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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잡습니다

광화문광장에서 세월호 특조위 정상화를 요구하는 단식 농성이 열흘 넘게 이어지고 있다. 진실은 그 누구를 위한 것이 아니다. 그 자체로 우리가 살아갈 수 있는 조건이 된다. 정부는 세월호를 온전히 인양해야 하고, 특조위 조사 활동은 계속돼야 한다. 이 정부 최대의 방어 체계는 '지치게 하기'인지 모른다. 그러나 세월호 유족들이 지치기 시작할 때 김관홍이 나왔고, 김관홍이 지치기 시작할 때 김탁환이 나왔다. 김탁환이 지치면 다시 제2, 제3의 김관홍과 김탁환이 나올 것이다.

  • 권석천
  • 입력 2016.08.10 07:24
  • 수정 2017.08.11 14:12

이 글은 정확히 말하면 정정보도문이다. 나는 지난 6월 21일자에 '돈이 말하는 한국'이란 칼럼을 실었다. 칼럼에서 나는 민간 잠수사 김관홍의 죽음을 언급했다. "2014년 세월호 선체 수색에 참여했던 그는 당시 무리한 잠수 후유증으로 잠수 일을 접었다. 시신 25구를 수습하고 세월호 의인으로 불렸지만...."

'소설가 김탁환입니다.' 메일을 받은 건 그날 밤이었다. 나는 일면식도 없던 그가 왜 메일을 보냈는지 궁금했다. 김탁환은 "김관홍 잠수사와 가까이 지냈고 민간 잠수사에 관한 소설을 준비 중"이라며 "그가 25명을 수습했다는 부분은 현실과 맞지 않는다"고 했다.

"김 잠수사는 4월 23일 맹골수도로 내려갔고 심정지가 와서 쓰러진 후 5월엔 잠수하지 않고 바지선에서 잠수사들을 지원하며 보냈습니다. 그는 평소에 숫자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고 했습니다. 팀으로 움직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중요한 건 수습한 숫자가 아니라 선내에 남은 숫자라고 강조했습니다. 25라는 숫자가 혹시 고인의 정의로움에 흠집이 되지는 않을까 하여 적습니다."

나는 칼럼을 쓰면서 '25구'는 굳이 확인해볼 필요가 없는 팩트라고 여겼다. 김관홍의 죽음을 알린 기사들에 그렇게 나와 있었다. 뒤늦게 그의 생전 인터뷰와 기록을 뒤져봤다. 그의 말 어디에도 25라는 숫자는 없었다.

그날 이후 길을 걷다가도, 밥을 먹다가도 김탁환이 말한 '고인의 정의로움'의 의미를 스스로에게 되묻곤 했다. 한 달 뒤 김탁환이 쓴 『거짓말이다』가 세상에 나왔다. 김관홍의 증언을 중심으로 맹골수도에서 사투를 벌였던 민간 잠수사들을 그린 탄원서 형식의 소설이다.

소설은 2014년 4월 잠수사 '나경수'가 맹골수도로 향하면서 시작된다. 그는 차가운 바다 40m 아래로 내려가기 앞서 선배 잠수사에게서 실종자 수습 방법을 설명 듣는다. "잘 들어! 여러분이 도착한 오늘까지, 선내에서 발견한 실종자를 모시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두 팔로 꽉 끌어안은 채 모시고 나온다! 맹골수도가 아니라면 평생 하지 않아도 될 포옹이지...."

나경수는 미세한 뻘로 가득 찬 어둠 속에 손을 뻗어 짚어가다 가슴에 '윤종후' 이름표를 단 남학생을 찾아낸다. 그는 눈물을 쏟으며 종후의 뺨에 오른손을 대고 말한다. "종후야! 올라가자. 나랑 같이 가자." '실종자가 돕지 않으면 모시고 나올 수 없는 그곳'에서 그는 아이들의 굳은 몸을 안고 빛을 따라 올라온다.

7월 9일 아직 열한 명을 수습하지 못한 상태에서 철수 명령이 떨어진다. 이후 검찰은 "동료 잠수사의 죽음을 책임져야 한다"며 선배 잠수사를 업무상 과실치사로 기소하고, 잠수사들에 대한 치료비 지원은 중단된다. 그들 앞을 "시신 한 구에 500만원 받았다"는 또 다른 거짓말이 가로막는다. 나경수는 묻는다. 이 나라는 마음이 없습니까. 잠수사들의 마음을 법으로 짓밟아도 됩니까. 제각각 다른 존재인 인간이 숫자로 바뀔 수 있습니까.

부끄럽게도 나는 '25구'에 주목했다. 생각의 저울에 그의 정의로움은 올려놓지 않았다. 그럼에도 나는 미화하지도, 과장하지도 않은 진실을 추구한 김관홍·김탁환과 동시대에 살았고, 살고 있다는 사실이 자랑스럽고 고맙다. 김관홍은 아이들에게 말 걸기 위해 칠흑 같은 바다 그 깊은 곳까지 내려갔고, 김탁환은 소설보다 참혹한 현실 그 깊은 곳까지 내려갔다. 나는 그들과 함께 하는 세상이라면 결국 바른 길로 나아갈 것이란 희망을 놓을 수 없다.

광화문광장에서 세월호 특조위 정상화를 요구하는 단식 농성이 열흘 넘게 이어지고 있다. 진실은 그 누구를 위한 것이 아니다. 그 자체로 우리가 살아갈 수 있는 조건이 된다. 정부는 세월호를 온전히 인양해야 하고, 특조위 조사 활동은 계속돼야 한다.

이 정부 최대의 방어 체계는 '지치게 하기'인지 모른다. 그러나 세월호 유족들이 지치기 시작할 때 김관홍이 나왔고, 김관홍이 지치기 시작할 때 김탁환이 나왔다. 김탁환이 지치면 다시 제2, 제3의 김관홍과 김탁환이 나올 것이다. 김탁환이 말하듯 "뜨겁게 읽고 차갑게 분노"한다면 김관홍의 정의로움은 결코 실패할 리 없다.

이석태 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위원장이 지난달 27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조사활동 보장을 위한 세월호 특조위 단식농성을 시작하고 있다.

* 이 글은 중앙일보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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