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지리산에서도 '희귀종' 구상나무가 집단 고사하고 있다(화보)

ⓒ서재철 녹색연합 전문위원

[토요판] 화보

지리산 구상나무의 떼죽음

▶ 백두대간의 정점인 지리산은 한라산, 덕유산과 함께 세계적 희귀종 구상나무의 집단 서식지다. 약 10년 전부터 한라산에서 시작된 구상나무의 집단 고사의 물결이 지리산을 빠르게 덮치고 있다. 천왕봉과 반야봉 일대에선 말짱한 구상나무를 찾아보기 거의 힘들 정도다. 녹색연합이 지난달 천왕봉과 반야봉 일대의 구상나무 고사 실태를 조사했다. 뼈를 발라낸 생선처럼 앙상한 몰골만 남긴 채 쓰러진 구상나무 군락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 걸까.

죽음의 물결이 숲을 덮치고 있다. 웅장한 지리산이 오랜 세월 품어 지킨 희귀종 구상나무가 빠른 속도로 죽음을 맞는다. 아마도 기후변화에 의한 것이리라 추정할 뿐, 아직 원인은 명확하지 않다. 구상나무는 전 세계에서 오직 우리나라의 지리산과 한라산, 덕유산 등에만 서식하는. 국제적인 보호종이다. 우리나라 특산종답게 학명(Abies koreana WILS)에도 ‘한국’이 들어 있다. 구상나무의 떼죽음이 나타난 건 최근 10년 새 일이다. 시작은 한라산이었으나, 이제 지리산에서도 떼죽음 현상이 너무도 뚜렷하다.

녹색연합은 지난 7월15일부터 30일까지 보름간 두 차례에 걸쳐 지리산 구상나무 실태조사를 벌였다. 조사에 나선 지역은 동부 지리산의 정점 천왕봉 일대와 서부 지리산의 정점 반야봉 일대 등이었다. 조사 결과는 급격한 집단 고사(枯死)의 진행. 두 권역에서 한결같이 구상나무가 빠르게 무리를 이뤄 죽어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인간의 발길이 닿는 등산로 주변의 구상나무 가운데 말짱한 개체가 거의 남아 있지 않을 정도다. 지름 10~40cm, 키 3~20m 등 크고 작음에 상관없이 한꺼번에 죽음의 문턱으로 접어들고 있다. 가지 끝을 유심히 살펴봤다. 대부분이 잎이 반 이상 떨어졌거나, 붉은빛으로 변하면서 떨어지고 있었다. 잎이 사라진 잔가지는 마치 뼈를 바르고 난 생선처럼 앙상한 몰골만 인간에 보여 주고 있었다.

지난 4월, 녹색연합은 지리산 구상나무, 설악산 분비나무 등 주요 고산침엽수의 집단 고사 실태를 한 차례 발표한 적이 있다. 2014년 3월부터 2016년 3월까지 2년에 걸쳐 모니터링한 결과를 토대로 했다. 그러나 올해 봄을 지나면서 죽음이 퍼지는 속도는 더욱 빨라졌다. 미처 손을 쓸 수도 없을 것만 같은 이런 상황이 왜 일어나는지, 대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 여러 갈래의 의문이 머릿속에서 마구 교차하지만, 여태껏 이렇다 할 뾰족한 해법은 묘연하기만 하다.

지리산에 앞서 구상나무의 떼죽음을 맞이한 한라산은 대한민국이 국제사회에 철저한 보전을 약속해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된 곳이다. 지리산은 우리나라 국립공원 1호다. 한반도의 등줄기를 이루는 백두대간의 정점이기도 하다. 그러나 눈앞에서 구상나무가 소중한 생명을 잃어가는데도 우리는 별다른 관심조차 보이지 못했다. 당장 죽음의 기록이 필요한 때다. 고사목의 거대한 전시장으로 탈바꿈하고 있는 지리산, 이미 그곳은 구상나무의 무덤일 뿐이다.

저작권자 © 허프포스트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관 검색어 클릭하면 연관된 모든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지리산 #환경 #사회 #세계자연유산 #기후변화 #온난화 #구상나무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