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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예비역 소령은 화천 복무 시절의 고엽제 피해를 입증하기 위해 10여년째 자료를 모아야만 했다

  • 허완
  • 입력 2016.08.16 18:40
  • 수정 2016.08.16 18:50

‘근무지가 고엽제 살포 지역이 아니다’란 육군과 맞서온 오동주씨와는 또 다른 휴전선 고엽제 피해자들도 존재한다. 고엽제법의 피해 기간인 ‘1967년 10월9일부터 1972년 1월31일’에 해당하지 않아 고엽제후유증을 앓고 있어도 등록 신청서조차 내지 못하고 있는 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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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윤(64·예비역 육군 소령)씨는 지난달 21일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는 내내 손발을 떨었다. 그는 다발성 골수암 환자이며, 뇌졸중을 겪었고, 이형 당뇨병과 고혈압을 앓고 있다. 김씨는 1974년 뿌린 고엽제 때문에 병이 생겼다고 주장했다. 친가와 외가의 선대를 다 살펴봐도 이런 병을 앓은 이가 없으니 유전적인 발병은 아니라는 말도 덧붙였다.

21일 오후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에서 국내 복무 고엽제 휴유증 피해자인 김동윤(가운데)씨가 피해 상황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왼쪽은 소송대리인 이유호 변호사, 오른쪽은 피해자인 오동주씨. ⓒ한겨레

그의 비극은 1974년 1월 강원도 화천의 7사단 8연대에 부임하면서 시작됐다. “3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지오피(GOP) 소대장으로 부임했는데 군사용 제초제인 텔바 모뉴론이 쌓여 있었다. 이 제초제는 분말 형태였고 에이4(A4) 용지 크기의 카키색 봉투에 포장돼 50포씩 상자에 들어 있었다”고 회고했다. 당시 김동윤 소위는 부임한 해 5월 소대원을 이끌고 불모지 작전에 투입돼 모뉴론을 사용했다. 불모지 작전은 경계초소인 지피(GP), 일반전초인 지오피(GOP)에서는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었다. 소대원들은 맨손으로 모뉴론을 집어들고 뿌렸다. 소대별로 배치된 내규에 불모지 작업을 하는 이유와 방법은 있었지만, 안전지침은 없었다. 큰 풀과 나무는 낫으로 치고 작은 풀에는 모뉴론을 흩뿌렸다.

“마스크 같은 안전장비조차 없었어요. 부대 경계지역이 험준한 산이어서 불모지 작업을 하면 숨이 턱 밑까지 차올랐습니다. 물에 희석해서 살포할 수 없는 조건이었습니다.”

김동윤씨 현역 복무 시절 모습.

그와 소대원은 모뉴론이 빗물에 씻겨 흘러들었을 계곡물로 목을 축이고, 이를 닦고, 씻었다. 1974년 9월 다른 부대로 전출되면서 후임 소대장에게 모뉴론을 인계했다. 대략 6년 정도 불모지 작업에 사용할 만큼의 양이었다.

그는 전역한 뒤 1995년께부터 각종 질병이 나타나자 7사단에서 소대원들과 뿌렸던 모뉴론을 떠올리고 보훈처를 찾았다. 그러나 보훈처는 그를 고엽제 피해자로 인정하지 않았다. 전방부대에서 고엽제를 사용한 것은 1972년 1월까지이므로 그가 고엽제를 사용했다는 시기(1974년 5~9월)와 일치하지 않으며, 모뉴론은 제초제일 뿐 다이옥신 성분이 없어 고엽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그는 “고엽제인 에이전트 오렌지는 철책 공사가 끝난 68년 5월을 기점으로 더는 사용하지 않았다. 에이전트 블루와 모뉴론이 많이 쓰였다. 60~70년대 사용한 모뉴론은 살초 성능을 강화한 군사작전용 제초제”라고 주장했다. 이어 미국의 에이전트오렌지법은 단서 조항에서 베트남에서 사용한 15가지 군사작전용 제초제를 밝히고 이를 고엽제에 포함시키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미국이 모뉴론 등을 고엽제에 포함시킨 것은 농약관리법 절차를 무시하고 군사용 생산을 독려해 국가가 위법행위를 한 데 따른 조처로 보인다. 한국도 독성관리 감독 절차 없이 모뉴론을 가져와 살포했으므로 그 피해자들에 대해 국가가 치료·생계 등을 당연히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내 복무 고엽제 휴유증 피해자인 김동윤(오른쪽)씨. ⓒ한겨레

그 역시 휴전선의 고엽제 피해자라는 점을 입증하기 위해 10여년째 관련 자료를 모았다. 그의 자료 가운데에는 2000년대 초반부터 휴전선 고엽제 문제를 밝히다가 숨진 고 윤창락, 고 장기옥씨 등 선배들이 수집해 물려준 문건도 있다. 윤씨가 사망 직전 준 자료에는 육군본부가 2002년 전방의 3사단, 12사단, 25사단 등 3개 사단을 대상으로 71~74년 사이 모뉴론을 살포한 사실이 있는지 샘플조사한 결과도 포함돼 있다. 윤씨 등이 피해 사례를 모아 여러 차례 진상조사를 요구한 결과였다. 부대별로 당시 근무자들을 찾거나 부대사를 분석해 피해 사례가 사실인지를 확인했는데, 산악지대는 헬기, 평야지대는 주민의 경운기를 빌려 살포했다는 등 눈여겨 볼 만한 증언이 들어 있다. 고 윤창락씨는 한국휴전선고엽제피해자연합회를 꾸리고 피해를 입증하려고 노력하다 2007년 세상을 떠났다. 지금은 대부분 회원들도 연락이 되지 않아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작전문건 통역장교로 복무한 김씨는 비밀 해제된 미군 문서를 번역해 고엽제 피해를 입증하는 자료로 활용하고 있다. 오동주씨의 소송에 증거 자료로 제출된 초목통제계획(CY-68), 남한에서의 고엽제 사용(TOXIC DEFOLIANT USE IN SOUTH KOREA) 문건 등은 그가 제공했다.

그는 ‘1974년 전방 지역에 제초제를 뿌릴 계획’이라는 문건도 찾아냈다. 1972년 1월까지로 국내 피해 기간을 제한하고 있는 현행 고엽제법 기간을 연장하는 증거가 될 수 있다. 이 기록이 시행됐는지는 부대별로 연간 불모지 작업을 몇 차례 했는지 확인하면 된다. 지오피(GOP) 근무 지침상 불모지 작업은 모뉴론을 사용할 경우 연 2차례, 사용하지 않는다면 연 5차례 풀 뽑고 1차례 불을 질러 태워야 한다.

그러나 작전기록 공개 요청은 번번이 묵살됐다. 국방부는 육군본부 기록정보단에 떠밀고, 육군본부는 해당 부대로 넘기는 식으로 책임을 떠넘기며 기록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문서번호를 정확히 알려주면서 정보공개를 요청해도 ‘찾을 수 없다’고 한다.

“이런 나라가 민주국가입니까?” 절절한 억울함이 떨리는 손짓에 묻어 나왔다. 그의 소망도 오동주씨처럼 국가로부터 제대로 된 예우를 받는 것이다.

“얼마 살 수 있을지 모릅니다. 우린 최선을 다해 나라를 수호했어요. 그 과정에서 병을 얻었는데 국가가 치료나 위로해주지 않고 하찮게 여깁니다. 우리의 비극을 지금이라도 정부가 눈여겨 보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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