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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들을 판매중단시킨 국방부의 깊은 뜻을 헤아려보았다

  • 강병진
  • 입력 2016.07.04 06:16
  • 수정 2016.07.05 07:44

우리 국민과 군의 정신안보를 근심하여 분주히 활동해온 국방부가 마침내 해냈다. 지난 7월 1일, ‘한겨레’는 “군 마트에서 판매되던 책 가운데 5종이 갑자기 퇴출된 것으로 드러났다”고 보도했다. 국방부가 우리 군인들에게 불순한 사상을 주입해온 5종의 좀벌레 같은 불온 도서들을 적발해 퇴출시킨 것이다. '하룻밤에 읽는 한국사', '칼날 위의 역사', '숨어 있는 한국현대사 1', '만화로 읽는 피케티의 21세기 자본', '글자 전쟁' 등이다. 이 책들이 얼마나 불온하고 위험한지 살펴봄으로써 국방부의 깊은 뜻을 헤아려보았다.

1. '칼날 위의 역사'- 이덕일 저, 인문서원

국방부의 깊은 뜻 - '보안강화'

문제적인 대목 -

"...중요한 것은 이런 국왕의 일과가 모두 공개된다는 점이다. 국왕의 일상에는 늘 승지와 사관이 함께 했다...임금은 숨기는 것이 없음을 보이고 모범과 감계를 밝히려는 이유에서였다...국왕의 모든 행적은 공개되고 기록으로 남아야 한다는 뜻이다...<세월호> 사태로 온 나라가 충격에 빠져 있던 때...그 시각 대통령의 행적을 국민은 알 권리가 있다. 조선 같으면 이런 논란 자체가 벌어지지 않았다. 국왕의 동정은 공개가 원칙이었기 때문이다."

이 사악하고 교묘한 문장에 주목하자. 지금이 어떤 시대인가, 정보전, 첩보전의 시대 아닌가? 따라서 군인들은 모름지기 걸음 하나도 비밀에 부치는 신비주의 전략을 택해야 한다. 그게 전화 하나를 받으면서도 ‘통신보안!’을 외쳐온 우리의 상식 아닌가? 따라서 대통령의 7시간 증발은 그 철저한 보안의 원칙을 군 통수권자로서 몸소 보여준 귀감이 될 만한 행동이다. 국방부의 결정은 보안 강화를 위한 정당한 조치임을 알 수 있다.

2. '숨어 있는 한국 현대사' 임기상 저, 인문서원

국방부의 깊은 뜻 - '군 사기 저하 방지

문제적인 대목 -

“1950년 6월 25일...새벽 4시경, 북한 인민군 7개 사단 병력이...일제히 38선을 넘어 파죽지세로 남하하고 있었다...국군 수뇌부는 이때 뭘 하고 있었을까? 대부분 새벽까지 술을 마셔 술이 깨지 않은 상태였다. 그 전날 저녁에 육군 장교클럽 개관식을 기념하는 성대한 댄스파티가 열렸다... 말하자면 한국군은 숙취 상태에서 전쟁을 맞은 것이다.”

이 문장을 통해 우리는 국방부의 세심한 배려를 엿볼 수 있다. 매일 밤 외워야 하는 복무신조에 나오듯 ‘국가와 국민에 충성을 다하는’ 육군을 지휘하던 장교들이 전쟁 당일 술을 먹고 경계도 제대로 못 섰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 우리 장병들이 얼마나 실망하게 될까를 미리 나서서 걱정해주었던 것이다.

3. '하룻밤에 읽는 한국사' 최용범 저, 페이퍼로드

국방부의 깊은 뜻 - '모방 범죄 근절'

문제적인 대목 -

"1961년 5월 16일, 박정희를 비롯한 군인들이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장악했다."

혹자는 이 단순한 문장이 누군가를 심히 불편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이 책이 퇴출된 게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하는데, 이는 우리 ‘군복 입은 민주 시민’ 국군을 지나치게 모욕하는 무례한 추측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이 책에 나오는 쿠데타 이야기는 누구도 따라 해서는 안 될 일이다. 행여나 군 마트에서 구입한 책을 읽고 모방범죄를 꿈꾸는 자가 생길까 싶어 그럴 가능성을 차단해 버린 것이다.

4. '글자전쟁' 김진명 저, 새움

국방부의 깊은 뜻 - '국제분쟁 조기 진화 '

문제적인 대목 -

"...이 회장은 폐선 직전의 군함도 갖다 팔아먹었고 100발 이상 쏘면 터져버리는 총도 갖다 팔았고 100킬로미터도 못 가 방전돼버리는 탱크 배터리도 팔아먹었다. 그러다 보니 물속에 가라앉은 배를 건져내는 용도로 만든 통영함은 정작 세월호가 가라앉았을 때는 엉터리 소나(수중음파탐지기) 때문에 현장에 출동도 하지 못했지만, 외양만 그럴싸하면 눈먼 세금을 긁어내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멕여야 돼. 배고픈 군바리들 멕여야 된다니까. 높은 놈이고 낮은 놈이고 좌우간 군바리들은 멕여야 해!”

무기시장은 신기하게도 ‘멕이면’ 그걸로 끝이었다."

기뻐하자. 우리는 국방부 덕에 국제분쟁으로 비화할 뻔한 사건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다. 국제 무기 에이전트와의 끈끈한 관계를 맺고 싶어하는 군인은 없다. 그 나라와 돈독한 동맹 관계를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그런데 이 책의 작가는 그것도 모른 채 글을 써 마치 국제 무기상과 우리 군 장성이 어두운 거래를 하는 것처럼 그려놨으니, 자칫하면 그 분들의 기분을 상하게 만들 뻔 했던 것이다. 군 마트 매대에 있던 걸 도로 거두어들였으니 망정이지, 혹 한글을 읽을 줄 아는 국제 무기상이 과자라도 사 먹으러 군 마트에 들렀다가 이 책을 발견하기라도 했으면 어쩔 뻔했는가? 생각만 해도 아찔한 일이다.

5.'만화로 읽는 피케티의 21세기 자본' 고야마 카리코 저, 스타북스

국방부의 깊은 뜻 - '이적 행위 차단'

문제적인 대목 -

“...더불어서 격차 억제의 최대 관심거리로서 피케티가 끌어들인 개념은 ‘누진자본세’다. 부동산, 금융 자산 등, 모든 자산에 세금을 부과한다. 게다가 고액 자산만큼 세금이 높은 제도다. 한 국가에서만 실시하면 부유층들은 자산을 해외로 이전시킨다. 그래서 피케티는 세계에서 동시에 이 누진자본 과세를 실시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고백하건대, 이 책은 다소 의아했던 게 사실이다. 경제학 책이 국방부의 심려를 끼칠 일이 뭐가 있다고...? 아무리 생각을 해도 짚이는 게 없어 그냥 ‘자본’이란 제목이 불온해 보였던 건가...하는 불순한 생각마저도 했던 것이다. 그러다 이 문장을 본 순간, 국방부의 혜안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이 책은 군 장병들에게 적과의 내통을 권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세계적 누진자본 과세를 위해선 우리의 금융정보와 자산정보를 전 세계와 공유해야 한다. 이때 우리 군인들의 통장 정보가 북한에도 전달될 수 있는 것 아닌가? 이는 심각한 기밀 누설이며, 이적 행위라 아니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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