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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과 특권, 자기객관화

가끔 '대기업에 다니는 평범한 직장인'과 같은 워딩을 보는데 아마 이렇게 쓰는 사람은 이게 뭐가 문제인지도 모를 것이다. 일단 대기업을 다닌다는 것에서 평범과는 아득히 멀어진다. 대기업이 전체 고용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대략 20%를 조금 넘는 수준인 걸로 알고 있는데 이 중에서 40% 가량은 파견 등과 같은 비정규직이다. 일단 대기업 정규직이기만 해도 고용 근로자의 상위 12% 안에는 드는 셈이다. 게다가 이러한 근로조건으로 얻을 수 있는 금융 접근성은 아무나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 김영준
  • 입력 2016.08.08 09:10
  • 수정 2017.08.09 14:12
ⓒGettyimage/이매진스

예전에 한참 여행을 다닐 때 여행 중에 친해진 영국인과 이런 저런 다양한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하게 되었는데 그러다 보니 한국의 고용시장에 관한 이야기도 하게 되었다.

고용시장에서 편견에 의한 낙인찍기에 관한 이야기와 한국의 고용시장이 상당히 어렵다는 이야기를 하자 이 영국인 친구가 나한테 이런 말을 했다.

"너는 영어도 잘하고(실제론 잘 못한다. 그냥 겁 없이 말을 막 던지는 건 좀 잘해도) 대학도 졸업한 고급인력이니 자국 내에서 취업이 힘들면 해외에서 취업을 하면 되잖아? 나도 그렇게 일했었어"

이 말을 들었을 때 '빵이 없으면 고기를 먹으면 되잖아' 느낌으로 들려서 이 친구에게 한마디 했다.

"야 그건 니가 선진국 백인 남성이니까 그렇지. 선진국 출신 백인 남성은 자국을 벗어나도 누릴 수 있는 특권이 많지만 난 그렇지 않다"

사람들은 자기 자신에게 주어진 것이 전체 사회에서 얼마만큼 상위에 있어야 누릴 수 있는 것인지를 모르는 경우가 많다. 물론 특권이란 것의 속성이 내가 누릴 때는 그것이 지극히 당연한 터라서 특권이 특권인 줄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만 적어도 어디 가서 전체를 대상으로 얘기할 때에는 내가 누리는 것이 전체의 몇%가 누릴 수 있는 것임을 정확히 인지할 필요가 있다. 안 그러면 여기에서 헛소리가 나오게 된다.

가끔 '대기업에 다니는 평범한 직장인'과 같은 워딩을 보는데 아마 이렇게 쓰는 사람은 이게 뭐가 문제인지도 모를 것이다. 일단 대기업을 다닌다는 것에서 평범과는 아득히 멀어진다.

대기업이 전체 고용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대략 20%를 조금 넘는 수준인 걸로 알고 있는데 이 중에서 40% 가량은 파견 등과 같은 비정규직이다. 일단 대기업 정규직이기만 해도 고용 근로자의 상위 12% 안에는 드는 셈이다.

더군다나 이 '평범한' 직장인이 회사에만 잘 붙어 있다면 얻게 되는 근로소득은 무조건 상위 5% 이내에 들어가게 된다. 만약 사내 결혼 혹은 비슷한 대기업에 일하는 사람을 배우자로 맞이할 경우 얻게 되는 가구 소득은 그보다 더 상위로 올라간다.

게다가 이러한 근로조건으로 얻을 수 있는 금융 접근성은 아무나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직장 이름으로 신용대출을 거의 담보대출 금리에 가까운 수준으로 제공받는 것은 절대 '평범'하지가 않다. 이게 어딜 봐서 평범인가.

나는 내가 은행에서 일하던 시절에 못해도 현업에서 10년 이상 일했을 거래처 차장이 겨우 신입이었던 내 월급, 그것도 MB때문에 25% 삭감을 당했던 급여 수준에 불과했던 것을 보고 놀랐던 적이 있다. 또 그 당시 타 은행에서 나에게 신용 대출 쓰라면서 내 연봉의 3배까지 신용대출 해주겠다는 연락을 하루가 멀다하고 받았었다. 물론 신청하진 않았지만 필요한 준비물은 내 신분증과 재직증명서가 전부였다. 만약 저 차장님이 신용대출을 신청한다면 많아봤자 당시 내 1/3에 불과한 신용대출 한도에 필요한 준비물도 많고 금리도 나보다 50%는 더 높게 나왔을 것이다.

이게 '평범한' 사람들 끼리 모였을 때 자신의 '평범함'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문제가 안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 이러한 생각을 드러내는 것은 문제가 된다. 자신은 별 생각 없이 당연하게 누리고 있는 것이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러한 것을 평생을 가도 그 근처에 가보기가 어려운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자신의 특권에 대한 인지가 없으면 공개적인 발언에서 헛소리가 늘어난다. 예전 모 신문의 부장님이 지면을 할애해서 썼던 '미친 전세가 싫어 분양받은 주택을 팔고 공공임대주택을 갔다'라는 서민코스프레가 그것이고 의사 배우자에 본인도 전문직종인 사람이 "나같은 서민이 살기에 너무 힘들다"라는 발언이 그것이고 최근에 전 민주당 대변인 정은혜가 한 발언도 바로 그것이다.

본인이 누리는 특권과 본인이 거두는 소득이 전체 사회에서 어느 정도 상위에 있어야만 누릴 수 있는 지에 대한 인식이 없다면 헛소리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이런 사람들이 어디 강연장 같은데 가서 자신은 가진 게 없었으나 (명백히 시작부터 달랐음에도 불구하고) 노력해서 더 큰 성취를 거뒀으니 여러분도 열정과 노력으로 힘내라는 어이없는 소리를 진지하게 떠든다.

한 번쯤은 자신이 정확히 어디쯤에 위치해 있는지를 확인해 보는 게 좋다. 특히나 남에게 훈계하길 좋아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필요하다. 본인이 살기 힘들어서 흰소리 하는 거? 뭐 그럴 수 있다. 그러나 공개적인 장소에서 공개적으로 이야기를 하는 것이라면 자신의 시야에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에 대해서 인지를 하는 게 필요하다.

* 이 글은 필자의 홈페이지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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