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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드와 '박쥐의 각오'

한국은 선택할 수 없는 상황, 혹은 선택하지 않으려 하는 상황(미국과의 군사동맹을 유지하면서도 중국을 적대하지 않는 것)인데도 중국도 미국도 이제는 한국에 선택을 요구하고 있다. 최종 선택까지 어느 정도의 시간이 남았는지는 모르겠지만 한국은 이번 THAAD 결정에도 불구하고 당분간 필사적인 '박쥐의 각오'를 바탕으로 생존을 위해 몸부림칠 것이다. 그 몸부림이 어쩔 수 없는 우리나라의 길이라는 것이 괴롭다. 역사를 공부하면서 그런 선택에 몰린 조상들의 결정을 음미하면서도 그들이 얼마나 고뇌했을지는 한번도 공감하지 못했다. 이제는 알 것 같다.

  • 김병륜
  • 입력 2016.07.12 11:34
  • 수정 2017.07.13 14:12
ⓒU.S. Missile Defense Agency/Flickr

THAAD로 시끄럽지만 결국 본질은 미국이냐, 중국이냐로 환원된다.

2000년대 이래 현재까지 한국 외교전략의 핵심 기본 기조는 '박쥐의 각오'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한국은 심지어 이 '박쥐의 각오'를 공개적으로 천명하기까지 했다. 대표적 문구는 2006년 1월 19일자 한미 양국의 공동성명이다.

이 공동성명 (아래 원문)의 두번째 문장은 "전략적 유연성의 이해에 있어 미국은 한국이 한국민의 의지와 관계없이 동북아지역분쟁에 개입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한국의 입장을 존중한다"고 되어 있다.

The ROK, as an ally, fully understands the rationale for the transformation of the U.S. global military strategy, and respects the necessity for strategic flexibility of the U.S. forces in the ROK. In the implementation of strategic flexibility, the U.S. respects the ROK position that it shall not be involved in a regional conflict in Northeast Asia against the will of the Korean people.

한국이 관련될 수 있는 동북아지역분쟁은 남북간의 충돌, 한일간의 충돌, 미중간의 충돌 등 세가지 유형이 존재할 수 있다. 남북간의 무력충돌에서 미국이 한국을 도와주는 것이 한미동맹이므로 성명에서 지칭하는 것은 이 사례가 아니다. 한일간의 무력충돌에서 미국이 중재를 할 가능성은 높지만 한국만을 군사적으로 단독 지원할 가능성은 전혀 없다.

결국 이 성명에서 지칭하는 동북아지역분쟁은 미중간의 충돌을 의미한다. 결국 미중간의 충돌에 한국이 원하지 않는 한 한국은 그 충돌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다시 한번 요약하면 2006년 성명의 의미는 한미군사동맹은 기본적으로 북한을 대상으로 한 동맹이며, 그 외 미중간의 대결구도에서 한미동맹은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밝힌 것이다.

달리 표현하자면 한국이 필요할 때는 미국이 도와주어야 하지만, 동북아에서 미국이 한국을 필요로 할 때는 한국의 의사에 따라 한국은 미국을 도와주지 않을 수도 있음을 공개적으로 천명한 것이다. 그래서 이 성명이야말로 한국의 핵심 외교전략인 '박쥐의 각오'를 가장 적나라하고도 분명하게 밝힌 문장이라고 간주할 수 있다.

이 같은 박쥐의 각오는 2006년 이후 한국 정권의 교체에 상관없이, 그리고 In the implementation of strategic flexibility 라는 전제에 상관 없이 현재까지 지속적으로 이어져 오고 있다. 그 박쥐의 각오는 천안문광장에서 열린 열병식에 한국 대통령이 참석한 것에서 보듯이 현 정부에서도 큰 틀에서는 변함이 없다.

한국은 남중국해 해양분쟁에 대해 단 한번도 미국이 원하는 수준의 입장을 표명하지 않았다. 한국은 해외에서 미국 주도로 호주, 일본, 인도 등이 참여하는 대중국 연합훈련에 단 한번도 참가하지 않았다. 한국군과 주한미군은 북한이 아닌 중국 등을 대상으로 하는 연합훈련을 실시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북한 미사일 방어를 위한 미일 주도의 해상훈련에도 한국은 MD 참여로 오해 받을까봐 참가하지 않고 있다. 한미군사동맹은 오로지 북한을 대상으로만 작동하며, 중국을 대상으로 한 작동 여부는 2006년 성명의 유효 여부에 상관없이 여전히 "the will of the Korean people"에 달려 있는 것이 한미군사동맹의 적나라한 실체다.

-주한미군이 북한으로부터 대한민국을 방어하는 범위를 넘어서서 유사시 한반도 내 기지를 유지하면서 제3국 군대와 직접 교전하는 것을 허용할 것인가? 현재 X

-한국군 자체 무기로 미국의 MD 체계에 편입할 것인가? 현재 X

-중국에 대항하는 성격의 미국 주도 다국적 연합연습에 적극적으로 주도적으로 참여할 수 있나? 현재 X

-한국 외교부가 동남아 해양관할권 및 도서 영유권 분쟁에서 중국의 입장을 비판하는 공식 입장을 내놓을 수 있을 것인가? 현재 X

-한국군 해외파병부대가 대민지원에 올인하지 않고, 실제 전투영역에서 미군과 같이 싸울 수 있을 것인가? 현재 X

-주한미군의 THAAD 배치를 용인할 것인가? 이제 O

한국은 한미동맹과 관련한 무수한 사안을 놓고 미국에 대해 계속 NO라고 이야기했으며, 간만에 THAAD를 두고 Yes라고 답했다. THAAD는 한국을 방어하는 것이며, 동시에 주한미군을 방어하는 무기다. 주한미군을 주둔해 달라고 요구하면서, 주한미군이 스스로를 보호하는데 필요하다는 방어무기를 허용하지 않겠다는 건 논리가 궁색하다. THAAD 결정의 배경에는 그 같은 고민이 있었을지 모른다.

그 외 위에서 보듯이 심지어 한국은 중국과 관련이 없는 사안(베트남전 종료 후 전투임무를 위주로 한 해외파병)에서도 미국에 협조하지 않았다. 한국은 오로지 북한의 침략을 방어하는데 있어서 미국이 지원해주기를 바라고 있으며, 그 외 비전투임무를 위주로 한 해외파병에서만 미국을 지원하고 있다. 이런 상황을 감안하면 미국에서 한국을 놓고 Alliance or Reliance? 혹은 Is Korea a Reliable Ally? 라는 의문이 계속 제기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오늘날 미군은 극심한 국방예산과 병력 부족에 시달리고 있으며, 주한미군 전력을 유지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미국에도 상당한 부담이 되고 있다. 미 육군 현역의 여유 병력은 글로벌대응부대 및 지역대응부대 13.2만이 전부다. 한반도에 주한미군을 유지하는 것에 과거와 차원이 다른 압력을 느끼고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미국에 있어 한국은 이상적인 요충지가 아니라는 점이다. GPR을 기준으로 한국은 독일, 일본과 동급의 MOB(Main Operation Base)이다. 미국 영토를 제외하고 이보다 등급이 높은 지역은 영국(미국 본토와 마찬가지로 HUB로 간주)뿐이다. 하지만 이것은 한국에 미국이 주둔한 현실을 반영한 것일 뿐이다. 미국이 원하는 이상적인 요충지는 섬이어서 해·공군만으로 방어가 가능하면서도 대륙에 근접해 유사시 병력을 투사할 수 있는 일본과 영국 같은 곳이다.

한국처럼 지상군이 있어야만 방어할 수 있는 곳은 미국에게 이상적인 1급 요충지가 아니다. 바로 그 점 때문에 1949년 3월 미 국가안보회의(NSC)는 ▲한국 포기 ▲한국을 무조건 무력으로 지원 ▲제한된 조건 하에서 지원제공 등 세 가지 방책 중 세 번째 안을 NSC 8/2로 채택했다.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주한미군이 철수했고, 결국 북한에 의해 1950년 전쟁이 벌어졌다.

요충지로서 한반도가 지닌 제한요소에도 불구하고 한국도 경제적·군사적으로 상당한 국력을 가진 주요국가 중 하나다. 미국의 입장에서 이런 한국을 스스로 포기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미국의 입장에서 안보측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중국에 대한 대처다. 한미동맹이 북한을 대상으로만 작동하고, 중국을 대상으로 전혀 작동하지 않을 경우 Alliance or Reliance? 혹은 Is Korea a Reliable Ally?라는 의문은 언제인가 결국 다시 미국에서 제기될 것이다.

그 같은 의문이 한국이 가진 요충지로서의 한계(육지와 연속되어 상대적으로 육군전력이 약한 미군 전력구조에 부합하지 않는 2차적 성격의 요충지)와 결합될 경우 미국이 주한미군과 한미동맹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를 하는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

한때 장관 후보로도 거론되던 거물급 중국 안보 문제 전문가인 H교수를 만났을 때, 내가 물었다. "국내 중국 전문가들이 중국이 미래에 한국을 위협하는 상황을 전혀 가정하지 않는 것이 이상합니다." 그 분이 정색하며 대답했다. "그럴 일은 없을 거예요."

국제관계 전문가인 J대학 K교수를 만났을 때, "미국과 군사동맹 유지하면서 경제협력을 중심으로 하는 한중 전략적동반자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할까요. 언젠가는 선택의 순간으로 몰리지 않겠습니까 "라고 물었다. 그분이 말씀하셨다. "그건 마치 엄마가 좋아요?, 아빠가 좋아요?라고 묻는 것과 같아요. 한국은 미국과 군사동맹을 유지하면서 중국과의 경제협력관계에 바탕을 둔 동반자 관계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그런 병행관계가 안 된다는 것은 냉전적 사고방식이에요."

그분들이 큰소리친 지 8년, 4년도 되지 않아 그분들 전망에 더 이상 신뢰를 보낼 수 없게 된 것이 안타깝다. 중국에 대해서 지속적으로 모호한 태도를 유지하면서 동시에 안정적으로 한미동맹을 유지할 수 있을지, 그 경계선이 어디일지 장담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한미동맹은 전혀 문제가 없을 것이며, 충격을 흡수할 완충공간이 많다는 한국 일부의 생각은 착각이다. 그렇다고 미국이 원하는 방향으로만 가기가 쉽지 않다는 건 한국 정권 교체에 상관없이 '박쥐의 각오'가 지속되고 있다는 점 하나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렇다고 국제관계에서 좀처럼 신뢰를 보여주지 않고 있는 중국만을 선택하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더구나 중국은 청일전쟁 패전까지 조선의 독립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면서 미국 등 외국에 주재하는 조선 외교사절의 철수까지 요구했던 나라다.

한국은 선택할 수 없는 상황, 혹은 선택하지 않으려 하는 상황(미국과의 군사동맹을 유지하면서도 중국을 적대하지 않는 것)인데도 중국도 미국도 이제는 한국에 선택을 요구하고 있다. 최종 선택까지 어느 정도의 시간이 남았는지는 모르겠지만 한국은 이번 THAAD 결정에도 불구하고 당분간 필사적인 '박쥐의 각오'를 바탕으로 생존을 위해 몸부림칠 것이다. 그 몸부림이 어쩔 수 없는 우리나라의 길이라는 것이 괴롭다. 역사를 공부하면서 그런 선택에 몰린 조상들의 결정을 음미하면서도 그들이 얼마나 고뇌했을지는 한번도 공감하지 못했다. 이제는 알 것 같다. 역사에서 지겹도록 배웠던 약소국의 비애가 현실에서 반복되지 않게하는 것이 나의 비원(悲願)이다. 어느 날 선택해야만 하는 상황이 온다면 부디 우리가 올바른 길로 가기를...

이 글에서 한국이 미중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당하고 있다고 쓴 취지를 조금 더 보충설명하면 이렇다.

이 글은 단순히 한국이 <중국이냐, 미국이냐>의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는 취지가 아니다. 중국이 한국에 요구하는 것은 최소한 한미군사동맹이 대(對)중국적인 요소를 가지지 말라는 것이고, 반대로 미국 일부에서 적어도 대(對)중국 측면에서 한미동맹은 무의미한 것이 아닌가라는 의구심이 생겨나고 있다는 이야기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현재처럼 한미동맹에서 대(對)중국적 요소를 지속적으로 배제할 경우 한미군사동맹은 결국 균열이 올 수도 있다. 그렇다고 동맹에서 그런 요소를 강화할 경우에도 만만치 않은 국제정치적 부담을 질 수밖에 없다.

한국의 최종적 선택은 결국 미국과의 군사동맹을 유지하면서도 동맹에 대(對) 중국적 요소를 포함시키지 않는 정책을 계속 유지하느냐, 아니냐의 선택일 것이다. 우리가 끝내 대중국적 요소를 포함시키지 않는 정책으로 일관할 경우에도 한국의 의도와 달리 한미군사동맹도 사실상 형해화될 수 있기 때문에 한국의 의도와 상관없이 이 문제는 결국 선택의 문제로 귀결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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