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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마어마한 일 만든 분들께 어찌 보답할까 날마다 생각"

아코디언을 자리에 내려놓은 심성락(80)씨는 무대 앞으로 나와 몸을 낮춰 큰절을 했다. 눈은 눈물로 가득 찼다. 일어서서 박수를 치는 관객들의 눈에도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눈물로 뿌예서 관객들을 보고 싶었는데 안 보이더라고요. 놀라운 일이 아니죠. 어마어마한 일이죠. 어떻게 이분들에게 보답할까 매일매일 생각을 해요.”

아코디언 연주가 심성락씨는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화재로 잃은 아코디언을 새로 마련했다. 지난달 30일 650여명이 참석한 후원자를 위한 콘서트(서울시 마포구 마포아트센터 아트홀맥)에서 연주를 마치고서 그는 큰절로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처음에는 무슨 말도 안 되는 일인가 했어요. 집에 와서 크라우드펀딩이 뭔지 찾아봤죠.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하겠어요?” ‘한국 아코디언의 전설’로도 알려진 심씨를 2일 전화통화로 만났다.

지난 4월 말 ‘라잇나우뮤직’ 콘서트를 앞두고 이런저런 생각으로 머릿속이 번잡하던 때 담뱃불이 옮겨붙어 그의 집에 불이 났다. 세간살이가 다 타버렸다. 20여년 손에 익은 이탈리아산 아코디언 파올로 소프라니 5열식도 형체만 남았다. 공연을 같이 준비하던 페이퍼레코드 레이블 대표 최성철씨가 사연과 함께 그에게 새로 아코디언을 마련해주기 위한 크라우드펀딩을 시작했다. 마감날이 되기도 전에 목표했던 금액이 모였다. 최성철씨는 후원자 수와 최종 금액을 줄줄 읊는다. ‘591명의 후원으로 총 금액 33,226,777’. 불탔던 아코디언과 같은 기종의 새 악기를 사는 데 3천만원 정도가 들었다.

그는 현재 7천여곡의 아코디언 연주 저작권을 가지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한국 가수 10명 중 9명은 그와 작업을 같이 한 경험이 있다. “한창 많이 녹음하던 1968~1969년에는 한 달 31일을 녹음실에 있었던 적도 있어요.” 아코디언뿐만 아니라 1980년대 전자오르간 연주곡집은 전국적으로 팔린 베스트셀러였다. 아코디언을 연주하는 후배 송기씨는 “아코디언을 잘 연주하니까 올겐(오르간)도 잘한 거죠. 아코디언은 10년 연주해야 무대에 설 수 있는데, 그러니 올겐은 그에게 쉬웠던 것”이라고 말한다. 2009년 그의 아코디언 대표곡들을 모아 낸 앨범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이후 그를 기억하는 공연들이 이어졌다. 2010년 그랜드민트페스티벌 무대에 섰는데, 그의 무대는 페스티벌의 ‘최고의 순간’ ‘최고의 공연’이란 평을 얻었다.

‘바람의 노래’는 아코디언의 풀무가 불어넣는 ‘바람’을 딴 제목이다. 아코디언은 메고 연주하기 때문에 심장 가장 가까이에서 울리는 악기다. 그런 악기를 익히던 어린 시절 심성락씨는 몸의 갈비뼈를 세며 연습했다고 한다. 아코디언은 무게만 29㎏이 나가기에, 이제 그는 앉아야만 연주할 수 있다. 거기다 조금은 낯선 새 아코디언이다. “연습 때는 그러려니 했는데 지금 들으니 아코디언 건반 몇 개가 튜닝이 안 맞아 있어요.” 공연 전 심성락씨는 노심초사했다. “우리 연주자들은 공연을 별로 안 쳐줍니다. 리허설을 해도 금방 타악기가 두드리고 가면 소리가 틀어져요. 공연 중에 나는 소리를 연주자들은 잘 못 듣지요.” 특히 노령의 그는 한쪽 귀가 잘 안 들려 이어폰을 모노로 해서 들어야 한다.

“‘목포의 눈물’을 수천번 연주했지만 매번 다릅니다.” 이번 ‘목포의 눈물’ 연주에선 쓸쓸한 감정이 두드러졌다.

오랜 동료인 기타 연주자 이유신, 색소폰 연주자 강승용이 함께했기에 더욱 의미가 깊었다. 공연 도중 둘째 손가락과 셋째 손가락에 쥐가 났지만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해 위기를 넘겼다고 심씨는 회상했다. “고수들은 작은 소리로 연주해요. 그러면 다른 사람도 집중하면서 거기에 따르게 됩니다.” 조덕배가 나와서 “심 선생님이 이 곡을 연주해주신 뒤로 제가 이 곡을 많이 부를 수 있게 되었다”며 ‘그대 내 맘에 들어오면’을 들려줬고, 함춘호가 기타 솔로로 ‘호텔 캘리포니아’를 연주하기도 했다.

일정 금액 이상을 낸 후원자의 이름은 그의 아코디언을 덮는 천에 새겨졌다. 원래 벨트에 새기려 했는데 벨트가 너무 두꺼워 불가능했다. 심성락씨는 모든 후원자의 이름을 일일이 확인하고 싶다고 했다. “명단이 작은 종이에 쓰여 있는데 못 읽겠더라고요. 종로 어디 나가서 돋보기 사갖고 와서 봐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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