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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슬란드 개헌은 시민들의 D.I.Y.

아이슬란드에서 오는 10월 치러질 총선을 앞두고 현재 해적당이 지지율 1위를 달리는 가운데, 해적당의 공약 가운데 주목을 끄는 것은 '헌법위원회가 제안한 개헌안 계승'이 있습니다. 지난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시민들의 강력한 요구로 꾸려진 아이슬란드의 헌법위원회가 내놓은 개헌안은 우여곡절 끝에 폐기되었는데요, 해적당은 폐기된 개헌안을 재추진하겠다고 밝힌 것이죠. 놀라운 점은 이 개헌안이 정치인이나 법조인이 아닌 평범한 시민들의 참여로 만든 'D.I.Y. 헌법'이라는 사실입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을까요?

  • 와글(WAGL)
  • 입력 2016.07.13 10:27
  • 수정 2017.07.14 14:12

2010년 11월, 헌법 개정 논의를 위해 '전국 포럼(the National Forum)'에 모인 아이슬란드 시민들. ©Sigtryggur Ari Jóhannsson

아이슬란드에서 오는 10월 치러질 총선을 앞두고 현재 해적당이 지지율 1위를 달리는 가운데, 해적당의 공약 가운데 주목을 끄는 것은 '헌법위원회가 제안한 개헌안 계승'이 있습니다. 지난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시민들의 강력한 요구로 꾸려진 아이슬란드의 헌법위원회가 내놓은 개헌안은 우여곡절 끝에 폐기되었는데요, 해적당은 폐기된 개헌안을 재추진하겠다고 밝힌 것이죠.

놀라운 점은 이 개헌안이 정치인이나 법조인이 아닌 평범한 시민들의 참여로 만든 'D.I.Y. 헌법'이라는 사실입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을까요?

시민들의 강력한 한 가지 요구 -  "정치를 개혁하라"

아이슬란드는 지난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의 여파로 엄청난 양의 외화가 빠져나가면서 심각한 경제 위기를 겪게 됩니다. 한때 국민소득 세계 5위를 자랑했던 아이슬란드는 순식간에 국가부도 직전까지 갔다가,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으로 간신히 부도를 모면합니다. 하지만 국민소득과 화폐가치가 뚝 떨어지고 실업률과 물가는 치솟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2009년 12월 아이슬란드 시민들이 주방용품을 들고 거리로 나와 시위를 벌이고 있다. ©Wikimedia

지난주 해적당 관련 소식을 전하면서 소개했던 것처럼, 당시 아이슬란드 수도 레이캬비크에서는 주민의 10%에 달하는 시민 1만 여명이 국회로 몰려들어 대규모 시위를 벌였습니다. 계속되는 시위로 2009년 1월 총리가 사퇴하고 이듬해 조기 총선이 치러지면서 집권당이었던 보수 성향의 독립당(Independence Party)이 참패하고 사회민주동맹(Social Democratic Alliance)이 이끄는 새로운 내각이 들어섭니다.

새로운 정부가 들어섰음에도 시민들의 시위는 계속되었습니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경제위기 책임자를 처벌하라는 요구를 넘어서서, '정치개혁을 위한 개헌'을 추진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합니다. 더 이상 정치인들에게만 정치를 맡겨선 안 된다고, 시민들이 일상적으로 정치적 의사결정 과정에 직접 참여할 수 있도록 국가 구조를 바꾸기를 원했습니다.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결과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2008년 경제위기를 통해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입니다.

아이슬란드, 세계 최초 크라우드소싱 헌법 제정?

개헌안을 추진한 요한나 시귀르다르도티르 전 아이슬란드 총리. 그는 자신이 성소수자임을 커밍아웃한 최초의 정치지도자다. ©Wikimedia

사회민주동맹 소속으로 첫 여성 총리에 오른 요한나 시귀르다르도티르(Jóhanna Sigurðardóttir) 역시 이러한 시민들의 열망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이에 따라 새롭게 들어선 아이슬란드 정부는 개헌을 추진하기로 결정했고, 개헌 추진 과정에서 시민들의 참여가 단순 여론조사에 그치지 않게 하기 위해 여러가지 장치를 고안했습니다.

그 결과 2010년 초 아이슬란드에서는 세계 최초로 크라우드소싱(Crowd-sourcing) 방식의 개헌이 추진됩니다. 크라우드소싱이란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목표를 달성하는 작업 방식을 가리킵니다.

처음에는 시민사회 주도로 참여형 개헌이 추진되었습니다. 수도 레이캬비크에는 다양한 풀뿌리단체가 '개미집(Anthill)'이라는 이름으로 모여 개헌을 위한 '국민회의(National Assembly)'를 구성하고, 이 국민회의가 성별, 지역, 연령, 활동분야를 안배해 1500명의 위원을 위촉했습니다. 이 국민회의는 운영비 모금, 의안 선정, 회의, 문건 도출 등을 통해 실질적인 개헌 추진 집행기구로 기능했습니다.

이에 큰 영향을 받은 아이슬란드 정부는 각계각층을 대표하는 시민들이 국가의 구조와 운영 방식을 결정하는 새 헌법에 대해 의견을 낼 수 있도록 국민회의의 형태를 본따 '전국 포럼(the National Forum)'을 개최했습니다. 이 전국 포럼에는 인구비례에 맞게 남녀노소, 다양한 직업과 계층의 시민 950명이 모여 6개의 중요한 의제를 다루었습니다. 이 포럼에 참석한 시민들은 8명씩 모둠을 이루어 전문적인 회의진행자의 도움으로 하루 종일 자신이 바라는 아이슬란드의 미래에 대해 열띤 토론을 진행했죠.

아이슬란드의 크라우드소싱 방식 개헌안 추진 과정을 나타낸 다이어그램 ©Participedia

전국포럼에서 논의된 내용은 보고서로 작성되었는데, 여기에는 천연자원 공영화와 국가 재정 관리의 정치적 독립성 확보와 같은 중요한 내용은 물론, 기성 정당에 유리한 선거구제 개편과 대통령 및 장관의 권한을 제한하는 정치개혁안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이러한 내용들은 최종적으로 마련된 헌법 초안에 반영되었고, 국민투표까지 통과했습니다. 이제 국회의 최종 표결만 거치면 세계 최초로 정치인만이 아닌, 시민들의 폭넓은 의견수렴을 통한 크라우드소싱 방식으로 탄생한 헌법이 제정되려는 순간이었습니다.

국민투표는 통과, 의회에서는 부결?

그러나 2010년부터 2012년까지 3년에 걸쳐 진행된 이 헌법 개정은 결국 무산되고 맙니다. 첫 번째 장애물은 대법원의 개헌 회의(Constitutional Assembly) 선거 무효 판결이었습니다. 개헌안을 작성할 개헌 회의 대의원 선거가 2010년 열렸는데, 이 선거의 투표소와 투표용지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선거 자체가 무효라는 판결이 내려진 겁니다. 판결을 내린 대법원은 이전 정권에서 임명된 대법관이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었죠.

결국 의회는 판결 한 달 후에 새로 대의원 후보를 지명해 통과시켰고, 우여곡절 끝에 구성된 헌법회의는 같은 해 7월 정치구조 개혁안을 포함한 헌법 초안을 내놓습니다. 이 초안은 의회 표결에 앞서 국민투표에 부쳐졌고, 개헌안에 관한 질문 6개로 이루어진 국민투표에서 아이슬란드 시민 다수가 찬성표를 던졌습니다.

2009년 1월 사임한 아이슬란드의 게이르 하르데 전 총리. 장기집권해온 독립당 소속이었던 그는 경제위기를 초래한 책임으로 사퇴했으나 2년 전 미국 대사로 지명되었다. ©Wikimedia

개헌안의 최종 의회 표결을 앞두고 나타난 두 번째 장애물은 야당이 된 기성 정치세력의 방해였습니다. 특히 그 동안 권력을 독점하다시피 해온 보수 성향의 독립당은 정치적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개헌안이 통과되지 못하도록 집요한 방해공작을 벌였습니다. 독립당은 2012년 말 국회에서의 개헌안 최종 표결을 앞두고 회의 참석을 거부하는 방법으로 개헌안 표결을 다음 총선 이후로 연기시켰습니다.

그리고 2013년 새로 치러진 총선 결과 개헌을 추진했던 사회민주동맹이 패배하고 기성 정치세력인 독립당과 진보당이 1당으로 복귀합니다. 이들은 개헌안에 대한 표결을 거부함으로써 개헌안을 사실상 폐기시킵니다.

새로운 나라를 원하는 열망은 부메랑처럼 돌아왔다

차기 총리로 거론되는 아이슬란드 해적당 소속 비르기타 욘스도티르 의원은 언론인터뷰를 통해 아이슬란드의 헌법개정 과정을 이렇게 평가했습니다.

차기 총리로 거론되는 해적당 소속 비르기타 욘스도티르 의원. ©Wikimedia

"헌법개정이 실패한 건, 추진 과정이 충분히 빠르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중략)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시간의 창(time window)'은 오래가지 않습니다. 아주 금방 왔다가 사라지죠. 시간이 많다고 생각하지 말고, 항상 준비해야 합니다."

- 비르기타 욘스도티르(아이슬란드 해적당 대표), Interview with Change Rotterdam, 2014. 12. 5.

단순히 많은 사람들을 모으기만 하는 것으로는 부족하고, 더 빨리 더 많은 참여 에너지를 조직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비르기타의 생각이었습니다. 헌법개정이 불투명해진 시점인 2012년 연말, 비르기타는 헌법 개정뿐만 아니라 정책 결정과 집행 역시 시민들의 일상적인 참여로 만들고자 해적당을 창당했습니다.

독립당-보수당 연정이 연이어 실정하고, 이에 더해 경제위기 책임자인 하르데 전 총리를 미국 대사로 지명하는 사건까지 벌어지자 아이슬란드 시민들은 크게 실망하고 정치혁신을 표방하는 해적당에 큰 지지를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2016년 6월 현재, 아이슬란드 해적당은 지지율 1위를 기록하면서 넉달 뒤 치러질 총선에서 집권이 유력해지고 있습니다. 시민참여 크라우드소싱 방식을 거쳐 탄생한 개헌안의 표결 통과 역시 '파란불'이 켜졌습니다.

아이슬란드의 시민참여 개헌안이 시사하는 바는 명확합니다. 기득권 정치세력의 방해로 잠시 수면 아래로 가라앉을 수는 있어도, 변화를 원하는 시민들의 바람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특히 기성 정당을 대체할 믿음직하고 새로운 정치세력이 나타난다면 시민들의 열망은 물 만난 물고기처럼 폭발한다는 점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만약 아이슬란드에서 'D.I.Y. 헌법안'이 진짜 헌법으로 제정된다면, 다른 나라라고 못할 일도 없겠죠. 아이슬란드를 시초로 머지않아 모든 나라에서 국가의 근본적인 틀을 결정하는 헌법을 제정할 때는 반드시 시민들이 직접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될 지도 모를 일입니다.

* 이 글은 정치 스타트업 와글주간 뉴스레터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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