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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방을 나오며

상상이 되는가? 당신 얼굴이, 그러니까 당신의 얼굴이 성기와 항문을 훤히 드러낸 이미지에 합성이 되고, 이름 나이 학교 주소 전화번호까지 모두 공개되는 공개처형. 너무 수치스러워서 애인과 가족들이 볼까봐 두려운 그런 이미지가 인터넷을 돌아다닌다고 상상해보라. 이것은 살인이 아닌가? 만일 그때 사람들이 아예 일베 사이트 앞에서 집회를 열고 일베 폐지하라, 여성에 대한 살인이다! 폐륜아들, 사회의 쓰레기들아! 라고 '오바'해 주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지금 그들처럼. 그때 나는 혼자였는데. 그때는 아무도 나서주지 않았는데. 그때는 아무 일 없는 것처럼 세상은 참 조용했는데.

  • 홍승희
  • 입력 2016.08.03 07:56
  • 수정 2017.08.04 14:12
ⓒ홍승희

22살, 인터넷에서 반값등록금 집회를 했던 내 사진과 일본 야동배우의 몸과 합성해 성기에 유심칩을 넣고 있는 이미지, 항문이 훤히 보이는 이미지가 보였다.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내 몸은 벗겨지고 난도질당했다. 다리에 힘이 빠지고 손이 떨렸다. 나는 괜찮다고, 미친놈들이라고 여겼다. 여성에 대한 성적 조롱은 흔한 문화였으니까.

차라리 종북 빨갱이라고 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집회에 나갔던 친구들은 불온한 대학생으로 매도되었고, 그것을 함께 감당해줄 시민들이 있었다. 하지만 이런 성적 수치심은 나만의 것이었다.

또 다른 누군가 이런 일을 겪지 않도록 신고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홈페이지 화면 좌측 아래쪽에 작게 보였던 사이버 신고 버튼을 눌렀다. 하지만 달라진 건 없다.

이후로 목소리를 낼 때마다, 몸이 드러날수록 (드러나지 않을 때에도) 성적 조롱거리로 오르내렸다. 기사의 00녀 취급은 애교였다. 일베 게시물에는 나는 000창녀다, 강간하고싶다, 똥걸레같은년, 자기 불봉으로 데워줄거다, 보지에 칼을 쑤시고 흔들어버리고 싶다 등. 지금은 댓글 하나하나 고소했고 당연히 용서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는건 여전히 신고뿐이다. 다른 대책도, 예방책도 없다.

상상이 되는가?

당신 얼굴이, 그러니까 당신의 얼굴이 성기와 항문을 훤히 드러낸 이미지에 합성이 되고, 이름 나이 학교 주소 전화번호까지 모두 공개되는 공개처형. 너무 수치스러워서 애인과 가족들이 볼까봐 두려운 그런 이미지가 인터넷을 돌아다닌다고 상상해보라. 이것은 살인이 아닌가? 그러나 인터넷은 조용하다. 그걸 올린 놈은 나쁜놈. 일베는 원래 그런놈. 나는 재수없는년. 하고 끝나왔다. 여성의 가슴사이즈, 질의 넓이, 쉽니 어렵니, 따먹었니 진도는 어떠니 하는 심심치 않게 들리는 농담 쯤이야, 저런 미친놈. 하고 넘어가듯.

한남충이란 말이. 남성의 성기를 조롱하는 것이 화나는가? 그 분노와 행동력이 부럽다. 난 평생을 그런 말들을 듣고도 그냥 지나칠 만큼 바보였으니까. 성적 수치심은 내가 감당할 몫이라고 생각해버렸으니까. 고작 내가 할 수 있는 건 홈페이지 좌측 아래쪽에 있는 사이버 신고 버튼을 클릭하는 것밖에 없었으니까.

만일 그때 사람들이 아예 일베 사이트 앞에서 집회를 열고 일베 폐지하라, 여성에 대한 살인이다! 폐륜아들, 사회의 쓰레기들아! 라고 '오바'해 주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지금 그들처럼. 그때 나는 혼자였는데. 그때는 아무도 나서주지 않았는데. 그때는 아무 일 없는 것처럼 세상은 참 조용했는데.

아직도 일베에 종종 폭력적인 게시물이 올라온다. 이제 수치심에 떨지 않는다.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문제이니까. 혼자가 아니니까. 페이스북 페이지로 알게된 메갈리아라고 불리는 어떤 존재는 그냥 존재로 고맙다. 내게는 그런 무게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

그때 나를 도와주지도, 뭐라하지도 않던 이 세상이 피해자들이 욕지거리를 하니까 봐주기라도 하는 지금 이 상황이, 아주 솔직한 마음은 감사하다. 소중한 기회다. 숨쉴 기회. 이제 혼자 수치스럽진 않으니까. 케케묵은 독방에서 빠져나왔으니까.

페미니즘을 입에 올리는 이들에게서 극단의 온도차를 느낀다.

그녀들은 열탕에 있었고, 그는 열탕 바깥에 있었다. 그는 이따금 튀기는 뜨거운 물에 따가워하지만, 그녀는 너무 오랫동안 열탕 속에 있었기 때문에 피부가 뻘겋게 벗겨져도 따가운지 몰랐다. 그녀는 이제야 벗겨진 피부를 보고 뒤늦게 화상을 입고있다. 무척 따갑지만, 따가움을 느낄 수 있어 감사하다. 다시는 열탕에 들어가지 않으리. 나는 아직도 환호성 같은 비명을 지르고 싶다.

<진실의 시간> © 홍승희

* 이 글은 필자의 페이스북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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