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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렉시트 국민투표 이후, 영국 정치는 '막장드라마'처럼 돌아가고 있다

  • 허완
  • 입력 2016.07.01 06:51
  • 수정 2016.07.01 11:00

정치는 지루하고 뻔한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영국을 보라. 아마도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지금 영국 정치권에서는 한 편의 '막장 드라마'가 전개되는 중이다. '출생의 비밀'만 빼면 거의 모든 게 다 있다.

유럽연합(EU) 잔류·탈퇴를 묻는 국민투표를 승리로 이끈 영국 집권 보수당 내 브렉시트(EU탈퇴) 진영의 두 거물이 30일(현지시간) 영국은 물론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보수당 대표인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가 10월까지 물러나겠다고 밝힌 만큼 차기 보수당 대표는 영국 총리로서 EU와의 브렉시트 협상을 벌이게 된다.

탈퇴 진영 이끌던 보리스 존슨, 발을 빼다

하지만 브렉시트 캠페인을 주도한 보리스 존슨(52) 전 런던시장이 측근 마이클 고브(48) 법무장관과의 내분(과 뒷감당에 대한 두려움?) 끝에 보수당 대표경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이에 따라 현재 가장 지지율이 높은 EU 잔류진영의 테리사 메이(59) 내무장관이 차기 총리를 맡을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브렉시트 진영 대신 브렉시트를 반대하던 진영이 차기 영국 총리를 맡아 브렉시트 협상을 이끌 형국이다.

보수당 차기 대표 후보 마감일인 이날 보리스 존슨(52) 전 런던시장은 "동료와 논의했고, 의회 여건들을 고려해 내가 총리가 될 사람은 아니라고 결론을 내렸다"며 불출마를 선언했다. 또 "차기 정부가 국민투표로 나온 위임을 제대로 이행하는 것을 확실히 하도록 하는 데 최선의 지원을 제공하는 것이 내 역할이 될 것"이라고 했다.

Boris Johnson out of contest for Conservative Party leadership - BBC News

사실 그의 기자회견은 출마 선언보다는 EU 탈퇴 협상에 관해 내놓을 발언들에 더 관심이 쏠렸다. 그가 유력한 후보였기 때문이다.

존슨 전 시장은 지난 24일 국민투표 결과 발표에 이어 캐머런이 사임을 전격 발표할 때만 해도 차기 총리 '0순위'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상황은 극적으로 반전됐다.

마이클 고브, '두목'의 등에 칼을 꽂다

존슨의 기자회견은 마이클 고브(49) 법무장관이 경선 참여를 발표한 지 몇 시간 만에 나왔다. 고브 장관은 탈퇴파 캠프의 좌장인 존슨 전 시장의 최측근으로 공인돼왔다.

그러나 고브 장관은 "EU 탈퇴가 더 나은 미래를 줄 것이라고 주장해온 존슨 뒤에서 팀을 이뤄 돕기를 원했지만 그가 리더십을 제공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며 출마의 변을 밝혔다.

또 그는 BBC 방송과 인터뷰에서 "보리스가 내가 바라는 방식으로 팀을 단결시키고 당과 나라를 이끌 능력이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Michael Gove: Boris Johnson wasn't up to the job - BBC News

말하자면, '오른팔'이 두목의 등에 칼을 꽂은 셈이다.

고브는 과거에 여러 차례 자신은 총리가 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고 말했던 바 있다.

그랬던 그가 돌연 말을 번복하고 출마를 전격 선언하며 모두를 깜짝 놀라게 한 것.

이에 따라 EU 탈퇴 진영을 대표하는 후보가 순식간에 '보리스 존슨'에서 '마이클 고브'로 교체됐다.

음모, 유출, 배신, 충돌, 복수, 반전...

전날까지만 해도 고브 장관이 존슨 전 시장을 지지할 것이라는 관측이 파다했다. 두 사람 간 연대의 움직임은 고브 장관 부인이 실수로 남편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보낸 이메일에서도 나타났다.

여기에는 "보리스로부터 구체적으로 (자리를) 받지 못하면 당신의 지지를 보장해주지 말아야 한다" "보수당원들이 반드시 존슨 전 시장을 지지하지는 않을 것이다" "양보하지 말고 고집을 부려라" 등의 내용이 담겼다.

존슨 캠프의 전략가 린튼 크로스비는 이날 존슨의 출마 선언을 마지막 정리하던 오전 9시께 "출마한다"는 고브 장관의 전화를 받고서야 사실을 알았다고 말했다.

영국 국내에서는 이들이 빚어내는 무책임한 막장 드라마에 대한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브렉시트 진영의 내홍도 극심해지고 있다.

일간 가디언은 "수많은 존슨 지지자들이 고브가 배반을 했다면서 그를 비난했다"고 전했다. 나이절 에번스 의원은 가디언에 고브가 "보리스를 정면에서 찔렀다"고 표현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존슨 지지 의원은 "고브보다는 (캄보디아 전 독재자) 폴 포트에 투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EU 잔류를 지지한 테리사 메이 내무장관으로 마음을 돌리고 있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보수당 원로 헤셀틴 경은 존슨 전 시장이 "보수당을 찢어놨다"며 책임 추궁이 있어야만 한다고 비판했다.

거짓말 같은 막장드라마

국민투표 이후 존슨 전 시장 등 탈퇴 진영은 투표 운동 기간 내놨던 약속들을 뒤집거나 톤을 낮추면서 '대국민 사기극'을 벌였다는 비난을 받았다.

또 보수당 안에서 '보리스 아니면 누구나'라는 기류가 확산되는 등 존슨 전 시장에 대한 반발 기류가 퍼지기도 했다.

일간 텔레그래프는 고브의 막판 출마를 "뻐꾸기 둥지(cuckoo nest·뻐꾸기가 딴 새 둥지에 몰래 알을 낳아 새끼치기를 하는 것) 음모"에 비유했다.

존슨 역시 배신의 전력이 있다. 투표 운동 시작 전 존슨은 유럽잔류 지지자였다는 게 비밀이 아니었고, 캐머런 총리는 그의 EU 잔류 지지를 기대했었지만 그가 고브의 설득에 넘어가 캐머런을 저버리고 EU탈퇴 진영에 섰다는 것이 텔레그래프 등 영국언론이 전하는 정설이다.

뉴욕타임스(NYT)는 "존슨은 스스로 캐머런에게 브루투스 같은 역할을 했고, 곧바로 고브에 의해 카이사르가 됐다"며 "'배신을 당한 배신자'는 지금 화가 났다기 보다 암담해하는거 같다. 이제 자신이 누구를 지지할지에 대해 침묵하는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또 브렉시트 투표 이후에 존슨과 고브가 만약 승리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합의를 못봤으며, 미래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이견이 있는 모습들이 보였다고 지적했다.

자, 여기까지의 스토리가 이해되는가? 드라마는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어쩌면 인물관계도가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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