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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남자들은 '성희롱 단톡방'이 '출구 없는 고통'처럼 여겨진다고 말한다

ⓒMBN

서울 소재 사립대 경영학과에 다니는 민아무개(23)씨에게 남자 동기들의 ‘단톡방’(단체 카카오톡 대화방)은 ‘출구 없는 고통’이다. 머물자니 불편하고, 나가자니 눈치가 보이는 상황 때문에 5년째 묶여 있다.

민씨가 속한 남자 동기 단톡방은 대학 입학 때 한 학번 위 남자 선배의 주도로 만들어졌다. 그 선배는 단톡방에서 ‘누가 예쁘냐’, ‘○○는 어떻더라’는 식으로 여자 동기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분위기를 주도했다. 동기 몇 명이 호응을 했고, 단톡방은 곧 여자 동기들에 대한 품평과 성희롱성 발언으로 얼룩졌다. 민씨는 단톡방에서 오가는 대화가 불편했다. “‘내가 이상한 건가?’‘내 사회성에 문제가 있나?’ 무척 고민했어요. 다른 애들은 다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것 같은데 나만 괴로운 것 같아서….” ‘오프라인’은 단톡방의 연장선이었다. 남자들만 모인 술자리에서도 여자 동기들 이야기가 이어졌고 민씨가 대화를 피하면 ‘××’라는 놀림으로 이어졌다. 술자리에 안 나가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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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씨는 “나중에 친구들과 얘기해보니 그런 분위기가 불편하고 싫다는 애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민씨를 포함해 단톡방에서 나가는 이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단톡방에 들어와 있다는 것이 ‘멤버십’의 의미”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대학원생 곽아무개(28)씨는 “단톡방에 있느냐 있지 않느냐로 동아리 회원이냐 아니냐가 구분된다. 방에서 나간다는 건 집단에서의 탈퇴나 관계의 단절처럼 여겨진다”고 말했다. 군에 입대하며 자연스럽게 단톡방에서 탈출했던 민씨는 복학 뒤 다시 그 방에 ‘초대’받았다. 그는 “단톡방을 통해 학교생활이나 학과에 대한 정보도 공유되기 때문에 나가기가 더 어렵다”고 말했다.

여성 비하나 성희롱을 통해 ‘남성간의 유대감’을 확인하려는 그릇된 문화는 남성 주류사회에 뿌리 깊다. 그런데 이런 행위들이 단톡방에서 이뤄지면서 이에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들조차 24시간 내내 현장에 함께 있는 꼴이 됐다.

단톡방에서 나가기를 포기한 사람들은 대개 ‘침묵’을 택한다. 수도권의 한 공대에 다니는 이아무개(23)씨는 “한 친구가 (여혐 발언에 대해) ‘그건 좀 아니다’라고 바른말을 했다가 ‘꼰대’라 불리게 됐다”며 “대다수는 (불편한 얘길 들어도) 가만히 있는다. 공범도 배신자도 될 수 없으니, 가만히 있으면서 중간은 가자는 생각”이라고 얘기했다. 하지만 최근 고려대, 서울대의 ‘단톡방 사건’이 알려지면서 이씨는 “같은 방에 있던 것만으로도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고, 단톡방 내용이 알려질까 하는 두려움이 커졌다”며 “요즘에는 ‘자제하자’는 이야기를 좀 더 자연스럽게 할 수 있다”고 전했다.

권인숙 명지대 교수는 “현재의 남성문화에서 침묵하는 다수에게 도덕적인 잣대만을 들이대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침묵하고 방관하는 것만으로도 자신이 공범이 될 수 있다는 현실적인 면을 알아야 한다”며 “단톡방에서 나갈 수 없다면 자신이 불편하거나 옳지 못하다고 느끼는 것에 대해서는 힘들더라도 이야기하는 것이 자신을 보호하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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