 지지자들을 전면적으로 버리는 결과로 이어질 필요는 전혀 없다. 심상정 당 대표가, 그리고 이 글의 필자가 반복해서 말한 "문제해결자"로서 정당의 역할은 현재 적절한 합의선이 존재하지 않는 양자가 공존할 수 있는 지점을 탐색하고 만들어내는 것이다(물론 그 영역에 "개저씨"나 일베 및 일부 여성혐오적 남초 커뮤니티 유저들이 포함될 수는 없다는 점에서 정당이 모두를 무리해 끌어안을 이유는 없다). 메갈리아 지지자들의 입장 또한 하나가 아니며 많은 지지자들은 단지 미러링을 지지하는 것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고, '합의점'에 대한 요구 또한 분명 커져가고 있다. 이들을 지지자로, 당원으로 끌어들이는 것이야말로 정의당, 혹은 정치적 현실주의를 받아들이는 한국의 모든 진보정당이 취해야 할 전략적 지향점이다. 2010년대의 한 가운데에서 1980년대, 1990년대를 되풀이하는 대신 2020년대, 2030년대를 구축하는 것이 진보의 과제가 아니라면 진보에게서 도대체 뭘 기대할 수 있단 말인가.

* 이 글은 필자의 블로그 [BeGray]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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