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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견법 폐기가 답이다

간접고용 노동자들끼리도 합법 파견과 불법 파견을 나누고, 파견과 용역을 나누고 파견과 위장도급을 나누면서 분열하고 있다. 본질인 파견, 그러한 파견을 허용하는 파견법을 문제삼기보다는 지엽적인 문제로 다름을 확인하는 데에 치중하고 있다. 다름이 강조되면 단결은 어려워진다. 쪼개져 외로이 남게 된 노동자들은 문제의 본질을 잘못된 제도에서 찾기 보다는 무능력, 게으름에서 찾게 될 가능성이 높다.

스크린도어 수리 업무를 하는 노동자들을 만났다. 1~4호선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하청업체 소속으로 일을 하고, 5~8호선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도시철도공사에 직접 고용되어 일을 하는데 공교롭게도 1~4호선과 5~8호선이 교차하는 어느 지하철역에서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들과 도시철도공사 소속 정규직 노동자들을 한꺼번에 면담했다. 2시간 남짓한 만남은 아주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자정이 넘은 시각, 지하철이 다니지 않는 승강장과 선로에서 그들 모두 스크린도어 점검 업무를 하고 있었다. 같은 업무를 하고 있었지만 직접 고용과 간접 고용이 얼마나 큰 차이를 낳는지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다. 그것은 법적 지위의 차이를 뛰어넘는 것이었다. 노동조건, 근무환경의 차이만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것이었다.

첫 대면에서 확인할 수 있는 건 복장이었다. 그들 모두 작업복과 안전모, 안전조끼를 착용하고 있었지만 한눈에도 새 것과 낡은 것, 재질이 좋은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차이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 다음에 들어온 것은 표정이었다. 정규직 노동자들은 웃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하청업체 노동자들은 놀라울 정도로 무표정했다. 정규직 노동자들은 부담 없이 적극적으로 질문에 답해주었지만 하청업체 노동자들은 줄곧 긴장했다. 정규직 노동자들이 열 마디를 할 때 하청업체 노동자들은 침묵하거나 한두 마디 할 뿐이었다. 정규직 노동자들은 사소한 불만까지도 이야기를 한 반면 하청업체 노동자들은 그러지 않았다. 그래도 물어 확인한 몇 가지 사실이 있다. 정규직 노동자들은 작업 중에 열차가 운행하지 않도록 도시철도공사의 관제와 직접 소통했지만 하청업체 노동자들은 직접 소통하지 못하고 반드시 하청업체를 경유해야 했다. 정규직 노동자들은 출동하기 전까지 대기할 수 있는 공간이 있었지만 하청업체 노동자들에게는 그런 공간이 없었다. 바삐 움직이다 보니 쉴 틈이 없기도 했지만 그들에게 휴게공간은 움직이는 지하철 안이거나 승강장이었다. 역무실에서 잠시 쉴 수도 있었지만 그들에게 역무실은 남의 공간이었고, 갑의 공간이었고, 게으르게 인식될까 봐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공간이었다.

하청업체를 통해 간접고용된 노동자가 작업 중 사고로 사망한 구의역. ⓒ구의역 스크린도어 9-4 승강장 페이스북 페이지

정규직 노동자들은 자신의 삶에 자신감이 있어 보였다. 일을 하는 동안 승강장과 철로는 그들의 것이었다. 그들은 적극적으로 자기의 권리를 알았고 표현하기도 했다. 그러나 하청업체 노동자들은 그러지 않았다. 그들은 스스로를 기계처럼 여기는 것 같았다. 철저하게 "을"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듯했다. 남의 공간에 잠시 들른 것처럼 조심했다. 그들은 말도 안되게 열악하고 위험한 환경에서 일을 하면서도 자기의 권리를 말하지 않았다. 아니, 권리에 대한 기대가 없어 보였다. 끝으로 그들은 대부분 2~30대 남성이었다.

간접고용 형태로 일하는 청년들이 많아졌음을 체감한다. 통계로도 확인되는 사실이다. 이러한 점은 우리 사회에 얼마나 널리 간접고용이 퍼졌는지 확인할 수 있는 단초가 된다. 왜냐하면 통계상으로는 연령대별로 볼 때 30대에서 정규직 비율이 가장 높고, 여성보다는 남성이 정규직 비율이 높기 때문이다. 정규직 비율이 가장 높아야 할 계층에서 간접고용 비율이 높다는 것은 다른 계층은 더 열악하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간접고용의 확산 속도에 비해 사회의 반응은 무디다. 종종 언론에서 이 문제를 다루기도 하고 노동계에서는 오랫동안 이야기해 왔던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간접고용 노동자들마저 자신이 겪고 있는 모순과 고통을 개인이나 일부의 문제로 치부하기 십상이다. 그 이유는 간접고용이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간접고용의 유형은 부지기수다. 하청, 아웃소싱, 위탁, 파견, 도급, 용역이 대표적이지만 어떤 유형인지 애매한 경우도 있고 파견 내에서도 다시 합법 파견과 불법 파견을 나누기도 하며 정규직인지 비정규직인지 당사자조차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1~4호선 스크린도어 노동자는 스스로를 하청업체에 직접 고용된 정규직으로 인식할 수도 있다. 그러나 다양한 명칭과 형태에도 불구하고 간접고용에는 공통점이 있다. 형식도 명칭도 다양하지만 근로관계가 2자 관계(사용자 - 노동자)가 아니라 3자 관계(사용사업주-파견사업주-노동자, 원청업체-하청업체-노동자)라는 것이다.

이러한 전제 하에 간접고용은, 노동자가 자신의 노동조건에 대해 아무런 결정권한을 행사하지 못한다는 점, 근로계약을 체결한 자(하청업체, 파견업체 등)와 실제 노동력을 제공받는 자(원청, 사용사업주 등)가 다르다는 점, 노동력을 받는 자와 근로계약을 체결한 자는 갑을관계에 있다는 점, 근로계약의 당사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노동력을 제공받는 자가 노동자의 노동조건을 사실상 결정한다는 점, 근로계약을 체결한 자는 노동력 공급의 대가로 중간에서 이익을 취한다는 점에서 공통된다. 그 과정에서 노동자는 거래의 객체로 전락하게 되는데 이 모든 특징은 파견(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사업주에게 파견업체가 대가를 받고 노동자를 공급하는 행위)으로 귀결된다. 요컨대 파견은 간접고용의 한 유형으로 분류되지만 결과적으로 모든 간접고용은 파견인 셈이다.

이 점을 강조하고 싶은 이유가 있다. 파견은 원래 금지된 행위였다. 1967년에 제정된 직업안정법은 노동조합을 제외한 그 누구도 근로자공급사업("공급계약에 따라 근로자를 타인에게 사용하게 하는 사업")을 하지 못하도록 했고, 근로기준법은 "영리로 다른 사람의 취업에 개입하거나 중간인으로서 이익을 취득"하는 행위, 이른바 중간 착취를 금지하였다. 그런데 1998년에 파견법이 제정되면서 파견이 허용되었다. 파견이 합법화되면서 간접고용이라는 예외적이고 비정상적인 고용관계가 우리 삶 속에 파고들었다. 명칭도, 형태도 달랐지만 모든 간접고용은 파견이라는 점에서 결국 파견의 합법화는 간접고용의 허용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접고용 노동자들끼리도 합법 파견과 불법 파견을 나누고, 파견과 용역을 나누고 파견과 위장도급을 나누면서 분열하고 있다. 본질인 파견, 그러한 파견을 허용하는 파견법을 문제삼기보다는 지엽적인 문제로 다름을 확인하는 데에 치중하고 있다. 다름이 강조되면 단결은 어려워진다. 쪼개져 외로이 남게 된 노동자들은 문제의 본질을 잘못된 제도에서 찾기 보다는 무능력, 게으름에서 찾게 될 가능성이 높다.

노동은 상품이 아니다(필라델피아 선언). 인간은 거래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자리 창출이라는 확인되지 않은 명제를 들먹이며 기업과 정부는 노동력이 상품이 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더 강도 높게 파견의 허용 범위를 넓히려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노동이 상품이 아니라는 당연한 원칙을 재확인하는 것이다. 불법 파견인지 합법 파견인지를 확인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모든 파견이 인신매매다. 파견법의 폐지만이 유일한 해법이다.

(2016. 7. 5.자 주간경향 기고글)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견법의 폐지를 주장하는 목소리는 찾기 힘들다. 법 폐지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지 않겠냐는 현실론도 있지만 간접고용 노동자들 중에는 파견법 덕분에 유리하게 주장할 수 있는 노동자들도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제조업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그러하다. 제조업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원청을 상대로 근로관계를 주장하는 소송을 많이 진행한다. 그들의 무기가 되는 법률은 파견법이다. 그들은 원청이 파견법을 위반했다는 점을 근거로 소송을 해오고 있고, 소송은 이제 가장 중요한 싸움의 방식이 되었다. 그러나 제조업 사내하청이 문제되는 것은 원청이 법을 위반해서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원청이 파견을 활용했다는 데에 있다. 그러니까 '불법' 파견이어서가 아니라 불법 '파견'이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파견법에 기대어 원청의 법 위반만을 문제 삼는 방식으로 접근하게 되면 결국 언젠가는 같은 논리로 당할 것이다. 지금은 제조업이 파견금지업종이지만 정부는 뿌리산업 활성화, 일자리 창출 등의 명목으로 제조업에도 파견이 가능하게끔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다. 제조업이 합법화되면 '불법'을 주장하는 싸움은 힘을 잃게 된다. 마찬가지로 '불법' 파견을 강조하게 되면, 합법적으로 파견이 이루어지고 있는 32개업종, 197개 직종의 노동자들은 고용관계의 부당함을 주장할 수 없다. 파견 자체를 문제 삼으면서 파견법의 폐지를 이야기 할 때 모든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권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모든 노동자들이 진짜 사장에게 사용자 책임을 물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파견법은 가짜 사장을 허용하고 진짜 사장에게는 사용자 책임을 묻지 못하게 한다. '쓴 사람이 책임진다'는 직접 고용의 원칙은 헌법과 노동법의 가장 오래되고 중요한 원칙이다. 그러나 파견은 이를 가로막고 있다. 파견법을 폐지해야만 간접고용의 근거가 사라진다.

2016 파견노동포럼 포스터.

글_윤지영 변호사

* 이 글은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블로그에도 게제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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