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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왜 존재하는가 | 세월호의 경제학

공공재를 공급할 역할을 맡은 이들이 오직 최고의 권력을 위한 서비스를 제공하라고 말합니다. 구조된 인원이 예상보다 적다고 확인되자, 절박함이나 안타까움을 표현하지 않습니다. 대통령에게 잘못 브리핑했다는 것을 걱정할 따름입니다. 세월호 참사의 경제학적 이유는 바로 이것입니다. 마땅히 공공재여야 할 서비스를 정부 관료들이 사유화한 것입니다. 이뿐입니까. 아이들의 생사도 확인하지 못한 때에 청와대 홍보수석이었던 이정현 의원은 KBS 보도국장에게 전화를 걸어 해경 및 정부 비판을 자제하라고 압력을 넣었습니다.

  • 김재수
  • 입력 2016.07.01 07:30
  • 수정 2017.07.02 14:12
ⓒhankyoreh

세월호 사고가 있은 후, 많은 이들이 "정부는 왜 존재하는가?"를 물었습니다. 팽목항에 선 부모님들이 애타게 책임자와 구조대를 찾을 때, 함께 마음을 졸이고 눈물을 흘리다가도, 제 무심한 감수성은 공공재의 정의를 떠올립니다.

정부가 존재해야 할 최소한의 이유는 공공재의 문제 때문입니다. 공공재란 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소비해도 경합이 일어나지 않고, 소비에 따른 대가를 지불하지 않아도 배제할 수 없는 재화 및 서비스를 말합니다. 비경합성(non-rival)과 배제불가능성(non-exclusive)이라고 간단하게 표현합니다. 경제학 교과서가 즐겨 드는 예는 국방서비스의 제공과 법질서의 유지입니다. 이런 것들은 시장에 의해 제공될 수 없습니다. 무임승차의 문제를 피할 수 없고, 소비자들로부터 돈을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정부가 강제력을 행사하여 세금을 통해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하드코어 시장주의자, 자유주의자들까지도 부인하지 않는 정부 존재의 이유입니다.

세월호와 공공재

온 국민이 이렇게 함께 울고 있을 때, 아이들의 생명을 지켜내는 것은 정부가 제공해야 하는 공공 서비스입니다. 아이들을 구해낸다면, 그 기쁨에는 경합성이 존재하지 않고, 누구도 그 기쁨에서 배제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가리고 처벌하는 일도 마찬가지여서, 공공재입니다. 우리 사회가 허술하지 않다는 것, 생명의 가치를 소중히 여긴다는 것, 내 가족의 생명도 지켜줄 것이라는 사실을 확인시키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정부의 존재 이유를 묻고, 대통령의 부재와 컨트롤 타워의 무능을 추궁하고, 세월호를 기억하고, 사고의 원인을 찾으려는 노력은 공공재를 공급하라는 보수적인 경제학의 요구라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마치 진보 진영의 목소리로 치부되는 것이 아이러니합니다.

아이들을 구해내는 것, 정말 공공재일까

세월호 참사를 전혀 다른 시각으로 보는 이들이 있습니다. 새누리당의 주요 당직자들은 세월호 사고를 두고 교통사고와 다를 바 없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보상을 받고 마무리하면 된다고 보는 국민들도 적지 않습니다. 이들은 국가의 무능을 탓하지 않습니다. 경제학적으로 보자면, 이들은 구조 서비스 및 진상규명의 문제를 공공재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세월호 참사를 피해자와 가해자의 문제로 축소시키는데, 사고의 처리를 사유재의 거래처럼 보는 것입니다. 누구는 명백한 공공재라 판단하지만, 누구는 사유재라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사실 공공재와 사유재를 가르는 경합성 여부와 배제성 여부를 칼로 무 자르듯 결정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구조 서비스는 대부분의 나라에서 정부에 의해 공급되고 있고, 순수 공공재처럼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세월호 사고를 교통사고로 이해하는 이들처럼, 구조 서비스조차 얼마든지 경합성과 배제성을 지니고 있다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제한된 구조 인력이 모든 사건 사고에 출동할 수 없으므로 경합성을 띠고 있습니다. 돈을 낸 사람만을 구조하기로 결정한다면 배제성을 띠고 있습니다.

실제로 미국의 어느 시정부는 요금을 낸 주민들에게만 소방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요금을 미납한 사람의 집에 불이 난 적이 있는데, 전화를 받은 교환원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다는 답변을 했습니다. 집주인은 지금이라도 요금을 낼 테니 불을 꺼달라고 부탁했지만, 제안은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나중에서야 소방차가 출동하기는 했지만, 그냥 멀리서 지켜만 보았습니다. 이웃의 집에 불이 옮겨 붙는 경우를 대비하기 위해서였는데, 이웃은 요금을 지불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경합성과 배제성의 여부는 어느 정도 우리 사회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구조 서비스를 모든 사람들이 당연히 누려야 할 서비스라고 판단하면, 정부는 마을마다 소방서를 설치하고, 누구나 긴급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119 응급안전센터를 운영합니다. 구조 서비스의 배제성과 경합성을 줄이는 노력을 펼치는 것입니다. 반면 그렇지 않다고 판단하면, 보통의 사유재처럼 시장이 제공하도록 만들 수 있습니다.

심지어 모두가 동의하는 공공재의 사례인 국방서비스도 마찬가지입니다. 국가 영토 밖에 거주하는 국민들을 보호할 것인가의 문제는 정치적인 판단에 달려 있습니다. 완전히 배제불가능하다고 볼 수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국가의 강제력을 바탕으로 세금을 내지 않는 이들을 추방할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하지 않는 이유는 국가가 그러면 안 된다는 사회적 합의가 있기 때문입니다. 공공재를 만드는 것은 전적으로 재화의 속성이 아니라, 사회적 선호와 결정에도 달려 있습니다.

좋은나라, 공공성을 토론하는 사람들

"공교육과 사교육의 역할 분담을 어떻게 할 것인가, 의료보험 제도를 한국처럼 공공의료보험으로 할 것인가 미국처럼 민간의료보험으로 할 것인가, 초등학교의 급식을 무상으로 할 것인가 말 것인가"등과 같이, 정부의 역할을 두고 펼치는 논쟁은 종종 공공재와 사유재 사이의 줄다리기 싸움인 경우가 많습니다.

이들 질문은 "당신은 어떤 아파트에 살고 싶습니까"라고 묻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당신이 살고 있는 아파트 주민 연합회에서 다음과 같은 안건들을 토의한다고 생각해 봅시다. "아파트 단지 곳곳에 나무를 심고 조경을 바꾸자, 놀이터 시설을 만들자, 헬스장을 만들자"같은 제안은 아파트 단지 내의 사람들에게 있어서 사유재를 공공재로 바꾸자는 것입니다. 모두가 지불해야 하는 아파트 관리비는 늘어날 것입니다. 논쟁이 벌어질 것은 분명합니다. 은퇴를 한 노인들은 조경을 다시 하자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들은 놀이터를, 젊은 부부는 헬스장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앗, 1층과 2층에 사는 주민들은 엘리베이터 사용을 유료화하여 아파트 관리비를 줄이자고 제안합니다.

경제학 수업을 듣는 학생들은 어떤 재화가 사유재인지 공공재인지를 묻는 질문에 답해야 하지만, 공공재와 사유재의 구분이 언제나 명확하지 않습니다. 공공성의 정도를 모 아니면 도처럼 단순하게 정의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사회의 선택에 의해 공공재가 될 수도 있고, 사유재가 될 수도 있고, 둘 사이의 어느 중간이 될 수도 있습니다. 어떤 사회가 더 바람직한 사회입니까. 공공재의 요소가 많아지는 사회입니까, 사유재의 요소가 많아지는 사회입니까.

어떤 선택이 더 좋은지는 일괄적으로 대답하기 어렵습니다. 각 사안마다 비용과 편익을 비교해 볼 필요가 있고, 사회 구성원들의 민주적 합의가 이루어지는지를 살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공공성의 여부와 정도를 결정하는 과정 자체가 정부에 의해 제공되어야 할 공공서비스이기도 합니다. 정부가 존재해야 할 가장 근본적인 경제학적 이유입니다.

나쁜나라, 공공재를 사유화하는 사람들

공공성에 대한 인식은 지역과 시대에 따라 다르고, 사회 구성원은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좋은 나라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있습니다. 명백한 공공성을 사유화하는 곳은 나쁜 나라입니다.

"지금 VIP(대통령) 보고 때문에 그러는데, 영상으로 받은 거 핸드폰으로 보여줄 수 있느냐"

"사진 한장이라도 빨리 보내달라"

"(현장) 영상 갖고 있는 해경 도착했느냐"

"아, 그거 좀 쏴 가지고 보고 좀 하라고 하라니까, 그거 좀"

"166명이라고, 큰일 났네. 이거 VIP까지 보고 다 끝났는데"

"아까 (진도 행정선이) 190명 구조했(다고 전달받았)을 때 너무 좋아서 VIP님께 바로 보고했거든. 완전 잘못 브리핑된 거네. 이거 여파가 크겠는데."

2014년 4월 16일 오전, 그 위기의 순간, 청와대는 구조팀에게 대통령을 위한 영상을 찍어 보내라고 명령합니다. 공공재를 공급할 역할을 맡은 이들이 오직 최고의 권력을 위한 서비스를 제공하라고 말합니다. 구조된 인원이 예상보다 적다고 확인되자, 절박함이나 안타까움을 표현하지 않습니다. 대통령에게 잘못 브리핑했다는 것을 걱정할 따름입니다. 세월호 참사의 경제학적 이유는 바로 이것입니다. 마땅히 공공재여야 할 서비스를 정부 관료들이 사유화한 것입니다.

이뿐입니까. 아이들의 생사도 확인하지 못한 때에 청와대 홍보수석이었던 이정현 의원은 KBS 보도국장에게 전화를 걸어 해경 및 정부 비판을 자제하라고 압력을 넣었습니다.대통령은 구조 실패의 책임을 묻기 위해 해경을 해체했지만, 당시 해경의 책임자들은 모두 승진을 거듭했습니다.2년이 흘렀지만 아직도 사건의 원인을 명확하게 해명하지 못하고 있고, 제주해군기지 건설용 철근을 과적했다는 등의 사실들이 새롭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세월호의 선체가 아직 인양되지 않은 지금, 정부 여당은 서둘러 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의 활동을 종료하려 합니다.

정부의 역할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스스로 정부이기를 포기한 양아치 같은 이들이 국가 권력을 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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