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혼자를 기르는 법'의 작가 김정연 인터뷰, '한국 20대 여성의 서사를 증명하고 싶었어요'

  • 박세회
  • 입력 2016.07.06 11:08
  • 수정 2017.07.07 14:12

서울역에서 숙대입구역 사이 남영동 건너편에 청파동이 있다. 이 청파동에 사는 20대의 웹툰 작가 김정연은 청파동에 사는 20대 여성 '이시다'의 이야기를 일주일에 서른 컷씩 그린다. 무한의 우주 속에서 코딱지만 한 지구, 지구란 세계 속에서 또 코딱지만 한 서울, 서울이란 도시에서 정말 먼지 같은 청파동 방 한 칸에 사는 '이시다'는 코딱지만 한 플라스틱 상자에 코딱지만 한 햄스터를 키우며 산다. 다음 웹툰에 '혼자를 기르는 법'으로 정식 데뷔한 지 6개월, 이제 고작 25화를 그렸다. 그러나 이 작은 이야기가 꽤 큰 파장을 만들어내고 있다. 몇몇 평을 모아보면 이렇다.

"서늘하고 차갑지만 읽고 나면 따뜻하다"

"그래 이 시니컬, 이 여유, 이 관조적 자세 그리고 묘하게 그로테스크하면서도 자유로운 느낌...이게 이 만화의 매력이야."

"작가님, 늘 멋졌지만 왠지 오늘 따라 제가 감당 못할 정도로 멋지시네요."

한국 20대 여성을 멋지게 풀어내고 있는 '혼자를 기르는 법'의 작가, 하필 금요일(연재일)이라 오전 9시까지 마감의 격무에 시달리다 4시간 밖에 자지 못한 상태의 작가 김정연을 경리단 길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왜 주인공 이름을 이시다로 했나요?

=대부분의 이름에는 '얘가 어떻게 컸으면 좋겠다'는 의식이 반영되어 있어요. 작명소든 친가 식구들이든 이름을 짓는다는 행위가 '기대'를 내포하죠. 제 이름은 '정연'인데 어딘가에 한자로 적을 일이 있거나 누군가가 그 뜻을 물어오면 순간적으로 죄책감 같은 걸 느껴요. 누군가는 '네가 이렇게 자라길 바란다'고 지어줬고 평생 대답하거나 뒤돌아봐야 하는 단어잖아요. 전 제가 그 바람에서 멀어지고 있다고 느끼거든요. 제 이름의 뜻이 맑고 곱다는 뜻인데 제가 그렇게 살고 있지 않다는 것을 스스로 잘 알고 있으니까.

이시다라는 이름 역시 매우 거창한 의미에서 지어진 거잖아요? 시다의 아빠는 "이분이 바로 장관님이시다"라고 말할 때의 '이시다'로 지었는데 만화에서 실상의 '시다'는 '시다바리'거든요. 그런 간극을 주고 싶었어요.

그런데, 작가가 곧 '이시다'는 아니죠?

=이시다는 가상의 인물이에요. 제 경험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들을 하고 있지만, 엄밀히 말하면 픽션이죠. 여러 설정으로 시다와 제 사이를 떨어뜨려 놓았어요. 저와 시다가 다르게 행동하기도 하고요.

헷갈리는 사람들도 있겠어요?

=극 중에서 시다는 안동에서 상경한 것으로 되어있는데 가끔 독자분들 중에 같은 안동 출신이라고 반가워하시는 분들이 계세요. 시다는 안동에서 살다가 독립해서 인테리어 회사에 다니고 있는 거로 나오지만 전 서울에서 태어나서 대학을 나와서 디자인 회사에 다녔어요.

꽤 오래전부터 김양수 작가의 '생활의 참견'이라든지 서나래 작가의 '낢이 사는 이야기' 등의 웹툰들이 '일상툰'이라는 장르로 소비되고 있지요. '혼자를 기르는 법'은 이 장르는 아닌 것 같군요.

=애매한 구석이 있어요. 전 그 말을 한 번도 사용해 본 적이 없는데, 일상툰이란 말이 소비되는 걸 보면 그저 누군가의 일상을 다루는 것뿐만이 아니라 작가의 실제 삶을 전제하고 있는 것처럼 쓰이는 것 같거든요. 그런 경우라면 제 만화는 일상툰의 범주에 들어가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왜 시다의 고향은 안동이고 직장은 인테리어 회사인가요?

=제가 주거환경에 대한 욕망이 좀 강한 편이라 인테리어나 삶의 질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하고 싶었어요. 집에서 독립하기 위해서 오랜 시간 준비를 했었고, 그 과정에서 참 많은 걸 봤어요. 당시에 제가 가진 돈으로 구할 수 있는 방들을 찾다 보니 정말 참담한 심정이 들기도 했죠.

='안동'이란 설정은 자식과 부모님 사이의 갈등을 소재로 한 모 예능 프로그램 때문에 나왔어요. 패널로 등장한 한 개그맨이 던진 질문이 있었는데 그게 가족 이데올로기를 유지하기 위해서 개인의 의사는 좀 무시되어도 되지 않냐는 식의 이야기였거든요. 그 개그맨이 '안동 김씨'였어요. '안동'이란 지역이 전통적이거나 가족 중심적인 지역적 편견의 대상이기도 해서, 가족과 물리적·정서적으로 분리 중인 시다의 고향으로 삼기에 적당하다고 생각했어요. 대부분 제가 만화에서 가지고 가는 설정들이 이런 식으로 정해져요.

그럼에도 시다와 공유하고 있는 '코어' 같은 게 있나요?

=이시다라는 인물, (시다의 친구인) '오해수'라는 인물도 아마 저의 일부라고 볼 수 있어요. 기본적으로는 대학 졸업 이후 제 삶에 대해서 느끼는 감정이 아마 제 주인공들이 가진 감정과 비슷할 거예요. 대학교 때는 빨리 졸업을 하고 필드에서 일을 좀 하고 싶었어요. 대학 시절에는 저 자신에 대해서 잘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 기대가 좀 있었거든요. 그런데 막상 나가보니 마음대로 안 되는 부분들이 많았고. 이것보단 나았어야 하지 않았을까, 란 생각이 많이 들었는데 이런 태도가 만화의 전반적인 정서나 캐릭터들에 반영됐어요.

만화에서 시다도 '실수'를 많이 하지요. 만화 전체를 관통하는 단어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모든 것들이 아주 작은 실수로 한꺼번에 무너지기도 하니까요.

언제쯤 이 작품을 왜 구상하게 되었나요?

=홍대에 있는 디자인 회사에서 편집 디자이너로 근무하다가 그만두면서 앞으로 뭐 해서 먹고 살지에 대한 고민이 많았어요. 밴드 '선결'의 김경모가 '한국에서 사는 20대 여성이 솔직해지는 것만으로도 만들어지는 서사가 있다'고 말했는데, 그 영향이 좀 컸죠. 그 말을 옳게 만들고 싶기도 했고. 그 이후에 네이버 '도전 만화' 코너에 연재하기 시작하면서 여러 플랫폼에서 섭외가 들어왔고요.

그중에서 '다음'을 선택했는데 가장 큰 이유가 뭐였나요?

=순전히 제 삶의 질을 생각한 선택이었어요. 다음은 시즌제로 운영할 수가 있거든요. 예를 들어 저는 20화를 하나의 시즌으로 하고 첫 시즌을 끝내고 한 달간 휴재했죠. 이것저것 처리할 게 많아서 실제로 쉬지는 못했지만요. (웃음)

몇몇 에피소드는 '이건 작가의 경험이 아니면 만들 수 없다'고 느꼈던 게 있어요. 예를 들면, 브래지어 철사가 고장 나서 '끼익 끼익' 소리가 나는데, 그게 마치 아빠와 오래전에 호수 위에 배를 띄워놓고 눈을 감고 누워 있었을 때 나던 노의 마찰음 같았다는 얘기 말이죠. 그런 것도 혹시 만든 건가요?

=브래지어 와이어는 실제 경험이 맞지만, 배를 탄 일은 만든 얘기에요.

설마 그럼 실내 낚시터에서 '선생님' 소리를 생전 처음 들어보는 에피소드도 만든 건가요?

=아! 그건 정말 낚시터에 가봤어요. 실내 낚시터에서 게임을 할 때 저를 '선생님'이라고 하더군요. 그런 호칭이 처음이라 충격이었어요. 생각해보니 어떤 공간이냐에 따라 호칭이 달라진다는 점도 흥미로웠고요.

시다가 기르는 햄스터는 어떤 장치인가요?

=사실 '윤발'(극 중 이름 '쥐윤발')은 제가 2년 반 정도 키웠던 실재하던 햄스터(에서 따온 이름)예요. 20대 무산자 여성이 개나 고양이처럼 정서적인 교감을 하지 못하는 '소동물'을 키우는 얘기를 해보자는 게 기본적인 만화의 시작점이었어요. 실제 햄스터를 키우면서 오히려 죄책감이랄까?, 그런 걸 많이 느꼈어요. 기쁨보다는 미안함을 많이 느꼈어요. 얘가 기분이 좋은지 안 좋은지를 알 방법이 없다 보니 아무리 잘 해주려고 해도 이게 최적의 생활환경인지를 알 수가 없었어요. 만화 시작 초기에는 윤발이를 서울에서 가장 유명한 쥐로 만들어 줘야겠다는 생각도 있었어요. 윤발이는 만화가 정식 플랫폼으로 자리를 옮길 때쯤 세상을 떠났어요.

윤발이의 이름이 만화가 꽤 진행된 다음에야 등장해요. 그래서 저는 처음에는 '혼자를 기르는 법'이 만화 제목이니까 이 햄스터의 이름은 '혼자'겠구나 라고 생각했거든요.

=아, 맞아요. 그렇게 예상하시던 분들이 많았어요.

근데 이름을 왜 '윤발'이라고 지었나요?

=그건 좋은 의미였어요. 만화에도 나오지만, 실제 햄스터의 삶은 아주 짧잖아요. 2년 반에서 길면 3년인데, 반짝하고 나타났다가 반짝하고 사라지는 삶인데, 주윤발은 필름으로 영원히 재생되는 사람이잖아요. 지금까지도 멋지고. 키우던 윤발이가 갑자기 떠날 때 정말 허무했어요. 곧 나도 이렇게 되겠구나. 어차피 망하고 어차피 다 죽는구나. 이게 제 기본적인 태도에요. 근데 만화에 나오는 마크 볼란, 데이비드 보위처럼 뭔가를 남기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윤발이를 그렇게 뭔가 남은 존재로 만들고 싶었고, 저도 그렇게 되고 싶은 욕망이 이 만화에 들어있어요.

윤발이에게서 많은 걸 느끼셨군요.

=제 모습을 본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플라스틱 상자 안에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윤발이가 뭘 원하는지는 아무도 파악해주지 않는? 그런 평행의 구조가 예고 편에서부터 나타나 있죠. 이건 엄청 사소하고 먼지 같은 존재들의 평행한 이야기예요.

그런데도 따뜻함이 느껴져요. 개인적으로 간을 정말 잘 조절하는 요리사, 또는 제대로 만든 티라미수 같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제대로 만든 티라미수는 달고, 짜고 마지막으로 꽤 쓰거든요. 가장 밑에 에스프레소가 깔리니까요.

=그렇게 의식한 적은 없지만, 작업하면서 가장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게 쓸데없는 걸 빼는 과정인데, 그래서 그렇게 느끼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작품의 형식도 한몫을 해요. 거의 모든 에피소드가 비슷한 흐름을 가지고 있죠.

=꽤 스트릭트한 형식을 나름대로 가지고 있어요. 한 화가 보통 6컷짜리 작은 에피소드 다섯 개로 이뤄져 있죠. 한 화마다 큰 테마를 정해놓고 첫 에피소드를 무조건 소동물과 관련한 이야기로 시작하죠. 각 에피소드의 분위기나 목적에 따라서 그 분배를 사전에 계획해 놓은 것도 사실입니다.

한 화의 구상은 언제 하나요?

=메모는 생활처럼 계속 축적해놓고 있고, 일주일에 한 번씩 그중에서 어떻게든 다섯 개를 뽑아서 꼬아 내는 거죠. 스토리는 보통 주말에 써요.

꽤 치밀하군요.

=사실 그림을 그리는 습관도 없었고, 만화를 많이 본 것도 아니었고, 20대 후반에 갑자기 만화가로 데뷔하게 된 경우기 때문에, 많은 규칙을 정해놓고 그 안에서 자유롭게 표현하는 게 제게 유리할 거로 생각했어요.

이 만화의 유머 코드 중 큰 부분이 '자조의 해학'이라고 생각해요. 그럼에도 시다의 자기애가 꽤 강하다는 점도 이 만화를 그냥 차갑기만 한 작품으로 놔두지 않는 요소 같아요.

=시다는 욕구가 분명한 인물이라고 생각해요. 이후에 나오겠지만, 주거환경에 대한 제 욕구가 커서 시다를 인테리어 회사에 취직시켰고, 시다라는 인물도 인테리어 쪽에 있으면서 어떤 게 아름답다고 생각하는지에 대한 취향을 확고히 드러내거든요. 물론 회사에서는 좋은 인테리어에 대해 열정적으로 얘기하면서도 집에 와보면 쓰레기가 가득하고 햄스터는 쳇바퀴를 돌리고 있지만, 욕구가 없어서 그렇게 사는 게 아니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공간에 대한 개인적인 경험들이 많이 드러나 있군요. 평생의 활동 반경이 작아 작은 집만 내어주어도 넓게 살 수 있다는 '피그미카멜레온'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죠.

=제가 워낙 작은 존재니까요. 개인적인 경험도 많이 투영됐어요. 집 알아볼 때 부동산을 끼고 여러 곳을 돌아다니잖아요? 그리고 내 돈으로 살 수 있는 집을 보게 되는데, 가슴이 으스러지는 경험을 했어요. 벽지가 다 뜯어져 있는 경우도 있었고, 대체 왜 그리 꽃무늬 벽지는 많은지. 지금 살고 있던 집도 꽃무늬 벽지였는데, 집주인에게 도배를 요구하고 양해를 구해서 직접 고른 벽지를 사용했어요.

시다가 골목에서 성추행 또는 성희롱을 당하는 에피소드가 있죠.

=실제 경험한 내용을 토대로 그린 에피소드였어요. 시다가 정확히 그 안에서 어떤 일을 당했는지에 대해 정확히 그리지 않은 이유는 그 안에서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었기 때문이에요.

이 장면에서 시작되는 여성의 삶에 대한 시다의 태도가 후반부의 큰 주제 중 하나죠. 퇴근 시간이 가까워지는데, 직장 상사가 '회식하자'는 소리에 시다가 노래방에 끌려가는 장면도 있죠.

=작디작은 무산자 여성으로서의 체념? 혹은 불행하지만, 그저 삶을 묵묵히 '수행'하는 태도에 가깝죠.

시점을 좀 정리하고 싶어요. 이 에피소드가 나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강남역 살인 사건이 터졌고 그 이후 댓글에서 전쟁이 일어났던 거로 알고 있어요. 무슨 생각이 들던가요?

=일단은, 여성으로 사는 삶, 여성으로서 느끼는 부당함에 대한 이슈를 다룰 때마다 댓글 창들의 성격이 눈에 띄게 변했어요. 의도했던 일입니다. 사실, 연재를 시작할 때부터 이런 이슈들에 대해 제 만화와 독자의 반응이 함께 읽힐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싸움이 있다면 좋은 거죠. 그래서 댓글이 있는 플랫폼에 가길 희망했던 거고요.

'이게 옳아'라고 주장하기보다는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고 싶었던 거군요.

=누군가는 이런 삶을 산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의도는 드러난다고 생각해요. 시다는 갈등을 극복해 내기보단 삶을 수행해 나가는 인물에 가까워요. 그래서 아까 말했던 것처럼 시나리오를 쓰고 나서 계속하는 작업이 뭔가를 빼고, 들어내는 작업이에요.

이 만화의 색에 관해서도 얘기하고 싶어요. 이게 정확한 검은 색은 아니잖아요?

=그렇죠. 먹색이 아닙니다. 출판까지 생각하고 별색 1도를 고른 건데, 사실 어렵게 골랐어요.

이 색이 묘한 게 어떻게 보면 적색 계열인 것 같고, 어떻게 보면 청색 계열인 것 같기도 하다는 점이에요.

=맞아요. 사실 색상 값을 정할 때 따뜻함과 차가움 그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은 색, 그런데도 먹색이 아닌 색을 찾았거든요.

이 색을 보고 어디선가 본 것 같다는 생각을 계속했거든요. 그런데 저희 기사에서 이 색을 찾았어요.

세상에서 가장 추악한 색으로 선정된 '팬톤컬러 448C'와 정말 놀라울 정도로 비슷하더군요. 세상에서 가장 추악한 색으로 만화를 그리는 작가에 선정된 소감은?

=말씀해주시기 전까진 몰랐는데 너무너무 영광입니다. 제가 좀 본능적으로 추악한 걸 찾아가는 재능을 타고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자부심을 느낍니다.

느낌이 생략된 치우치지 않는 가장 추한 색이라니, 만화의 소재 내지는 주제와도 잘 맞아 떨어지네요.

=게다가 기사를 보니 이 색이 '죽음,' '더러움,' '타르'로 묘사된다고 하는데 제 만화도 어차피 죽음, 더러움, 타르와 굉장히 밀접하기 때문에 만족합니다. 어차피 누가 물어보면 대답할만한 장르도 없었는데 이렇게 된 거 '타르툰' 같은 거로 불렸음 좋겠네요.

다음 웹툰으로 만화 보러 가기(클릭).

저작권자 © 허프포스트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관 검색어 클릭하면 연관된 모든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