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홍대앞 젠트리피케이션을 이해하는 4가지 키워드

[밥&법]홍대앞 젠트리피케이션의 뿌리

상수·연남동 상권지역 등기부 331개를 분석하다

김아무개씨는 최근 6년 동안 서울 마포구 서교동과 상수동 일대에 6채의 상가건물을 매입했다. 그가 쓴 돈은 총 131억1200만원에 달하지만, 이들 6채 건물에 붙은 근저당 설정액 역시도 111억2300만원에 이른다. 근저당 설정액이란 은행이 대출 대신 담보로 잡아둔 액수를 뜻한다.

김씨의 행보는 서울의 ‘뜨는 동네’에서 벌어지고 있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의 근본적 원인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다. 25일 <한겨레>가 상수와 연남동의 등기부등본 331장을 뽑아 분석한 결과, 한국 사회에서 젠트리피케이션은 금융위기 이후 부동산 자본이 아파트라는 투자상품에서 상가건물 쪽으로 눈을 돌리면서 나타난 것으로 분석됐다.

젠트리피케이션은 먼저 상권이 확장될 여지가 있는 지역에 외부의 부동산 자본이 들어오며 시작된다. 이들이 주거지를 상권으로 바꿔놓으면 이어 상인들이 뒤따랐다. 예술인들이나 상인들이 상권을 띄워놓으면, 그 뒤에 부동산 자본이 들어오면서 집값과 임대료가 뛴다는 일반적 상식과는 달랐다. 성장률 위주의 경제정책을 펼치는 정부의 부동산 규제 완화와 초저금리 시대라는 배경이 이런 움직임에 탄력을 줬다.

이에 따라, 젠트리피케이션 문제를 상가임대차 문제에만 초점을 맞춰서는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상수 지역은 원래 주거지에 가까운 곳이었다. 그러나 부동산 자본이 몰려오면서 음식점으로 이용 중인 건물이 2006년 34개에서 2015년 160개로 빠르게 증가했다. 부동산 자본은 대부분 동네 사람이 아닌 외부인이었다. 외부 거주 건물주는 2006년 93명에서 2015년 121명으로 증가했다.

※음식점으로 이용 중인 건물 숫자는 서울시의 식품위생업소 인허가 데이터 자료를 이용했다.

※※외부 거주 건물주 현황은 2016년 3월 기준으로 음식점으로 사용 중인 건물을 찾아내 그 건물들의 등기부등본(183개)를 떼어 과거 기록들을 역추적했다.

1957년 2월생인 김아무개씨는 지난 2002년 4월 처음 서울 홍익대(홍대) 지역의 부동산을 매입했다. 서교동 단독주택을 사들여 5층짜리 상가 겸 주택을 지었다. 잠시 다른 곳으로 떠났던 김씨는 2009년 다시 이곳에 돌아와 대대적으로 홍대 상수 지역의 부동산을 매입하기 시작했다.

① 2009년 5월 서교동 5층 건물(연면적 601.17㎡)을 21억5천만원에 구입하며 시동을 거는 듯하더니, 2011년부터 본격적으로 건물을 주워담았다.

② 2011년 6월 서교동 2층 건물(연면적 122.49㎡)을 14억원에 매입했고,

③ 2013년 11월 상수동의 3층 건물(연면적 380.99㎡)을 27억9200만원에 샀다.

④ 2014년 4월에는 26살의 자녀 명의로 상수동 2층 건물(279.7㎡)을 16억6천만원에 취득했고, 이어

⑤ 같은 해 10월과 11월 상수동 2층 건물(67.32㎡)과 ⑥ 서교동 3층 건물(연면적 470.4㎡)을 매입했다.

김씨의 행보는 <한겨레>가 홍대 상수 지역에서 음식점으로 운영 중인 건물 183건을 살펴보는 과정에서 파악할 수 있었다. 그의 건물은 다른 곳에도 또 있을 수도 있다. 다만, <한겨레>가 찾은 사례만 따져도 2009년 이후 쓸어담은 건물의 총액은 무려 131억1200만원에 달한다.

김씨는 어마어마한 자산가일까?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그가 2009년 이후 사들인 6개의 건물에 붙어 있는 은행 근저당 설정액은 총 111억2300만원에 이른다. 매입가액의 84.8% 수준이다. 이는 지금 살고 있는 집의 근저당 설정액은 뺀 수치다.

1. 상가: 부동산 투자가 아파트에서 상가로 넘어간 것은 2012년이다

김씨처럼 하려면 은행 대출에 따른 리스크(위험)를 웃도는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확신이 있어야만 한다. 부동산 가격이 오르거나, 임대료가 꾸준히 상승한다면 성공하는 게임이다. 반대로 부동산 가격이 내려가고 대출금리가 오르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 김씨는 무모한 도박을 벌인 것일까? 혹시 이렇게 배짱을 부릴 만한 근거가 있던 것은 아닐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상수 지역과 연남동 총 331개의 등본을 떼어 분석했다.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분석하기 위해 데이터분석 전문가인 신수현(서울시 통계데이터분석팀)씨의 도움을 받았다. 이 과정은 최근 한국 사회에 커다란 이슈로 떠오른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어떻게 나타났는지도 보여준다. 젠트리피케이션이란 예술인(상인)들이 쇠퇴한 동네를 띄워놓으면 부유층(젠트리)이 들어와 집값과 임대료를 올리고, 예술인들은 되레 내몰리는 현상으로 풀이된다.

우선 상수 지역 분석에 집중했다. <한겨레>가 상수 상권으로 여겨지는 곳을 조사지로 설정해 음식점으로 이용 중인 건물의 등기부등본 183건(3월 말 기준)을 모두 떼어 분석한 결과, 이 건물들에 붙어 있는 은행 근저당 설정 총액은 지난해 말 기준 1251억원에 이르렀다. 이는 2012년(781억원) 이후 3년 만에 무려 60.2%나 늘어난 것으로, 2006년(487억원)에서 2012년까지의 증가 속도에 견주면 2배의 속도다.

이 같은 추세 분석은 변곡점이 나타난 시점을 찾아내기 위해서다. 변곡점은 2012년이었다. 당시 부동산 시장에는 새로운 흐름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많은 사람들이 상가건물로 눈을 돌리기 시작한 것이다. 이전까지는 아파트가 대표적인 부동산 투자 상품이었다. 적절히 규격화되어 있는 아파트는 환금성이 매우 좋은 ‘상품’이었다. 그러나 금융위기의 여파는 컸다. 일본에서 목격했던 인구 감소에 따른 부동산 거품 붕괴 우려와 뒤섞이며 상승작용을 일으켰다. 아파트 회의론이 극대화됐다. 부동산 투자를 고민하던 이들은 아파트의 대안이 되는 상품을 찾기 시작했다. 그 대안은 상가건물이었다. 저성장, 저금리 시대에 임대료라는 현금 흐름이 창출되는 보기 드문 상품이다.

<한겨레>와 만난 홍대의 건물주 이아무개(63)씨는 “부동산의 흐름이 아파트에서 상가건물 쪽으로 바뀌었다고 봤다”고 말했다. 용산에 상가용 건물을 가지고 있는 그는 2011년 홍대 주차장 골목 쪽에 있는 대형 건물을 매입했다. “당시에, 주택 쪽은 이미 포화되고 있다는 느낌이 있었어요. 세계적인 경기라든가 국내 돈의 흐름을 보면 주택이 포화되는 듯했지요. 오피스 빌딩은 주택보다 낫긴 한데, 너무 많이 늘어나는 경향이 있었죠. 게다가 옆에 새 건물이 나오면 임차인도 쉽게 옮겨 버리니 안 되겠다 싶었어요. 그런데 상가건물은 달라요. 사람이 항상 빈번한 곳에서는 임대료가 안정적으로 나올 것이란 생각을 하고, ‘여기에 투자하자’ 하고 생각했죠.”

2009년 6월18일 <조선일보>는 강남 도곡동의 프라이빗뱅킹(PB)센터장의 말을 인용해 향후 투자방향을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지금은 상가 등 수익형 부동산들을 마구 주워담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투자한 경험 때문인지, 부동산이 인플레이션에 대비한 가장 좋은 투자처라고 확신하는 부자들이 많네요.”

2012년을 기점으로 상수와 연남 지역 건물에 붙은 근저당 설정액이 급격하게 증가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당시 정부의 부동산 규제 완화와 초저금리 기조의 영향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은행 대출을 보다 쉽게 이용할 수 있게 된 부동산 자본은 적극적으로 상가 건물을 매입하기 시작했다.

2. 대출 이자와 임대료: 젠트리피케이션과 정부의 금리 인하는 당연히 상관 관계가 있다

그다지 놀랍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이런 흐름에 날개를 달아준 것은 바로 박근혜 정부다. 2014년 7월 최경환 새누리당 의원이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 취임하자, 기획재정부는 곧바로 ‘하반기 경제정책운용방향’을 발표해 부동산 담보대출 규제인 주택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을 완화했다. 소비 활성화를 통해 경제성장률을 높이겠다는 명목으로 금리도 빠르게 낮아졌다. 한국은행의 기준금리는 2011년 6월(3.25%) 이후 2015년 6월까지 7차례 동안 0.25%포인트씩 낮아졌다. 이어 지난 6월 또다시 0.25%포인트를 낮춰 1.25%가 됐다.

대출에 의존해 부동산 몸집 불리기에 나선 투자자들은 세입자들로부터 임대료를 받는 데 적극적으로 나선다. 단순히 은행 대출 이자를 갚는 데 쓰는 수준을 넘어 건물의 임대료 수준은 그 부동산의 가치와도 직결된다. 이 지역의 리모델링 전문 건축업체 관계자는 이렇게 설명했다.

“건축주들은 투자 대비 연수익이 얼마나 될 것인지, 투자를 했던 건물의 땅값이 향후 얼마나 오를지에 대한 관심이 큽니다. 교수님이든 공무원이든 일반 직장인이든 대부분은 부동산 가격의 60~70% 정도의 많은 대출을 받지 않고서는 이런 집을 사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에요. 그래서 임대료로 금융비용을 해결하고, 남는 돈으로 생활비를 쓸 수 있기를 바라죠.”

3. 외부인 건물주: '뜨는 동네'에 들어오는 투자자들은 거기 살지 않는다

‘뜨는 동네’에 들어오는 투자자들 상당수는 그 동네에 살지 않는 외부인이다. 2015년 말 기준, 상수 지역 건물주의 66%가 외부인이었다. 동네 사람은 34%에 불과했다. 이들은 동네에 들어오자마자 주거 기능을 하던 상당수의 건물을 상업용으로 바꿨다. 임대료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다. 조사 대상지에서, 서울시가 식품위생업소 인허가 데이터 자료를 바탕으로 음식점으로 운영 중인 건물의 숫자를 연도별로 뽑아보니, 연말 기준 2006년 34개, 2009년 50개, 2012년 102개, 2015년 160개로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건물이 상가로 전환되면 그곳에 살던 젊은이들은 밀려난다. 상권의 확산은 주변 집값을 들썩이게 한다. 집값 상승은 임대료 상승으로 이어진다. 원래 상수 지역 같은 다가구·다세대주택 밀집지역은 주거비가 높은 아파트 지역과 달리, 청년들에게 그나마 곁을 내줬던 곳이다. 25~34살 인구 비중이 높은 곳이다. 그러나 이곳마저 부동산 자본의 먹잇감이 되며 청년들이 짐을 싼다. 상수 지역(서교동)의 25~34살 인구 비중은 30.0%에서 26.2%로 3.8%포인트 줄었다. 서울 전체 평균(19.4%→16.0%, 3.5%포인트 감소)보다 빠르다.

’뜨는 동네' 중 상수동이라 부르는 곳은 행정구역상 서교동과 상수동이 뒤섞여 있는 곳이다. 서교동의 세대별 인구비중 변화를 살펴보니, 젊은이들의 이탈이 심각했다. 서교동은 원래 서울 전체 평균보다도 젊은이 거주 비율이 높은 곳이다.

이런 현상은 홍대 상권이 확장되는 또 다른 곳인 마포구 연남동에서도 마치 복제된 듯 벌어진다. 서울시는 2011년 말께 경의선 폐선로를 ‘경의선 숲길’ 공원으로 바꾸겠다는 계획을 공식적으로 내놨고, 2012년 주민 대상 설명회를 열었다. 이어 2013년 8월 경의선 숲길 공사가 시작됐다. 언론에서는 ‘제2의 홍대 상권’이라는 식의 기사가 나오기 시작했다. 이런 소식들은 부동산 투자 쏠림의 신호가 되었다. 이곳은 홍대 지하철역, 홍대 상권과 가까웠지만 경의선 폐선로 탓에 부동산 가치가 저평가되어 있었다. 연남동 조사 대상지 건물 148개에 붙은 은행 근저당 설정 총액은 2012년 말 410억원에서 2015년 말 629억원으로 53.2% 늘었다.

상수에서 벌어진 일은 연남동에서도 그대로 벌어지고 있었다. 부동산 자본한테 경의선 숲길 공원 공사는 ‘투자정보’였다. 같은 기간 음식점으로 운영 중인 건물은 63곳에서 139곳으로 2배 이상으로 늘었다. 외부인 건물주 비율도 2006년 38%에서 지난해 60%로 크게 높아졌다. 외부인이 소유한 건물들은 수익 극대화를 위해 작동하기 시작한다. 여기서부터 상가 세입자들의 문제가 시작된다.

4. 세대교체: 현재 건물주들이 부동산 시장에서 나가도 젠트리피케이션은 계속될 수 있다

상수와 연남 이외의 지역에서 벌어졌던 일이 다른 지역에서 또다시 벌어지려면 몇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적당한 장소, 정부 정책 및 금리 환경, 투자자 쏠림 등의 3박자가 맞아야 한다.

이 중 한 가지,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은 쏠림현상을 일으키는 투자자가 존재하느냐 하는 점이다. 상수와 연남에다 서촌(92개 건물)의 등기부등본 자료까지 더해 건물주가 어떤 사람들인지 알아봤다. 건물주 나이의 평균을 계산해 보니, 세 지역 모두 똑같이 1958년생으로 나타났다. ‘58년 개띠’다.

베이비붐 세대를 대표하는 이들은 강남과 분당 등의 부동산 불패 신화를 경험해왔다. 이들은 “부동산을 팔면 반드시 다른 곳의 부동산을 되사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팔고 난 뒤 매입하지 않으면 어느새 부동산 가격이 급등해 다시는 부동산을 살 수 없는 상황이 되는 꼴을 수없이 목격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들이 부동산 시장에서 은퇴하는 순간 커다란 변화가 나타나진 않을까? 그렇진 않다. 그리 쉽게 바뀌진 않을 것 같다. 분석 결과 이미 세대교체가 진행되고 있었다. 최근 3년 동안 상수·연남·서촌 부동산을 매입한 이들의 평균 출생연도는 1967년생이었다. 이보다 젊은 사람들도 많다. 등기부등본에서는 다음과 같이 수많은 젊은이들의 부동산 매입 사례를 목격할 수 있었다.

서울 마포구 상수동의 한 작은 건물은 2013년 10월부터 서울 서초구 방배동에 사는 김아무개(39)씨의 소유가 됐다. 83㎡(25평)의 작은 땅에 건물도 2층(연면적 105.45㎡·32평)밖에 되지 않았지만 매맷값이 자그마치 12억5천만원에 달했다. 지하철 6호선 상수역 바로 옆인데다 모서리에 있어 위치가 좋았기 때문이다. 김씨의 은행 근저당 설정액은 무려 9억6천만원에 이른다. 매맷값의 76.8% 수준이다.

하아무개(41)씨 부부 역시 2014년 10월 상수동 건물을 10억4천만원에 샀는데, 근저당 설정액이 7억2천만원에 달했다. 인천에 사는 최아무개(34)씨도 2014년 8월 상수동 건물을 13억3천만원에 매입하면서 은행에서 10억원 이상의 대출(근저당 설정액 13억2200만원)을 받았다. 부동산 쏠림 현상을 일으킬 주체는 앞으로도 충분히 있을 것이라는 뜻이다. 저성장이 이어지면서 저금리 시대도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그럼 이들은 어느 곳으로 몰려갈까? 물론 알 수는 없다. 다만, 미래성이 보장되어야 한다. 현재 가격이 저평가되어 있으되 향후 발전가능성이 높은 곳이 바로 그런 곳들이다. 투자자들 사이에 그런 장소에 대한 공감대가 확산되는 순간 투자 쏠림 현상이 이어질 수 있다. 그곳이 바로 ‘뜨는 동네’다.

저작권자 © 허프포스트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관 검색어 클릭하면 연관된 모든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사회 #주택 #주거 #젠트리피케이션 #홍대 #서교동 #상수동 #서촌 #마포 #서울 #건물주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