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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한 전통'의 걸림돌 | 영국의 EU탈퇴를 보면서

영국의 EU 탈퇴 소식은 나를 우려하게 한다. 정치 공학적 분석이전에 철학적으로 보자면, 영국의 EU 탈퇴는 '타자에 대한 환대와 타자들과의 공존' 이라는 이 현대세계의 긴급한 과제를 역행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영국과 같은 위치에 있는 나라들이 특히 난민 문제나 이민자문제 등에 어떠한 실천적 개입을 하는가가 이 국제사회에서 시사하는 바는 매우 중요한 함의를 지닌다. 이제 '유럽공동체'가 아니라, 다른 나라/사람들과는 다른 '영국공동체'를 더 우선적 정체성으로 내세우겠다는 것은, 타자들에 대한 노골적인 배타성을, '영국성'을 지켜내기 위한 것으로 정당화될 가능성이 더 높아질 것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이슬람, 여성, 성소수자등과 같은 '타자들'에 대한 차별과 편견을 노골화하는 미국대선 주자인 도널드 트럼프의 '차별의 정치'에 동조하는 분위기가 이 미국 안에서도 더욱 힘을 받을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하게 된다.

  • 강남순
  • 입력 2016.06.25 06:39
  • 수정 2017.06.26 14:12
ⓒToby Melville / Reuters

* 이 글은 필자의 페이스북에 실린 글입니다.

1.

영국에는 스스로 '영국의 지도자를 배출하는 대학교'라는 자기 이해를 하는 대학교가 있다.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 대학교이다. 이 두 대학교를 합쳐서 '옥스브리지(Ox-Bridge)'라고 부른다. 나는 케임브리지 대학교 신학부에서 일한 적이 있다. 미국의 대학교에서 학위과정을 했기에, 동일한 영어사용권인 영국의 대학교에서 일하는 것이 그렇게 굉장한 '새로운' 일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영국에 도착했다. 그런데 나의 예상은 전적으로 빗나갔다. 케임브리지에서 일하면서 좁게는 미국과 영국의 대학문화, 넓게는 전체적인 사회분위기가 얼마나 다른지를 경험했다. 물론 나의 영국 경험은 '케임브리지 대학교'라는 매우 제한된 공간이고, 내가 주로 만난 사람들은 대학과 관련된 학자들과 학생들, 그리고 직원들이니 나의 영국경험은 매우 제한되어 있다. 또한, 학생으로 경험하는 대학과, 대학으로부터 급여를 받으며 일하는 사람으로서의 대학은 참으로 다르다. 그러니 '일반적 평가'라는 것은 언제나 불가능한 것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영국의 EU 탈퇴 결정이 영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나의 경험과 연결되면서, 나의 예상이 벗어나지 않았다는 것을 (불행하게도) 확인하게 된다.

2.

케임브리지 대학에서의 나의 경험들을 이 제한된 공간에서 모두 나누기는 불가능하다. 그런데 한마디로 말한다면, 많은 이들이 그토록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영국의 '찬란한 전통'이 영국의 잠재성과 이 세계에서의 기여의 가능성을 차단하는 걸림돌로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내가 관찰한 것은, 이러한 '찬란한 전통'이 자신들과 다른 '타자들'을 포용하고, 새로운 담론들을 창출하고, 그러한 것들을 교육현장에서 적용시키는 창의적 교육 분위기에 커다란 장애가 되곤 한다는 점이다. 어느 날 영문학을 가르치는 동료와 패컬티 라운지에서 점심을 먹으며, '왜 프랑스에서는 현대의 다양한 새로운 담론들이 끊임없이 등장하고 있는데, 영국에서는 그렇지 못한가'라고 물은 적이 있다. 그 동료는 '그것은 참 고통스러운 질문(painful question)이다' 라고 나의 질문을 받았다. 나는 이러한 현상이 영국이 지닌 '찬란한 전통'에 대한 자부심과 집착이 지닌 지독한 한계들과 혹시 연계되어 있는 것이기도 할 것 같다는 생각을 나누며 오랜 대화를 한 적이 있다.

3.

케임브리지 대학교안에 있는 31개의 '대학(colleges)'들은 각기 다른 개성들을 지니고 있는 '거주공간'이다. 대학에 입학하는 학생들이나 가르치는 사람들은 자신의 전공분야를 공부하는 '패컬티(faculty)' 와 거주하고 삶을 나누는 '칼리지(college)' 두 곳에 소속해야 한다. 나는 신학부(faculty of divinity)에 속하면서, 로빈슨 칼리지(Robinson College)에 소속되었었다.한두 칼리지의 예외가 있지만, 대부분의 칼리지들은 일주일에 한 번씩 소위 '하이테이블 (high-table) 만찬'을 가진다. 그 만찬에는 학생들과 가르치는 사람들 모두 검은 가운을 입고 와인이 곁들여진 세 코스의 정찬을 한다. 라틴어는 식사 기도에서, 그리고 많은 학교 행사들에서 사용되고 있었다. 공식행사에서는 자주 가운을 입어야 하고, 라틴어는 공식행사에서 공식언어처럼 쓰여지는 경우들이 많았다. 내가 있을 때인 2001년에 김대중 대통령이 명예박사학위를 받는 행사가 있었다. 그곳에 온 한국 기자들이 가운을 입고 그 행사장에 앉아있던 내게, '아니 왜 영어가 아니라 라틴어로 식을 하나요? 여기는 이렇게 라틴어를 상용하나요?'라고 의아해 하며 물은 적이 있다. 물론 프린트된 식순에는 영어로도 표기해 놓았다.

4.

미국의 대학에서 '교수(professor)'라는 호칭은 그 사람이 종신 교수직(tenured-faculty)인가 아닌가에 별로 상관이 없이 학생들을 가르치는 사람들에게 불려질 수 있다. 그렇지만, 케임브리지에서 '교수'라는 호칭은 매우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사용될 수 있다. 그래서 정규직으로서의 급여를 받고 가르치는 사람들도 '교수(professor)'가 아니라 '박사 (Dr.)'라는 학위 타이틀로 불리고, 각기 다른 계약조건을 가지고 있다. 내가 일하던 당시, 신학부에서 이 '교수'라는 호칭을 쓸 수 있었던 사람은 두 사람이었다. 신학부가 새 건물을 짓고 그 건물로 이사하면서 가졌던 행사에 여왕과 그의 남편인 필립 경이 왔었다. 그때 신학부 건물 안에 있을 수 있는 사람들은 매우 제한되었었고, 그 행사 즈음에는 매일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이 이메일로 왔다. 예를 들어서 여왕과 필립 경이 우리 앞을 지나갈 때 (신학부에 소속된 teaching faculty들은 자신의 연구실 앞에 서서 있을 것이 권유되었다), 절대로 먼저 대화를 시작하지 말 것, 인사는 여왕에게 하는 전통적인 영국식 인사를 할 것 등등의 세부적인 지침서가 왔다. 이 두 사람이 이 신학부 건물에 들어서서 따로따로 '시찰'을 하는 동안, 이 건물 밖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와서 장사진을 이루었다. 그들은 이 건물 안에 있는 이들을 부러워하며 멀리에서라도 여왕의 모습을 보려고 애를 쓰고 있는 모습이 내게는 참으로 흥미로웠다. 필립 경은 그 당시 그 신학부에 소속되어 일하고 있는 유일한 '아시아' 사람이던 내 앞에 서서 두 가지 질문을 했는데, 나중에 다른 동료들이 이렇게 필립 경과 이야기를 나눈 것은 '가문의 영광'이라는 농담을 하기도 했다. '왕족'에 대한 거의 무조건적 열광과 이러한 '찬란한 전통'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문화에서, 이 전통 '밖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환대와 공존의 가능성을 도출해 내는 것은 참으로 어렵겠다는 것이 나의 경험이었다.

5.

이 점에서, 영국의 EU 탈퇴 소식은 나를 우려하게 한다. 정치 공학적 분석이전에 철학적으로 보자면, 영국의 EU 탈퇴는 '타자에 대한 환대와 타자들과의 공존' 이라는 이 현대세계의 긴급한 과제를 역행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영국과 같은 위치에 있는 나라들이 특히 난민 문제나 이민자문제 등에 어떠한 실천적 개입을 하는가가 이 국제사회에서 시사하는 바는 매우 중요한 함의를 지닌다. 이제 '유럽공동체'가 아니라, 다른 나라/사람들과는 다른 '영국공동체'를 더 우선적 정체성으로 내세우겠다는 것은, 타자들에 대한 노골적인 배타성을, '영국성'을 지켜내기 위한 것으로 정당화될 가능성이 더 높아질 것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이슬람, 여성, 성소수자등과 같은 '타자들'에 대한 차별과 편견을 노골화하는 미국대선 주자인 도널드 트럼프의 '차별의 정치'에 동조하는 분위기가 이 미국 안에서도 더욱 힘을 받을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하게 된다. 미국의 대통령은 '미국'만이 아니라 '세계'의 대통령의 기능을 한다고 보면서, 미국시민을 제외한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미국 대통령을 선출할 투표권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고 한 슬라보에 지젝과 같은 철학자의 말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자면, 영국의 EU 탈퇴도 영국민이 아닌 다른 유럽국가의 사람들이 결정했어야 한다는 생각은 지젝의 주장과 같은 맥락에서 드는 나의 생각이다.

6.

이전 시대의 지리적 경계는 더는 작동되지 않는다. 생태, 정치, 경제, 종교등 우리의 삶의 영역들을 보자면, 한 곳에서 일어난 일이 다른 곳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주고받게 되는 시대에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국가, 종교, 계층 등의 경계들을 넘어서는 '포용과 환대, 그리고 공존' 이라는 철학적 가치와 긴급한 정치적 과제가 영국의 EU 탈퇴 등과 같은 사건을 통해서 다층적 난관에 부딪히는 현상을 보는 것은, 참으로 착잡한 일이다. 어떠한 방식으로 우리는 이러한 세기적 과제를 확산하고 실천할 수 있을 것인가. 더욱 치열하게 고민하고 씨름해야 할 질문이며 과제이다.

*** 지젝의 미국 대통령 투표권에 대한 주장에 관심이 있다면 다음의 링크가 도움이 될 것이다.

http://www.democracynow.org/.../everybody_in_the_world_exce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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