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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날의 눈물 나는 아시아 선수 잔혹기, 이번에는...?

아스날이 시도한 아시아 선수의 영입은 모두 축구 내적으로는 실패로 끝이 났다. 이미 아스날을 다녀간 일본 국적의 선수들은 아사노와 비슷하거나 조금 더 어린 시기에 잠재력을 기대받아 첫 유럽 진출 팀으로 과감하게 아스날을 선택했다. 하지만 이것은 선수에게도, 팀에게도 독이 되고 말았다. 프랑스 리그에서의 좋은 활약을 바탕으로 많은 기대를 받고 아스날로 이적한 박주영도 끝내는 실패하고 말았다. 물론 아시아 시장의 개척이라는 측면에서 위 선수들의 영입을 통해 웃은 쪽은 아스날이 될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새로운 이적생, 아사노 타쿠마는 과연 아스날의 아시아 선수 잔혹기를 종결할 수 있을까?

  • 임형철
  • 입력 2016.07.08 13:50
  • 수정 2017.07.09 14:12

일찍이 아사노 타쿠마의 빅클럽행을 예견한 이는 많지 않았다. 2016 AFC 챔피언스리그 F조 조별예선 히로시마 원정에서 아사노에게 일격을 당한 FC서울 팬들도 예상하지 못한 건 마찬가지다. 아사노의 잠재력을 믿고 있던 일본 현지 팬들도 아사노의 유럽 진출 시작팀이 빅클럽일 거라고는 내다보지 않았다. 한 아시아 유망주의 빅클럽행 소식은 아스날 팬을 포함한 모두를 놀라게 하였다.

아사노의 영입을 통해 아스날은 잠재력 있는 선수를 손에 넣었다. 실제로 산프레체 히로시마에서 활약하던 아사노는 신체의 밸런스도 좋고, 발군의 스피드와 득점력을 지니고 있어 슈퍼서브로서 대단한 활약을 보여준 선수였다. 2015년에는 J리그 후기리그에서 98분당 1골을 터트린 놀라운 기록을 자랑하며 J리그 신인 선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2016 AFC U-23 챔피언십에서는 한국 축구팬들도 아사노의 무서움을 실감할 수 있었다. 2대 0, 일본을 상대로 잡은 신태용호의 리드를 2대 3으로 바꿔놓은 1등 공신이 아사노였다. 아스날이 즉시 전력감으로 쓰지는 못해도 이번 영입을 통해 또 한 번 일본 시장을 노려볼 수 있다는 것 역시 나쁘지만은 않은 사실이다.

하지만 시기가 시기인지라 이 영입에 좋은 반응이 따라오지는 않았다. 경쟁 팀들이 즐라탄, 바추아이 등 즉시 전력감 공격수를 영입하며 발 빠르게 움직이는 동안 아스날은 지구 반대편의 워크퍼밋도 발급되지 않는 어린 선수를 영입하는 데 그쳤기 때문이다. 공격수 영입을 서둘러야 할 타이밍에 당장 이번 시즌에 쓸 수도 없는 선수를 데려왔다는 사실에, 스타 영입을 기대했던 아스날 팬들은 격노했다. 이적 시기가 8월 중순쯤 됐더라면(미리 주전급 공격수를 영입한 상태였다면) 이 정도 반응은 아니었을 거 같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특히 아사노의 아스날행이 벌써 우려를 낳는 결정적인 이유는 그동안 아스날이 영입한 아시아 선수들이 모두 실패했기 때문이다.

◈ 이나모토 준이치(아스날 기록 : 4경기 출전) : 한국에서 해외축구가 대중화되기 전에 아스날에 진출했던 중앙 미드필더 이나모토 준이치는 국내 팬들에게도 익히 알려진 유명 선수다. 하지만 1999년 피파 청소년 월드컵, 2000년 시드니 올림픽, 2002 피파 한일 월드컵 등 그가 참가한 메이저 대회에서의 활약상이 주목받은 것은 아니다. 되려 한 시즌 동안 머물렀던 아스날에서의 실패기가 이나모토와 관련해 국내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이야기다.

1997년, 17세 6개월의 나이로 J리그 최연소 데뷔 기록을 새로 쓴 이나모토는 1개월 후 데뷔골을 터트리며 최연소 골 기록까지 갈아치웠다. 청소년 대표팀에서의 활약까지 이어지니 아스날이 그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아스날은 이나모토의 소속팀 감바 오사카에 임대 영입을 제의했고, 제의는 성사되어 이나모토는 아스날에 입성한 첫 아시아 선수가 됐다.

그러나 그는 아스날에서 4경기 출전에 그쳤다. 챔피언스리그 2경기, 리그컵 2경기가 전부였다. 꿈에 그리던 프리미어리그 데뷔는 이뤄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나모토의 영입으로 아스날은 일본 시장에서 상당한 재미를 봤다. 오죽하면 이나모토 유니폼을 판 돈으로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을 지었다는 우스갯소리가 들릴 정도니 말이다.

이후 그는 풀럼, WBA, 카디프, 갈라타사라이, 프랑크푸르트, 스타드렌에서 활약했다. 9년이라는 시간 동안 유럽에서 활약한 사실은 그가 틀림없이 재능이 뛰어난 선수였음을 증명해준다. 어쩌면 아직 유망주에 불과한 시기에 첫 유럽 진출을 아스날같은 빅클럽에서 시도한 것이 선수 본인에게는 무리한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

◈◈ 미야이치 료(아스날 기록 : 7경기 출전) : 100m를 10초 6대에 끊을 정도로 빠른 스포츠를 가진 윙 포워드 미야이치 료는 일본 고교 레벨에서 탑급 선수로 통했다. 그는 아스날과의 합동 훈련에 참여하면서 벵거 감독의 눈에 들었고, 2010년 여름에 아스날로 이적했다. 단, 워크퍼밋 문제로 바로 영국 무대에서 활약할 수 없었던 료는 바로 네덜란드 페예노르트로 임대됐다.

18세 1개월 23일의 나이로 일본인 역대 최연소 유럽리그 데뷔를 알린 료는 12경기 3골 5도움을 기록하며 네덜란드 리그에서 맹활약했다. 그의 빠른 스피드와 기술은 네덜란드 무대를 공략했다. 일본의 메시, 료나우딩요라는 별명이 자연스레 그를 따라다녔다. 하지만 스타 선수들이 즐비했던 아스날에 그의 자리는 없었다. 이후 볼튼, 위건으로 연달아 임대돼 활약했지만, 이 기간에 잦은 부상을 당하는 아픔까지 겹치며 성장세에 제동이 걸렸다. 아스날에서 7경기 출장에 그친 그는 2014-15 시즌 트벤테로 임대된 후, 임대가 끝나자 방출됐다.

2015년 6월, 장크트파울리로 이적한 료는 시즌 초반에 전방 십자인대 부상을 당해 장기 부상에 시달렸다. 우사미 타카시와 함께 일본에서 많은 기대를 받던 유망주였으나 애초 기대보다 성장하지 못한 듯해 아쉬움을 남기고 있다.

◈◈◈ 박주영(아스날 기록 : 7경기 1골) : 3년간 AS 모나코 주전 공격수로 활약한 박주영은 모나코가 강등되자 여러 이적설의 주인공이 됐다. 처음에는 같은 프랑스 무대의 경쟁 팀인 릴로의 이적이 유력해 보였으나 겨울 중 있을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으로 인한 샤막과 제르비뉴의 공백 + 반 페르시의 백업 자원을 신경 쓰던 벵거 감독의 선택을 받아 아스날로 이적했다. 국내 팬들의 반응은 모두가 아는 대로 매우 뜨거웠다.

이적 직후 한 달 동안 이렇다 할 기회를 잡지 못했으나 리그 컵 볼턴전에서 멋진 결승 골을 터트리며 찬사를 받았다. 박주영의 주전 경쟁에 청신호가 켜진 것이다. 그러나 곧이어 챔피언스리그 마르세유전에 출전해 부진한 활약을 보였고, 이후 출전 기회가 찾아오지 않았다. 설상가상 네이션스컵이 개막한 겨울에는 티에리 앙리가 임대되고, 체임벌린 등 새로 등장한 신예 선수들까지 가세하면서 박주영의 자리는 더욱 좁아졌다. 결국, 첫 시즌에 이렇다 할 활약을 보이지 못한 그는 영국 언론으로부터 존재감 없는 선수 20인 등에 선정될 만큼 굴욕적인 시즌을 마쳐야 했다.

런던 올림픽에서 한국을 3위에 올려놓은 활약을 펼친 후 셀타비고로 임대돼 스페인 무대에 진출했지만, 자신의 자리를 꿰차지 못했다. 결국, 부진한 후 돌아와 2013-14 시즌에는 아스날에서 반년 간 벤치에 머물렀다. 2014년 겨울 왓포드로 임대를 마치고 온 후 방출돼 아스날과 이별을 고했다.

(사진 : 아스날 fc)

그동안 아스날이 시도한 아시아 선수의 영입은 모두 축구 내적으로는 실패로 끝이 났다. 이미 아스날을 다녀간 일본 국적의 선수들은 아사노와 비슷하거나 조금 더 어린 시기에 잠재력을 기대받아 첫 유럽 진출 팀으로 과감하게 아스날을 선택했다. 하지만 이것은 선수에게도, 팀에게도 독이 되고 말았다. 프랑스 리그에서의 좋은 활약을 바탕으로 많은 기대를 받고 아스날로 이적한 박주영도 끝내는 실패하고 말았다. 물론 아시아 시장의 개척이라는 측면에서 위 선수들의 영입을 통해 웃은 쪽은 아스날이 될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새로운 이적생, 아사노 타쿠마는 과연 아스날의 아시아 선수 잔혹기를 종결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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