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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변심은 무죄 | 헬렌의 경우

두 영화인의 작품들을 좋아했던 영화팬의 한 사람으로서 그들의 작품들을 앞으로도 계속 볼 수 있었으면 하는 나름 소박한 이기적인 소망과, 두 사람의 "사랑"에 희생되었을지도 모를 다른 당사자들이 큰 피해를 입지 않았으면 하는 오지랖 넓은 대중으로서의 관심 정도가 있을 뿐이다. 이 스캔들 관련 보도와 이 사건에 대한 반응들을 보다 보니 문득 동서고금의 소위 민폐 캐릭터 중 가히 최고봉이라고 할 만한 고대 그리스의 초(超)미녀 헬렌(헬레나)과 관련한 이야기가 (엉뚱하게도) 떠올라 이 글에서는 그에 관한 썰이나 한 번 풀어볼까 한다. 노파심에서 덧붙이자면 이 글은 앞에 언급한 스캔들의 당사자 중 누구를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뜻으로 쓴 글은 아니다.

  • 바베르크
  • 입력 2016.06.23 13:32
  • 수정 2017.06.24 14:12

우리 영화계의 국제적 자랑거리였던 유명 영화 감독과 최근 절찬리에 상영 중인 영화에 주인공으로 출연한 톱스타 여배우 간의 스캔들로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시끌벅적하다. 이른바 우매한 대중의 한 사람일 뿐인 필자로서야 그 스캔들의 내막이나 그 중 누가 잘하고 잘못했는지를 판단할 정보나 능력은 없다. 다만, 두 영화인의 작품들을 좋아했던 영화팬의 한 사람으로서 그들의 작품들을 앞으로도 계속 볼 수 있었으면 하는 나름 소박한 이기적인 소망과, 두 사람의 "사랑"에 희생되었을지도 모를 다른 당사자들이 큰 피해를 입지 않았으면 하는 오지랖 넓은 대중으로서의 관심 정도가 있을 뿐이다.

그런데, 이 스캔들 관련 보도와 필자가 주로 활동하는 트윗덤에서의 이 사건에 대한 반응들을 보다 보니 문득 동서고금의 소위 민폐 캐릭터 중 가히 최고봉이라고 할 만한 고대 그리스의 초(超)미녀 헬렌(헬레나)과 관련한 이야기가 (엉뚱하게도) 떠올라 이 글에서는 그에 관한 썰이나 한 번 풀어볼까 한다. 노파심에서 덧붙이자면 이 글은 앞에 언급한 스캔들의 당사자 중 누구를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뜻으로 쓴 글은 아니다. 감히 헤밍웨이가 그의 걸작 [노인과 바다]에 대해 한 말을 흉내 내자면, 그저 헬렌은 헬렌이고, 메넬라우스는 메넬라우스이며, 파리스는 파리스일 뿐이니, 독자 제현께서 그저 심심풀이 삼아 재미있게 읽어 주시기만 한다면야 바랄 게 없겠다.

영화 <트로이>에 헬렌역으로 출연한 배우 다이엔 크루거.

그렇다면, 고대 그리스의 초미녀 헬렌은 과연 누구인지에 대해 (다들 아시겠지만) 한 번 살펴 보기로 하자.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등에 나온 캐릭터인 헬렌은 스파르타왕 메넬라우스의 아름다운 부인이지만 메넬라우스왕을 찾아 온 손님인, 소아시아에 있던 트로이 왕국 프리아모스왕의 아들 파리스와 눈이 맞아 트로이로 달아난 여자이다. 물론 이는 출생의 비밀을 안고 양치기로 지내던 시절의 파리스가, 올림푸스의 여신들 중 권력과 지혜를 준다던 헤라와 아테네를 제치고, 예쁜 부인을 얻게 해주겠다던 아프로디테를 골라, 세 여신 중에 제일 예쁜 여신님이라며 아프로디테에게 사과를 준 덕분에,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가 나중에 파리스를 도와 손을 써 준 덕분이다.

한편, 트로이 왕자 파리스랑 눈이 맞아 달아난 부인 헬렌을 되찾아 오겠다며, "부인 간수를 잘 하지 못한" 남편인 스파르타왕 메넬라우스는 방방 떴고, 형인 미케네왕 아가멤논에게 아내를 찾는 일을 도와 달라고 호소한다. 그러자, 아가멤논은 헬렌을 되찾기 위해 무려 그리스 연합군을 조직해(!) 트로이를 침공하고 그렇게 해서 시작된 트로이전쟁은 10년이나 계속된다. 그리스 연합군이 트로이 침공을 위해 출발하기 전, 그리스 아르고스의 명장 아킬레우스는 전장에 나서면 죽는다는 점장이의 말을 상기하고, 여장(女裝)을 하고 어느 궁정에 궁녀인 척하고 숨었으나 궁녀들에게 팔 장신구 상인으로 위장한 아가멤논 측이 장신구들 속에 섞어서 함께 가져온 무기들에 관심을 보였다가 아가멤논에게 들통나 전장터에 끌려간다. 그리스의 섬 이타카의 영주 오디세우스도 전장터에 나가면 20년간 헤맨다는 예언을 듣고 미친 척하고 소 행세를 하며 쟁기를 끌며 밭을 갈며 피해보려 했으나 아가멤논 측은 밭에 오디세우스 아기를 데려다 놓아(이 아이가 오디세우스의 아들 텔레마코스가 아닌가 싶다) 오디세우스가 차마 아들까지 쟁기로 밀어 버릴 수 없어 피하는 바람에 역시 미치지 않았다는 것이 들통 나 전장에 끌려나오고 만다.

그런데, 10년의 전쟁 끝에 그리스 연합군에게 트로이가 함락되는, 트로이 전쟁의 결말이야 목마 얘기와 함께 다들 아실 터인데 문제는 전쟁 발발 원인이자 이 글의 소재이자 주제인 헬렌이 트로이가 망하고 난 다음에 어찌 되었냐는 것이겠다.

놀랍게도 헬렌은 그냥 얌.전.히.(!) 원래 남편인 메넬라우스에게 돌아간다.

이게 좀 어처구니가 없는 것이 다른 트로이의 여인들은, 파리스의 형인 트로이 헥토르 왕자의 부인 안드로마케나, 족집게 같은 예언을 하지만 주변에서 아무도 안 믿어주는 카산드라 공주, 트로이 프리아모스왕의 왕비인 헤카베까지 모조리 그리스 장수들의 노예가 되어 끌려가는데 헬렌만큼은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없기는 개뿔;이고, 헬렌 때문에(?) 10년간 아킬레우스, 헥토르, 파리스 등등 그리스와 트로이의 숱한 남정네들이 죽고 트로이는 멸망했구만-_-;) 다시 남편 품에 안기고 말았기 때문이다!?!? 도대체 왜 때문일까?

헬렌의 변심에 대하여 문학과 역사(?)가 이렇게 무죄 판결을 내린 어처구니없는 결과가 나온 것과 관련하여 (아무도 관심 없겠지만) 전부터 필자가 밀어온 소수설은, 헬렌과 트로이의 목마 작전을 기획해 낸 그리스의 지장(智將) 오디세우스 간의 응응응설(응?)이다. 오디세우스는 트로이 포위 공성 10년 중 막판의 목마작전 전에도 트로이 성 안에 잠입하여 트로이의 보물을 훔치는 작전을 한 차례 수행한 일이 있는데 그때 그만 당시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의 부인 노릇을 하고 있던 헬렌과 뙇! 마주치고 말았다고 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헬렌은 변복한 오디세우스를 알아보고서도 트로이의 당국에 신고하지 않고 그를 숨겨준다.

그리고, 지치고 남루한 행색의 오디세우스를 헬렌은 자신의 처소로 들어오게 하여 직접 옷을 벗겨주고 목욕까지 시켜주었다고(쿨럭;) 헬렌 자신이 직접, 나중에 집 나간 아버지를 찾는 중에 자신에게 들른 오디세우스의 아들 텔레마코스에게 토로하였다(호메로스의 [오딧세이아]에 나오는 이야기다). 당시 그리스 최고 미녀 헬렌과 그리스 최고 뇌섹남 오디세우스가 문제의 그날 우연한 조우를 딱 거기(어디?)까지만 하고 멈추었을지는 더 이상의 기록이 호메로스의 [오딧세이아]에도 없으니 미칠듯이 궁금하기는 하지만 안타깝게도 더 이상 상고하기는 불가능하다.

다만, 오디세우스 이 남자, 페넬로페라는 아름답고 정숙한 아내를 두고도 10년 간의 트로이전쟁을 하고 나서도 다시 10년을 더 '죽을 고생을 하면서' 지.중.해.를(네? 어디라구요?) 헤매고 다녔다는 말을 하고 다닌 사내(아시다시피 그걸 기록한 게 호메로스의 [오딧세이아]이다)라는 점만 기록해 두고자 한다. 어쩐지 헬렌의 무사귀환에는 이러한 오디세우스와의 빅딜이 있지 않았을까 싶은 느낌적 느낌이다만 역시 증거는 전혀 없다^^

후일담을 덧붙이자면, 헬렌은 "다시 가정으로 돌아가" 메넬라우스의 부인으로 삶을 마쳤을 것 같지만, 놀랍게도 약 3천년 후까지 계속 살아서(?) 독일의 대문호 괴테의 필생의 역작 [파우스트]에 다시 등장한다. 여기서 주인공 파우스트 박사는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와의 '계약' 덕분에) 헬렌을 만나서 그녀와 결혼하기에 이른다! 헬렌이 여전히 미모를 잃지 않고 결혼했다니 그것도 경이롭고(헬렌 뱀파이어설^^) 파우스트 박사와 결혼한 헬렌은 무려 임신까지 하여 아이를 낳으니 그 아이는 놀랍게도 바이런이다. 그러나 어이 없게도 파우스트 박사와 헬렌 사이의 자식 바이런은 요절하고 만다.

다 짐작하셨듯이 이 [파우스트]에서의 헬렌은 고전고대 그리스의 절대미를 상징하는 것이고, 파우스트와 헬렌 사이에 태어난 바이런은 실제 인물인 영국 시인 바이런을 염두에 둔 것으로, 19세기 전반에 그리스가 오스만 투르크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전쟁을 일으켰을 때 영국 시인 바이런이 여기 참전했다가 전사한 것을 괴테가 나름의 방식으로 묘사한 것이라고 한다. 고전고대의 그리스와 그 후예를 자처하는 근세 서양을 이어주는 끈 중에서 당시에 이 바이런의 삶처럼 극적이고 두드러진 것은 없었을 터이니 말이다.

하여간 헬렌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으뜸으로 꼽힐 만한 희대의 민폐 캐릭터로 숱한 사람들이 무고하게 전장에서 죽어 나갔음에도 불구하고 유유히 "가정으로 다시 돌아가"는가 하면, 뱀파이어처럼 오래오래 살아서 몇 천년 후에는 세계적 대문호의 손에 의하여 그의 최고 걸작의 주인공과 결혼해 "자고 일어나니 유명해 졌다"는 얄미운 말을 내뱉었던 천재 시인의 엄마로까지 그려지다니 역시나 세상은 미녀에게는 한없이 관대하다는 개똥철학은 서양에서도 적용되나 싶은 쓸데없는 잡생각이 들기도 하고, 헬렌 같은 초대형 사고의 원인이 된 캐릭터도 뻔뻔스럽게도 잘만 살아 남아서 대문호의 뮤즈가 되어 대대손손 떠받들려지는데 21세기에 사는 우리의 도덕률은 너무 엄격한가 싶은 엉뚱한 생각도 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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