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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호 이익의 기본소득

성호(星湖) 이익(李瀷) 선생은 모든 백성에게 최소한의 의식주를 유지할 수 있을 정도의 토지, 곧 영업전(永業田)을 지급하고 그 토지만큼은 어떤 경우도 매매할 수 없게 법을 제정하자고 제안하였다. 모든 사람에게 공짜로 땅을 나눠 주자고 하니, 역시 나라에서 기본소득을 보장해 주자는 발상이 아닌가. 이러고 보니 기본소득이란 것은 딴 나라에서 만든 이상한 제도가 아니라 우리의 훌륭한 조상님이 제안한 제도이기도 한 것이다.

  • 강명관
  • 입력 2016.06.21 12:34
  • 수정 2017.06.22 14:12

늦어도 10년 안에 자동통번역기가 나온다는 뉴스를 보았다. 한국어로 말하면 다른 언어로 통역되어 상대방에게 들린다는 것이다. 그 역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나 같은 '외국어 무식자'에게는 퍽 반가운 뉴스지만, 한편으로 쓸데없는 걱정도 든다.

자동통번역기가 나오면, 외국어로 먹고사는 사람들, 곧 중·고등학교의 외국어교사, 외국어학원의 강사, 대학의 외국어학과 교수, 통번역자 등등 외국어 관련 종사자들은 일자리를 잃게 될 것이다. 무인자동차도 역시 조만간 개발될 예정이라고 한다. 자동차 운전으로 먹고사는 사람들이 실업자가 되는 것도 시간문제다.

생산에서 더욱 정교하고 섬세한 기계화가 이루어지고, 로봇과 인공지능이 상용된다면 기업은 임금과 비용이 줄어들어 좀더 많은 이윤을 챙길 수 있을 것이다(이건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다). 기업은 이윤의 증식을 위해 이것들을 적극 생산에 도입할 것이고, 이로 인해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는 것은 불문가지의 일이 될 터이다. 고용률이 낮아지고 살림살이가 불안해지면, 개인은 자연스레 지출을 줄인다. 자본주의 사회의 노동자는 곧 소비자이기도 하다. 소비자가 소비할 돈이 없거나 있어도 불안한 나머지 지갑을 닫으면 이른바 소비가 격감하고, 결국 기업이 만든 상품은 팔리지 않는다. 이건 다 아는 이야기라서 신기할 것도 없다.

이 나라의 신성불가침한 영역인 '시장'과 '자본주의'가 지속되려면, 이제는 일을 하지 않아도(아니 일을 할 수 없어도) 어떤 형태로든 개인에게 소비를 위한 돈을 지불해야 할 것이다. 요즘 화두가 되고 있는 기본소득의 발상은 이래서 나온 것이 아니겠는가. 성호(星湖) 이익(李瀷) 역시 동일한 아이디어를 제시한 바 있다. 선생은 모든 백성에게 최소한의 의식주를 유지할 수 있을 정도의 토지, 곧 영업전(永業田)을 지급하고 그 토지만큼은 어떤 경우도 매매할 수 없게 법을 제정하자고 제안하였다. 모든 사람에게 공짜로 땅을 나눠 주자고 하니, 역시 나라에서 기본소득을 보장해 주자는 발상이 아닌가. 이러고 보니 기본소득이란 것은 딴 나라에서 만든 이상한 제도가 아니라 우리의 훌륭한 조상님이 제안한 제도이기도 한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기본소득제가 자본주의 잡아먹을 정책이라고 목에 핏대를 세우는데 정말 몰라도 한참 모르는 소리다. 앞으로 기본소득을 주어야만 기업이 살아나고 자본주의가 살아난다. 이건 100% 자본주의 정책이다. 또 일 안 하고 돈을 받는 것이 부도덕한 일이라고 몰아세우는데, 그것도 웃기는 소리다. 어떤 재벌 회장님은 아무 일도 않고 누워 있으면서도 한 해에 주식 배당 소득으로 2천억원에 가까운 돈을 받고 있지 않는가.

© 성호기념관

모든 사회구성원에게 영업전을 균등하게 지급하자고 제안한 성호 이익 선생은 사회주의자도, 공산주의자도 아니고 종북 '좌빨'도 아닌 우리 조상님이시니, 그분의 제안을 실천하는 것은 '조상의 빛난 얼'을 오늘에 되살리는 일이 될 것이다. 이 나라 정치인들은 기본소득제 도입에 앞다투어 나서시기 바란다. 그게 어려우면 비정규직 몽땅 정규직으로 만들고, 실업자 남김없이 취업을 시켜 주시라. 우리도 소비 좀 하고 살자.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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