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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경상 지역 평양냉면 명가 7곳에 직접 가봤다(사진)

  • 박수진
  • 입력 2016.07.14 08:18
  • 수정 2016.07.14 08:21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식도락 여행자이기도 했던 시인 백석의 마음이 이러했을까? 홀로 떠나는 평양냉면 여행은 쓸쓸함과 가벼운 흥분을 동반한다. 면의 목넘김이 어색하다는 둥, 육수의 맛이 얄팍하다는 둥 수다 떨 친구가 없어 외롭긴 하지만 평양냉면 명가에 대한 기대감으로 혀는 달아오른다. 서울 평양냉면 명가도 울고 갈 지역의 명가를 찾아 남쪽으로 길을 떠났다. 지난 7일 서울역, 기차에 몸을 실었다. 비가 온다는 예보는 빗나갔고 태양은 세상을 집어삼킬 태세였다. 이가 시리도록 시원한 평양냉면 한 젓가락이 미치도록 그리운 날이었다.

역사가 40년이 넘는 평양냉면 명가는 주로 충청도와 경상도에 남아 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주영하 교수는 “메밀의 주산지와 한국전쟁 당시 포로 수용소나 피난민 수용소가 있었던 곳과 일치”한다고 말한다. 농촌진흥청 자료에 따르면 1975년의 메밀 주산지는 강원, 경북, 충북이었다. 강원도는 막국수가 지역 강자로 나서면서 평양냉면을 밀어냈다. 비옥한 전라도는 척박한 땅의 대표 작물인 메밀을 재배할 필요가 없었다. 포로 수용소가 있었던 부산은 평양냉면보다 20~30% 싼 밀면이 대세로 자리잡아갔다.

지역 명가의 가장 큰 특징은 창업자의 고향이 북쪽이고, 자손들이 가업으로 이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대전 ‘숯골원냉면’ 창업자 박근성(91)씨의 고향은 평양이다. 대구의 ‘부산안면옥’도 평양에서 내려온 이들이 열었다. 대전의 ‘사리원면옥’과 ‘원미면옥’의 창업주 김흥수(작고)씨와 이정삼(작고)씨는 황해도 출신이다. 한국전쟁 전후로 남쪽으로 내려온 이들에게 평양냉면은 그리운 고향이었으며, 이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끈끈한 동아줄이었다. 이런 정서는 남한 사람들의 평양냉면에 대한 폭발적인 애정과 결합되면서 가업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1. 대전 신성동 ’숯골원냉면’ 꿩냉면

가장 먼저 찾은 곳은 박근성씨의 아들 박영흥(54)씨가 운영하고 있는 대전 신성동의 ‘숯골원냉면’. 물냉면과 꿩냉면, 두 가지 메뉴가 눈에 들어왔다. 물냉면의 1.5배 양인 꿩냉면은 여행객을 놀란 토끼눈으로 만들었다. 고명으로 올라간 달걀지단 때문이다. 지단은 삶은 달걀보다 손이 많이 가서 쓰는 식당이 드물다. 굵은 국수 면발 같은 지단은 보드라운 메밀 면과 엮여 앞서거니 뒤서거니 입안에서 놀았다. 물냉면은 닭고기 우린 육수와 동치미 국물이 적당히 섞여 약간 새콤한 맛이 나는데, 평양냉면의 매력에 조금씩 빠져들기 시작한 이에게 어울릴 법하다. 꿩고기로 육수를 낸 꿩냉면에는 동치미 국물이 거의 들어가지 않아 담백한 편이다. 평소 스스로를 ‘냉면교도’라 지칭하며 자부심에 ‘쩐’ 이들에게 제격이다. 박영흥씨의 누이 박영자씨가 운영하는 갑동의 숯골원냉면에는 꿩냉면이 없다.

2. 대전 대흥동 ’사리원면옥’

숯골원냉면과 함께 대전 평양냉면계의 양대 산맥으로 꼽히는 대흥동 ‘사리원면옥’에 앉았다. 65년 역사를 가진 이 집은 ‘진육수’를 만든다. 쇠고기 사태와 양지를 삶은 다음 고기를 건져내고 더 끓여 만든 진육수에 물과 동치미 국물을 섞어 최종 육수를 완성한다. 식초, 간장 등의 양념이 조금 더 들어간다. 매니저 송기봉씨는 “이것들의 최종 배율이 비법”이라고 말했다. 배, 삶은 달걀, 오이, 쇠고기 등의 고명은 각자의 개성이 잘 살아 있어 면 특유의 툭툭 끊기는 질감을 살린다.

3. 대전 비룡동 ’원미면옥’

대전 비룡동의 ‘원미면옥’에선 면이 사라진 듯한 물냉면을 만났다. 수십 가닥의 달걀지단과 쭉쭉 찢은 닭고기가 면을 덮어버렸다. 앞의 두 집보다는 ‘분식점 냉면’에 가까웠지만 맛이 매콤해 신기했다. 면 위에 올라간 이 집만의 비결인 고추장 양념이 요술을 부렸다.

4. 대구 공평동 ’부산안면옥’

한낮의 열기가 겨우 가신 밤 9시. 대구 공평동의 ‘부산안면옥’을 찾았다. 여수, 부산 등지에서 영업하다가 1969년 대구에 터를 잡은 이 집은 고풍스러웠다. 부친의 업을 이은 주인 방문진(48)씨가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한우로 육수를 내는데, 올해 한우가 40% 올라서 걱정이다. 3대가 단골로 오기에 맛이 달라지면 바로 타박한다. 원가가 올라도 재료를 바꿀 수가 없다.” 스페인의 유명한 요리사 페란 아드리아의 레스토랑 ‘엘부이’(6개월만 영업하는 것으로 유명했던 레스토랑)도 아닌데 이 집은 겨울에 문을 닫는다. 방씨는 “서울과 달리 겨울에는 손님이 거의 없다”고 했다.

5. 대구 계산동 ’대동면옥’

겨울에 문 닫는 대구의 명가는 또 있다. 계산동의 ‘대동면옥’이다. 서울의 ‘우래옥’처럼 육수에서 진한 육향이 났다. 태백산 한우가 재료다. 옆 식탁의 비빔냉면 먹는 이를 관찰하다 요상한 점을 발견했다. 면이 다르다. 통상 식당들은 경제적인 면과 편리성 때문에 물냉면과 비빔냉면이 다른 음식인데도 같은 면을 쓴다. 이곳은 달랐다. 비빔냉면은 전분 100%로 만들어 주방에서 삶을 때부터 색이 달랐다.

대구 명가들은 ‘냉면 계보학 놀이’를 하기도 좋다. 대동면옥 창업주는 부산안면옥 창업주인 방씨 부친의 외삼촌이었다. 사정이 생겨 대동면옥 주인이 여러 번 바뀌었고, 지금 주인은 이은경(48)씨다. 두 식당 주인에게 서울에 입성해도 경쟁력 있겠다고 하자 같은 답이 돌아왔다. “냉면은 섬세한 음식이라서 여러 곳에서 운영하면 맛이 변한다.”

6. 경주 노동동 ’평양냉면’

남쪽으로 더 내려가면 경주 노동동의 ‘평양냉면’이 있다. 60년 넘은 가게 풍경은 옛날 세트장 같지만 맛은 요즘 젊은이들에게 맞췄다. 얼음이 잔뜩 올라가고 새콤달콤하다.

7. 영주 풍기읍 ’서부냉면’

마지막 여행지는 경북 영주시 풍기읍의 ‘서부냉면’이었다. 평양냉면 순례지로 손에 꼽힌다. 고명이 너무 달아 아쉬움이 남지만 메밀을 직접 빻아 면을 만드는 정성이 녹아 있다. 주인 명연옥(54)씨는 “시어머니는 메밀 농사를 지어 직접 빻아 면을 만드셨다. 제분소에 맡기면 시어머니의 맛이 안 난다”고 했다. 이북이 고향인 시어머니 김숙인(작고)씨가 지금도 그는 그립다.

이틀간 평양냉면의 향연에 푹 빠졌다. 9그릇 이상을 비웠다. 백석은 옳았다! ‘아, 이 반가운 것은 무엇인가/ 이 히수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슴슴한 것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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