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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렉시트, 뭣이 중헌디!?  |  브렉시트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것인가

이번 투표가 '직접민주주의는 중우정치를 낳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로 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런 주장대로 시민들이 직접 중요한 국가적 결정을 내리는 것은 정말 위험하고 무모한 일일까요? 국가 중대 사안을 국민투표에 부치고 다수결의 원칙으로 결정하는 것이 직접 민주주의의 전부라고 한다면, 1972년 유신헌법을 국민투표에 부쳐서 투표율 91.9% 찬성율 91.5%로 채택하게 한 박정희 전대통령 역시 직접 민주주의의 충실한 구현자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와글(WAGL)
  • 입력 2016.06.28 10:30
  • 수정 2017.06.29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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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ul Lloyd

지난 6월 23일 영국(Britain)의 유럽연합 탈퇴(exit) 즉 브렉시트(Brexit)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가 실시되었습니다. 투표 결과 찬성 52%, 반대 48%의 근소한 차이로 유럽연합 탈퇴가 결정되면서 큰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투표 직후 전세계적으로 주가가 큰 폭으로 떨어지고 외환시장이 요동치는 등 큰 경제적 파장이 일었을 뿐 아니라, '직접 민주주의'의 의미에 대한 논란도 뜨겁게 달아 올랐습니다.

전세계가 지켜본 이번 브렉시트 투표결과,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를 지지하는 브렉시트가 51.9%, 잔류를 지지하는 브리메인이 48.1%로 나와 탈퇴가 결정되었습니다. 투표율이 72%에 육박한 이번 투표는 영국 내에서 교육 수준, 나이, 지역에 따라 시민들의 의견이 극단적으로 갈리며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직접 민주주의의 승리다!?

브렉시트 결과에 대한 평가 또한 엇갈리는 가운데, 이번 투표 결과를 '직접민주주의의 승리'라고 선언하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다음과 같은 정치인들이 대표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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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Reuters/Dominick Reuter

- 도널드 트럼프 : "나는 이러한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견했다. 이건 정말 굉장한 일(a great thing)이다! 기본적으로 영국인들은 자신들의 나라를 되찾았다. 파운드화 가치가 떨어지면 그들은 사업을 더 많이 할 것이다. 파운드가 내려갈수록 (내 소유의 골프장) 턴베리에도 더 많은 사람이 올 것이다.(흐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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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린 르펜 프랑스 극우정당 국민전선 대표©AP

- 국민전선(National Front, 프랑스 극우정당): "자유를 위한 승리! 제가 계속 요구했듯이 프랑스도 똑같이 국민투표를 실시해야 합니다", "국민의 자유는 언제나 끝에 승리합니다! 브라보 영국! 이제 우리 차례입니다! 브렉시트! 프렉시트!"

알렉산더 가울란트(Alexander Gauland) 독일대안당 부대표

- 독일대안당(Alternative for Germany, 독일의 극우 정당): "새로운 유럽을 위한 때가 무르익었다. 브렉시트는 직접민주주의의 역사적 승리다."

직접 민주주의의 실패다!?

다른 한 편에서는 선거 결과를 '직접민주주의의 실패'라고 주장합니다.

중국 <환구시보>, "국민투표를 통해, 캐머론 내각은 직접민주주의를 향한 기회의 창을 열었다. 선거결과는 지혜롭지 않다. 서구 세계는 자유민주주의와 사회진화론에 대해 반성적 성찰을 해야 할 것이다.

국내 언론을 비롯한 많은 언론에서도 "영국 유권자들이 어리석은 선택을 했다"고 지적합니다. 탈퇴가 결정된 후 영국인들이 제일 많이 검색한 질문이 "EU를 떠나면 어떻게 되나요?"와 "EU가 뭐예요?" 두 가지였다면서, 이번 투표가 '직접민주주의는 중우정치를 낳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로 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런 주장대로 시민들이 직접 중요한 국가적 결정을 내리는 것은 정말 위험하고 무모한 일일까요? 전문가나 소수 정치관료의 결정을 따르는 것이 현명하고 합리적인 결론에 이르는 더 나은 방법일까요?

뭣이 민주주의인데?

다양한 의견이 있을 수 있지만, 브렉시트의 결과를 놓고 직접민주주의의 성공 또는 패착을 논하는 것은 적절치 않습니다. 이번 선거는 시민들의 '직접투표'였지만 이것만으로 브렉시트 투표 과정을 '직접민주주의'라고 보기에는 어렵기 때문이죠.

국가 중대 사안을 국민투표에 부치고 다수결의 원칙으로 결정하는 것이 직접 민주주의의 전부라고 한다면, 1972년 유신헌법을 국민투표에 부쳐서 투표율 91.9% 찬성률 91.5%로 채택하게 한 박정희 전대통령 역시 직접 민주주의의 충실한 구현자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시민들의 직접 참여를 수반하는 국가적 의사결정에 관해 비판적으로 검토해볼 것은, 그것의 '직접 참여'라는 형식적 요소가 아니라 전체 과정에서 진정한 직접민주주의를 구현하는 요건이 갖추어졌는가 하는 점입니다.

브렉시트에는 직접민주주의의 선결 요건이 없다

최근의 브렉시트 찬반론자들이 놓치고 있는 점은, 이번에 영국에서 브렉시트 투표가 가결된 진정한 이유가 무엇인가 하는 점입니다. 브렉시트가 결정된 직후의 BBC 보도에 따르면, 영국 국민들이 탈퇴를 선택한 배경에는 반이민정서가 광범하게 작용했다고 합니다. 영국의 실업률과 복지부담, 집값 상승과 빈부격차 확대에 이민자의 유입이 주요원인이며, EU탈퇴를 통해 이민자(이주노동자)의 유입을 막는 것이 영국경제와 영국인들의 삶을 개선시켜줄 것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었다는 것이죠. 이번 투표과정에서 브렉시트 강경론자로 위세를 떨친 극우파정당 UKIP(United Kingdom Independence Party)의 나이절 패라지(Nigel Farage)는 이민자들이 영국인들의 일자리를 뺏고 있다면서, 외국인 노동자의 차별을 정당화하는 법안을 발의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미국의 디지털 뉴스 매체 Vox는 지난 25일 "브렉시트는 경제적 분노보다 제노포비아 때문에 일어났다"는 심층보도기사를 통해 이민자에 의해 경제 위기가 가속화되었다는 주장의 진실성을 실제 데이타를 근거로 조목조목 반박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을 간추려 소개하자면 아래와 같습니다.

- 하나. "이민자 니들 땜시 집값이 올라!"

그 동안 영국 언론에서는 이민자들이 주택시장을 어지럽힘으로써 다수 영국인들에게 피해를 준다고 주장해왔습니다. 예를 들어, 아틀란틱(Atlantic) 지는 "부유한 이민자들은 부동산 거품을 유발하고, 가난한 이민자들은 한 집에 빽빽하게 모여살면서 집값을 떨어뜨린다"고 주장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닙니다. 2011년 영국정경대학의 연구에 따르면, 이민자들이 주택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극히 미미하며, 언론의 편견과는 달리 시간이 흐르면서 이민자들이나 영국 사람들이나 집을 사는 데 있어 차이가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냈습니다. 가디언지는, "오히려 영국태생들이 기피하는 건설업에 이민자가 투입됨으로서 건설시장을 활성화시키는 데 기여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 둘. "이민자 니들 땜시 일자리가 없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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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실업률과 이민자 유입 추이를 나타낸 그래프. 2005년부터 2010년까지 이민자가 빠른 속도로 늘었지만 실업률은 오히려 떨어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 Jonathan Wadsworth, Center for Economic Performance

두 번째로 이민자들이 영국인들의 일자리를 빼앗는다는 주장이 있었습니다. 이 역시 사실과 다릅니다. 경제위기가 발생한 2008년 이전에는 이민자들의 유입이 많았음에도 영국인들의 취업률은 높은 수준을 유지했습니다. 오히려 이민자 유입이 증가할수록 영국 태생 노동자의 취업률도 상승했죠. 전체 일자리 수는 이민자 유입이 아니라, 당시 영국경제가 호황이냐 아니냐에 좌우되었습니다. 이민자의 유입은 내수 시장을 키울뿐만 아니라 앞서 언급한 대로 기피 산업에 노동력을 제공함으로써 산업발전과 경제에 긍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 셋. "이민자 니들 땜시 복지비용이 올라가!"

마지막으로 외국인들이 세금도 안 내고 복지재정을 축낸다는 주장이 있었습니다. 실제 통계자료는 복지재정 부족은 물가상승이나 고령화 등이 주요한 원인임을 보여줍니다. 이민자들이 내는 세금이 그들이 받는 복지 혜택보다 많고, 심지어 이민자들은 영국인들보다 복지혜택을 적게 신청하는 경향을 보였는데 이는 재정 적자 해결에 도움을 주었습니다. 또한 이민자들은 범죄, 교육, 의료, 공공 지원 주택에서도 부정적인 효과를 미친 적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게다가 이번 투표 결과를 분석한 영국경제 싱크탱크 레졸루션 재단(Resolution Foundation)에 따르면, 이민자가 급증한 시기에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은 사람들이라고 해서 EU탈퇴에 표를 던지지는 않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민자 때문에 피해를 입지 않았는데도 EU탈퇴를 지지한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즉 이번 투표에서 이민자들의 유입을 반대하여 EU탈퇴를 지지한 사람들은 경제적 타격을 고려해 이성적 판단을 한 것이 아니라 제노포비아, 바로 이민자들에 대해 뿌리깊게 박힌 적대감 때문에 이런 선택을 한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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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보험재정 부담 요인과 액수를 나타낸 그래프. 물가 및 임금상승, 고령화 등이 이민자의 유입보다 훨씬 더 큰 재정부담이 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Nuffieldtrust

우리가 브렉시트에서 찾아야 할 교훈

이번 브렉시트 국민투표는 오랫동안 이어진 영국의 경기침체와 복지후퇴 원인을 이민자 탓으로 돌려온 언론과 정치인들의 왜곡된 프레임이 불러온 선동적 포퓰리즘의 결과이지, 직접민주주의가 아닙니다. 민주주의는 죄가 없습니다. 우리가 브렉시트 사례를 통해서 배워야 하는 교훈은, 어떻게 하면 직접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도록 할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첫째, 진정한 직접민주주의가 가능하려면 정확한 정보를 공개하고, 그 의미를 폭넓게 공유해야 합니다. 이민자가 실물경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다양한 조사가 있었음에도, 언론과 정당은 이를 외면하거나 왜곡했습니다. 경제위기의 근본적 원인을 은폐하고 가장 힘없는 이민자를 희생양으로 삼아 책임을 떠넘기는 방식은 기득권층이 문제를 숨기기 위해 흔히 써먹는 수법입니다.

둘째, 정당과 정치인들이 정치적 득실을 헤아려 타협하는 말로 문제의 본질을 회피해서는 안됩니다. EU 잔류파였던 사디크 칸(Sadiq Khan) 런던 시장조차도 경제난의 본질을 흐리는 반이민정서의 문제점을 지적하기보다 "이민자 통제는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는 게 맞다"는 모호한 태도를 취함으로써 극우파의 인종혐오를 방조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지난 총선에서 우리나라 유력정치인들이 성소수자문제에 대해 전략적으로 침묵하거나 극우적 반대여론에 편승한 것도 같은 행태입니다.

셋째, 중요한 것은 문제의 원인과 해법, 이후 결과에 대한 국민적 숙의과정을 어떻게 제도화 하느냐 입니다. 국가별, 계층별 지역별 이해관계에 따라 EU잔류 /탈퇴 여부에 관한 의견은 엇갈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결과를 놓고 국민의식의 성숙도를 판단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진정한 직접민주주의란 기층 시민들의 이해관계에 바탕해서 충분한 논쟁을 거쳐 아래로부터 담론을 형성하는 과정이어야 합니다. 극우파의 선동과 직업정치인의 우유부단함이 빚어낸 브렉시트는, 직접민주주의와 하등 관련이 없습니다.

* 이 글은 와글의 주간 뉴스레터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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