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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주보다 유해한 콘돔?

엄밀히 말하자면 콘돔은 애초에 청소년에게도 판매가 가능한 상품군이다. 다만 그중 일부 특수형 콘돔이 '신체를 훼손할 수도 있다'는 임상 결과도 없는 굉장히 애매한 근거를 기준으로 유해하다고 판단된 것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작 누구나 구매가능한 콘돔보다 명백하게 청소년유해약물로 지정되어 있는 주류에 대한 규제가 훨씬 덜한 실정이다.

  • 박진아
  • 입력 2016.08.03 13:46
  • 수정 2017.08.04 14:12
ⓒgettyimagesbank

주류는 각종 환각물질과 더불어 청소년유해약물로 분류되기 때문에 청소년보호법에 따라 비성인에게는 판매가 불가하다. 동법 하에는 사정지연형 콘돔, 돌출형 콘돔 등 일부 콘돔이 '청소년의 심신을 심각하게 손상시킬 우려가 있는 성 관련 물건'으로 평가되어 청소년유해물건으로 지정되어 있다. 같은 청소년보호법 하에 동일 선상에서 '청소년에게 유해하다'고 간주되는 이 두 가지 품목 중에서 한 쪽은 TV광고는 물론 비성인도 관람가능한 드라마/영화/예능프로그램 등에서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반면, 다른 한 쪽은 광고는 고사하고 인터넷에서 검색조차 자유로이 허용이 되지 않는다. 왜 유독 성(性)만 더 유해한 것으로 취급되는가?

콘돔과 소주, 그 접근성의 차이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콘돔을 검색해보자. 청소년에게 적합하지 않은 정보는 제외하였다거나, 그린인터넷 캠폐인의 차원에서 연령 확인된 사람에게만 정보를 제공한다는 문구가 검색창 하단에 뜨고 그 밑으로는 사전, 뉴스, 책 등 엄밀히 말하자면 실제 검색어와 그다지 연관성이 높지 않은 검색 결과만 보여진다. 어떤 종류의 콘돔이 존재하는지, 어디서 살 수 있는지, 콘돔은 어떻게 사용하는 것인지에 대한 정보조차 쉽게 찾아볼 수 없다.

반면에 소주를 검색하면 일단 연령대에 따른 정보 센서링이 전혀 없음에 한번 놀라고, 하단에 공개되는 정보에 대한 차원이 다른 개방성에 또 놀란다. 어떤 소주가 어떤 특징이 있고 어떤 사람들에게 어떤 브랜드가 어울리는지 추천해주는 잡지들의 칼럼 전문이 올라와있는가 하면, 각종 소주 제조사들의 공식 웹사이트와 이미지가 아무런 제한 없이 노출되어 있다.

비단 인터넷뿐이 아니다. 주류는 청소년에게 유해한 약물로 취급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TV광고에 큰 제한 없이 방송되고 있다. 주류광고에 대한 규제 강화가 매년 제기되고는 있지만 사실 논의만 될 뿐 노출 채널이나 연령에 대한 제한은 크게 존재하지 않는다(17도 이상의 주류나, 만 24세 이하의 유명인을 광고모델로 지정하는 것 등 사소한 지점에 대한 규제는 있다). 반면에 콘돔은 성인용품이라는 음지적 인식과 더불어 '의료기기'라는 품목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광고에 이중고를 겪는다. 신문/방송 등 대중매체 광고의 경우 방송통신위원회나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뿐만이 아니라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허가까지도 필요한 데다가, 아주 점잖은 정보만 제공하는 것이 아니면 애초에 의료기기광고심의위원회에서 허가를 잘 내주지도 않는다.

엄밀히 말하자면 콘돔은 애초에 청소년에게도 판매가 가능한 상품군이다(참고: '신분증 보여주세요'). 다만 그중 일부 특수형 콘돔이 '신체를 훼손할 수도 있다'는 임상 결과도 없는 굉장히 애매한 근거를 기준으로 유해하다고 판단된 것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작 누구나 구매가능한 콘돔보다 명백하게 청소년유해약물로 지정되어 있는 주류에 대한 규제가 훨씬 덜한 실정이다.

청소년보호법의 비논리, 그리고 '보호'

청소년보호법 하에서 '청소년유해업소(a.k.a. 청소년 출입·고용금지업소)'는 '청소년유해매체물 및 청소년유해약물 등을 제작생산유통하는 영업 등 청소년의 출입과 고용이 청소년에게 유해하다고 인정되는 영업'을 포함한다(청소년보호법 제1장제2조제5항가목). 그러니 말하자면 주류와 담배, 특수형 콘돔을 판매하고 있는 편의점이나, 드럭스토어나, 약국이나, 대형마트는 청소년유해업소일 수도 있다는 건가?

청소년 보호법 시행령

제5조(청소년 출입ㆍ고용금지업소의 범위)

④ 법 제2조제5호가목9)에서 "청소년의 출입과 고용이 청소년에게 유해하다고 인정되는 영업으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기준"이란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것을 말한다.

1. 영업의 형태나 목적이 주로 성인을 대상으로 한 술ㆍ노래ㆍ춤의 제공 등 유흥접객행위가 이루어지는 영업일 것

2. 주로 성인용의 매체물을 유통하는 영업일 것

3. 청소년유해매체물ㆍ청소년유해약물등을 제작ㆍ생산ㆍ유통하는 영업 중 청소년의 출입ㆍ고용이 청소년의 심신발달에 장애를 초래할 우려가 있는 영업일 것

여기서 청소년 보호법 시행령이 추가되는데, 도대체 청소년보호위원회가 '청소년의 심신발달에 장애를 초래할 우려가 있는 영업'이라고 판단하는 기준이 무엇일까? 돌기가 조금 오돌토돌하게 났다는 이유로 '청소년의 신체를 훼손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하는 위원회가 왜 청소년이 소주/맥주 등 청소년유해약물로 지정되어 있는 주류를 판매하는 편의점에서 일하는 것에 대해서는 이토록 관대한가? '심신발달에 장애를 초래할 우려'가 있는지 없는지는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엄밀히 말하자면 내가 운영하는 evecondoms.com이라는 사이트는 그 어느 측면에서 봐도 청소년에게 유해할 수 있다고 판단될 만한 부분이 없다. 성인용품은 물론 특수콘돔조차 판매하지 않고, 일말의 사행성 정보도 포함하지 않으며 오히려 콘돔구매에 어려움을 겪는 청소년들에게 매달 무료로 콘돔을 보내주는 소셜 프로젝트를 운영하고 성인들의 지식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정보만을 주기적으로 게재하고 있다.

그러나 '콘돔'이라는 키워드 자체가 성인키워드로 이미 모든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분류되어 있기 때문에 그 적합성이나 유용성, 윤리성과 무관하게 일반적인 검색광고로부터 배제되는 것은 물론, '옐로아이디'와 같이 스타트업이나 사업체들이 흔히 사용하는 플랫폼에서조차 칼같이 거절당한다. 사유는 단순히 다루는 제품이 콘돔이기 때문이었고, 성인용품이 아니라고 법을 들이대봤자 내규상 그렇게 정해져 있다는 말 외에 다른 변명은 없었다. 이해는 된다. 일일이 구분해서 관리하기 힘들 수밖에. 그러나 그게 면죄부가 되진 않는다.

인터넷 환경은 법에 근거하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청소년보호위원회의 20년도 더 된 일부 콘돔에 대한 규제가 더 핵심적인 문제이다. 콘돔에 대한 접근성을 규제할 일말의 법적 근거가 없어야 온오프라인에서의 건강한 생태계가 가능해진다. 청소년의 심신발달에 장애를 초래하는 것이 걱정된다면 사실 콘돔보다는 사행성 광고의 노출을 더 규제해야할 것이고, 건강한 성에 대한 정보를 막을 것이 아니라 더욱 더 근본적으로 성(性) 인식에 큰 해를 입히는 성차별적 콘텐츠나 반동성애 선동물이나 각종 혐오스러운 작태를 '취향'으로 둔갑시키는 포르노사이트들을 규제해야 할 것이다. 청소년보호법은 추상성이 있을지언정 타당한 면도 있다. 그러나 콘돔에 대한 유해성의 주장만큼은 근거도 없고, 득도 없다.

유해성의 평가는 법이 아닌 문화를 기반으로 한다

소주와 콘돔은 둘 다 청소년 보호법에 의거하여 청소년 유해물건으로 지정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가 속해있는 이 사회는 전자에 대해 굉장히 관대한 반면, 후자에 대해서는 의아하리만큼 융통성이 없다. 주류가 무수히 많은 폭력과 살인의 이유로 역할하고 있음이 수많은 사례를 통해 방증되었음에도 검색결과에 대한 규제가 없는 반면, 콘돔은 고작 일부만이 유해물건으로 지정되어 있다는 이유로 해당 키워드 자체가 규제의 대상이 된다. 동일한 '유해약물/물건'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문화가 두 재화에 대해 가지는 포용력이 상이하기 때문에 전자의 존재는 양지에 있는 반면에 후자는 음지를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법적으로는 비성인이 구매가능한 콘돔이라 할지라도, 현실에의 적용은 그렇지 않다. 편의점/대형마트에서는 신분증을 요구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고, 일부 콘돔에 대한 규제가 비용의 절감, 행정적 편의를 위해 콘돔 전체에 대한 규제로 이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인터넷 검색에 크게 의존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있어서 이는 '콘돔은 성인용품이며 선정적이다'라는 인식을 줄 수 밖에 없다. 혹시라도 '신체를 훼손'할 가능성이 일말이라도 있는 제품(비록 이 부분이 임상적으로 설명되지 않았다해도)을 원천 봉쉐함에서 오는 득보다, 콘돔에 대한 접근성과 인식을 전연령대에 걸쳐 부정적으로 고정시키는 것에서 오는 실이 훨씬 더 크다.

성에 대해 보수를 넘어 부정적이기까지 한 문화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는 청소년유해물에 대한 상이한 규제와 관리. 무엇이 진짜 청소년을 '보호'하는 것인지, 무엇이 더 현명한 선택인지 모두가 재고해볼 필요가 있는 시점이다.

* 이 글은 비건 콘돔 브랜드 'EVE condoms' 블로그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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