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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선 경찰서들이 '정신질환자 명단'을 수집하고 있다

ⓒ연합뉴스

일선 경찰서에서 관할 지역의 정신건강증진센터에 고위험군 정신질환자의 명단 제공을 요청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뚜렷한 법적 근거나 당사자 동의 없이 개인 민감정보를 수집하는 것인데다, 정신질환자를 ‘잠재적 범죄자’로 낙인찍는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26일 <한겨레> 취재 결과, 서울의 일선 경찰서가 최근 관할 지역 내 정신건강증진센터에 고위험군 정신질환자 명단을 공유해 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 일부 경찰서와 센터는 ‘정신건강 고위험군 발견 및 의뢰, 정보제공 등 정신건강 고위험군의 자·타해 위험성 판단을 위해 협력 관계를 유지한다’는 내용의 협약을 맺기도 했다. 광역·기초 자치단체별로 운영하는 정신건강증진센터는 관내 정신장애인들을 대상으로 상담 및 재활 프로그램을 통해 사회 적응을 돕는 곳이다.

서울 ㄱ구 정신건강증진센터 관계자는 “2주 전쯤 관내 경찰서에서 센터를 방문해 고위험군 정신질환자 명단 공유가 가능한지 여부를 물었다”며 “민감한 개인정보이기 때문에 거절했다”고 말했다. 서울 ㄴ구 정신건강증진센터 관계자도 “경찰서에서 연락이 와 ‘혹시 명단을 구할 수 있느냐’고 우회적으로 물어온 적이 있다”며 “‘안 된다’고 대답하자 더는 묻지 않았다”고 말했다. 서울의 한 일선 경찰서 관계자는 “지역 정신건강증진센터 쪽에 목록 공유를 타진했지만 민감한 개인정보라는 이유로 받지 못했다”며 “대신 경찰서 차원에서 자주 신고가 들어오는 정신질환자 목록을 정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일선 경찰서가 고위험군 정신질환자 명단 수집에 나선 것은 지난 5월 ‘강남역 여성 살인 사건’의 후속 조처에 따른 것이다. 서울지방경찰청(서울청)은 이달 초 ‘여성안전 특별치안대책’의 하나로 ‘현장경찰 정신질환자 보호조치 효율화 계획’을 수립하고, 이달 15일까지 각 경찰서별 자체 실정에 맞는 조처 효율화 방안을 서울청에 보고할 것을 지시한 바 있다.

경찰청·서울청 등 상급기관에선 일선 경찰서에 “정신질환자 명단 수집을 공식 지시한 적은 없다”고 부인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정신질환자 관리는 복지 영역이지, 경찰의 업무가 아니다. 사전에 명단을 파악할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현장 경찰관이 사건 현장에 출동했을 때 정신질환의 범죄 연관성을 판단하기 어려운 만큼 유관기관의 협조를 얻도록 지시했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명단 수집은 공식 조처가 아니라 몇몇 일선 경찰서 차원에서 이뤄진 일이라는 것이다.

경찰의 정신질환자 명단 수집에 대해 사생활 침해는 물론 잠재적 범죄자로 낙인찍는 부정적 효과가 우려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 ㄷ구 정신건강증진센터 관계자는 “경찰의 (범죄 예방) 취지는 이해하겠지만 치료를 받아야 하는 환자가 낙인효과를 우려해 센터 방문을 꺼리게 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김락우 한국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 대표는 “지금도 경찰이 충분히 관련 신고를 통해 파악하고 있는 정보를 사전에 명단까지 받는 일은 지나쳐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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