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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고하지 말라는 충고

얘기 끝에 그분은 뜬금없이 이렇게 말했다. "우리 부부는 삼십년 넘게 같이 살면서 부부싸움을 한 번도 안 했습니더. 비결이 뭔지 압니꺼?" 내가 물음표를 담은 눈으로 쳐다보자 그분은 특유의 새된 목소리로 말했다. "충고를 안 해야 돼. 입이 근질근질해 죽겠어도, 충고를 안 해야 되는 거라예. 그런데 살다가 아, 이거는 내가 저 사람을 위해서, 다른 건 몰라도 이것만은 꼭 한 번은 얘기를 해줘야 되겠다... 싶을 때도, 충고를 안 해야 돼요."

  • 이옥선
  • 입력 2016.07.21 09:42
  • 수정 2017.07.22 14:12
ⓒGettyimage/이매진스

오랜만에 만난 후배는 그간의 연애 사정을 털어놓으며 괴로워했다. 나는 술을 여러 잔 따라주며 이야기를 들었다. 상대는 관계가 복잡한 사람이었고, 후배와의 관계도 그닥 잘 풀릴 것 같지 않았다. 후배는 전날 그 사람에게 헤어지자고 말했다. 그리고 나를 찾아왔다. 관계를 끝내야 한다는 걸 머리로는 아는데 좋아하는 감정은 남아 있으니 힘들었던 거다. 사정을 듣고 보니 내 아끼는 후배를 마음 고생시키는 무책임한 인간이 미워져서 나는 마구 욕을 했다.

"헤어지자니 그 사람은 뭐래?"

"그러재요. 자기가 생각해도 그게 맞는 것 같다고."

"그래. 내 생각도 그렇다."

그러나 생각이 다 무슨 소용인가. 한 잔 두 잔 술을 마시며 얘기를 나누다 보니 시간은 자정이 넘었고 후배는 꽤 취했다. 후배는 인상을 찡그리며 말했다.

"목소리를 너무 듣고 싶어요."

"안 돼! 절대로 전화하지 마. 너 내일 아침에 틀림없이 후회한다."

후배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내가 화장실에 다녀오는 동안 못 참고 전화를 걸었다. 잠깐 목소리를 들었다고 그새 배시시 좋아하는 후배 녀석의 얼굴을 보니 어이가 없었다. 후배는 다시 술잔을 기울이며 이 관계의 탐탁지 못함과 어딜 가야 새로운 사람을 만날 수 있을지에 대해 얘기했다. 그러다 녀석은 두 번째로 전화를 했고, 끊은 뒤 이렇게 말했다.

"다시 만날지도 모르겠어요." 나는 펄쩍 뛰며 결사반대했다.

그날 새벽 집에 돌아와 누워서 후배에 대해 생각하다가, 나는 갑자기 무언가를 깨달았다. 취해서 자정 넘은 시각에 전화를 하면 틀림없이 아침에 후회한다는 걸 나는 어떻게 알고 있는가? 내가 해봤기 때문이다. 내가 아침에 머리를 짓찧어 봤기 때문이다. 머리로는 끝내야 하는 관계를 감정 때문에 이어가 봐야 상처만 더 남고 인생이 너덜너덜해진다는 걸 나는 어떻게 알고 있는가? 내가 해봤기 때문이다. 내가 이런저런 관계를 겪어 보고 엄청나게 아파 봤기 때문이다.

나에게도 당시에 충고를 해준 친구들이 분명 있었다. 하지만 그때는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게다가 조금 더 생각해 보니 '내가 해봤다'는 건 결국 별로 소용 없는 일이었다. 후배는 내가 아니고, 그 관계가 나의 경험과는 다르게 전개될지 누가 안단 말인가? 그래, 이게 바로 꼰대짓이구나. 내 경험에 비추어 미리 다른 이의 경험을 재단하려는 마음. 후배는 앞으로 마음을 크게 다치게 될지도 모르지만, 그것 또한 자기 선택이고 인간은 자신이 선택한 경험을 통해 가장 많이 배운다.

나는 언젠가 들었던 얘기를 떠올렸다. 경북에 있는 어느 숙소에서의 일이다. 산속에 여러 채의 한옥을 정성들여 지어놓은 곳이었다. 안주인과 얘기를 나누다 보니 남편 얘기가 자주 나왔다. 남편이 집을 한 채 한 채 지을 때마다 얼마나 세심히 신경을 썼는지, 얼마나 부지런한지, 얼마나 보는 눈이 밝은지와 그 성품에 대해 탄복해 마지않는 것이었다. 부부 금슬이 참 좋구나 싶었다. 다음 날 그 남편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흰머리가 성성한 곱슬머리는 살짝 긴 듯하고 몸이 깡마른 그분은 조선시대 학자 아무개의 후손이라더니 꼼꼼한 선비 같은 인상에 목소리는 높고 카랑카랑했다. 얘기 끝에 그분은 뜬금없이 이렇게 말했다.

"우리 부부는 삼십년 넘게 같이 살면서 부부싸움을 한 번도 안 했습니더. 비결이 뭔지 압니꺼?"

내가 물음표를 담은 눈으로 쳐다보자 그분은 특유의 새된 목소리로 말했다.

"충고를 안 해야 돼. 입이 근질근질해 죽겠어도, 충고를 안 해야 되는 거라예. 그런데 살다가 아, 이거는 내가 저 사람을 위해서, 다른 건 몰라도 이것만은 꼭 한 번은 얘기를 해줘야 되겠다... 싶을 때도, 충고를 안 해야 돼요."

살면서 많은 충고가 '이게 다 너를 위해서다'라는 마음으로 오가겠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충고일 뿐, 직접 겪어 얻는 깨침만큼 큰 것은 없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나는 여전히 오지랖 넓은 잔소리꾼이라 원성을 듣곤 한다. 그래, 그 숙소의 남자 사장님도 실은 내게 충고를 하면 안 된다는 충고를 해주었기 때문에 내가 그 말을 되새기고 있는 것 아닌가! 지금도 누군가는 누군가에게 "너를 위해서"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며 충고를 건넬 테고, 누군가는 그 말을 듣고도 한 걸음을 내디뎌 넘어지거나 새로운 곳에 가 닿거나 할 것이다.

* 이 글은 <월간에세이> 7월호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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