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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현동 판가게 아저씨들이 '현대 카드 라이브러리'에 피켓을 들고 모인 이유

  • 박세회
  • 입력 2016.06.30 14:30
  • 수정 2016.06.30 14:31

아주 조금 과격한 비유를 들어 보자. 지금 이태원에서 헤비급 복서가 꼬꼬마 어린아이와 경기를 벌이고 있는데, 무척 아파한다. 그런데 아무도 신경을 안 쓰고 벨은 언제 울릴지 모르겠다.

이태원 길거리에 회현동 판가게 아저씨들이 피켓을 들고 나왔다. 미디어오늘의 보도에 따르면 레코드 업계 최초의 단체 시위다.

요즘 유명한 바이닐&플라스틱 들렸다가 피켓을 들고 있는 음반 소매상들을 만났다 직접 물어봤다 "영업에 얼마나 큰 영향이 있나요?" 판매량 전무 곧 폐업 해야 할거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대기업이 골목상권 잡아먹는거야 이제는 익숙하지만 충격이였다 바이닐이라고 멋지게 부르는 LP는 멸종 공룡같은 존재라서 많은분들이 턴테이블이 익숙하지 않아서 사용안내를 듣는다 나 또한 어릴때 바늘 부셔서 엄청 혼났다 이렇게 조심해서 들어야 하는 LP는 엄청 불편하다 25년 신촌 향음악사가 없어졌다 바다비도 사라졌다 힘을 잃어가는 음반시장을 통으로 접수하려는 의도가 수상하다 신자유주의는 경쟁이 자연스럽고 현대카드는 스트리밍시대에 음반시장의 변화를 일으키고 저변확장이 목적일 수 있다 우리는 소금과 빵이 얼마나 위험하고 믿을 수 없음을 이미 왕좌의 게임 피의 결혼식을 통해 충분히 배웠으리라 ... #바이닐앤플라스틱 #이태원

강현호(@kinghyunho)님이 게시한 사진님,

지난 10일 현대카드는 중고·신보 LP를 판매하는 ‘바이닐&플라스틱’을 열었다. 200평이 넘는 부지에 약 4,000종의 LP와 8,000여 종의 CD가 비치돼있다.

CD는 몰라도 LP는 정말이지 구멍가게 취향 싸움이다. 시장 바로 옆에 대형 마트가 들어온 것과도 비교하기 힘들다. 현재 서울 홍대 앞·신촌·이대 등지에 6~7개, 회현 상가에 7개, 황학동 2~3개, 방배동 1개 등 LP 가게는 서울에 많아야 30개가 안 된다고 한다. 미디어오늘과의 인터뷰에서 이날 피켓을 들고 거리로 나왔던 'LP LOVE'의 김지윤 대표는 이것만은 건드리지 말았어야 했다고 말했다.

"이건 아니다. 대기업이 이건 건드리지 말았어야 했다.”

“대기업이 고물상에까지 손을 대냐”

“단 한 번의 논의 없이 어느 날 갑자기 ‘쾅’ 오픈했다. 최소한의 상도덕이 없는 것”-미디어오늘(6월 30일)

미디어오늘이 전한 김 대표의 말에 의하면 매출에는 예상대로 큰 타격이 있다.

개장 후 매출이 반 토막이 난 매장이 있는가 하면 개장한 주말 아예 손님 발길이 끊겼던 매장도 있다. 이들의 말을 종합하면 전반적으로 매출은 약 3분의 1 정도 감소했다. -미디어오늘(6월 30일)

현대카드 측은 "LP 시장의 파이를 키우고 LP 문화를 지원하는 게 매장을 연 취지"라고 설명한다. LP 시장 전체의 파이를 키우면 결국 수요 증가의 효과가 회현동 판가게에까지 미칠 것이라는 얘기다. '트리클다운'같이, 물방울 떨어뜨려 홍수내겠다는 소리다.

그러나 현대카드를 아는 사람들은 회의적이다.

김영혁 대표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현대카드가) 그간 해왔던 문화사업들, 특히 음악에 관계된 사업들의 수명을 보면 그 의지는 생각보다 그렇게 강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좋은 취지로 음악가들을 돕겠다며 시작했던 현대카드뮤직은 사람들의 관심을 생각만큼 얻지 못하자 소리소문 없이 사라졌습니다. 회사와 회사 대표의 SNS 계정으로 요란하게 론칭을 했지만, 폐업 공지는 하청업체 명의로 진행이 되었었죠. 페스티벌의 패러다임을 바꾸겠다고 했으나 결국 헤드라이너들의 몸값만 바꾸고 2년만에 사라진 시티브레이크란 여름 페스티벌도 있었습니다.-김영혁 페이스북

이게 뭐가 그리 잘못 된 일이냐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사실 그렇게 말할 만큼 관심 있는 사람도 없다는 게 현실이다. 음반 시장은 작고, 그 중에서도 LP시장은 꼬꼬마라 이들이 든 피켓에 눈길을 주는 이는 많지 않다.

문화가 형성 되기는 어렵지만 말살되기는 아주 쉽다는 점을 떠올려 보자. 회현동에 LP소매상들이 자리를 잡은 지 30~40년이 지났다. 그러나 아마도 없어지는 데는 1~2년이 걸리지 않을 것이다.

"해외에도 큰 유통업체가 시디나 레코드 판매에 뛰어든 사례가 있습니다. 시장이 아주 잠시간 커지는 대신 영국과 미국의 독립 매장들이 대거 문을 닫는 결과를 맞이했습니다." -김영혁 페이스북

그래서 이들에게서 눈길을 돌리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근처에서 작은 서점을 운영하는 '다시서점'의 주인장은 거리를 지나가다가 피켓을 든 회현동 판가게 사람들에게 커피를 건넸다. 그는 인스타그램에 이렇게 올렸다.

오늘 길가에 앉아 피켓을 든 아저씨들은 대기업이 시작한 음반점에 관해 이야기하는 음반점 사장님들이었다.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이 꿉꿉한 날에 길가에 앉아 시위를 하는 사람들에게. 테이크아웃으로 들어가 아저씨들께 커피를 가져다주실 수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부끄러워서 못 가져다드리겠다고. 그러자 테이크아웃드로잉에서 소설 쓰는 정현석 님이 해주시겠다고 웃으며 말하셨다.

사장님 말이 맞다. 대기업이 소매까지 하려고 드는 것은 창피한 일이다. 문화를 독점하려는 일도. 그것에 동조하고 방관하는 우리도 부끄럽다. 나는 얼마나 부끄러운가. 생각만 많아지는 오늘. 오늘도 술을 먹어야겠다. -다시서점 인스타그램

돈을 쓰는 일은 왜 이리 힘이 든가. (1) 서점에 손님이 없다. 몇주 동안 손가락을 빨다가 사람들이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빨리 입고 받아 팔아서 돈이 조금 생겼다. 이걸로 장을 봐야지. 저번에 인터넷 바꾸면서 받았던 상품권도 쓰면 싸구려 믹서기도 살 수 있겠지 생각하면서. 오늘 종각에서 술을 마시면 얼마가 들겠구나 생각하면서 걷는 길. 사람들이 피켓을 들고 서있다. 엉성한 각목과 문구들. 이 더위에 사람들을 길가에 나오게 만든 대기업의 횡포와 작태에 화가 난다. 화가 나도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10년 전 나는 음반점에서 1년 동안 일했다. 누군가 내게 행복했던 때를 떠올려 보라고 하면 아마도 그때를 꼭 꼽을 것이다. 그리고 오늘 길가에 앉아 피켓을 든 아저씨들은 대기업이 시작한 음반점에 관해 이야기하는 음반점 사장님들이었다.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이 꿉꿉한 날에 길가에 앉아 시위를 하는 사람들에게. 테이크아웃으로 들어가 아저씨들께 커피를 가져다주실 수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부끄러워서 못 가져다드리겠다고. 그러자 테이크아웃드로잉에서 소설 쓰는 정현석 님이 해주시겠다고 웃으며 말하셨다. 지금은 종각으로 가는 길. 오늘은 술을 잔뜩 먹기로 하자. 장 보려고 꿍쳐 놓은 돈을 좀 쓰기로 하자. 아저씨들 커피 사드린 5만원에 몇 만원을 더 보태어 보도록 하자. 떠올릴 사람을 떠올리도록 하자. 술을 먹도록 하자. 돈을 쓰도록 하자. (2) 일요일 오후. 사람들은 사진을 찍고 나간다. 입구에서는 입간판에 적어둔 찰리 채플린의 말에 감명 받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고 간다. 책 좀 읽다가 가지. 이렇게 좋은 날에. 혼자 생각을 하다가 보니 퇴근시간이 가까워진다. 바이닐 앤 플라스틱 앞에서 시위를 하고 계신 사장님이 오셔서 책을 사가지고 가셨다. 지난번엔 커피 잘 마셨다고 하시면서. 나는 몸을 비틀며 부끄러워 하다가 문밖까지 배웅을 나갔다. 너무 더우시면 오셔서 더위도 피하고 가시라고. 우리는 책을 읽고 음악을 듣는다. 책을 읽은 척, 음악을 들은 척 하는 것은 쉬운 일이고 부끄러운 일이다. 책을 한 보따리 사가지고 가시면서 "앉아서 책이나 좀 읽어야겠다."고 웃으시던 사장님. 가시는 뒷모습을 물끄러미 보았다. 사장님 말이 맞다. 대기업이 소매까지 하려고 드는 것은 창피한 일이다. 문화를 독점하려는 일도. 그것에 동조하고 방관하는 우리도 부끄럽다. 나는 얼마나 부끄러운가. 생각만 많아지는 오늘. 오늘도 술을 먹어야겠다. 그리고 문밖에 걸어놓은 찰리 채플린의 명언은 이렇다. "우리는 너무 많이 생각하고 너무 적게 느낀다." #다시서점 #바이닐앤플라스틱

다시서점 - 글자 속 꽃밭(@dasibookshop)님이 게시한 사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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