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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부의 배신이 지속되는 이유

왜 그런 것일까? 내가 보기에 그 이유는 우리 사회에서 입시제도에 영향력이 큰 집단들이 나름의 이유로 수시전형에 찬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대학이 이 제도를 좋아하는데, 그 이유는 입시에서 막대한 재량권 행사와 불투명성이 허용되기 때문이다. 몇 년 전 고려대는 고교등급제를 실행한 것이 들켜 홍역을 치렀다. 하지만 지금은 '사실상' 고교등급제를 실시한다고 해도 그 모든 과정이 학생부 위주 전형 안에 녹아든 재량 속에서 은폐되어 버린다. 교사들도 학생부 위주 전형이 마음에 든다.

  • 김종엽
  • 입력 2016.08.18 06:04
  • 수정 2017.08.19 14:12
ⓒ연합뉴스

다음달로 다가온 수시전형이 2017학년도 대학입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70.5%로 역대 최고다. 그런데 수시전형의 중심에 있는 학교생활기록부(학생부) 위주 전형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주장이 반복되고 있다. 비근한 예로 <한겨레>는 지난 3월 '학생부의 배신'이란 특집 기사를 세 번에 걸쳐 내보냈다. 핵심 내용은 학생부 중심의 대입전형이 특목고와 자사고에 현저하게 유리하며, 사교육 시장을 확대한다는 것이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수능 교과목을 줄이고 수능을 쉽게 출제하는 것에 주력하던 시민단체 '사교육걱정 없는 세상'도 학생부가 더 큰 문제라는 것을 깨닫고 집회와 성명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런 비판들이 반향을 얻지 못하고 있다.

왜 그런 것일까? 내가 보기에 그 이유는 우리 사회에서 입시제도에 영향력이 큰 집단들이 나름의 이유로 수시전형에 찬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대학이 이 제도를 좋아하는데, 그 이유는 입시에서 막대한 재량권 행사와 불투명성이 허용되기 때문이다. 몇 년 전 고려대는 고교등급제를 실행한 것이 들켜 홍역을 치렀다. 하지만 지금은 '사실상' 고교등급제를 실시한다고 해도 그 모든 과정이 학생부 위주 전형 안에 녹아든 재량 속에서 은폐되어 버린다.

게다가 수능 점수를 들고 대학과 학과를 쇼핑하는 학생들이 반갑지 않은 대학한테 수시전형은 충성도 높은 지망자를 데려다준다. 수시전형 지원자는 입시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해당 대학 특정 학과에 맞춰진 교과 및 비교과 활동을 미리 수행해야 한다. 게다가 자기소개서(자소서)를 통해 자신이 그 대학 그 학과에 맞는 학생임을 잘 표현해야 하는데, 그 과정은 전적으로 자기기만적일 수 없다. 자신이 그 학과에 맞는 학생이라는 자소서를 쓰는 과정은 어느 정도는 정말 그런 학생이 되는 과정이며, 그만큼 지원 학과에 심리적 충성도를 갖게 된다.

교사들도 학생부 위주 전형이 마음에 든다. 수능 중심 입시의 경우, 교과과정과 수능이 일부 어긋나는데다 수능 교과목을 어떻게 선택하느냐에 따라 학생이 정규 수업을 소홀히 해도 교사가 뭐라 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학생부 위주 전형은 교사들의 수업에 대한 주도권과 평가권한을 대폭 강화해주며, 교사 추천서가 필요한 전형 또한 그들의 권력을 확장해준다.

특목고와 자사고도 이 제도가 반갑다. 이런 학교야말로 이런 입시제도에 학생들을 잘 준비시킬 자신이 있다. 그래서 이런 학교 학생부는 일반고와 두께부터 다르다. 교과발달상황에 적을 문장을 하나 만들어 여러 학생에게 똑같이 복사해 넣는 따위의 무성의함도 없다. 실제 입시 결과에서도 이들 학교는 더욱 우위를 차지해가고 있으니 여론 주도층인 이런 학교 학부모들이 무슨 불만이 있겠는가?

입시학원들도 대찬성이다. 수시전형이 엄청나게 복잡한 것 자체가 이들에겐 신나는 영업기회다. 학부모들은 정말 웬만큼 '공부'해서는 자녀에게 알맞은 전형을 찾기 어렵다. 더구나 비교과 '스펙' 만들기나, 국제전형의 틈새 찾기, 자소서 첨삭 등을 위해서도 학부모들은 입시학원을 찾을 수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교육전문가도 이 제도에 찬성한다. 수시전형 대신 객관식 선다형 시험문제와 주입식 교육으로 되돌아가는 것을 도무지 찬성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입시제도 결정에 영향력 있는 집단들이 각자 '달콤한' 이유로 학생부 위주 전형에 찬성하는 동안, 경제적·문화적 자본이 달리는 가난한 집의 자녀는 제대로 한번 경쟁해보기도 전에 밀려나고 있는 상황이다. 뭔가 특단의 조처가 필요한 때다. 그때까지 최소한 자소서만이라도 지원한 대학 교실에 앉아 매년 다르게 구조화된 질문과 연결지어 스스로 쓰게 만들어야 할 것이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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