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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병우·진경준, 비밀은 없다

우 수석 가족이 운영했다는 부동산 관리용 법인은 딱 떨어지는 의혹이지만 처제 국적까지 문제 삼는 건 과도하다. 지난해 메르스 사태 때 우 수석이 자녀를 해외로 피신시켰다는 의혹도 마찬가지다. "상당히 신뢰할 만한 제보를 받았다"(장정숙 국민의당 의원)는 주장이 사실이라면 제보 내용을 공개해야 한다. 의혹 제기에도 근거와 논리, 원칙이 있어야 한다. 그가 물러나지 않는다고 해서 최소한의 인격권까지 침해해선 안 된다.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에 동원됐던 '여론재판' 방식을 우병우에게도 적용하는 건 결국 그에게 지는 것이다.

  • 권석천
  • 입력 2016.07.27 06:50
  • 수정 2017.07.28 14:12

"생각하자. 생각하자. 생각하자. 정신 똑바로 차리고 생각하자."

영화 '비밀은 없다'에서 국회의원 선거를 보름 앞두고 실종된 딸 을 찾아 헤매는 후보 아내(손예진)가 되뇌는 말이다. 지금처럼 의혹과 주장이 맞부딪치는 상황에서 생각하지 않으면 우린 또 다른 함정에 빠지고 만다.

생각하자.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을 둘러싼 의혹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중엔 우 수석 처제의 국적 논란이 있다. 언론이 왜 처제 국적까지 소환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결혼해서 자녀까지 있는 처제의 국적이 한국이든, 카리브해의 섬나라든 그건 우 수석과 관련 없는 일 아닌가.

우 수석 가족이 운영했다는 부동산 관리용 법인은 딱 떨어지는 의혹이지만 처제 국적까지 문제 삼는 건 과도하다. 지난해 메르스 사태 때 우 수석이 자녀를 해외로 피신시켰다는 의혹도 마찬가지다. "상당히 신뢰할 만한 제보를 받았다"(장정숙 국민의당 의원)는 주장이 사실이라면 제보 내용을 공개해야 한다.

생각하자. 우 수석을 변호할 마음은 없다. 나는 그가 지금이라도 사퇴하고 수사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진경준 검사장의 주식 대박 의혹을 부실 검증한 것만으로 사퇴 사유는 충분하다. 더욱이 우 수석은 진 검사장 소개로 1300억원대 처가 부동산을 넥슨에 팔았다는 의혹을 해소하지 못하고 있다.

다만 의혹 제기에도 근거와 논리, 원칙이 있어야 한다. 그가 물러나지 않는다고 해서 최소한의 인격권까지 침해해선 안 된다.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에 동원됐던 '여론재판' 방식을 우병우에게도 적용하는 건 결국 그에게 지는 것이다.

생각하자. 또 하나, 그의 거취에만 주목한다면 사태의 본질을 흐릴 가능성이 크다. 본질은 검찰정치다. 우 수석이 수사와 인사에서 막강 파워를 행사할 수 있었던 건 검찰을 정치에 활용하려는 박근혜 대통령과 집권세력의 의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를 움직인 손은 대통령뿐일까. 그를 천거하고 지원한 세력은 누구일까. 그로 인해 누가, 어떤 이익을 얻었을까.

왜 우병우 같은 사람을 민정수석에 앉혔느냐는 물음은 핵심을 비켜간 것이다. 그는 도덕적이어서가 아니라 검찰정치를 집행할 유능한 기술자로 간택됐다. 거취 결정이 미뤄지고 있는 것도 그의 퇴장으로 타격을 받을까 우려하는 쪽에서 반대하고 있거나, 검찰을 컨트롤할 대안 고르는 시간을 벌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이것은 의혹이 아니다. 합리적 의심이다.

생각하자. 120억원대 공짜 주식, 처남 청소용역업체, 넥슨 제공 가족여행.... 진경준 검사장 관련 의혹들이 쉬지 않고 튀어나온다. 검사 비리가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하지만 조사실 내부에 있어야 할 피의사실이 실시간으로 공표되는 건 옳지 않다. 검찰은 '진경준 비리'를 조직의 문제가 아니라 한 파렴치범의 개인적 일탈로 몰아가려는 것 아닐까.

노 전 대통령을 벼랑 끝에 서게 했던 것도 검찰의 언론 플레이였다. 또다시 현혹되지 않으려면 우리는 인간 진경준에 대한 분노를 넘어 그의 범죄가 어떻게 가능했느냐고 질문을 던져야 한다. 수사권·수사지휘권에 기소권까지 틀어쥔 검찰 권력이 뒤에 없었다면 그에게 왜 주식을 주고, 일감을 주고, 해외여행비를 댔겠는가. 우리는 검찰권을 구조조정하고, 검사들 천지인 법무부를 문민화하고, 검찰정치의 미련을 버리라고 요구해야 한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생각하자. 검찰이 바뀌지 않는 한 제2, 제3의 우병우·진경준은 계속해서 나올 것이다. 그들을 검찰정치의 아바타, 검찰권의 아바타로 만든 시스템의 책임도 끝까지 물어야 한다. 무대 뒤편에서 '시스템 복원' 키를 만지작거리는 자들의 가면을 벗겨야 한다.

비밀은 없다. 간단한 전자제품 기능만으로 청와대 홍보수석의 보도 개입이 폭로되고, 친박 실세들의 지역구 변경 압박, 재벌 회장의 사생활이 드러나는 세상이다. 비밀이 사라진 시대에 비밀을 감추려는 몸짓만큼 허무한 것은 없다.

* 이 글은 중앙일보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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