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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있는 그녀, 집 없는 그

나는 집 없는 남자가 집 있는 여자와 결혼할 수 있을 때, 혹은 남녀가 집을 같이 마련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질 때, 비로소 결혼비용의 사슬에서 좀 자유로워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내게 매우 특별한 사례가 있다. 공기업에 근무하는 30대 후반의 여성은 집을 2채 소유하고 있다. 그녀는 많은 사람이 그렇게 생각하듯이 막연하게 '남자가 여자보다 조건이 좋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맞선을 봤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직장생활을 15년이나 해서 연봉도 높고, 직급도 높고, 집이 2채나 있는 자신보다 더 상황이 좋은 남성을 만나기 어려웠다.

  • Woongjin Lee
  • 입력 2016.06.28 12:02
  • 수정 2017.06.29 14:12
ⓒGettyimage/이매진스

짝이 없어서가 아니라 돈이 없어서 결혼 못하는 세상이다. 평균 결혼비용이 남녀 합산 1억 원을 넘어서서 "억 소리"난다고 호들갑을 떨던 때가 불과 몇 년 전인데, 이제는 남녀 합산 결혼비용이 2억 원을 훨씬 웃돌고 있으니 말이다.

대한민국 청춘들을 노처녀, 노총각으로 만드는 이 얄궂은 결혼비용은 집값 때문이다. 신혼집 마련 비용이 전체 결혼비용의 6-70%를 차지하고 있고, 신혼부부의 대부분이 전세를 선택하는 상황에서 전국 평균 전세가가 2억을 돌파했다는 소식은 전혀 반갑지 않다.

특히 우리나라는 남성이 신혼집을 마련하거나 둘이 같이 마련한다고 해도 남성 쪽이 더 많은 돈을 내는 것이 관습이라서 집값 상승으로 인한 결혼비용의 부담은 남성과 그 부모들에게 더 부담을 주는 게 사실이다.

한 여성회원이 게시판에 고민거리를 올렸다. 30대 초반의 그녀는 오랫동안 알고 지내던 3년 연상의 대학 선배와 교제 중이다. 미국 유명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선배는 이제 막 대학강사가 되었다. 학계에서 인정을 받고 있으므로 곧 자리를 잡을 수 있을 테지만, 아직은 경제적인 기반이 없기 때문에 그녀로서는 결혼을 결정하기가 현실적으로 힘든 상황이다. 그가 집을 마련할 여력이 생길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건지,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는 것이 그녀의 고민이다.

"집장만까지는 어렵지만, 남자가 전세 정도는 얻을 능력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집 장만할 여력이 없으면 결혼할 준비가 안 된 건가? 사랑한다면 작게 시작해도 굿!"

"그 사람의 현실보다는 미래에 희망을 걸고, 둘이 벌면 몇 년 안에는 집 사지 않을까?"

회원들은 다양한 의견을 제시했고, 둘이 같이 돈을 벌어 집을 마련해라, 작게 시작하더라도 결혼해라 등의 의견도 있었지만, 대다수는 남자가 집장만을 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으로 이 문제에 접근하고 있었다. 이렇듯 우리의 결혼 관습에서 남자가 집을 마련해야 한다는 생각은 여전히 지배적이다. 딸을 가진 입장에서는 집을 마련하지 않음으로써 경제적 부담을 줄인다는 것은 일종의 기득권이고, 아들 가진 입장에서는 다들 남자가 집을 마련하는 상황에서 내 아들이 그렇지 못하다면 결혼해서 기죽어 살거나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하는 심리적 부담이 있다.

나는 집 없는 남자가 집 있는 여자와 결혼할 수 있을 때, 혹은 남녀가 집을 같이 마련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질 때, 비로소 결혼비용의 사슬에서 좀 자유로워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내게 매우 특별한 사례가 있다. 공기업에 근무하는 30대 후반의 여성은 집을 2채 소유하고 있다. 경제적, 사회적 능력이 있음에도 100번 넘게 선을 봤지만, 아직 미혼이다. 그녀는 많은 사람이 그렇게 생각하듯이 막연하게 '남자가 여자보다 조건이 좋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맞선을 봤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직장생활을 15년이나 해서 연봉도 높고, 직급도 높고, 집이 2채나 있는 자신보다 더 상황이 좋은 남성을 만나기 어려웠다. 나이가 마흔이 다 되어 가는데도 생각의 틀을 벗지 못하고, 계속 같은 생각으로 사람을 만나왔던 것이다. 나는 그녀에게 대기업 근무하는 남성을 소개했다. 그는 집이 없다. 그녀에게 물었다.

"괜찮은 분이 있는데, 아직 기반을 잡지 못했어요. 전세로 살고, 집은 없습니다. 그래도 좋다면 전 그분을 추천하고 싶은데.."

"왜 그분을 추천하시고 싶은 건지.."

"우선 성품이 좋고, 직장에서도 동기들 중에 가장 진급이 빠를 정도로 능력이 있습니다. 본인이 돈을 모을 수 없었던 개인적인 사정이 있었는데, 지금은 다 해결된 상태라 2-3년 전부터는 돈을 모으고 있다고 합니다."

여성은 그런 생각은 전혀 해보지 않은 듯 잠시 말이 없었다.

"꼭 남자가 집을 장만해야 한다거나 전셋집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합니까?"

"그런 건 아니지만..."

"부부가 함께 사는 데는 집 한 채면 되는데, 운 좋게도 00님에게는 이미 집이 두 채가 있습니다. 그래도 꼭 집 있는 남자와 결혼해야 하나요?"

그녀는 나와 얘기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고 한다. 그래서 내가 추천한 남성을 만났고, 남성답고, 배려심 깊고, 그러면서도 능력 있는 그와 곧 좋은 관계가 되었다. 두 사람은 결혼을 눈앞에 두고 있다. 그녀의 결혼이 내게 각별한 이유는 여기에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고, 또 해답이 있기 때문이다.

집 없는 남자가 집 있는 여자와 결혼한다고 해서 능력이 없는 게 아니다. 각자가 서로 가진 것, 부족한 것이 다를 뿐이다.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이라면 모를까, 집이건, 능력이건 가진 사람이라면 유연한 시각으로 결혼 상대를 찾아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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