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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숨겨진 공간들] 이태원 우사단로에서 꼭 가봐야 할 곳 6

  • 김태우
  • 입력 2016.07.29 12:50
  • 수정 2016.07.29 14:11

‘힙한’ 동네, 혹은 사람들이 모르는 ‘나만의 동네'를 찾던 사람들이 우사단로에 몰리기 시작했다. 이태원에 있는 이슬람 사원을 시작으로 이어지는 이 길은 가죽 공방부터 유리 공방까지 다양한 아티스트들이 함께 공존하는 공간으로, 업종에 상관없이 모두가 어울릴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아직 재개발되지 않은 상태로, 오래된 분위기가 물씬 나는 우사단로에 허프포스트코리아가 다녀왔다.

우사단로 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구축해온 ‘사람들’을 소개한다.

가죽 공방 ‘앰퍼샌드’

‘앰퍼샌드’는 두 남자가 운영하는 가죽 공방으로, 브랜딩과 수업을 동시에 진행하는 가죽 공예 작업실이다. 자신들을 공예가로 소개한 강인종과 임형찬은 각자 회사에 다니다가 ‘부모님께 만질 수 있는 작업물’을 선물하기 위해 가죽 공예를 시작했다. 함께 일한 시간은 3년 밖에 되지않았지만, 서로의 다른 스타일을 존중할 만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 둘에게 우사단로는 어떤 곳인지 물었다.

임형찬: 서울 같지 않은 서울 같아요. 서울이기는 하지만 옆집과 친하게 지낼 수 있는 분위기랄까? 자연스럽게 동네 친구가 생기게 된 것 같아요.

강인종: 아직은 예술을 하던, 창업을 하던 젊고 순수한 친구들이 많은 공간인 것 같아요. 가끔 모이기도 하고, 회의도 하거든요. 업종은 전혀 상관없어요. 다양성이 아직까지는 존재하죠.

이들이 처음 우사단로에 함께 작업실을 오픈한 2013년에는 거리가 지금만큼 번화하지 않았다. 당시에는 이들을 포함해 세 팀이 전부였고, 우사단로는 서울의 다른 곳에 비해 저렴하고 비교적 자유로운 공간이었기 때문에 작업하던 사람들이 공방을 차리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연고가 없어도 비슷한 나잇대의 사람들이 들어와 쉽게 공감대가 형성됐고 빨리 친해질 수 있었다고 한다.

‘앰퍼샌드’는 곳곳에 가죽 공예 작품들을 전시해놨다. 이중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술병을 담는 가죽통과 접이식 의자였는데, 굉장히 오랜 시간 작업해온 듯 빛 바랜 가죽이 눈에 띄었다. ‘앰퍼샌드’만의 스타일이 뭐냐고 묻자 “그런 건 없다. 지금 우리만의 스타일을 만들어가는 과정에 있다.”고 말했다. 앞으로 자리잡을 이들의 스타일이 궁금해진다.

디자인 스튜디오 겸 피자/맥주펍 ‘UPP’(Universal Peace Project)

이태원 전경이 보이는 루프탑에서 기름진 피자와 시원한 맥주를 맛볼 수 있는 UPP의 주인들은 이날 만났던 우사단로 사람 중 가장 어렸다. 89년생 친구 네 명이서 만든 이곳은 “청년들이 함께 문화를 만들어가는 공간”으로, 디자인과 패션 일을 하던 이들이 평소 피자집으로 운영하다가 디자인 일도 진행하는 ‘샵 앤 오피스’다.

처음에는 디자인 업체로 시작하려 했다던 김세영, 김정수, 박민수, 이규종 대표는 가격이 저렴한 공간을 찾다가 2015년 초 현재 UPP가 있는 건물 건너편에서 친구가 연 사진전 덕분에 우사단로를 처음 방문했다고 말했다.

우사단길 주민들과 상인들의 사진을 찍어 전시하는 사진전이었는데, 전시 중에 병원에서 무료 진료도 하는 좋은 행사였어요. 그렇게 우사단로에 처음 와봤죠. 그 친구의 사진전을 보러왔다가 우사단로가 재밌는 공간인 걸 깨달았어요. 그 당시 이곳에서 남아있던 유일한 건물이 바로 여기였어요. 디자인 일만 하기엔 너무 크다고 생각해서 좀 고민이 됐는데, 이왕 하는 일 크게 해보자고 결심해서 ‘샵 앤 오피스’(shop and office) 개념으로 시작하게 됐죠.--김정수 대표

이들이 우사단로를 선택한 이유는 간단했다. “저렴하고 흥미로워서.” 이들은 우사단로를 “서울의 시골” 그리고 “서울 같지 않은 서울”이라고 표현했다. 서울에 발전된 모습에 반하는 곳, 그리고 시간이 멈춘 것 같은 동네라며 우사단로에 대한 애정을 표했다.

김정수, 김세영 대표는 앞으로의 포부도 긍정적이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추억을 쌓고, 자신들의 긍정적인 에너지가 한 명이라도 더 변화할 수 있길 바란다는 것. 앞으로도 사람들을 돕길 원한다는 이들은 현재도 수익금 일부와 피자를 지역 보육원에 기부하는 등 사회 봉헌에도 힘쓰고 있다.

스타일지음

플로리스트 박지선과 신수정은 2013년부터 우사단로에서 작업실을 운영하고 있다. 조경 원예 디자인을 전공한 박지선과 인테리어를 전공한 신수정은 2010년에 같은 직장을 다니게 되면서 함께 일을 시작했다. 둘이 오픈한 작업실 ‘스타일지음’은 꽃을 판매할 뿐만 아니라 브랜딩, 디스플레이와 전시도 병행하고 있다.

지난 2013년 유동인구와 관계없이 꽃시장과 가까운 작업실 공간을 원했던 둘은 결국 지하철 역과도 멀지 않으면서 가격도 매력적인 우사단로를 선택하게 됐다고 전했다.

이날 만난 이들은 우사단로의 매력 중 다른 업종의 사람들과도 쉽게 어울릴 수 있는 공간이라는 점을 대표로 꼽았다. 실제로 서로 어울리기도 하느냐는 질문에 신수정은 “우사단로에 가게가 하나둘씩 더 들어오면서, 다들 인사하고 지낼 정도의 친구가 됐어요.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는 친구네 가서 맥주를 마신다거나, 늦게까지 작업을 하고 있으면 친구들이 들려서 같이 노는 정도로 가깝게 지내고 있어요.”라고 답했다.

작업실 곳곳에 꽃내음이 가득한 ‘스타일 지음’의 바램은 이들이 처음 우사단로에 들어오게 됐던 계기와 일맥상통한다. 박지선은 장사하려는 사람보다는 자신들처럼 스튜디오 작업을 하는 사람들, 그리고 특색있고 “결이 맞는” 사람들이 들어왔으면 좋겠다며 앞으로의 소망을 밝혔다.

햇빛서점

그래픽 디자이너 우철희가 운영하는 ‘햇빛서점’은 LGBT 서점 겸 그래픽 디자이너 스튜디오다. 고등학교 때부터 미술을 전공해 그래픽 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는 그는 LGBT 행사나 브랜딩, 문화 예술 분야의 그래픽 디자인을 맡고 있다.

그가 처음 햇빛서점을 열게 된 계기는 LGBT 커뮤니티를 위한 문화가 밤 시간에 치중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밤에 즐기는 문화를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낮에 갈 수 있는 곳도 필요하다고 생각해 이 서점을 열게됐다고 전했다.

왜 ‘햇빛서점’이라는 이름을 골랐냐는 질문에 우철희는 “지하는 숨는 것 같은 느낌이 제 자신에게 들었기 때문에 햇빛이 가득 들어오는 1층에 위치한 서점을 열고 싶어서”라고 말한다.

우철희는 우사단로가 저렴하기도 하지만, LGBT 커뮤니티가 주말에 자주 모이는 곳과 가까워서 골랐다고 전했다. 또한, 우사단로의 특성에 대해 “다양한 사람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 모인 곳이라는 생각이 들고, 격리된 특별한 공간이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그가 정의한 우사단로는 “각자 좋아하는 일을 하는 공간”이었다. 이런 특성을 유지하기 위해 그는 앞으로 우사단로를 방문하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이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 존중하는 마음을 가지고 오거나, 최소한 열린 자세로 온다면 재미있는 것들을 많이 볼 수 있을 것”이라며 조언하기도 했다.

프루티즘

과일로 만든 음료와 디저트를 파는 ‘프루티즘’은 우사단로의 몇 안 되는 카페 중 하나다. 이곳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액자처럼 보이는 창문으로, 마치 액자를 통해 서울의 풍경을 보는 듯한 착각이 들기도 한다.

프루티즘의 장고 대표는 기존에 이태원이나 신사 같은 큰 도로에서 가게를 운영하다가 그곳이 가지고 있지 않은 조용하지만, 개성을 충분히 발현할 수 있는 공간을 찾고 있었다. 그러다 우사단로를 발견했다. “다양한 문화권이 공존하고, 예전부터 시장으로 쓰인 공간으로서 우사단로가 가지고 있는 오래된 분위기”을 가장 큰 매력으로 꼽기도 했다.

현재 우사단로의 매장들은 서로 정보도 공유하고 친밀감을 유지하는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고 말한 프루티즘은 앞으로도 매장을 찾는 손님들에게 우사단로의 매력을 공유할 것이라고 전했다.

소울잉크

흰 벽에 그래피티 작품을 가득 전시해둔 ‘소울잉크’는 그래피티 아티스트 겸 타투이스트 ‘후디니’의 작업실이다. 90년대 초, 미국 영화에서 뒷골목에 그래피티를 그리는 장면을 보고 이 일을 시작했다는 후디니는 20여 년 전에 친구가 하던 가게 복도의 벽을 시작으로 우사단로의 작업실까지 오게 되었다고 전했다.

왜 작업실 이름을 ‘소울잉크’로 짓게 됐냐는 질문에 그는 “지역명이 들어가길 원했어요. 그러다 ‘서울 잉크’나 ‘이태원 잉크’를 생각했죠. 그런데 둘 다 누가 이미 쓰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서울과 발음이 비슷한 ‘소울’을 골랐어요.”라고 답했다.

우사단로가 번화하기 한참 전인 2003년에 작업실을 연 그는 단순히 우사단로의 “월세가 싸서” 이곳으로 들어오게 됐다고 말한다. 우사단로의 변화를 꾸준히 봐온 사람으로서 동네가 바뀌어가는 현상을 그다지 좋게 보지 않는다고 밝혔다.

“정말 짧은 시간 내에 월세가 엄청 올랐고, 몇 년 지나지 않아 젠트리피케이션이 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 골목은 이태원의 가장 구석진, 죽어있던 자리였는데 저희 같은 사람들이 들어오고 계단장을 여는 등 활성화를 시켰지만, 결국은 이 거리를 활성화하는데 아무 도움도 주지 않았던 사람들이 혜택을 보는 상황이 왔어요.”

그가 처음 우사단로에 자리 잡은 2003년과 비교하면 현재의 모습은 정말 다르다고 말한다. 동네 사람들이 전부였던 당시와 달리 현재는 외지인들이 방문하는 현상 때문에 처음의 “오래된 동네” 같은 분위기가 몇 년 안에 사라지지는 않을지 불안해했다. 후디니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다.

“왠지 끝이 보일 것 같으니까, ‘나도 여기 오래 못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시간의 흐름을 거스르는 듯한 이 동네는 과일을 파는 할머니와 하교하는 어린이들이 서로 거리낌 없이 인사하고 소통하는 서울 내에서는 흔치 않은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 각자의 일을 무척이나 즐기고, 이 ‘숨겨진 공간’에 대한 자부심을 가진 이들이 자리 잡고 있는 우사단로를 이번 주말 방문해보는 건 어떨까?

사진: 허핑턴포스트코리아/이윤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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