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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용한 여행, 무용한 여행

여행을 떠나기 전에는 한껏 무용해지자 마음을 먹는다. '아무것도 안 할 거야.'라며 짐짓 호탕하게 말해본다. 하지만 여행지에 도착하는 순간, 마음에는 다시 유용함이란 기준이 자리 잡는다. '언제 또 올 수 있겠어?'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그것도 못 보면 아깝잖아.' 등등 유용함은 각종 핑계를 달고 여행 한 가운데에 뻔뻔하게 자리 잡아 버린다. 그리하여 '무용하자'라는 다짐이 무색할 정도로 여행자의 스케줄은 봐야 할 것, 가야 할 곳, 먹어야 할 것, 사야 할 것 등등 유용한 것들로만 빼곡히 들어차게 된다. 무용하고 싶지만 무용한 시간을 견딜 힘이 우리에겐 없는 것이다.

  • 김민철
  • 입력 2016.07.29 07:05
  • 수정 2017.07.30 14:12

대체 '유용하다'라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가?

유사 이래 모든 인류의 유용성의 총합은

바로 오늘날 이 세계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무용한 것보다 더 도덕적인 것도 없지 않은가.

- 밀란 쿤데라 '불멸' 中

이 세계에서 우리는 유용해야 한다. 지나치게. 유용한 하루를 보낼 수 있을 만큼 자야 하고, 유용한 활동을 할 수 있을 만큼 먹어야 하고, 유용한 사람이 되기 위해 돈을 벌어야 한다. 쉬는 데에도 유용함은 빠지지 않는다. 오죽하면 휴가의 목적을 '리프레시'라고 말하겠는가. 리프레시. 단어가 프레시해 보인다고 속으면 안 된다. 실은 일하기 좋은 상태로 다시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다. 평가의 기준은 언제나 우리의 유용함이다. 그러니 일상 속에서 꿈꾸는 사치는 이런 것이다. 햇빛 아래 맛있는 커피 한 잔 시켜놓고 책을 읽거나 멍하니 먼 곳만 보거나 지나가는 사람들만 구경하거나 그러니까 있는 대로 여유를 부리는 텅 빈 시간, 한껏 무용한 시간.

여행을 떠나기 전에는 한껏 무용해지자 마음을 먹는다. '아무것도 안 할 거야.'라며 짐짓 호탕하게 말해본다. 하지만 여행지에 도착하는 순간, 마음에는 다시 유용함이란 기준이 자리 잡는다. '언제 또 올 수 있겠어?'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그것도 못 보면 아깝잖아.' 등등 유용함은 각종 핑계를 달고 여행 한 가운데에 뻔뻔하게 자리 잡아 버린다. 그리하여 '무용하자'라는 다짐이 무색할 정도로 여행자의 스케줄은 봐야 할 것, 가야 할 곳, 먹어야 할 것, 사야 할 것 등등 유용한 것들로만 빼곡히 들어차게 된다. 무용하고 싶지만 무용한 시간을 견딜 힘이 우리에겐 없는 것이다.

무용한 여행은 뜻하지 않게 찾아왔다. 프랑스 디종에 도착한 것이다. 디종에 간 이유는 간단했다. 내가 가고 싶은 소도시로 가는 버스가 디종 터미널에 있었기 때문에. 디종에 3일이나 머물게 된 이유도 간단했다. 내가 가고 싶은 소도시로 가는 버스가 일요일 오전에만 있었기 때문에. 만약 디종에게 인격이 있었다면 이건 무척 자존심 상하는 일일 것이다. 수많은 관광객들이 디종 머스타드를 맛보기 위해 그 도시를 일부러 찾는데, 우리는 디종을 순전히 중간기착지로,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디종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고, 아무것도 알려고 하지 않았다. 지도 한 장도 손에 없었다. 유일하게 가지고 있는 정보는 전날 식당에서 옆자리에 앉은 미국인 부부가 꼭 가보라며 알려준 술집밖에 없었다. 그 부부는 자신들도 우연히 발견한 곳인데 '플랑쉐'라는 메뉴를 꼭 시켜보라며, 매우 훌륭한 치즈와 햄들의 맛부터 시작해서 나무도마에 이쑤시게 꽂힌 모양과 10유로 조금 넘는 가격에 이르기까지 묘사하며 우리에게 칭찬에 칭찬을 거듭했었다.

그리하여 디종에 도착한 우리는 집주인을 만나 열쇠를 받고, 예쁜 집 상태에 만족을 하고, 미국인 부부가 알려준 식당으로 걸어가서 플랑쉐를 시키고, 감탄하고, 다 먹어치우고, 살살 걸어 장을 보고, 또 살살 걸어 우리집으로 돌아왔다.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디종에서의 우리는 한가했다. 그냥 집 앞 광장에 나가서 책을 읽고 시장에 들러 구경 좀 하고 또 광장에서 책을 읽고 술을 마시며 이 도시에 다시 올 일은 없겠구나 라고 막연히 생각하며 멍하니 시간을 흘려보냈다.

그때 한 아저씨가 눈에 띄었다. 멍하니 한 곳을 응시하며 커다란 분수에 혼자 발을 담그고 있는 아저씨였다. 여름 한낮 디종은 그야말로 고요했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가끔 바람이 불어 나뭇잎이 흔들렸고, 태양은 가공할 만한 위력으로 내리쬐고 있었고, 카페 차양 아래 사람들이 앉아 맥주를, 와인을, 커피를 마시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 아저씨가 앉아있었다. 그 아저씨를 내가 보고 있었다. 시간이 흘러가는 모습을 보고 있었다. 목적도 없고, 방향도 필요 없는 시간이었다. 텅 빈 시간이었다.

문득 깨달았다. 아, 내가 이 순간을 정말로 그리워하겠구나. 파리보다도, 남프랑스보다도, 더 그리워하겠구나. 유명한 관광지는 그리워하지 않아도 이 광장은 그리워하겠구나. 특색 없는 이 맥주가 간절해지는 순간이 오겠구나. 아무것도 아닌 이 카페가, 지금 이 기분이, 나른함이, 이 속도가, 저 멍한 시선이, 이름조차 붙일 수 없는 이 모든 무용한 시간이 그 무엇보다 그리워지는 순간이 오겠구나.

예감은 정확했다. 바쁘게 회사 일을 하다가 문득, 밥을 먹다가 문득, 지하철 안에서 문득, 이상하게도 문득문득 생각나는 것은 그런 순간들이다. 너무 아무것도 아니라서 이름조차 붙일 수 없는 순간들. 그리하여 이름조차 붙일 수 없는 그리움들. 이런 그리움이 유난히 지독한 날에는, 약이 없다. 다시 여행을 떠날 수밖에 없다. 유용한 시간을 그만두고 무용한 시간을 찾아 길 위에 다시 설 수밖에 없다.

*이 글은 필자의 저서 <모든 요일의 여행> (북라이프, 2016) 내용 중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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