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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 스프를 넣으면 끓는 온도가 정말 올라가나?

스프를 면보다 먼저 넣으면 라면이 더 맛있다는 속설이 있는데, 스프를 먼저 넣으면 끓는 온도가 5도 정도 올라가기 때문에 더 빨리 익어서 맛있다는 이유를 들이대기도 한다. 놀라운 것은 신문에까지 그렇게 나왔다는 것이다. 기사에 의하면 스프를 넣으면 물이 100도가 아닌 105도에서 끓는다고 한다. 5도나 올라간다면 결코 적은 온도차가 아니다. 정말로 실험을 해보거나 증거를 가지고 하는 이야기인지 의문이 생겼다. 짜디짠 바닷물도 끓는 온도가 겨우 100.6도인데 라면이 105도라? 뭐 그럴 수도 있다. 실제로 해보지 않고 어찌 옳다 그르다 단정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내가 대신 그 온도를 검증하고 싶었다.

  • 투페이즈
  • 입력 2016.07.05 08:29
  • 수정 2017.07.20 14:12

인간의 기술이 놀랄 만큼 발전했고 지식도 깊어졌지만,

아직도 너무나 모르는 분야가 많다.

그런데 사실 모르면서 아는 척하는 경우도 정말 많다.

검색해서 알게 된 것을 원래 알고 있던 것처럼 포장도 하고,

그냥 이리저리 그럴싸하게 논리를 붙여서 자신의 주장이나 느낌을 마치 진리인 것처럼 설명한다.

정성적인 차이를 정량적으로 과장하여 주장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과학기술뿐 아니라 취미 등 거의 전 분야에 대해서 만연해 있지만,

특히 건강이나 의학에 대해서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제일 많은 것 같다.

초보뿐만이 아니라 전문가 집단에서도 흔한 일이다.

잘못된 방법이나 의도한 방향으로 조사한 결과를 가지고 결론을 내리는 경우는 특히 통계 분야에서 빈번하다.

(게임과 난폭성의 연관성을 알기 위해 PC방에서 전기를 갑자기 끊어 버린 사례나 정치적인 설문조사 등...)

문제는 이러한 잘못된 정보나 지식을 증명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런데 마음만 먹으면 쉽게 알수 있는 Fact조차도 없는 이야기를 지어낸다.

오늘도 평소에 전혀 믿지 않던 현상에 대해서 실험을 해 보았다.

스프를 면보다 먼저 넣으면 라면이 더 맛있다는 속설이 있는데,

난 사실 이런 말은 전혀 믿지 않고 기분 탓이라고 생각하지만,

스프를 먼저 넣으면 끓는 온도가 5도 정도 올라가기 때문에 더 빨리 익어서 맛있다는 근거 없는 이유를 들이대기도 한다.

(얼마나 많이 전파되었는지 이젠 진리처럼 된 것 같다.)

그런데 스프를 먼저 넣어야먄 끓는 온도가 5도나 올라가는가?

면을 넣은 후에 스프를 넣으면 올라가지 않고?

정말 기가 막힌 현상이다. @@

놀라운 것은 신문에까지 그렇게 나왔다는 것이다.

마치 더 맛있는 이유를 과학적으로 설명하여 정답을 알려준다는 식으로 말이다...

라면 먼저 스프 먼저, 끓는 점 이용한 라면 맛있게 끓이는 방법

이 기사에 의하면 스프를 넣으면 물이 100도가 아닌 105도에서 끓는다고 한다.

5도나 올라간다면 결코 적은 온도차가 아니다.

다른 매체에도 마치 한 사람의 글을 베껴 적은 것처럼 기사들이 넘친다.

- 라면 먼저 스프먼저? 희대의 난제, "스프 녹는 온도 알면 더 짭잘한 라면 만들 수 있다"

- 라면 소비 세계 1위 국가, 라면 맛있게 끓이는 방법은? "면 먼저? 스프 먼저?"

- 라면 소비 세계 1위 국가, 라면 맛있게 끓이려면 면과 스프 중 무엇을 먼저 넣어야 할까

- [생활상식] '우울증에 좋은 식품 10가지' '라면 먼저 스프 먼저' 과학적 판명, 황사 대처 방법 삼겹살?

- [생활의 발견]라면 100도+αㆍ커피 92도...'맛있는 온도'는?

그런데 이 말이 맞다면 100도에서 맹물이 팔팔 끓다가도,

스프를 넣으면 바로 끓는 것이 중단되어야 하는데,

실제로는 오히려 더 끓어 넘치니 뭔가 논리적, 과학적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게다가 5도라고 구체적인 수치까지 적시하여 설명하니 마치 진짜처럼 보인다.

(원래 사기를 칠 때도 구체적일수록 잘 속듯이...)

찌라시 신문이 아니라면 인터넷에서 무책임하게 떠도는 카더라 통신을 전달해서는 안 될 텐데,

정말로 실험을 해보거나 증거를 가지고 하는 이야기인지 의문이 생겼다.

짜디짠 바닷물도 끓는 온도가 겨우 100.6도인데 라면이 105도라?

뭐 그럴 수도 있다.

실제로 해보지 않고 어찌 옳다 그르다 단정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내가 대신 그 온도를 검증하고 싶었다.

뭐 어려운 일도 아니니...

*** 검증 시작 ***

간단한 실험이라도 온도를 정확하고 일관성있게 측정하기 위해 신중해야 한다.

용기(냄비)나 온도계의 위치가 측정 중에 고정되어야 하고,

둘간의 차이가 즉각 비교가 될 수 있도록 다른 요소가 개입되지 말아야 한다.

냄비에 라면 1개 분량의 물을 끓였다.

그리고 온도계(K형 열전대)를 바닥에 닿지 않게 띄워서 냄비 물의 중간에 위치 시키고,

스프를 넣기 전후의 끓는 물 온도를 측정했다.

아래는 끓기 전의 온도이다.

전기 레인지 위에서 물이 가열되고 있는 중이다.

끓기 시작하고 측정이 끝날 때 까지 스프를 넣은 것 외엔 아무것도 건드리지 않았다.

측정 중 어떠한 것도 달라지면 안 된다.

그런데, 끓어도 온도계의 오차나 온도 불균일 등의 이유로 정확히 100도에서 고정되어 측정되지는 않았는데,

안정될 때까지 가만히 두고서 1분 이상 측정값을 관찰해 보니,

98~100도 사이에서 흔들리기는 하지만 거의 대부분의 시간은 99도로 측정되었다.

이제 라면 스프 한 봉지를 털어 넣었다.

그 결과 이 측정기구에서는 끓는 온도가 전혀 더 올라가지 않았다. (이것도 안정 후 1분 이상 관찰)

실제로는 순수한 물이 아니라 농도가 진해졌으므로 끓는 온도가 조금 더 올라갔겠지만 (0.1~0.3도?),

어쨌든 99도로 동일하게 측정되므로 라면 스프를 넣었다고 해서,

맛에 영향을 줄 정도로 끓는 온도의 차이가 난다고 볼 수 없다.

그러면 끓는 온도가 5도나 올라간다는 신문 기사는 뭔가?

혹시 그런 신기한 라면 스프가 있는 건가?

ps)

자료를 좀 찾아서 계산을 해보니,

소금을 큰 국자로 하나 이상 (160그램, 즉 스프로는 15개 봉지 정도) 퍼 넣어서

바닷물보다 10배 남짓 짜게 만들어야 5도 가량 올라갈 것 같다.

*** 2차 검증 ***

하지만 실험 정신이 '충만'한 나로서는 썩 마음에 드는 측정 결과는 아니었다.

왜냐하면 당시의 측정 장비가 충분한 분해능을 갖추지 않았기 때문이다.

(귀차니즘 때문에 간단히 확인만 해 보려고 했던 것임)

위의 허접한 기기로는 소숫점 이하의 자리가 표시되지 않기 때문에,

1도 이상으로 큰 폭의 온도차가 아니라면 구별하기 힘들었다.

비록 라면 스프를 넣으면 5도씩 올라간다는 것은 헛소리이지만,

실제로 끓는 점의 온도가 올라가는 것은 과학 현상이므로 그 값을 좀 더 정확히 알고 싶었다.

그래서 붙박이장에서 22 bit 정밀 계측기를 다시 꺼냈다.

Agilent 34970A Data Logger 이다.

아주 고가는 아니지만 연구개발용으로 많이 사용하는 전문 장비이다.

그러므로 나처럼 개인이 취미의 목적으로 구입해서 가지고 있는 것은 극히 드문 경우라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보유 중인 계측기)

여기에 T형 열전대 (Thermocouple) 3가닥을 연결한 후 냄비에 설치하였다.

물론 열전대 접점이 냄비의 바닥에 닿지 않고 물의 중간에 위치하도록 했다.

그리고는 1초씩 30회 자동 스캔을 하여 그 평균값을 취했으며, (Data Logger의 기능을 활용)

2회 반복 실험을 했다.

즉, 1초 x 30회 x 3가닥 x 2회반복 = 180개의 온도 측정값을 평균한 것이다.

이 정도면 꽤 정확하다고 할 수 있다.

초중고 학생들이 과학 시간에 봉상 온도계로 눈금을 대충 읽고 부정확하게 실험한 결과와는 비교할 수 없다.

다만, 열전대의 오차 범위상 절대 온도가 아주 정확히 측정되지는 않았다.

즉 맹물의 끊는 온도가 100도가 아닌 100.397도로 측정되었는데,

열전대는 원리와 구조상 온도 보다는 온도 차이를 정확히 측정할 때 유리하므로,

이 실험의 목적에서는 적합하고 충분히 정확하게 측정된다고 자신한다.

아래는 온도가 올라가고 있는 모습이다.

냄비 속에서 열전대의 위치는 아래와 같다. (센서부가 바닥에서 떨어져서 물의 중간에 있음)

아래는 맹물이 끓는 온도를 측정하는 모습이다.

1분 동안 180개의 측정된 값을 평균하니 100.397도가 나왔다. (아래 화면의 표시는 전체 평균을 하기 전의 값)

아래는 스프를 넣은 후 끓는 온도를 측정하는 모습이다.

물론 스프를 넣은 것 외엔 앞의 맹물 실험에서 아무 것도 건드리지 않은 것이다.

전기 레인지의 화력도 "강(Level 9)"으로 똑같다.

1분 동안 180개의 측정된 값을 평균하니 100.747도가 나왔다. (아래 화면의 표시는 전체 평균을 하기 전의 값)

즉, 가급적 정확한 실험을 통해 스프를 넣은 후 끓는 점의 온도 오름을 측정하니,

0.35도 (= 100.747 - 100.397) 로 나타났다.

라면 스프를 전부 소금으로 가정했을 때 끓는 온도 오름의 계산값(~0.33도 예상)과 매우 유사하다.

개인적으로 예상했던 수준(0.1~0.3도)보다는 높았지만,

스프로 인해 5도나 올라가는 과학적 비밀이 있다는 것은 구라임을 재확인했다.

그런데 이런 구라 기사와 정보들이 지금도 계속 쏟아져 나오고 있다.

헛소리라는 것은 간단한 계산으로도 1분 안에 짐작할 수 있는 것인데,

아무도 이견을 달지 않았다는 것이 이해불가이고 슬프다.

일반인들은 그렇다 하더라도 그 많은 화학 전공자들은 왜...

ps) 만약 스프가 정말 5도나 올리는 역할을 한다고 가정해도,

그로 인해 스프를 먼저 넣어야 라면이 더 맛있다는 증거 능력은 없다고 생각함.

* 이 글은 필자의 블로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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