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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 명망가들은 교육에 대한 맨스플레인을 멈추라

문제는 이제 교직이 더 이상 시시한 직업이 아니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시시하지 않은 좋은 직장을 여자들이 차지하고 있다는 데 대한 사회적 분노와 질시가 교직에 대한 왜곡된 공격과 집단적인 맨스플레인으로 나타났다. 교육이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는 남성 비전문가들의 훈수가 쏟아지는 것이다. 여성으로 간주되는 교직에 대해 남자들이 한 수 가르쳐주고 필요하면 직접 개입해서 자리를 차지하겠다는 것이다. 한두 명이 하기 시작하자 유행처럼 너도 나도 한 마디씩 던진다.

ⓒGettyimage/이매진스

권재원 (성원중 교사/실천교육 교사모임 고문)

요즘 맨스플레인이라는 말이 부쩍 많이 회자되고 있다. 남자(Man)와 설명(Explain)의 합성어인 이 말은 뭐든지 여자를 가르치려 들고, 설명하려 드는 남성의 행위를 꼬집은 말이다. 이는 남자가 여자보다 우월하다는 전제에서 남자가 여자를 가르치고 이끄는 입장에 서려는 시대착오적인 행동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이 맨스플레인이 사회적, 집단적으로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뭔가 여성과 관련된 사회적 쟁점이 발생하면 수많은 남성 댓글러들이 달려들어 여성들에게 집단적인 훈계를 퍼붓는 것이다. 이제 이 집단적 맨스플레인은 진보적인(!) 남성들이 여성들에게 진정한 페미니즘에 대해 훈계하는 지경까지 갔다.

그런데 최근에는 교사에 대한 맨스플레인이 부쩍 늘어나고 있다. 물론 교사 그 자체는 남성도 여성도 아니지만, 교사 집단 자체를 일종의 여성으로 의인화 한 뒤 남자들이 한 수 가르쳐 주겠다고 나서는 행태들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교사는 여자들 직업으로는 최고"라는 말이 인구에 아주 오랫동안 회자되어 왔다. 최고의 직업이 아니라 굳이 '여자 직업'으로 최고라는 말을 붙인 것은 결코 칭찬이 아니다. 이는 그나마 여자들이 할 수 있는 일 중에는 제일 낫다는 정도의 의미인 것이며, 째째하고 시시해서 남자들이 굳이 하지 않을 뿐,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여자들보다 잘 할 수 있다는 남성 우월주의가 깔려 있는 말이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대졸 남성들 중 상당수는 교사라는 직업이 고도의 지식과 숙련이 필요한 전문직이라고 믿지 않는다. 예컨대 여교사를 아내로 둔 직장인 남성은 자신의 아내가 전문성을 함양하기 위해 엄청난 시간을 필요로 하는 전문직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오히려 일찍 퇴근하고 방학이 있기 때문에 육아를 독박 씌워도 되는 비싼 알바 정도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남자들이 '여자 직장'인 교직에 대해 가지고 있는 우월감, 자기들이 안하고 있을 뿐, 언제든지 저 "아줌마 선생"들보다 더 잘할 수 있다는 우월감은 교사와 관련한 사회적 쟁점이 터졌을 때 인터넷 댓글들만 한 번 읽어보면 대번에 민낯을 드러낸다.

문제는 이제 교직이 더 이상 시시한 직업이 아니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시시하지 않은 좋은 직장을 여자들이 차지하고 있다는 데 대한 사회적 분노와 질시가 교직에 대한 왜곡된 공격과 집단적인 맨스플레인으로 나타났다. 교육이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는 남성 비전문가들의 훈수가 쏟아지는 것이다. 여성으로 간주되는 교직에 대해 남자들이 한 수 가르쳐주고 필요하면 직접 개입해서 자리를 차지하겠다는 것이다. 한두 명이 하기 시작하자 유행처럼 너도 나도 한 마디씩 던진다. 심지어 중국에 대한 엄청난 오해와 거짓 정보에 기반한 소설로 떼돈을 번 칠순의 소설가(아마도 초중등 학생을 가르쳐 본 일이 거의 없을)까지 곳곳에서 교육에 대해 열변을 토하고 있다. 더구나 그 열변의 내용 중 대부분은 사실관계 자체가 틀렸다.

이들 교육 맨스플레이너들의 공통점이 있다. 하나는 교육에 대한 어떠한 이론적 기반도 경험도 없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교육에 대한 별다른 공부도 실천도 없이 교육에 대해 말하고 있다. 여자들이 하는 일인 교육 쯤은 더 고차적인 일을 하던 남자들이 언제든지 간섭해도 된다는 우월감의 발로로밖에 안 보인다. 이들은 아득한 옛날 자신들의 학생시절의 기억, 혹은 가족이나 친지를 통해 들은 풍문, 혹은 자기들이 아는 일부 교사들의 이야기에 상상력을 보탠 것들을 기반으로 용감하게 교육에 대해 한 수 가르쳐 준다. 또 다른 하나는 교육 맨스플레이너들이 대체로 정치적으로 진보로 분류되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이는 우리나라 진보진영이 오히려 보수보다도 더 폐쇄적이고 봉건적인 문화를 가지고 있어서, 이들 진보 어르신들이 아무리 엉뚱한 이야기를 하더라도 비판하고 수정하는 풍토가 잡혀있지 않기 때문이다. 또 엘리트주의에 대한 반발 때문인지는 몰라도 진보 어르신의 권위에는 완전히 복종하면서 각 분야 전문가의 권위는 쉽사리 인정 안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점도 일조를 하고 있다. 교육과 더불어 의학 역시 진보성향의 남성들이 전문성을 인정 안하고 온갖 낭설을 퍼뜨리는 영역인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일이 이 지경이 된 데에는 교사의 책임도 크다. 외부 명망가들의 이런 맨스플레인이 계속될 때 사실과 다른 부분은 명확하게 바로잡고, 그들의 몰이해에 대해서는 전문가로서 그 주제넘음에 대해 따끔하게 일침을 놓아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제 진보진영은 교사에 대한 맨스플레인을 멈추어야 한다. 다른 분야에서 명성을 얻은 명망가들이 그 명망을 가지고 함부로 이러쿵 저러쿵 할 수 있을 만큼 교육이 만만한 분야가 아니며, 교사들이 그런 엉뚱한 분야의 명망가들에게 훈수나 들어야 할 만큼 한심한 사람들도 아니다. 교사들도 역시 이런 맨스플레인에 대해 전문성과 비판의식을 가지고 따끔하게 대응해야 한다.

이는 교사가 사회의 다른 영역의 전문가들과 연대하고 대화하는 통로를 막자는 것이 아니다. 교육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함께 공부하고자 하는 연대는 매우 중요하다. 교육이 사회로부터 고립되면 다만 책벌레로 전락하기 때문이다. 또 교육을 바로 세우지 못하게 만드는 여러 사회적, 제도적인 장벽들은 교사들의 힘만으로는 무너뜨릴 수 없기 때문에 폭넓은 사회적 연대가 필요하기도 하다.

하지만 훈계와 연대가 필요한 것과 아무나 무책임한 훈계질을 해도 되는 것은 다른 일이다. 교육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라고 둘러대지 말라. 맨스플레이너들 역시 여성에게 페미니즘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있어서 그러하다고 말한다. 진정한 애정과 관심은 자신이 할 수 있으며, 상대에게 필요한 일을 해주는 것이며, 이를 바탕으로 장벽들을 함께 무너뜨리는 힘 있는 연대와 지원을 제공하는 것이지, 시대에도 맞지 않고, 사실관계도 틀린 잔소리와 훈계를 늘어놓는 것이 아니다.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견해가 아닙니다.

* 이 글은 교육을바꾸는사람들 홈페이지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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