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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위한 '베이비박스'인가

영아유기와 관련된 가십성 뉴스들이 쏟아지고 있다. 최근 5년간 영아유기범죄에 관한 경찰청 통계를 보면 2011년 127건, 2012년 139건, 2013년 225건, 2014년 76건, 2015년 42건에 달했다. 최근 영아유기가 줄어든 것인가? 아니다. 2014년, 2015년에 유기된 영아의 수가 줄어든 것은 베이비박스에 버려진 영아를 통계에 포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베이비박스에 아기를 두고 가는 것은 영아유기가 아닌 것인가? 베이비박스는 과연 필요한가?

  • 국민의제
  • 입력 2016.08.12 06:30
  • 수정 2017.08.13 14:12
ⓒ한겨레

글 | 신옥주(전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영아유기와 관련된 가십성 뉴스들이 쏟아지고 있다. 최근 5년간 영아유기범죄에 관한 경찰청 통계를 보면 2011년 127건, 2012년 139건, 2013년 225건, 2014년 76건, 2015년 42건에 달했다. 최근 영아유기가 줄어든 것인가? 아니다. 2014년, 2015년에 유기된 영아의 수가 줄어든 것은 베이비박스에 버려진 영아를 통계에 포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베이비박스에 아기를 두고 가는 것은 영아유기가 아닌 것인가? 베이비박스는 과연 필요한가? 감성을 배제하고 베이비박스에 대한 문제점들을 인식하고 실질적 기아(棄兒)예방책 마련, 미혼모로서 살아갈 수 있는 사회․경제적 환경조성 등을 위한 노력이 절실히 요구되는 때이다.

베이비박스는 직접 키울 수 없는 산모에게 영아를 안전한 곳에 두고 가라고 하는 취지에서 마련된 작은 아기상자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아기의 생명권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2009년 12월 서울 관악구의 주사랑교회에 처음으로 설치되어 운영되고 있다. 베이비박스는 법적 근거가 없다. 주사랑교회는 아동복지법상 아동복지시설도 아니며, 사회복지사업법상의 사회복지시설도 아니다. 즉 불법으로 교회에서 베이비박스를 운영하고 있는 것이다. 베이비박스에서 발견된 영아는 관악경찰서에 기아(棄兒)로 신고가 되고, 서울시립어린이병원에서 진료를 받은 후 서울시아동복지센터에 인계된다. 그리고 서울시아동복지센터에서 일정기간 머무르면서, 장기양육시설에 자리가 나면 시설로 옮겨져 생활하게 된다. 2016년 현재까지 약 5년 동안 980명 영아들이 베이비박스를 거쳐간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베이비박스 존치를 주장하는 측에서는 임신·출산으로 인해 위기를 겪게 되는 임신부가 절박한 상황에서 영아를 살해할 수 있고, 또 영아를 위험하게 유기하는 경우 사망할 수 있으므로 이러한 여성에게 익명으로 영아를 두고 갈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베이비박스를 통해 아동이 살해나 유기로 인한 사망의 위험에서 벗어나 생명을 구할 수 있게 된다는 것으로서, 이들은 베이비박스의 합법화를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많은 연구에서 나타나듯이 베이비박스가 아동의 생명을 구한다는 근거는 희박하다. 베이비박스 설치 이후 현재까지 유기된 영아의 사망이 꾸준히 발생하고 있고, 산모의 급박한 영아살해로부터 영아가 살해되는 경우도 줄지 않고 있다. 반면 베이비박스로 인해 침해되는 기본권은 명확하다. 베이비박스는 완전한 익명출산을 보장한다. 즉, 임신여성은 익명으로 아기를 유기하게 되므로 베이비박스에 버려진 영아의 친부모에 대한 기록이 어느 곳에도 남아있지 않게 된다. 그 결과 입양과 달리 베이비박스에 남겨진 영아는 부모를 영원히 찾지 못하게 되는 문제가 발생한다. 이로 인해 헌법상 기본권인 아동이 자신의 뿌리에 대해 알 권리, 친부가 자녀와 관계 맺을 권리가 본질적으로 침해된다. 또한 베이비박스는 임신·출산 위기여성이 의료기관에서 출산하지 않고 '나홀로 출산'을 하는데 일조하므로 산모와 아동의 건강권 등을 간접적으로 침해한다. 이러한 베이비박스로 인한 기본권 침해에 대해 국가가 기본권의 보호를 위한 대책을 전혀 마련하지 않고 있어 기본권보호의무를 위반하고 있다.

베이비박스는 철폐되어야 한다. 그리고 기아(棄兒)문제에 대한 근본적이고 합리적인 대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첫째, 기아가 발생하지 않는 환경의 조성이 중요하다. 여성이 혼인하지 않고 아동을 단독으로 양육하는 것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개선이 있어야 한다. 출산은 기혼여성만의 권리가 아니며, 여성의 권리이다. 또한 정부와 지자체가 미혼모에 대한 공동체의 편견극복과 차별철폐를 위해 적극 개입해야 하며, 이들에게 사회․경제적․인적 안전망을 제공하여야 한다. 정부와 지자체가 이를 위해서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둘째, 출산 후 아동을 양육할 수 없는 여성을 위해 독일에서 시행하는 상담중심의 신뢰출산제도를 모델로 하여 우리나라 현실에 맞는 제한적 익명출산제도(혹은 신뢰출산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독일에서는 1999년부터 법적 근거 없이 익명인도, 베이비박스, 익명출산을 포괄하는 익명 아동위탁제도가 시행되어 왔었다. 이러한 제도들이 아동의 뿌리를 알 권리, 친부의 자녀교통권을 침해한다는 비판이 끊임없이 제기되자 2013년 신뢰출산법을 제정하여 2014.5.1부터 시행 중이다. 법의 핵심은 완전한 익명출산이 가능했던 기존의 태도에서 벗어나 신뢰출산제도라고 부르는 제한적 익명출산제도를 도입한 것으로서 임산부와 상담기관 간의 긴밀한 신뢰와 의료기관, 국가기관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이 제도에 따라 산모의 익명성은 영구히 보장되는 것이 아니라 원칙적으로 아동이 16세가 될 때까지만 보장이 되는데, 이를 통해 산모의 사생활보호와 아동의 자신의 뿌리를 알 권리가 절충적으로 잘 보장되었다고 평가된다. 중요한 것은 제한적 익명출산제에서는 매우 다양한 정보가 제공되고 임신부가 실질적인 선택권을 행사할 수 있는 상담이 모든 절차의 중심에 놓여야 한다는 점이다. 출산 전은 물론이고 병원에 입원했을때, 또는 출산 후에도 상담이 가능하여야 하며 상담을 통하여 각 내담자의 상황에 가장 적합하고 실질적인 제안들이 다양하게 제시될 수 있어야 한다.

글 | 신옥주

현재 전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 교수로 재직중

이화여자대학교 법학과와 동 대학원 졸, 독일 마부륵의 필립스대학 법학박사

한국헌법학회 부회장, 한국공법학회 연구이사, 법제처 법령해석심사위원, 헌법재판소 발전위원회 위원 등으로 활동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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