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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원들은 퇴근 후 집에 가지 못하고 '영업'을 위해 길거리로 나선다

ⓒ연합뉴스

* 위 이미지는 자료 사진입니다.

“퇴근 뒤에 무작정 삼겹살 집 같은 데를 찾아 테이블마다 다니면서 멤버십 포인트 서비스에 가입해 달라고 부탁해요. 가입자를 받을 때 은행원 사번도 넣을 수 있게 돼 있어 소주 한 병 주문해 드릴 테니까 가입하고 사번만 입력해 달라고 합니다.”

시중은행에 다니는 권아무개(32) 대리는 은행 창구가 문을 닫는 오후 4시면 거리로 나선다. 은행 문을 닫은 뒤에도 전표 정리 등 할 일이 산더미지만 최근 ‘통합 멤버십 포인트’ 가입자를 유치하는 게 발등에 떨어진 불인 탓이다. 권씨는 “점포별로 많게는 1000명씩 할당이 떨어진 상황이다 보니 친구나 친척 가입 유치만으론 실적 채우기가 버거워서 지점장도 거리 영업에 등을 떠민다”면서 “오후엔 길에서 노인이나 대학생을 대상으로 무작정 가입을 권유하고, 밤에는 술집 등을 돌아다니는 게 일”이라고 하소연했다.

26일 은행권의 설명을 들어보면, 최근 은행원들은 권씨처럼 ‘통합 멤버십 포인트’ 가입자 유치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금융회사들이 연이어 비슷한 서비스를 선보이면서 업체 간 경쟁은 과열 양상을 드러내고 있다.

이 서비스는 은행과 카드사 등 금융그룹 계열사들과 거래를 할 때 생기는 포인트를 한 곳에서 모아 관리하고, 현금자동입출금기(ATM)를 통해 쌓인 포인트를 현금으로 인출하거나 쇼핑 등에 활용할 수 있는 혜택을 준다. 하나금융그룹은 지난해 10월 ‘하나멤버스’라는 이름으로 처음 서비스를 내놓아 현재 가입자 수가 500만명을 넘어섰다. 이 그룹은 현금자동입출금기에서 포인트를 현금처럼 뽑아 쓰는 사업모델로 특허까지 신청했다.

다른 시중은행들도 두고 보지만은 않았다. 신한금융지주는 지난달 7개 그룹사의 통합 포인트 서비스인 ‘신한 판 클럽’을 출시했고, 우리은행도 이달 들어 ‘위비멤버스’를 내놓았다. 시중은행들 사이에 경쟁이 본격화한 셈이다.

이런 통합 멤버십 포인트 유치 경쟁은 계좌이동제 등으로 주거래은행 변경이 쉬워지면서 항공사의 마일리지처럼 소비자를 붙잡아 둘 장치가 절실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서비스를 활용하면 가입자에게 다양한 금융상품을 판매할 여지도 커진다. 금리 혜택을 주는 등 다양한 마케팅으로 금융상품 판매를 늘리고 거래를 유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계좌만 터놓고 거래가 거의 없는 고객이 아니라, ‘활동 고객’을 늘릴 수 있는 셈이다.

하지만 최근 시중은행들의 경쟁 과열과 도를 넘은 실적 압박은 결국 금융 소비자의 피해로 귀결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가입자 유치 단계에서 개인정보 활용에 대한 충분한 설명을 건너뛰는 마구잡이 행태나 마케팅 비용의 소비자 전가로 이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이에 금융당국도 은행원들이 가입자 확보에 내몰리면서 본업에 소홀함이 생기거나 가입자 정보가 소비자 의도와 달리 텔레마케팅에 흘러갈 수 있다고 보고 상황을 예의 주시 중이다.

실제 시중은행의 한 창구 직원은 “지점 근처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곳에 파라솔을 펴 놓고 직원들이 업무시간에 교대로 나가 가입 권유 활동에 나서기도 하는데, 그럴 경우 점포 대기 시간이 길어지는 등 소비자 피해가 발생한다”고 털어놨다. 이와 관련해 양현근 금융감독원 부원장보는 지난 19일 4대 금융지주 부사장들을 불러 과당 경쟁을 벌이지 말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금감원의 한 간부는 “시중은행 쪽에도 가입자 유치를 위해 길거리 영업을 다니는 등의 과도한 마케팅을 자제하도록 요청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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