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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중년 남자 배우'가 하연수처럼 댓글을 달았다면 어땠을까?

[토요판] 이승한의 술탄 오브 더 티브이

한 주 동안 연예계에서 벌어진 크고 작은 이슈 중 가장 어이가 없었던 것은 ‘하연수 인성 논란’이었다. 지난 7월 중순 그는 자기 사회연결망서비스(SNS) 계정에 스위스 화가 지기스문트 리기니의 그림을 올리며 해시태그(일종의 키워드)로 화가의 이름도 함께 첨부했는데, 누군가 댓글로 작품명을 묻자 작품명을 알려주는 과정에서 ‘작가 이름도 함께 붙여 뒀는데 검색해 볼 의향은 없었냐’고 되물었던 게 화근이 됐다. 지난 6월 초 하프의 대중화를 바란다는 글에 누군가 “하프는 대중화하기엔 가격의 압박이 너무 크다”고 댓글을 달자, “수천만원대의 그랜드 하프와는 달리 켈틱 하프는 50만원대 이하부터 수백만원대까지 가격대의 폭이 매우 넓습니다. 잘 모르시면 센스 있게 검색을 해보신 후 덧글을 써주시는 게 다른 분들에게도 혼선을 주지 않고 이 게시물에 도움을 주시는 방법이라 생각됩니다”라고 답변한 것도 뒤늦게 끌려 나왔다. 팬들의 사랑을 먹고 사는 연예인이 이렇게 까칠하게 댓글을 다는 건 무례하다는 비난이 일었고, 급기야 인성에 문제가 있다는 말까지 튀어나왔다. 하연수는 자필 사과문으로 ‘미성숙한 발언으로 인해 불편함을 느끼신 모든 분들께’ 사과해야 했다.

“손가락이 귀하신 몸이셔서…”

이미 하연수가 잘못한 게 없다는 내용으로는 글이 많이 나왔으니 간단하게 짚고 가보자. 첫째, 하연수는 구글이나 네이버, 다음, 위키피디아가 아니다. 모르는 게 있으면 먼저 검색을 하자. 절대 인터넷 검색이 낯선 노년층 등의 정보 소외 계층을 향해 하는 말이 아니다. 전자우편으로 개인 인증을 해서 사회연결망서비스에 가입한 뒤 하연수의 계정을 찾아가 댓글을 달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보다 쉬운 인터넷 검색은 할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모르는 것이 있을 때면 직접 먼저 검색해보고 이야기하라는 건 어제오늘의 경구가 아니다. 인터넷에는 “구글은 당신의 친구입니다.(그러니 질문하기 전에 제발 검색 먼저 해보세요)”라는 의미의 약어 ‘GIYF’(Google Is Your Friend)’가 통용되고, 한국어 사용 누리꾼들 사이에서도 “손가락이 귀하신 몸이셔서 거동이 힘들어 검색을 못 하느냐”는 의미의 ‘핑프’(핑거 프린스/프린세스)란 단어가 유행 중이다. 심지어는 인터넷이 등장하기 전인 1979년 발매된 소프트웨어 린팩의 사용설명서 상단에도 “출자 미상?R. T. F. M”이라 적혀 있었다. “(질문하기 전에) 빌어먹을 사용설명서 좀 읽어”(Read The Fucking Manual)라는 의미다.

하연수(@hayeonsoo_)님이 게시한 사진님,

둘째, 연예인이란 직업에 서비스업의 성격이 포함되어 있느냐 아니냐는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지만, 굳이 자신이 불필요한 친절을 베풀지 않겠다는 사람에게 찾아가 왜 친절하지 않느냐고 따져 묻는 건 시간낭비다. 연예인들은 연기든 외모든 노래든 춤이든 자신의 재능을 팔아 먹고사는 특수 자영업자이지, 아무 대가 없이 대중의 사랑을 일방적으로 받아먹고 사는 사람이 아니다. 그런 식으로 치면 도시 생활자 중 대중의 사랑을 먹고 살지 않는 사람이 없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모든 노동과 생산물은 누군가 좋아해주고 소비해주는 것에 기대어 있으니까. 수렵채집과 농사로 자기가 필요한 것만 생산해 온전히 자급자족하는 사람을 제외하면, 우리가 매일 아침 전철에서 맞부딪히는 수많은 직장인들은 모두 연예인에 비해 덜 유명할 뿐 대중의 사랑을 먹고 사는 사람들인 셈이다. 하지만 우리는 세상 모든 이에게 그런 수준의 예의를 요구하지 않는다. ‘불필요’하니까.

셋째, 단호함은 무례함이 아니다. 하연수는 반말을 한 것도 아니고 욕을 한 것도 아니다. 연예인의 사회연결망서비스 계정이 과연 사적인 공간인지 아니면 공적인 홍보의 장인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 있지만, 그 어느 쪽에서든 자신이 관리하는 공간에 달린 댓글에 검색을 먼저 해보고 글을 써 달라는 요구를 하는 걸 무례하다고 할 수 없다. 반말도 아니고 욕도 아니며, 심지어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비아냥도 아니다. 대체 언제부터 자신이 어느 지점에서 불쾌했는지를 명시하며 그러지 말아 달라는 의사를 분명히 밝히는 행위가 ‘무례함’으로 오역이 되었나? 물론 좋은 말로 곱게 이야기하면 듣는 사람도 기분이 좋을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시장에서 저울을 속여 물건을 덜 주는 사람을 비난할 수는 있어도, 덤을 얹어주지 않고 정량만 파는 사람을 비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친절과 상냥 등의 덕목은 덤과 같은 것이라 그걸 갖춘 사람들에게 감사하면 되는 일이지, 그걸 갖추지 않은 사람들을 비난할 일이 아니다.

일부에선 하연수가 동안의 젊은 여성이기에 더더욱 발언에 제약을 당한다는 점에 주목한다. 배우 김의성은 트위터를 통해 “하연수씨가 한 얘기를 중년 남자배우가 했어도 저리 반응했을까?”라 말한 바 있다. 젠더 문제가 아닌 것 같거든 모 커뮤니티에 달려서 추천을 수십 개 받은 댓글들을 보자.

“‘아니에용~ 하프도 비교적 저렴한 것들 많이 있어요. 켈틱 하프라고 불리는 종류가 입문하기에 적당해요! 전공자분들이 쓰시는 그랜드 하프는 말씀하신 대로 가격이 수천만원대라 ;ㅅ;’ 이렇게만 했어도…”

“하연수 얼굴만 보면 ‘그러게요ㅜㅜ 가격이 낮아져서 많은 분들이 더 많이 즐기셨으면 좋겠습니다 뿌잉뿌잉’ 할 거 같은데 넘나 피곤한 스타일이네요… 얼굴은 최고인데… 피곤함도 최고네… 많이 어린가요?”

댓글을 단 사람들의 성별은 알 수 없다. 다만 댓글을 단 이들과 추천을 누른 이들이 전부 하연수에게 듣는 이로 하여금 자신이 권력의 우위에 있다고 느낄 수 있게 만드는 유아기적인 말투를 강요하고 있다는 사실은 선명하다. 남자 연예인이었다 하더라도 이와 같은 대접을 받았을까?

“‘AEGYO’(애교)가 무슨 뜻이에요?”

여자가 자신의 의견을 강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무례한 것으로 오인되는 것은, 여자가 자신의 기준으로 호불호를 결정하고 그를 표출할 자격을 지닌 온전한 인간으로 대접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여자가 좀 나긋나긋하고 폭신한 맛이 있어야지”와 같은 말들은 얼마나 많으며, 여성 연예인들에게 애교랍시고 혀 짧은 소리를 강요하는 풍조는 또 얼마나 만연한가. 케이팝이나 한국 드라마에 입문하는 해외 팬들이 가장 자주 묻는 질문 중 하나가 “대체 ‘AEGYO’(애교)가 무슨 뜻인가”인데, 해외 한류 포럼을 살펴보고 있노라면 그것을 좋아하는 이들만큼이나 애교에 매력을 느끼는 이들에게 소아성애의 혐의를 두는 이들도 적지 않다. 그게 아니고서야 왜 성숙한 성인에게 굳이 어린아이의 의사소통 구조를 흉내 내어 미성숙을 연기하는 기술, 그로 인해 상대에게 권력의 우위를 맛보게 해주고 자신을 보호가 필요한 미성숙자로 위치시키는 기술을 요구하냐는 것이다. 하연수는 굳이 애교를 보여주지 않았다. 이서영 작가가 <오마이뉴스> 기고를 통해 발표한 글을 인용하자면, “당신이 연예인의 팬이건 무엇이건 간에 타인에게 “미성숙한” 태도를 강요할 권리는 없다. 우리는 미성숙한 척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 놀랐겠지만, 당신 눈앞에 있는 사람은 다 큰 여자다.”(이서영. <오마이뉴스> 2016년 8월4일치 “남자분들, 놀라셨죠? 저희는 다 큰 여자랍니다”)

하연수에게 인성의 문제를 묻는 이들의 반대편에는, 하연수가 ‘엄근진’(엄격, 근엄, 진지를 뜻하는 인터넷 신조어) 해서 좋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예전엔 하연수의 진지함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목소리를 높였다면, 지금은 인성 운운하는 이들이 목소리를 높이는 중이다. 그 중간 지점, 아직 하연수에 대한 판단을 또렷하게 내리지 않은 수많은 사람들이 어디로 움직이는가에 따라 아마 앞으로의 여론 양상도 달라질 것이다. 벌써 하연수에 대해 잘 모르던 이들조차 이번 소동을 접하며 “말하는 스타일이 단호해서 마음에 든다”며 팬의 길로 접어드는 사례가 늘어나는 분위기니까. 이 글은 그런 이유에서 쓰여진 글이다. 중간 지점의 당신, 한 번쯤은 과한 친절과 애교를 강요하는 분위기가 이상하다고 생각해본 당신을 설득하기 위해.

▶ 이승한 티브이 칼럼니스트. 정신 차려 보니 티브이(TV)를 보는 게 생업이 된 동네 흔한 글쟁이. 담당기자가 처음 ‘술탄 오브 더 티브이’라는 코너명을 제안했을 때 당혹스러웠지만, 연재 4년차인 지금은 그러려니 한다. 굳이 코너명의 이유를 붙이자면, 엔터테인먼트 산업 안에서 무시되거나 간과되기 쉬운 이들을 한 명 한 명 술탄처럼 모시겠다는 각오 정도로 읽어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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