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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44살이다. 이제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는다

나는 십 대였을 때는 다른 사람들도 대부분 그렇듯 자존감이 제로였다. 10살 때부터 나를 괴롭혔던 심한 여드름은 깊은 상처이자 자기 혐오의 원천이 되었다. 나는 화장실 거울 앞에 서서 육체적 불완전함을 가리려고 얼굴에 화장품을 바르고 또 발랐다. 그때 사실 나는 피부 뒤에 숨은 불완전함을 가리려 했던 것이었다.

나는 평생 피부 때문에 고생하지 않았던 때가 기억나지 않는다. 같은 반 여자아이들 대부분보다 몇 년 빨리 10살에 사춘기를 맞은 내게 피부는 일상의 싸움이었다. 다른 여자 아이들의 촉촉하고 도자기 같은 얼굴을 보며 단 하루만이라도 저런 피부를 가져봤으면 좋겠다고 꿈꾸곤 했다. 전쟁터 같았던 내 얼굴을 벌충하기 위해 나는 다른 곳에서 과잉 보상을 찾았다. 날씬한 몸매를 유지하며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옷에 퍼부었다. 그래, 나는 패션 디바였다. 최고 학년이 되었을 때 우리 반의 베스트 드레서로 꼽혔을 정도였다.

그 어린 소녀는 내 안에서 오래도록 살아남았다. 나는 풀 메이크업을 하고 트렌디한 디자이너 옷을 입지 않고선 아무데도 가지 않았다. 매일 피부 때문에 울던 어린 소녀는 여성이 되었지만 자신을 자기 청소년기의 포로로 가둬두고 있었다.

올해 2월, 몇 년 동안 45kg이 찐 나는 마침내 뭔가 하기로 결심했다. 젠장, 시간은 가만히 서서 나를 기다려 주지 않았다. 행동을 취해야 했다. 그래서 나는 체육관에 가입하고 트레이너를 고용했다. 이게 내가 식단과 운동 계획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을 난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운동을 하러 다니기 시작했다. 풀 메이크업을 하고 패셔너블한 스니커를 신고 갔다. 울퉁불퉁한 운동용 신발은 싫어하기 때문이었다.

나는 뚱뚱했다. 뚱뚱하다는 단어도 싫다. 하지만 그건 사실이었다. 나는 손을 놓고 있었다. 이혼과 파산 후 몇 년이나 우울했고, 실패했다는 기분을 몇 년 동안 느끼며 살아오자, 의사는 내게 뭔가 하지 않으면 내 두 아들이 대학 졸업할 때까지 살지 못할 거라고 말했다.

체육관의 끔찍한 거울에 비친 나를 보자 나는 내가 이런 여성이 되었다는 걸 믿을 수가 없었다. 나는 여전히 얼굴이 빨간 소녀였다. 더 많은 상처와 고통을 지닌, 더 큰 사람이 되었을 뿐이었다. 여드름은 사라졌지만 중년의 딸기코 때문에 얼굴은 지금도 빨갰다.

러닝 머신에서 몇 분만 걸어보려 시도했지만 멈춰야 했다. 체육관의 건강한 사람들이 전부 나를 보는 게 느껴졌다. 일부는 내 상상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람들이 나를 비웃는 걸 봤던 건 사실이다. 나는 부끄러웠고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그때 어떤 일이 일어났다. 정확히 언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엿 먹으라고 해. 난 나 자신을 더 낫게 만들려고 여기 온 거야. 저 사람들이 뭔데 나를 평가해?”

그래서 다음 날 나는 어떻게 했을까? 메이크업 없이 체육관에 갔고, 진짜 스니커를 샀다. 게다가 운동을 한 다음 메이크업을 하지 않고 식료품점에 들르기까지 했다.

이 말이 바보 같다고 느끼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스스로를 싫어하는 것의 진짜 고통, 자기 자신이라는 게 편안해 본 적 없는 고통, 어린 시절의 괴롭힘을 극복하는 것의 고통을 아는 사람이라면 이해할 것이다. 내게는 큰 진전이었다.

44살인 나는 이제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는다. 그랬더니 다시 14살이 된 기분이다. 그러나 지금의 14살짜리는 다른 사람들의 생각에 신경쓰지 않는 강한 여성이다.

Allison Saia는 작가이자 Allison Saia Consulting의 설립자다. Allison에 대한 정보는 http://www.allisonsaia.com에서 더 볼 수 있다.

* 허핑턴포스트US의 I’m 44, And I Have No F*cks Left To Give를 번역, 편집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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