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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드와 '제국의 강박'

한국은 7월 8일 사드 도입을 공식 발표함으로써 동맹을 재확인시켰다. 미·중 패권다툼에서 '고래 싸움에 등터지는 새우'마냥 그야말로 초라한 모습을 연출했다. 사드가 우리의 안보,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로 가는 길에 진정 도움이 될 것인지, 또는 '죽음의 키스(kiss of death)'가 될 것인지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점은 사드 배치를 이렇게 서둘 필요는 없었다는 사실이다. 미국 차기 정부가 들어선 다음에 판단하고 결정해도 결코 늦지 않다.

  • 국민의제
  • 입력 2016.07.25 13:16
  • 수정 2017.07.26 14:12
ⓒASSOCIATED PRESS

- 한반도 위기, 새로운 돌파구를 열어야 -

글 | 조 민(평화재단 평화교육원 원장)

제국의 강박관념

제국의 미래는 흔들리고 있다. 세계사에 등장했던 성공적인 제국은 항상 관용과 다원주의를 토대로 부상했다. '제국 아메리카'는 안으로는 기회, 역동성, 도덕성의 가치가 점차 사라지고 있는 가운데, 밖으로는 일방적인 패권주의와 오만한 제국의 행태를 드러내고 있다. 최근 대선 레이스에 돌입한 민주당이나 공화당 후보 모두 보호무역과 자국중심주의인 아메리카니즘을 강화하겠다는 목소리를 한껏 높이는 데서 제국의 위상이 쪼그라드는 모습이다. 불관용 그리고 강압과 군사력에 의존하는 제국 아메리카는 스스로 강박관념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팍스아메리카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21세기 초반 중국과 러시아의 부상이 팍스아메리카의 위상에 심각한 도전으로 부각되었다. 2008년의 금융위기, 2010년 중국의 세계 제2의 경제대국 부상, 푸틴 대통령의 짜르 러시아의 부활 추구 등은 미국의 유일헤게모니 체제를 흔들어놓았다. 미국이 중동의 수렁에 빠졌던 '잃어버린 10년' 동안 중국의 급부상에 미국은 크게 놀랐고, 패권전략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을 수 없었다. 이에 오바마 정부는 '아시아 중시전략 Pivot to Asia'(얼마 후 '재균형 Rebalancing'으로 분칠했지만)으로 중국 억지를 전략적 목표로 삼아 아·태지역에서 전통적 우방국과 동맹국을 동원하면서 대중 견제와 포위망 구축을 서둘렀다. 중국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은 미․중 관계로 G2의 '신형(新型)대국관계'를 제의했으나 오히려 미국의 우려와 경계심만 부추겼다. 그와 함께 유럽 지역에서 러시아의 군사력 강화와 위협은 미국의 세계패권전략의 야심찬 구상을 촉구했다.

초강대국 미국은 유일헤게모니 구도를 유지하기 위해 중국과 러시아 두 강대국을 한꺼번에 모두 잡아야 한다. 미국은 대러·대중 억지체제로 마법의 방패이자 '세기적 미션'으로 전 지구적 차원에서 글로벌 미사일방어시스템(GMD) 구축을 시도했다. 미국의 〈관심있는 과학자 연합(UCS: Union of Concerned Scientists)〉이 시스템의 기술적인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지상배치 미사일방어체계 확대배치 계획을 중단해야 한다고 지속적으로 호소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MD 시스템은 10년 이상 400억 달러(45조 3천3백억여 원)의 예산 투입으로 캘리포니아 반덴버그 공군기지와 알래스카 포토 그릴리 지하기지 등 14곳에 배치되었다.

유럽 MD 시스템 구축

미국은 금년 5월 중순 유럽 MD 계획의 하나로 구축해온 루마니아 내 요격미사일 기지가 본격 가동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옛 소련 시절 건설된 루마니아 데베셀루 기지에 미국의 유럽 MD 체계에 포함되는 SM-3 요격미사일과 이지스 레이더 시스템 등이 배치된 것으로 알려졌다. 폴란드에도 2018년 전력화를 목표로 또 다른 MD 기지가 건설되고 있는 중이다. 루마니아, 폴란드 MD 기지 외에도 스페인에 배치된 미군 구축함의 요격 미사일, 덴마크와 네덜란드 함정에 설치될 레이더 시스템, 터키에 설치될 조기경보기 시스템, 독일의 지휘통제센터 등이 통합된 유럽 MD 시스템으로 운용할 계획이다.

미국은 그동안 이란 등 '불량국가'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비한다는 명분으로 유럽 MD 시스템 구축을 추진해왔으나, 러시아가 미국의 유럽 MD가 자국을 겨냥한 것임을 모를 리 없다. 유럽 MD 문제는 2014년 우크라이나 사태가 터지기 전까지 미국과 러시아 관계를 악화시킨 최대 이슈였다. 러시아는 국제 전략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하면서 "전략적 균형만이 지구상의 확실한 평화를 보장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런 입장에서 러시아는 미군이 한국에 배치하려는 사드도 유럽 MD 시스템과 연계되는 미국 글로벌 MD 시스템의 일부라면서 강한 반대 입장을 밝혔다.

이런 와중에 일본은 지난 7월 10일 치러진 참의원 선거에서 '개헌 세력'이 압승했다. 이를 계기로 아베 총리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지금까지 고수했던 전쟁 및 무력사용을 금지한 현행 평화헌법 9조를 개정해 전쟁 가능한 보통국가로 전환할 가능성을 열었다. 한편 영국에서는 테레사 메이 총리가 취임 이후 첫 일성으로 핵 억지력 유지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가운데 "북한의 핵위협"을 거론하면서 지난 7월 18일 차세대 전략원자력잠수함(SSBN) 프로젝트를 강하게 밀어 붙여 하원의 지지를 얻어냈다. 강대국 간 핵무기체계 경쟁으로 마치 1960년대 냉전시대로 되돌아가고 있는 모습이다.

대중(아시아) MD 시스템 구축: 한국의 사드 배치

미국은 한국에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 배치를 시작으로 아시아 다른 나라들에 잇따라 사드 배치를 늘리는 MD 전략을 추진할 것이라는 전망이 일반적이다. 이미 유럽 MD 시스템 구축을 완료한 미국은 이제 한국을 시작으로 아시아 지역에서(다음 지역으로 필리핀) 대중 MD 시스템을 구축함으로써 글로벌 MD 체계 완료를 서두르고 있다. 물론 이란이 유럽의 방어 명분으로 내세워졌듯이 사드 배치는 북한의 핵·미사일 억지가 명분이다.

그러나 미 해군 작전사령관의 전직 과학자문역인 포스톨(Theodore Postol 메사추세츠공대(MIT) 과학기술안보정책분야 명예교수)은 "사드 방어시스템은 한국의 방어에는 아무런 쓸모가 없다"고 주장했다. 포스톨은 "중국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 발사되더라도 지평선 위로 떠오르기 전에는 알래스카에 있는 미국의 미사일방어 레이더망에 포착되지 않는다. 그런데 한국에 사드가 배치되면(사드와 짝을 이루는 2000㎞까지 탐지 가능한 X밴드 레이더(AN/TPY-2) 운용으로) 중국의 ICBM이 발사되자마자 미국이 미사일 비행경로 정보를 제공받을 수 있다. 중국은 이 때문에 한국이 미국의 대중 군사전력 보강에 결정적인 역할을 해주는 것으로 받아들여 한국에 매우 격앙된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다"고 평했다. 사실 중․일 사이에 이미 2개의 사드 레이더가 설치되어 있다. 여기에다 한국에 사드가 배치된다면 알래스카 소재 MD 레이더가 중국에서 발사된 ICBM을 포착하는 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기 때문에 미국의 대중 위협용 군사전략적 가치는 매우 크지만 북한 핵미사일 대응 수단으로서는 실효성이 낮다는 주장이다(<스푸트니크>와의 인터뷰, 7.9). 또한 그는 "현행 미국의 MD 시스템은 진짜 핵탄두와 가짜 미끼용 탄두를 전혀 식별하지 못하기 때문에 제대로 작동할 수도 없을 것"이라는 주장도 내놓았다.

사드는 장거리 또는 중거리 미사일보다 사거리는 짧고 비행속도는 느린 준중거리 또는 단거리 미사일 요격용으로 개발됐는데, 한미 양국은 사드가 마치 북한의 장거리 또는 중거리 미사일도 막을 수 있는 것처럼 발표했다. 사드 배치가 수도권 방어에는 실효성이 없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사드는 북한의 스커드 미사일, 노동미사일, 그리고 장사정포에는 쓸모가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지금 사드로 결코 막을 수 없는 북한이 개발중인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이 훨씬 더 위협적이다.

거세지는 미․중 패권다툼, 표류하는 한국

미국과 중국의 서로 양보할 수 없는 패권다툼이 남중국해를 드센 격랑 속으로 몰아넣었다. 미·중 갈등과 대립은 남중국해와 북핵 위기를 둘러싼 한반도, 두 지역에서 전개되고 있다. 지난 7월 12일 네덜란드 헤이그의 상설중재재판소(PCA)는 중국이 남중국해 영유권 주장의 근거로 삼는 '남해 구단선(九段線)'과 인공섬의 법적 지위를 모두 인정하지 않았다. 이는 중국의 주장이 유엔해양법협약(UNCLOS)을 훨씬 넘어섰다는 필리핀 측의 주장을 받아들인 것이다. 물론 충분히 예상된 결과로 중국의 거부 반응은 거셌고, 미국은 즉각 국제여론 공세에 들어갔다. 남중국해는 해양자원과 영유권 차원을 넘어 인도양과 서태평양을 잇는 전략적 교두보로 전통적 헤게모니 국가 미국이나 신흥대국 중국이나 어느 누구도 양보할 수 없는 핵심이익이 걸린 해역이다. 남중국해에서의 미·중 간 긴장과 갈등 국면이 쉽사리 해결되기보다는 장기화될 가능성이 크다.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은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라는 '중국몽'(中國夢 Chinese Dream)을 기치로 내걸었다. 하지만 중국몽은 '핵·미사일, 테러, 억압, 인권탄압, 기후환경 문제...' 해결 등과 같은 인류몽(人類夢)과 조화를 이룰 때 비로소 주변국의 이해와 지지를 받을 수 있다. 중국의 대국굴기(大國堀起)가 세계의 의혹과 이웃 나라의 우려를 사는 방식은 전혀 바람직하지 않다.

그와 더불어 미국은 2001년 9․11 테러 이후 부시 대통령과 그의 네오콘 참모들이 강력히 주장한 MD 시스템이 현실화되고 있는 셈이다. 록히드 마틴과 같은 군산학복합체의 엄청난 이권이 달린 즉, 결코 포기할 수 없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처럼 'MD 망령'은 좀처럼 수그러들 것 같지 않다.

한국은 7월 8일 사드 도입을 공식 발표함으로써 동맹을 재확인시켰다. 미·중 패권다툼에서 '고래 싸움에 등터지는 새우'마냥 그야말로 초라한 모습을 연출했다. 사드가 우리의 안보,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로 가는 길에 진정 도움이 될 것인지, 또는 '죽음의 키스(kiss of death)'가 될 것인지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점은 사드 배치를 이렇게 서둘 필요는 없었다는 사실이다. 미국 차기 정부가 들어선 다음에 판단하고 결정해도 결코 늦지 않다.

대북제재국면, 새로운 모멘텀을 찾아야

사드 도입 선택으로 3월부터 본격화되었던 대북제재의 국제공조는 금이 갔고, 사실상 막(幕)을 내렸다. 공식적·비공식적 측면에서 북중, 북러 관계는 점차적으로 회복될 것이다. 이 현실을 냉정히 직시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는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과 위협으로 깨졌지만,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를 유지·관리해야 하는 한국의 대북전략은 파산상태에 이르고 말았다. 사드 문제가 돌출되지 않고 제재국면이 1년 정도 지속될 수 있다면 북한의 전략적 수정을 기대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결국 대북 제재와 포위망은 한국이 풀어준 셈이다.

북한은 아주 불합리한 체제로, '실패한 국가'이자 매우 '위험한 국가'다. 그러나 북한은 불안정해 보이지만 상당히 '내구력 있는(durable)' 체제다. 우리는 바로 이러한 북한과 대화하고 손을 잡아야 한다! 북한에 할 말은 해야 하지만 막다른 궁지로 몰아서는 안 된다. 한반도의 주인인 우리는 주변 강대국에 휘둘리지 않고 우리의 길을 가야 한다.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의 '진영구도'에 매몰되지 않고, 주변 강대국의 남북한 '분할통제(devide & control)' 구도에서 벗어나야 한다. 주변 강대국의 '갑(甲)질'에 더 이상 당하지 않는 길은 우리 스스로 한반도 문제의 주인이 되는 길 뿐이다. 핵·미사일 문제는 매우 절박하다.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 대화와 협상 이외에 다른 길이 있는가?

글 | 조 민

평화재단 평화교육원 원장을 맡고 있으며, 선문대학 초빙교수로 대학원 강의를 하고 있다. 통일연구원에서 통일정책연구센터 소장과 부원장을 역임하면서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 문제에 대해 오래 동안 연구해왔다. 한반도 통일은 우리 사회의 내부 동력이 관건적이라는 인식 아래 새로운 접근법을 모색하고 있다. 그와 함께 문명사적 전환 속에서 기회를 포착하고 위기를 극복하는 정치의 역할을 탐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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