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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나라 영국은 도대체 왜 그랬냐"는 질문에 대해

잔류에 표를 던진 나를 포함한 48%는 브렉시트 찬성파에게 상당히 거들먹거리는 태도를 취했다. 당연히 그런 태도는 브렉시트를 부추겼다. 투표 결과가 나온 지금 나는 상당히 모순적인 느낌을 받는다. 나는 52%에게 어떻게 그토록 멍청할 수 있는지 묻고 싶다. 반면, 나는 그 52% 중 상당수는 우리가 불평등을 무시하고 그들을 '채브'(chavs, 교육 수준이 낮은 맹목적 유행 추종자)라고 조롱했기 때문에 생겼다고 생각한다. 나는 비웃는 48% 파이지만, 한편 나는 내가 어디 출신인지를 떠올린다. 침체를 겪는 탈공업화 지역, 62%가 탈퇴에 투표한 지역이다. 그리고 비웃은 것에 대한 죄책감을 느낀다.

  • Daniel Tudor
  • 입력 2016.06.30 06:56
  • 수정 2017.07.01 14:12
ⓒToby Melville / Reuters

내 나라가 자랑스럽게 벼랑 끝을 향해 행진하기로 결정한 결과, 나는 최근 트위터에서 유치한 비난을 좀 받았다. "저 '양놈'은 저렇게 멍청한 나라 사람인데 무슨 권리로 다른 나라들을 '비판'하는 거야? 왜 영국은 비판하지 않지?" 이런 식이었다.

저 분이 영국에서 태어났다면 브렉시트에 찬성표를 던졌을 것 같다.

그런 비난에 대한 글을 기꺼이 한 편 쓸 수도 있지만, 브렉시트에 대해 할 만한 말들이 워낙 많기 때문에 영국을 비판하라는 제안을 받아들여도 되겠다 싶었다. 내가 보기에 브렉시트의 중요한 두 가지 포인트가 잘 다루어지지 않고 있다. (그나저나 내가 말하는 브렉시트는 EU를 탈퇴하기로 한 결정이다. 유로 2016에서 아이슬란드에게 패배한 게 아니다. 그 패배도 똑같이 창피스러웠다.)

첫 번째 포인트는 브렉시트는 불평등을 무시할 때,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제조업과 지역 균형 발전을 희생하고 '서비스 산업'과 금융화를 추구할 때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점이다.

두 나라가 되다

1960년대와 1970년대에는 선덜랜드, 리버풀, 맨체스터 같은 곳의 평범하고 교육을 많이 받지 않은 청년이 제조업이나 관련 업계에 취업하고, 관리직까지 승진하고, 집을 사고, 편안하게 가족을 부양하는 게 가능했다. 내 아버지가 그런 사람들 중 하나였고, 내 학창 시절 친구들 대부분은 그런 사람들의 아들 딸들이었다.

이제 그런 일은 많지 않다. 1970년대의 충격과 1980년대의 대처주의 이후, 영국 산업 지역은 기를 꺾어놓는 긴 침체기에 들어갔다. 제조업은 쇠퇴했고 영국은 은행가, 변호사, 경영 컨설턴트 등이 이끄는 '서비스 경제'가 되려 했다.

버밍엄에 산다면, 좋은 대학을 나오지 못했다면 그런 직업은 가질 수 없다. 그러나 서비스 경제의 설국열차에서 마지막 칸의 직업은 얻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콜 센터에서 일하거나, 컴퓨터에 데이터 수동 입력을 하는 등의 일이다. 나는 여름 방학 때 둘 다 임시직으로 해봤는데 물론 정말 싫었다.

그런 직업은 승진 기회가 아주 적으며, 동시에 그런 급여로는 집을 사는 건 꿈도 꿀 수 없다. 그러므로 급여, 혹은 국가의 복지혜택, 혹은 그 둘을 섞어서 근근이 살아가는 게 고작이다. 주위 사람들도 다 같은 처지다. 일을 통해 발전한다는 생각은 포기하게 되며, 심지어 교육을 비롯한 어떠한 노력도 무의미하다고 보게 된다. 자존감이 낮아지고, 동시에 '잘 사는' 것 같아 보이는 모든 사람들에게 분한 마음을 갖게 된다. 그런 관점을 자녀들에게도 물려준다.

영국의 싱크탱크 레솔루션 재단에 의하면 이런 사람들은 브렉시트를 강하게 지지한다고 한다. 재단장 토스텐 벨은 이런 탈퇴에 표를 던진 지역들은 최근 소득 감소를 겪은 곳이 아니고 1980년대부터 가난했던 곳이라 한다.

이런 새로운 사회적 이동이 불가능한 최하층 계급이 생기는 동안 런던은 정반대 방향으로 가느라 바빴다. 이제 런던의 영국인들은 영국의 다른 사람들과는 아주 다르다. 그들은 굉장히 세계주의적이고, 바깥을 보며, 돈을 가지고 있다. 그들 중에는 영국 다른 곳 출신들도 많지만, 그들은 좋은 대학을 다녔고, 수도에서 직장을 가지고 있고, 런던 사람이 되었다. 그들은 외국인들과의 교류를 아주 긍정적으로 바라본다. 친구를 만들고, 사업을 하고, 사랑에 빠지는 등의 기회로 본다.

지방의 가난한 젊은이는 영국인이 아닌 친구가 하나도 없을 가능성이 크다. 그건 런던에 있는 사람에겐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지방의 가난한 젊은이는 폴란드 델리카트슨 앞을 지나가며 낯선 상품들과 이해할 수 없는 표지판을 보고 눈살을 찌푸리고, 그 가게에서 나오는 사람을 보며 위협으로 간주한다. '저 사람이 여기 있어서 내 임금이 낮고 내 월세가 올라가는 거야.'라고 생각한다. 교육 수준이 낮고 삶의 전반적인 상황에 대한 만족이 낮기 때문에, 그 폴란드 사람이 사실은 사회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는 걸 보는 시각을 갖지 못한다.

분열을 이용해먹기

같은 이유로 그는 사회의 모든 문제를 EU의 탓으로 돌리는 저열한 언론과 '우리 나라를 되찾을' 때라고 말하는 정치 사기꾼들에게 쉽게 넘어간다. 그를 부추기는 사람들은 인종차별주의자가 아니지만, 그들은 그를 인종차별주의자로 만들면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안다. 그들은 그에게 그의 문제는 그의 탓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 폴란드 남자 탓이다. EU 탓이다.

지금의 정치인 계급은 가치적인 면에서 아주 '런던'적이다. 보수든 노동당이든, 영국의 주류 정치인들은 우아하고, 여행을 많이 다녀 보았고, 사회적으로는 진보적이고 세계주의적이다. 그들은 자유 시장을 지지하며(제레미 코빈은 예외다. 어차피 그는 브렉시트를 강력하게 반대하지도 않았다.) 물론 EU 잔류를 강력히 지지한다. 그들은 전반적으로 교육 수준이 낮고 실업률이 높은 영국 사회의 대중들의 편협함과 무지를 개인적으로(가끔은 대놓고) 비웃는다.

그러므로 브렉시트 투표는 복수할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였다. 그리고 영국 매체들, 특히 더 선, 더 데일리 메일, 디 익스프레스의 무책임함이 더욱 부추겼다. 더 메일은 유권자들에게 '오만하고 우리와 단절된 정치 계급'에 맞서서 '봉기하라'고 권했다. 나는 메일과 선의 언론인들 중 몇 퍼센트나 브렉시트 찬성에 표를 던졌을지 궁금하다. 상당히 낮을 거라 생각한다.

잔류에 표를 던진 나를 포함한 48%는 브렉시트 찬성파에게 상당히 거들먹거리는 태도를 취했다. 당연히 그런 태도는 브렉시트를 부추겼다. 투표 결과가 나온 지금 나는 상당히 모순적인 느낌을 받는다. 나는 52%에게 어떻게 그토록 멍청할 수 있는지 묻고 싶다. 반면, 나는 그 52% 중 상당수는 우리가 불평등을 무시히고 그들을 '채브'(chavs, 교육 수준이 낮은 맹목적 유행 추종자)라고 조롱했기 때문에 생겼다고 생각한다. 나는 비웃는 48% 파이지만, 한편 나는 내가 어디 출신인지를 떠올린다. 침체를 겪는 탈공업화 지역, 62%가 탈퇴에 투표한 지역이다. 그리고 비웃은 것에 대한 죄책감을 느낀다.

물론 브렉시트 투표자 전부가 저 틀에 맞아 들어가지는 않는다. 브렉시트 지지층 중 큰 비율을 차지하는 60대 이상은 온갖 사회 계급과 지역에 있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서 세계 어디서든 노령층 대다수는 어느 정도 외국인 혐오를 가지고 있으리라 예측할 수 있다. 탈퇴 지지와 교육 및 소득 수준 사이의 강한 상관 관계가 있다는 게 덜 자연스러운 일이다. 불평등과 런던 이외 지역의 위축에 대한 우리의 방임적 태도가 없었다면 과연 EU 탈퇴 논의가 있기라도 했을지 나는 의심스럽다. 이것은 미국 대선에 대한 명확한 경고다. 미국에도 그런 문제가 있으며, 트럼프 지지 심리는 브렉시트 지지 심리와 비슷한 사고방식이다.

슬프게도 트럼프와 브렉시트 지지파는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선거 전략으로 사용하는데 아무 거리낌이 없다. 그들을 지지하는 사람들 중 상당수는 논리나 이성을 사용할 의지가 없고 심지어 무지를 즐기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브렉시트 지지파 법무장관 마이클 고브는 영리하게 이를 활용해서 사람들은 '전문가들에게 질렸다'고 말했다. '잔류에 투표하라고 네게 말하는 사람들을 봐. 데이터를 들이대는 경제학자들, CEO들, 노동조합 지도자들, 거만한 셀러브리티들 - 저들에게 한 방 먹여주고 싶지 않아?'

브렉시트 지지파들은 이런 허무주의에 노골적인 거짓말을 섞었다. EU 탈퇴로 '아낀' 돈을 전부 건강보험에 쓰겠다는 약속이 그 예다. 그들은 투표가 끝나자마자 이 말을 철회했다. 그들은 밝은 새 아침을 약속하고는 주식 시장과 환율 폭락, 즉각적인 직장과 투자 감소를 가져왔다. 그들은 이런 결과에 대응할 어떤 계획도 가지고 있지 않은데, 솔직히 그들은 승리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도 마찬가지다.

그들의 터무니없고 현실에 반하는 캠페인 스타일은 영국과 미국의 '무엇이 사실인지는 중요하지 않게 된(post-factual)' 민주주의의 요즘 환경에 잘 맞는다. 엄청난 수의 유권자들은 정보가 부족하며, 전통적으로 권위가 있는 사람이라면 전부 사기꾼이라 보고, 자신과 다른 모든 사람에게 의심을 품고, 자신이 피해자라고 생각한다. 부도덕한 사람들은 이를 이용해 '세계주의적 엘리트', '정치 계급', 이민자들을 악마로 몰아서 자신의 이득을 챙길 수 있다.

개종 설교

그래서 드디어 내 두 번째 포인트가 등장한다. 브렉시트 이야기의 절반은 잔류 캠페인의 실패다. 잔류 지지파가 반대파에 맞서 한 일이 무엇인가? 그저 '전문가'들을 끌어들여 EU를 떠났을 경우 GDP 성장과 일자리 창출에 생길 문제만 유권자들에게 말하게 했다. 이것은 이미 잔류를 지지하는 사람들에게만 먹히는 종류의 캠페인이다.

이 글에서 내가 묘사하는 브렉시트 지지자들은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이 경제학자와 GDP 수치는 엿이나 먹으라고 해, 나한테는 아무 의미도 없으니까. 경제가 좋을 때 나는 무일푼이야. 나쁠 때도 무일푼이야. 나는 내 표를 사용해 쟤에게 벌을 주겠어.

잔류 캠페인은 현실 안주적이었으며 열정이 부족했고, 탈퇴파와 같은 맹렬함이 없었다. 브렉시트파는 독립과 '우리 나라 되찾기'를 이야기한 반면, 잔류파는 GDP 통계를 이야기했다. 잔류파는 평범한 유권자를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1000% 브렉시트 반대지만, 잠시 객관적으로 말하자면, 잔류 캠페인은 패배를 자초했다. 파토스가 득세한 때 로고스와 에토스만을 내세웠다.

잔류파의 가장 큰 잘못은 EU와 EU의 전신이 애초에 생겼던 이유를 언급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건 전쟁 방지였다. 오랫동안 적대적이었던 국가들이 서로 싸우지 않도록 무역과 정치를 통해 묶으려는 프로젝트였다. 이게 효과가 있었다는 걸 증명하기란 논리적으로 불가능하지만, 분명 효과가 없지는 않았다. 나는 EU가 추진한 경제 및 문화적 교류 덕분에 우리가 전쟁을 하게 될 가능성이 낮아졌다고 주장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보기에는 EU를 시작했던 이유는 지금도 EU에 남을 가장 좋은 이유다.

이제 영국이 EU를 떠나면 다른 국가들도 떠나려 할지 모른다. 서로 비난과 외국인 혐오를 하며 EU 전체가 무너져 내린다면 어떤 결과가 생길지 누가 알겠는가. 그리고 그러는 동안 소련의 몰락을 '20세기의 가장 큰 지정학적 비극'이라 말하는 아주 강력한 사람은 동유럽을 러시아의 영향권 안에 다시 넣을 기회를 찾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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