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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 화상경마장과 부담스러운 생선회

용산 화상경마장반대 모임의 주장은 뭘까? 한마디로 '나는 경마가 싫고, 경마장이 우리 동네에 들어오는 게 싫다'는 주장이다. 구체적으로 경마는 도박이고, 도박장이 가까이 있으면 도박중독의 위험이 커지며, 자라나는 새싹이 도박에 물들 수 있고, 도박장에 드나드는 사람들로 인해 범죄 발생위험이 높아진다고 주장한다. 화상경마장을 개장해야겠다는 마사회의 입장은 뭘까? 논리적이다. 첫째, 법적으로 문제없다는 것이다. 학교보건법에서 정한 200m 밖에 있고, 정부의 승인과 건축허가를 받은 건물이다. 개장 못 할 이유가 없다. 둘째, 시범 운영한 결과, 운영결과가 부정적이지 않았다.

  • 최현우
  • 입력 2016.07.19 07:09
  • 수정 2017.07.20 14:12

생선회 좋아하시는지 모르겠다. 육회는? 아내는 둘 다 좋아한다. 최고의 음식으로 꼽는다. 개는 즐기시는가? 나는 개고기도 싫지만 생선회, 육회는 더욱 싫다. 사회생활 하다 보면 싫어도 횟집 가고, 육회 식당도 간다. 회 먹지 않는 나를 상대가 불편해할까 봐 먹는 척은 한다. 내 식성이 별나니 이런 상황쯤은 견뎌낸다. 정작 어려운 것은 내게 강권하는 사람들이다. 아내가 가장 심하다.

"왜 이 맛있는 회를 안 먹어? 정말 이상하네? 먹어봐! 맛있다니까!"

이렇게 강권해도 먹지 않으면 포기해야 하는데, 별나고 맛있는 회를 만나면 또 참을 수 없는 모양이다.

"이건 정말 맛있어! 비린내도 안 나! 먹어봐!"

먹어 봤다. 맛없다. 회에 관한 한 아내는 나를 이해 못 하고, 나는 나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을 이해하지 못한다. 도대체 이런 음식을 왜 먹는지 모르겠다. 남의 생살을 먹으면서 맛있다는 걸 나는 이해할 수 없다. 육회와 자신의 오른 팔뚝 살이 뭐가 다른가? 내 생각이 그렇다.

"너희들도 해봐! 재밌어!"

경마시행체인 한국마사회 직원이 반대시위 하는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했단다. 용산 화상경마장개장반대 모임이 발표한 내용이다. 글쎄, 경마하는 분들에겐 경마가 재미있을 수도 있겠다. 나도 정말 재밌다. 이 말을 들은 여고생은 생선회 먹어보라는 소릴 듣는 내 심정일 것 같다. 벌써 3년째다. 반대 주민들은 1,252일째 화상경마장 앞에서 투쟁하고 있다. 천막 노숙 투쟁만 902일째다. 용산 화상경마장 개장을 두고 마사회는 문제없다고 밀어붙이고, 교육계와 주민들로 구성된 반대 모임은 문제 있다고, 절대로 안 된다고 막고 있다. 용산 화상경마장 개장.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관심 없다고? 그럼, 이 글 안 읽어도 된다. 재미없는 글이다.

<사진 출처: 연합뉴스>

용산 화상경마장은 - 법적으로 마권 '장외발매소'다. 쉽게 말해서 경마장이 아닌 곳에서 돈 걸고 베팅할 수 있는 곳이다 - 2001년 용산역 근처에 개장했다. 이 장외발매소를 2013년 10월 용산전자랜드 쪽으로 이전해서 성심여중고와 250미터 떨어진 신축 건물에 이사하면서 갈등이 생겼다. 왜 옮겼냐고? 마사회가 매출 늘리고 싶어서다. 마사회 매출 - 매출이란 경마하는 사람들이 거는 돈의 총합이다 - 의 70%가 경마장이 아니라 장외발매소에서 생기는데, 기존 용산 장외발매소는 사람이 많아서 비좁았기 때문이다. 마사회는 2013년 10월 1,190억 원을 들여서 지상 18층, 지하 7층의 건물을 신축했다. 농축산부 승인도 받고, 용산구청 건축허가도 받았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2013년 5월 용산구 주민들이 신축해서 개장한다는 걸 알아버린 것이다. 주변 학교장과 주민들은 즉각 반대운동을 시작했다. 워낙 심하게 반대하니 개장할 방도가 없었다. 개장은 무기 연기 되었다. 문제는 2013년 12월, 마사회 수장이 바뀌면서 생겼다. 새로운 회장은 거두절미하고 다음 해 6월 28일에 개장해버렸다. 개장하겠다는 측과 못한다는 측이 격렬하게 대립했고, 몸싸움과 폭력, 고소고발이 난무했다. 서울시, 서울시 교육청, 서울시 의회, 용산구, 용산구 의회, 국회 농수산위원회, 국가권익위원회, 34개 용산 초중고 교장단, 학부모 대표의 반대성명이 잇따랐다. 반대 모임의 저항이 워낙 강경하니 마사회도 다시 한발 물러섰다. 석달간 시범운영을 해보고 정말 문제가 있으면 폐쇄하겠다고 했다. 반대모임이 동의하지 않았지만, 마사회는 3개월간 시범운영을 한 다음, 부정적 요인은 크지 않다는 판단을 내리고 다시 정식으로 개장해 버렸다. 그 결과, 오늘도 용산역 뒤편 화상경마장에는 학부모와 학생이 펼침막을 들고, 폐쇄 투쟁을 벌이고 있다. 이게 대강의 용산 화상경마장 사태의 경과다.

용산 화상경마장반대 모임의 주장은 뭘까? 한마디로 '나는 경마가 싫고, 경마장이 우리 동네에 들어오는 게 싫다'는 주장이다. 내 판단이 그렇다. 싫다는 내용을 학습권 침해, 생활환경 악화라는 고상한 구호로 표현했다. 구체적으로 경마는 도박이고, 도박장이 가까이 있으면 도박중독의 위험이 커지며, 자라나는 새싹이 도박에 물들 수 있고, 도박장에 드나드는 사람들로 인해 범죄 발생위험이 높아진다고 주장한다. 여러분은 이 주장에 공감하는가? 나는 공감한다. 싫으면 그뿐이다. 설명이 길어지면 설명에 대한 증거와 증명을 요구하게 되고, 본질과 어긋난 논박이 이어진다.

화상경마장을 개장해야겠다는 마사회의 입장은 뭘까? 논리적이다. 첫째, 법적으로 문제없다는 것이다. 학교보건법에서 정한 200m 밖에 있고, 정부의 승인과 건축허가를 받은 건물이다. 개장 못 할 이유가 없다. 둘째, 시범 운영한 결과, 운영결과가 부정적이지 않았다. 점수로 4.1점이었다. 오해할 수도 있겠다. 5점 척도가 아니라 9점 척도다. 통상 사용하는 5점 척도였다면 2점이 나왔을 것이다. (왜 9점 척도를 사용했을까?) 어쨌든 이 점수로 마사회는 '부정적인 요인이 크지 않다'고 결론을 내렸다. 셋째, 경마가 세수에 기여하는 부분이 매우 크다. 경마가 국가에 기여하는 것도 있다. 넷째, 용산지역과의 상생을 위해 발전기금, 장학금, 기부금, 문화생활지원 등으로 5억 4천만 원을 내놓고, 46명을 고용하여 상생에 앞장설 것이다. 용산주민에게도 좋다. 다섯째 일부 경마를 즐기는 분들의 주장인데, '경마를 도박 측면에서만 보지 말라. 경마는 레저스포츠다. 외국에는 장외발매소가 학교 바로 앞에도 있고, 편의점에서도 경마 베팅할 수 있다. 99%의 국민, 니 들이 경마에 대해 좀 열린 시각으로 봐라.' 대략 이런 것들이다.

경마가 레저스포츠인가, 아닌가 하는 인식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겠다. 적어도 일반에게는 경마가 도박이다. 법적으로 카지노·복권·경륜·경정과 함께 사행산업으로 분류하고 있고, 사행산업 감독위원회의 규제를 받고 있다. 법체계상으로 도박이다. 일반 시민의 정서로는 어떨까? 시민단체가 조사한 결과를 보면 84.9%가 경마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가지고 있고 도박으로 생각한다. 레저스포츠라 주장하는 사람은 영국, 일본, 홍콩에서는 학교 앞, 편의점에도 경마할 수 있다고 하지만, 그건 그 나라 이야기다. 그 나라에는 왕이 있다. 일본, 영국에 왕이 있다고, 우리나라도 새롭게 왕을 둘 수는 없다. 도박에 대해서는 나라마다 시각이 다르다. 유럽이나 일본, 홍콩 등은 도박에 대해 매우 관대한 편이다. 개인의 자유로운 의사결정과 책임에 맡긴다. 반대로 이슬람국가, 공산국가, 유교적 전통이 강한 국가에서는 도박을 엄격하게 규제한다. 우리나라는 엄격하게 규제하는 나라다. 한국에서 살려면 한국의 문화에 따라야 한다. "경마가 레저스포츠라면 과천경마장에 가서 즐겨라. 장외발매소는 도박장 아니냐? 레저스포츠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동네에 지어라. 경마도박장이 우리 동네에 들어오는 건 싫다." 이 말에 반박할 수 있는가?

세금 1조 2천억을 내서 국가재정에 기여한다는 것은 이유가 될까? 1조 2천억, 마사회가 내는 게 아니다. 경마하는 사람들 베팅하는 금액에서 뗀 것이다. 정확히는 베팅하는 금액에서 27%를 떼서 마사회도 쓰고, 세금도 내는 것이다. 경마하는 사람들, 일반적으로 고소득층이 아니다. 오히려 형편 어려운 사람들이 많다. 이런 사람들에게 경마라는 수단으로 세금을 더 걷는 것이, 더 많은 사람이 경마하도록 해서 세금을 더 걷는 것이 바람직한가? 그러니 용산주민들은 싫어도 참으라고 할 만한 이유가 되는가?

용산지역과의 상생을 위해 발전기금, 장학금, 기부금, 문화생활지원 내놓고 46명을 고용하니 용산주민에게도 좋다는 주장은 논할 가치가 없다. 용산주민은 그래도 싫단다. 상대가 싫다는데 당신에게 좋은 거라는 주장은 사람을 무시하는 행동이다. 용산주민을 정상적인 판단이 곤란한 행위무능력자 취급하는 것이다. 발전기금, 장학금, 기부금, 교양강좌. 시민교육은 문제의 본질에서 벗어난 이야기다. 마사회는 자선전문 단체가 아니다. 이런 활동은 경마사업을 잘하기 위한 부수적인 활동이다. 본질은 경마사업을 더 잘하겠다는 것이다.

마사회는 학교 주변 200m라는 법을 어기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법의 취지는 학교의 교육환경을 보호하자는 취지이고, 200m는 필요하다는 뜻이다. 경마장이 들어서도 교육환경은 나빠지지 않는다고 주장한다면 다시 경마가 레저스포츠인가 부분을 읽기 바란다. 대한민국 사람들은 그렇게 알고 있다.

마사회는 시범운영 결과 큰 문제가 없다고 주장한다. 설문조사 전문가들은 안다. 9점 척도를 사용했다는 건 이미 문제가 있다는 걸 스스로 인정한 것이다. 문제가 없다 하더라도 개장의 명분은 되지 않는다. 문제가 없으면 개장해도 되는 시설인가? 주민이 싫다는 데도? 주민이 싫다면, 싫어도 해야 하는 이유를 대야 한다. 화상경마장이 필요한 시설이라는 걸 증명해야 한다. 생선회 싫어하는 사람에게 생선회를 먹이려면, 맛있다고 주장하지 말고 맛이 없어도 먹어야 하는 이유를 대야 한다.

주민들은 혐오시설이란다. 혐오시설이라도 필요한 시설이면 지어야 한다. 화장장이나, 논란은 있지만, 원자력 발전소는 국가적으로 필요한 시설이다. 국가 경제와 국민을 위해 어디엔가는 지어야 한다. 화상경마장은 화장장이 아니다. 국가 경제적으로 필요한 시설이 아니다. 반대활동에 대해 지역이기주의라 욕하는 사람이 없다는 게 그 증거다.

더욱 본질적인 질문은 이것이다. 한국마사회는 공기업이다. 공공의 목적 달성을 위해 설립한 기관이다. 마사회가 달성해야 할 목적은 짐작건대 세수확보를 통한 재정수요 충족이다. 도심에 화상경마장이 생기면 도박에 대한 접근성이 높아진다. 접근성이 높을수록 도박중독자 발생확률은 높아진다. 연구를 통해 검증된 사실이다. '도박중독이 증가할 위험이 있고, 주민이 반대함에도, 세금을 더 거두기 위해 화상경마장을 열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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