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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양궁이 세계최강인 이유는 사실 알고보면 조금도 특별하지 않다

  • 허완
  • 입력 2016.08.09 14:29
  • 수정 2016.08.09 14:44
2016 Rio Olympics - Archery - Men's Individual Ranking Round - Sambodromo - Rio de Janeiro, Brazil - 05/08/2016. Kim Woo-Jin (KOR) of South Korea poses. REUTERS/Yves Herman FOR EDITORIAL USE ONLY. NOT FOR SALE FOR MARKETING OR ADVERTISING CAMPAIGNS.
2016 Rio Olympics - Archery - Men's Individual Ranking Round - Sambodromo - Rio de Janeiro, Brazil - 05/08/2016. Kim Woo-Jin (KOR) of South Korea poses. REUTERS/Yves Herman FOR EDITORIAL USE ONLY. NOT FOR SALE FOR MARKETING OR ADVERTISING CAMPAIGNS. ⓒYves Herman / Reuters

한국 여자양궁 대표팀이 올림픽 단체전 8연패라는 엄청난 기록을 달성한 이후, 국내외 많은 사람들은 또 한 번 이런 질문을 던졌을 게 분명하다.

한국은 양궁을 왜 이렇게 잘하는 걸까?

그동안 올림픽에서 한국 양궁대표팀이 금메달을 휩쓸 때마다 외신들도 그 이유를 분석하는 데 매달렸다.

레딧이나 쿠오라 등에서도 수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가설을 놓고 뜨거운 논쟁(?)을 벌여왔다.

그 중에는 도시괴담 수준의 엉터리 같은 이야기도 있고, 정설에 가까운 내용도 있다.

1. 김치 덕분이다!

우선 몇 가지 '미신'부터 살펴보자.

로이터는 2012년 런던올림픽 당시 한국 양궁의 성공 스토리를 둘러싼 다양한 가설을 검증하는 기사에서 '미신'에 속하는 가설 중 하나로 '김치 손가락('Kimchi Fingers)'을 소개했다.

이 '가설'은 한국 여성들이 양궁이나 골프 같은 감정을 다루는 스포츠에 뛰어난 이유가 손과 손가락이 남달리 세심하고, 손재주가 뛰어나기 때문이라는 내용이다.

이 가설에서는 그 세심함이 한국의 대표 음식 김치를 만드는 방법을 전수해오며 발달된 것으로 추정한다. 여성들이 배춧잎를 세로로 세운 채 고추장 양념을 부드럽게 쥐어짜고 구석구석 문지르는 데 손을 쓰기 때문이라는 것.

한국 양궁 국가대표팀 백웅기 감독은 이번 대회를 앞두고 "한국 여성의 손은 세계 어떤 여성들보다 세심하다"고 말했다. "한국 여성들은 손을 매우 잘 쓴다. 한국 여성이 요리를 하면 음식 맛이 더 맛있어 질 정도다." (로이터 2012년 7월30일)

아....그랬구나...는 무슨. 이건 그냥 웃자고 하는 얘기일 뿐이다.

2. 젓가락을 써서 그렇다!

로이터는 같은 기사에서 한국의 젓가락 문화를 소개하기도 했다. 그렇다. 이것도 역시 '미신'으로 분류할 수 있는 내용이다.

다른 아시아 국가들도 젓가락을 쓰지만, 더 길고 나무 소재로 되어 있어 더 쓰기 편한 경향이 있다. 한국의 젓가락은 미끄럽고 날씬한 금속으로 되어 있으며, 마스터 하기가 무척 어렵다.

(중략)

첫 복제 개를 만든 과학자 황우석의 연구팀은 난자 미세조작과 배아 줄기세포를 다루는 한국인의 남다른 재능을 젓가락 이론으로 설명했다.

이후 황 박사의 연구 조작과 표절 사실이 드러나면서 그의 신뢰성은 추락했으나, 젓가락 이론은 여전히 폭넓은 지지를 얻고 있다.

백 감독은 "과학자들은 '젓가락 테크놀로지'라고 한다"며 "우리 여자 양궁 선수들은 손가락 감각이 뛰어나다. 화살이 손가락을 떠나면 곧바로 제대로 쐈는지 안 쐈는지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로이터 2012년 7월30일)

3. 원래 활을 쏘던 민족이라서...?

사실 더 황당한 가설은 바로 이거다. 한국인이 원래 말을 타며 활을 쏘던 주몽의 후예 민족이라서 양궁을 잘 한다는 것. (응?)

해외판 지식인 쿠오라에는 "전통적인 말을 타고 하는 활쏘기나 동양식 활쏘기 같은 전통이 아직 남아있기 때문"이라는 답변이 달려 있다.

심지어 2012년 런던올림픽 당시 영국 양궁대표팀 선수였던 레리 고드프리는 BBC스포츠와의 인터뷰에서 "잉글랜드에서 축구가 그런 것처럼, 양궁은 한국의 국가 스포츠"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영국과 한국에서 아마추어 양궁 훈련을 받아봤다"는 한 쿠오라 이용자는 일찍이 이런 식의 주장을 완벽하게 일축한 바 있다.

① 양궁을 배울 수 있는 초등학교는 극소수일 뿐이고, ②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생 활 한 번 쏴 본 적도 없으며, ③ 세계 정상급 선수라 하더라도 양궁을 늦게 시작한 경우도 많다는 것.

양궁을 해보기는 커녕, 구경도 못 해본 한국인이 대부분일 것이라는 점에서 이 가설도 '미신' 영역에 포함되어야 마땅하다.

4. 체계적인 육성 시스템

이제 진지한 가설들을 검토해 볼 차례다.

우선 가장 많이 언급되는 것 중 하나는 바로 체계적인 선수 육성 시스템이다. 내용은 이렇다.

미국이 영입한 이기식 감독과 함께 미국 양궁대표팀에서 일했던 돈 랩스카는 한국 양궁 선수들이 학교에서부터 기술과 생체역학을 완벽히 터득할 때까지 가장 기본적인 요소를 연습한다고 말했다.

"우선, 그들은 몇 개월 동안 완벽한 자세를 배운다. 그 다음으로는 한쪽 팔을 들어올리는 방법을 또 몇 달 동안 배운다. 그리고 나서는 또 몇 달 동안 두 팔을 들어올리는 법을 연습한다."

"그 어린이들은 첫 번째 화살을 쏘기 전까지 6개월 동안 집중적인 훈련을 받는다." (로이터 2012년 7월27일)

기보배는 리우올림픽 출국 전 인터뷰에서도 "어릴 때부터 체계적인 시스템을 접한다. 이런 시스템 속에서 많은 경험을 쌓으면 극한 상황을 이겨내는 힘이 다른 나라 선수들보다 커진다"고 밝혔다.

실제로 한국 양궁 선수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흔들리지 않는 정신력과 심리 상태를 강조하는 분위기 속에서 성장한다. 특히 대한양궁협회는 2013년에 '한국양궁 저변확대 및 중장기 발전계획'을 세워 유소년 대표부터 국가대표까지 연계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과거부터 쌓인 노하우와 각종 훈련 방법들이 일원화돼 선수들의 기량을 끌어올린다. (뉴스토마토 8월8일)

5. 미래를 내다보는, 끝없는 변화와 혁신

사실 한국이 양궁에서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한 건 1980년대의 일이다. 그 때만 해도 한국 양궁은 '양궁 강국'이던 미국과 러시아 등의 훈련 방법을 모방하는 수준이었다. 장비도 모두 미국산이었다.

그러나 1988년 올림픽 금메달을 계기로 한국 양궁은 독자적인 훈련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고, 그 이후에도 끝없는 변화와 혁신으로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는 게 이원재 희망제작소장의 분석이다.

그는 한겨레경제연구소 소장으로 있던 2012년에 쓴 글에서 다음과 같이 적었다.

1980년대 초 어느 날, 서거원 대한양궁협회 전무(당시 삼익악기 양궁선수단 감독)는 연습장 앞에서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었다. “양궁이 늘 이렇게 재미없는 스포츠로만 남아 있을까? 그럴 리가 없다. 지금은 비록 기록경기이지만 결국 골프처럼 승부와 경쟁을 부각시키며 흥행을 좇게 될 것이다.”

(...) 그때 한국 양궁 지도자들은 생각했다. “5년 뒤, 10년 뒤에도 과연 양궁이 이런 방식으로 운영될까? 갈수록 스포츠는 재미를 좇아 룰을 바꾸는 추세다. 양궁 역시 변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할 것이고, 변화의 방향은 승부의 재미를 더하는 방향이 될 수밖에 없다.”

이후 태릉선수촌에는 특이한 양궁 훈련 코스가 생기기 시작했다. 미래에 새로 도입될 가능성이 있는 양궁 경기 방식을 예측해 거기에 맞춘 훈련을 시작한 것이다. (...) 예측은 정확하게 들어맞았다.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을 끝으로 288발을 모두 쏘는 더블피타라운드 방식은 사라졌다.

(...) 이후에도 한국 양궁은 끊임없이 새로운 훈련 방식을 개발해나갔다. 우선 선수들의 담력 훈련을 강화했다. 담력을 강화해야 실수가 줄고, 실수가 줄어야 화살 한 발의 중요성이 높아진 경기 방식에서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기 때문이었다. 번지점프나 공수부대, 특전사 훈련장에서 선수들을 훈련시키기도 했다. 경륜장이나 경정장처럼 관중이 많이 모이고 함성이 들리는 곳에서 훈련을 하기도 했다. 심지어는 야구장의 수많은 관중의 함성 속에서 활을 쏘는 시범 경기를 펼치기도 했다.

한국 양궁 지도자들의 예측대로, 경기 방식의 변화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부터는 올림픽라운드라는 새로운 경기 방식이 도입됐다. (...) 한국 양궁 지도자들은 다시 한 번 쾌재를 불렀다. 이 모두가 한국 양궁이 준비해오던 변화 아닌가? (한겨레경제연구소-현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2012년 8월8일)

이 글의 서두에 등장하는 서거원 전 대표팀 감독은 한국 양궁의 산 증인으로도 불린다. 그는 2008년 세계경영연구원 특강 후 인터뷰에서 한국 양궁이 "변화와 혁신을 통해서 세계정상에 올랐다"며 5가지 원칙을 언급했다.

① 10년을 내다보는 통찰력, ② 상상력과 창의력, ③글로벌 능력, ④엄격한 도덕성과 신뢰, 성실의 리더십, ⑤뜨거운 열정.

6. 아낌없는 재정적 지원

정의선 대한양궁협회장이 7일(현지시간) 2016 리우올림픽 여자양궁 단체전 결승에서 우승한 기보배를 격려하고 있다. ⓒ연합뉴스/대한양궁협회

체계적인 선수 육성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이나 끝없이 변화와 혁신을 시도하는 것에는 당연하게도 돈이 든다. 한국 양궁에는 현대자동차그룹이 있었다. 이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대한양궁협회는 늘 대한체육회 산하 경기단체들의 부러움을 산다. 빠듯한 예산 탓에 마음껏 사업을 집행할 수 없는 다른 경기단체들과 달리 양궁협회는 현대자동차그룹의 전폭적 지원을 받고 있어서다.

정몽구 회장은 1985년부터 1999년까지 양궁협회장을 지냈다. 협회장에서 물러난 뒤로도 줄곧 명예회장을 맡아 30년 가까이 국내양궁의 저변 확대와 인재 발굴, 첨단장비 개발과 도입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 정 회장의 장남인 정의선 부회장은 2005년 양궁협회장에 취임했다. 현대차그룹은 양궁협회에 1985년부터 2005년까지 약 170억원을 지원했고, 2005년 ‘정의선 회장 체제’ 출범 이후로는 180억원 넘게 후원했다. (동아일보 2014년 9월30일)

이 기사에 따르면, 현대차그룹 정몽구 회장은 "스포츠과학이라는 말조차 생소하던 시절, 현대정공을 통해 레이저를 활용한 조준기가 부착된 훈련용 활을 제작토록 했"으며, "통계에 입각해 선수들의 약점을 보완할 수 있는 전산프로그램도 개발토록 했"다고 한다.

경향신문은 8일 현대차그룹의 지원을 언급하며 "협회의 투자는 초등팀부터 실업팀까지 고루 분배되며, 완벽한 선수 발굴 및 육성시스템으로 완성됐다"고 전했다.

7. 치열하고 공정한 대표 선발전

또 하나 빼놓지 않고 언급되는 건 치열하고도 공정한 대표팀 선발 체계다. 파벌도 통하지 않고, 사교육도 안 먹히는, 오로지 실력 만으로 대표선수를 뽑는다는 것.

서거원 전 감독은 8일 MBC라디오 '김상철의 세계는 우리는'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아마 태릉선수촌에 있는 올림픽 종목 여러 종목이 있습니다만 아마 가장 양궁이 정말 투명하고 공정하게 절대 스타 선수들 어드벤티지 주지 않고 공정하게 치러지거든요. 그 결과가 제가 2012년 런던올림픽 때 남자 셋, 여자 셋 여섯 명의 선수가 금메달 4개 중에 3개를 합작했잖아요. 그 선수들이 이번에 선발전 진행하는 과정에 여자의 기보배 선수 하나 살아남고 5명 모두가 탈락을 했거든요. 5명 모두는 올림픽 한 번도 출전해보지 않은 선수들입니다. 그런데 그대로 진행을 하고 있잖아요. 다른 종목 같으면 이렇게 하기가 참 어려울 텐데 양궁에서는 당연히 다 받아들이는 그런 분위기가 있습니다."

" 사교육 없이 철저한 공교육으로 인한 30년 세계 정상을 유지하고 있거든요. 사교육이 없다 보니까 가장 문제는 서로 간에 파벌, 혹은 짬짜미, 짜고 치는 이런 것이 있을 수가 없죠. 이런 것들이 상당히 유일하게, 몇몇 종목들도 있겠습니다만 그래도 가장 파벌이 없는 종목으로 누구나 다 인정하고 알고 있는 그런 내용들입니다."

KBS뉴스는 "제대로 작동하는, 그래서 스스로 자부심을 갖는 양궁 국가대표 선발 시스템"에 한국 양궁의 경쟁력이 있다고 보도했다.

한국양궁은 매년 국가대표선수들을 새로 선발한다. 올림픽 메달리스트도 내일을 기약할 수 없다. 올림픽 메달리스트가 아시안게임 선발전에서 탈락하고, 올림픽 쿼터 대회에서 성과를 낸 선수들이 올림픽 본선을 밟지 못하는 상황이 빈번하다. 그만큼 힘겨운 경쟁을 통과하고 살아남아야 올림픽에 나갈 수 있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은 어느 누구의 불평불만도 없을 만큼 투명하고 공정하게 운영된다. (KBS뉴스 8월7일)

탄탄한 기본기, 체계적인 시스템, 장기적인 안목, 끝없는 혁신, 치열하고 공정한 경쟁, 그리고 절대 흔들리지 않는 투명한 원칙.

사실 따져보면 어느 것 하나 특별할 것 없는, 기본적인 것들이다. 그러나 알고보면 이건 한국의 다른 분야에서 너무 부족한 것들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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