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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독립유공자 후손은 반지하에서 12년째 생활하고 있다

  • 원성윤
  • 입력 2016.08.14 07:01
  • 수정 2016.08.14 07:39
ⓒ연합뉴스

"할아버지가 목숨 바쳐 지킨 조국에 살고 싶어 한국에 왔지만 가끔은 다시 돌아가고 싶어요."

최고기온이 35도를 웃도는 폭염이 연일 이어지던 이달 12일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 반지하 주택에서 연합뉴스 기자와 만난 독립유공자 손자 권명철(65·가명)씨의 첫마디는 "한국에서 삶이 힘들다"였다.

올해로 광복을 맞은 지 71년이 됐지만, 권씨처럼 외국에서 들어온 영주귀국 독립유공자 유족들은 정착 기반이 없어 대다수가 반지하나 옥탑방 등에서 생활한다.

2003년 중국에서 들어와 2005년 국적을 회복한 권씨는 정부에서 받은 정착지원금을 의료비와 생활비로 대부분 사용했다. 반지하 생활만 12년째이다.

"할아버지가 지킨 조국에서 살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함을 느낀다"는 권씨지만 형편은 열악했다. 그는 "가끔 너무 서럽다"고 말했다.

습기로 집안 벽 곳곳에는 곰팡이가 피었다. 권씨는 견디기 힘든 고온에도 선풍기조차 틀기 부담스럽다며 연신 흐르는 땀을 닦아냈다.

권씨의 할아버지인 고(故) 권영직씨는 경북 안동에서 1919년 3·1 운동에 참여했다가 일본군에 붙잡혀 모질게 고문 당했다. 결국 병을 얻어 1940년 세상을 떠났다. 그해 권씨의 고모들까지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갈 처지에 놓이자 권씨 부친은 가족과 함께 만주로 떠났다.

1950년 중국에서 태어난 권씨는 선양(瀋陽)에서 농사를 짓고 공장을 다니며 생계를 이었다.

어렵게 살면서도 한국이 '진짜' 조국이라는 부친의 말을 잊지 않았다. 권씨는 50세가 넘어 할아버지가 지킨 조국에 정착하겠다는 마음을 먹고 한국에 들어왔다.

조국에서의 삶은 쉽지 않았다. 고령에다 당뇨병까지 앓아 생활은 더욱 고달팠다. 취업은 쉽지 않았고 한국에서 만난 사람들은 독립유공자 유족으로서 예우는커녕 '중국인'이라는 시선을 보내기 일쑤였다.

정부는 외국에 살다 귀국한 독립유공자 유족에게 4천500만∼7천만원의 정착지원금을 주지만 임대주택과 연금 지원은 유족 중 1명만을 선발해 지원한다. 이 점이 대다수 영주귀국 유족이 가장 힘들어하는 부분이다.

권씨도 삼촌이 수급권자로 지정되는 바람에 지속적인 지원을 받지 못해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영주귀국 독립유공자 유족들이 가장 바라는 점은 주거 지원이다. 외국에 있다가 한국에 왔다는 공통점이 있는 탈북민은 가구당 주택이 지원된다는 점은 이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준다.

영주귀국독립유공자 유족회 김우회 대표는 "유족들은 연금이나 지원금을 더 달라는 것이 아니다"라며 "편히 살 수 있도록 정부가 주거 문제만이라도 해결해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정부 역시 고령의 유공자 유족의 주거 문제가 심각하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해결방안을 모색 중이지만, 법률개정이나 규정 신설은 관계부처 간 이견이 있어 어려운 상황이다.

국가보훈처 관계자는 "수급권자가 아닌 다른 유족에게 주택지원을 하도록 법률을 개정하는 것은 다른 국가유공자, 국내 독립유공자 유족 간의 형평성 문제로 사실상 어렵다"며 "담당 부서인 국토교통부도 난감해 해 SH공사나 LH공사와 임대주택 공급을 협의 중"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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