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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몰랐던 러시아에 대한 역사적 사실 3가지

국사 공부를 할 때 헛갈렸던 것이 ‘00해’다. 60갑자를 이용해서 연도를 표현했던 흔적이다. 흔히 국사책에 나왔던 4대 사화는 일어났던 해를 앞에 붙여 ‘무오사화’,’갑자사화’,’기묘사화’,’을사사화’로 칭한다. 그런데 ‘을사’만 해도 일본이 우리의 외교권을 침탈했던 ‘을사늑약’(1905년)에 또 등장한다. 60년마다 반복되기 때문이다.

올해는 ‘병신해’다. 60년 전에도, 120년 전에도, 60년 후에도, 120년 후에도 ‘병신해’다. 120년 전 ‘병신해’에 일어났던 일은 잊을 수가 없다. 1895년 을미사변 후 일본에게 위협을 느낀 고종이 러시아 공관으로 피신했던 ‘아관파천’이 있었던 해다. 왕이 다른 나라 공관으로 도망간 이야기는 어떤 이유로도 변명이 되지 않는 비겁하고 무계획적인 일이었다. 그 결과 친러파가 득세했다.

120년 전 고종이 러시아와 맺었던 끈끈한 관계(?)를 생각하면 지금 우리의 러시아에 대한 관심은 지극히 낮은 수준이다. 한반도를 둘러싼 강대국과 긴밀하고도 지혜로운 관계를 맺어야 하는 우리로서는 미국, 중국, 일본에 쏟는 정성의 절반도 러시아에 들이지 않고 있다. 다행히 러시아를 폭넓게 이해하기에 좋은 책이 있다. 바로 ‘줌 인 러시아’(이대식 저)다. 이 책에서 우리가 몰랐던 러시아의 몇 가지 이야기를 골라 보았다.

1. 보드카, 첫 잔은 꼭 ‘원샷’을!

과거 러시아에 금주령이 내렸을 때 공업용 알코올을 물에 타 먹다가 죽은 사람이 속출했다는 기사가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그 정도로 애주가가 많은 나라다. 우리나라도 아시아에서는 단연 1위권이지만, 러시아인의 알코올 소비량에 비하면 뒤처진다. 작년 말 연합뉴스 기사에 따르면, 러시아인들의 1인당 술 소비량이 전년대비 13.5 리터에서 11.5 리터로 2리터가량 감소했다고 러시아 정부는 발표했지만 주류 암시장을 포함하면 여전히 그보다 높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2012년 러시아의 전체 사망자 가운데 30.5%가 알코올 섭취로 사망했다. 세계 평균 5.9%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 이런 러시아인들에게 어떤 음주 습관이 있을까?

“러시아인들이 원샷을 좋아하는 것은 오랜 풍습 때문이다. 러시아 사람들은 손님을 초대했을 때 우애를 가지기 위해 ‘형제의 잔’이라고 불리는 하나의 잔에 술을 담아 돌리는데 먼저 독이 없음을 증명하기 위해 주인이 한 잔을 비운다. 그러면 손님들 역시 이 집에 남은 악귀를 남김없이 몰아낸다는 뜻에서 반드시 잔을 깨끗이 비워야 했다. 지금도 이 전통은 남아 첫 잔은 반드시 비우게 되어 있고, 여기에는 완전한 건강을 빈다는 의미도 담겨 있으니 외국인도 이러한 풍습을 지켜주는 게 좋다.” (책 ‘줌 인 러시아’, 이대식 저)

2. 러시아는 제2차 세계대전의 최대 피해국

박근혜 대통령이 70주년 러시아 전승기념일에 참석하느냐가 초미의 관심인 적이 있었다. 결국 불참을 통보했다. 우리는 2차 세계대전은 미국, 영국 등이 승리를 이끌었다고 생각한다. 러시아의 역할에 대해 구체적으로 들어본 적도 고민해 본 적도 없다. 오히려 히틀러와 독소불가침 조약을 맺어서 독일의 팽창을 눈 감아 준 것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다. 그렇지만 유럽 전선에서 독일에 맞서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러시아가 했다. 실제로 러시아군(당시 소련)이 없었다면 독일의 패망이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러시아를 무리하게 침략하다가 독일의 기세가 꺾였고, 독일을 함락시켜 베를린 국회의사당에 가장 먼저 붉은 기를 꽂은 것도 러시아군이었다. 하지만 러시아의 피해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제2차 세계대전의 전체 사망자 약 6,000만 명 중 45%에 해당하는 2,660만 명이 러시아인이었다. 그래서 2004년 6월 6일 노르망디 상륙 작전 60주년 기념일 행사에서 프랑스의 시라크 대통령은 “동부전선에서 소련군의 희생을 기억할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동부전선에서 소련군이 버텨주지 않았다면 노르망디 상륙작전은 성공할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가장 큰 상처가 남은 곳은 지금은 상트페테르부르크라고 불리는 레닌그라드다. 1941년 9월 8일부터 1944년 1월 27일까지 약 900일간 이 도시를 포위한 독일군은 공중폭격 10만 7,158발, 포탄 14만 8,478발을 쏟아 부었다. 레닌그라드 시민들은 3년간 매일 300발 이상의 포탄에 시달린 셈이다. 1942년 2월 한 달에만 600명 이상이 인육 섭취로 체포되었다. 결국 폭격이 아니라 굶주림으로 사망한 사람이 훨씬 많았다.” (책 ‘줌 인 러시아’, 이대식 저)

3. 여왕의 시대는 러시아의 최전성기

러시아라고 하면 남성적인 이미지가 떠오른다. 푸틴 대통령의 이미지도 있고, 이전 공산당이 지배하던 시절 차갑고 무거운 서기장들의 느낌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런데 의외로 여성의 활약이 대단한 나라다. 특히 로마노프 왕조 시절 4명의 여왕이 다스렸던 역사도 갖고 있다. 그냥 다스린 것이 아니다. 이때 러시아의 경제는 발전했고 문화와 외교 등에서 괄목할 만한 성장을 보였다.

"여왕의 시대가 가장 놀라게 하는 대목은 바로 내실 있는 경제 발전이었다. 이 시기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러시아는 이른바 ‘자원의 저주’에서 해방되었다. 표트르 대제가 사망한 후 등극한 여왕들은 제조업을 집중적으로 육성하여 이 문제를 풀어나갔다. 그 결과 1725년 표트르 대제가 사망한 해를 기점으로 예카테리나 여제의 치세(1796년)까지 제조업이 러시아 수출의 절반 혹은 그 이상을 차지하게 되었다. 불행히도 마지막 여왕 예카테리나 여제가 죽은 후 다시 남자가 집권하면서 러시아 제조업은 또다시 바닥으로 추락한다. 1802~1804년 수출에서 자원 비중이 77%로 올라갔고 제조업 비중은 14%로 떨어진다” (책 ‘줌 인 러시아’, 이대식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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